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8
177장. 검새들
“뭐죠?”
“뭐가요?”
“……법대생 아니죠? 외계인 맞죠?”
온시은과 달달한 공대 커피를 마셨다.
강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티 교수는 엄지를 척 내밀며 A+를 약속했다.
반대하는 컴공과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펀 받고 따진다면 양심도 없는 놈이다.
“이거 비밀인데요…… 외계인은 미국의 네바다주 비밀 군사기지인 51구역에 있습니다.”
“정말요? 정말 외계인 있어요?”
온시은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귀여운 소녀 같다.
농담과 진담도 구별 못하는 온시은이 외계인이다.
오늘은 약속도 없었는데 커플티처럼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나타난 온시은.
누가 보면 CC로 오해받기 딱 좋았다.
시선을 거뒀다.
손유리가 생각났다.
우연한 만남이 이어오다 며칠 전 끝까지 가버렸다.
그녀의 유혹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빗소리가 한몫 거들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다 보니 감성까지 충만했다.
사랑해 달라는 말에 도 회장님 말이 떠올랐다.
여자가 먼저 원한다면 기꺼이 허락하라 했다.
손유리가 큰마음 먹었다는 걸 알았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진심이 전달됐다.
마음에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손유리는 예린 선배와 달랐다.
나를 대함에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뜨거운 강을 건넜다.
손유리는 새벽이 오기 전 조용히 떠났다.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웃으며 떠났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것 같은 손유리를 보고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사랑이라고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녀도 나도.
그래도 손유리는 행복하다 말했다.
사랑이 끝나고 품에 안겨 손가락으로 가슴 위에 하트를 그리던 그녀의 손길이 생생하다.
아팠다.
성인군자의 인생을 꿈꾸지도 않았다.
전생과 다르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도 사랑을 했었다.
재수를 하고 들어갔던 학교에서 만났던 후배와 치열하게 사랑하고 싸우고 이별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사랑이 더 지나갔다.
뜨거운 시절이었던 만큼 여자 친구들과 깊은 관계도 맺었다.
그때 헤어졌던 인연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사랑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몸과 마음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쉽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회귀 전 나이 먹은 티가 났다.
몸은 스무 살이지만 세상의 풍파를 겪었던 삼십 대 영혼은 사랑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했다.
도 회장 말대로 눈이 높아진 건 아니다.
속물이 아닌 진짜 사랑이 하고 싶었다.
욕망만을 추구했다면 첫사랑 예린 선배와 이별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와아…… 진짜 요즘 세상 좋아졌네. 쟤들 신입생 같죠?”
온시은이 놀랐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젊은 청춘 남녀 둘이 교정을 걷다말고 열정에 못 이겨 뽀뽀를 나눴다.
“좋을 때다~.”
“그렇죠…… 좋을…… 네? 좋아요? 뭐가요?”
예쁜 공대 누나는 맞지만 정신연령은 나보다 순수했다.
“보기 좋잖아요. 꽃피는 나무 아래 추억 쌓기 하잖습니까.”
“……부럽긴 하네요.”
말끝을 흐르는 온시은이 날 봤다.
뭐? 어쩌라고!
당분간 여자는 NO!
손유리가 걱정 돼 전화를 해봤다.
없는 번호로 나왔다.
학교에 찾아갔다.
언제나 실습실에서 살던 열정적인 미대생이었다.
휴학했단다.
그리고 그녀의 동기에게서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이가 없었다.
하룻밤 만리장성에 정이 안 쌓일 리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첫 남자인 것 같았다.
책임감도 들었다.
사라처럼 하룻밤 인연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손유리는 날 버렸다.
내가 무슨 비련의 주인공도 아니고!
만나는 여자마다 다 날 떠났다.
“시은 선배.”
“왜? 우리도 저기 걸어요?”
온시은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방금 전 청춘들이 뽀뽀하던 교정을 가리켰다.
이 불순한 공대 선배 같으니라고!
“우리는 순수한 친구이자 동지애로 만납시다.”
