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77
277장. 영업 체질
어이없이 당했다.
블랙요원 김한별을 너무 우습게 봤다.
뜨겁게 몸을 밀착하고 춤을 추다 맞닥뜨린 어이없는 예언.
몸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난…….
“강제 소환이라니!”
김한별의 말처럼 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계 소환.
사실 여기가 신계인지 이계인지 헷갈렸다.
워낙 신들의 능력이 다양해 믿을 수가 없었다.
김한별이 예지력을 갖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룸에 들어와 막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려던 순간.
– 차원이동 포인트가 훌쩍 넘습니다.
– 이계 신들과의 계약으로 강제 소환됩니다.
그렇게 끌려왔다.
아직 룸 밖에서 춤에 흠뻑 빠져 있던 김한별과 그렇게 이별했다.
“여기에 딱이네~ 광빨 죽인다!”
이계는 두 번째 방문이라 적응이 빨랐다.
예상했던 대로 시간의 흐름은 멈춰 있었다. 떠났던 그 순간 그 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은 지구보다 더 위험한 곳이지만 얻을 게 많았다.
성 응접실에 각종 스테인리스 제품들을 아공간에서 꺼내 전시했다.
수백 개씩 포개져 있던 접시들을 텅 빈 진열장에 세웠다.
양은 많았지만 부피는 얼마 안 됐다.
다른 그릇과 달리 스테인리스 제품들은 장점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었다.
찰그락.
숟가락과 포크들도 나무 식탁 위에 세팅했다.
은빛 고광택 스테인리스 제품들은 스스로 자태를 한껏 뽐냈다.
“접시도~ 그릇도~ 포크도~ 다 스테인리스~ 흐흐흐.”
살림 세트가 완비되자 응접실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 동네에 오니 뭔가 더 있어 보였다.
“돈 많이 벌어야겠다. 명색이 귀족인데 거지꼴로 살 수는 없잖아.”
응접실 세팅을 끝내고 옆쪽 주방으로 향했다.
“상단주 올라오라고 해~.”
창문을 열고 밑을 향해 외쳤다.
“넵! 영주님!”
“샐러맨더~ 나와 봐.”
자연스럽게 불의 전령을 소환했다.
화르르르.
외침과 동시에 눈앞에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누가 널 도마뱀이라고 했어? 아무리 봐도 용이다~. 화룡아 너도 마음에 들지?”
지구에 다녀온 사이 녀석의 모습이 좀 변했다.
아직 정령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
다만 녀석이 날 무지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그사이 너 많이 컸다? 뭐 좋은 거 먹었어? 정령계에 산삼이라도 있어?”
나처럼 녀석의 정령계에서도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다만 이곳 시간만은 그 전과 똑같았다.
화르 화르르~.
화룡이는 나를 향해 작은 불꽃을 만들었다.
기분 좋다는 표현 같았다.
– 정령과의 친화력이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 정령이 이름을 완성해 준 당신에게 종속됩니다.
– 불의 정령들이 당신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종속? 그건 또 뭐야?”
화룡이의 불길이 뜨겁게 느껴지거나 화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정령 소환자는 정령으로부터 보호 되는 것 같았다.
화룡이는 