“순수한 친구이자 동지애? 그거…….”
그거 뭐!
온시은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청혼 멘트죠?”
“컥!”
공대녀 머릿속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궁금했다.
순수한 동지애가 왜 청혼멘트란 말인가!
“그, 그게 말이 돼요?”
“우리 아빠는 엄마에게 그러던데? 너와 난 평생 함께할 순수한 친구이자 동지라고…….”
헐…….
공대녀는 세상을 몰랐다.
아빠의 그 말은 가족 간에 뽀뽀 이상은 안 된다는(?) 말이다.
밤이 무서운 중년 남성들의 단골 변명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그냥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죠.”
“아니 그게…….”
“부담되죠?”
온시은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이해한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뭘 알긴 아는 거야 하는 의심이 들었다.
“슈퍼컴퓨터가 비싸긴 하죠. 에이, 그래도 가격 다운하면 얼마 안 해요. 그것 때문에 날 멀리하면 남자도 아니죠. 맞죠?”
그럼 그렇지.
온시은은 외계인 같은 공대생이라는 깜빡 잊었다.
평범한 사고회로는 머리에 없는 것 같다.
“방학 때 견적 한번 시원하게 뽑아봅시다. 대기업과 협의 중입니다.”
“네? 정말요? 거짓말 아니죠???”
뽀뽀 보다 슈퍼 컴퓨터를 더 좋아라하는 온시은.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스윽 나도 모르게 머리칼을 쓰다듬어 정리해줬다.
“!!!”
깜짝 놀라는 온시은.
젠장!
노바 형님! 이 버릇 다 형님 때문입니다!!!
– 선신에게 책임을 넘기고 회피한 죄로 어둠의 카르마를 획득하셨습니다.
젠장, 노바 형님이 선신이면 난 대신선이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별 매력 없는 화음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 팀장 전화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그녀의 전화가 이상했다.
“유 팀장님. 무슨 일…….”
– 대표님! 크, 큰일 났어요!
유세라 팀장 목소리가 다급했다.
느낌이 싸하다.
“뭡니까? 경찰이라도 찾아 왔습니까?”
– 어? 대표님 아셨어요?
“네???”
– 지금 1층 경비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검찰에서 검사하고 수사팀들이 사무실로 올라오고 있답니다!
“뭐라고요? 검찰요!”
***
띵!
20층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저벅저벅저벅.
양복 앞에 검찰청 신분증을 착용한 검사와 수사관들이 바쁘게 걸었다.
스르르륵.
사무실 자동문이 열렸다.
“그대로 다 멈추세요…….”
기세 좋게 들어가던 검사 서울중앙지검 금융기업 범죄 전담3부 소속 부부장 검사 남상열은 큰 소리를 치다가 말을 멈췄다.
‘뭐야? 이거 회사 맞아?’
상부의 지시를 받고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특별 지시를 받았기에 기분이 좋았다.
정권이 바뀌고 예전 시절로 검찰 분위기가 바뀌었다.
인권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사라졌다.
검사라면 벌벌 떨던 놈들이 인권을 내세우며 피곤하게 만들었던 지난 10년이었다.
검사의 권위를 회복한 검사들, 그중에서 정치 검사들은 윗선의 청부를 못 받아 안달이 났다.
그리고 오늘 남상열은 큰 건을 받았다.
1차장 검사가 특별히 지시를 내렸다.
법원에서 바로 영장이 나왔다.
이제 가서 신나게 털면 그만이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할 수 있는 주식 범죄였다.
그런데…….
“어서 오십시오~.”
큼지막한 사무실에 달랑 홀로 있는 미모의 여직원이 생글거리며 맞이했다.
“지금부터 불법 주식 거래 혐의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남상열이 압수수색영장을 내밀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남상열도 남자다.
여배우 같은 여직원의 웃는 얼굴에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오늘 날이 덥죠? 시원한 아이스커피 마시겠어요?”
“저기요. 우리 지금…….”
“마음껏 압수수색하세요. 말리지 않겠어요. 저도 한때 로펌에 근무했어요.”
수사관이 어이가 없어 나서려는 순간 여직원은 손으로 내부를 가리켰다.
박스를 들고 등장했던 수사관들은 허탈했다.
거대한 사무실이기에 최소 10박스 이상은 증거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미니 정원 같은 화초들과 여직원의 깔끔한 책상, 컴퓨터가 다였다.
“장태산 대표 사무실이 저깁니까?”
남상열은 바로 대표실을 찾았다.
“저기 활짝 열려 있는 곳이 대표실입니다. 방금 대표님과 통화했는데 마음껏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X발. 정보가 샌 거야?’
남상열 검사는 김이 빠지는 걸 느꼈다.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때 요란하고 당혹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삼우 로펌과 관련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서 급박하게 영장을 받아 나왔는데 날 샌 것 같았다.
“뭣들 해! 담아!”
“넵! 검사님!”
빼어 든 검이었다.
“살살 좀 부탁드려요~ 컴퓨터는 하드 디스크만 분리해서 가져가시는 거 아시죠? 우리 회사는 문서가 별로 없어 일 하시기는 편할 겁니다~.”
미소가 아름다운 여직원은 불난 집 구경하는 자세를 취했다.
우당탕.
그래도 평생 이 짓만 하고 살아온 수사관들은 우악스럽게 서류를 뒤지고 컴퓨터 하드를 분리해냈다.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남상열은 비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대표실에 들어갔다.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대표? 좌우지간 한국대 새끼들 밥맛이야.’
대표 장태산이라는 명패를 보고 인상을 썼다.
지방 대학교 법학과 출신 남상열은 한국대에 대해 열등감이 많았다.
여기 대표로 있는 어린놈의 정보를 이미 알고 열딱지가 났다.
박봉에 줄 한 번 잡겠다고 치열하게 사는 자신과 달리 주식과 선물로 미친 수익을 기록한 장태산 대표.
그래서 박살을 내 바닥에 고꾸라지는 꼴을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털어서 먼지 하나도 안 나는 회사는 없다.
더욱이 투자 회사들은 구린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형 모니터 다섯 대가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를 켜봤다.
“!!!”
달랑 윈도우 아이콘 한 개만 보였다.
하다못해 휴지통 같은 아이콘도 없다.
다른 컴퓨터도 부팅해 봤다.
결과는…….
“이것 봐라? 다 감췄다 이거지? 흐흐. 이 새끼 날 핫바지로 아나.”
모니터에는 국내 증권사 접속아이콘만 보였다.
클릭해서 프로그램을 뒤졌다.
이쪽 전문가라는 확신을 가졌다.
“검사님…….”
“뭡니까?”
“수색…… 다 끝났습니다.”
“벌써요?”
“한 박스도 안 나옵니다.”
“그럼 다른 층도 뒤져요.”
“…… 영장 범위 밖입니다.”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싹 쓸어 봐요!”
남상열은 무리를 했다.
차장검사의 허락 하에 진행되는 사건이다.
무리해서라도 반드시 증거를 수집해야 했다.
“이 방은 내가 직접 압류하겠습니다.”
컴퓨터 하드를 분리해 디지털포렌식으로 찾다보면 수상한 흔적이 나올 게 뻔했다.
윗선에서 원하고 있는 장태산의 투자 기법.
그게 반드시 필요했다.
컴퓨터 하드만 획득하면 끝났다.
접속 사이트와 기록, 프로그램 등이 남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수고가 많네~.”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건방진 남자 목소리.
“…….”
수사관들이 제지시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야! 지금 영장 집행하는 거 안 보여? 어떤 새끼가 공무집행 방해하는 거야!”
신경이 예민해진 남상열이 큰소리를 치며 대표실 밖으로 나갔다.
“어이~ 남상열이~. 오랜만이다.”
그리고 남상열은 한 남자와 마주한 순간 그대로 몸이 굳었다.
# 17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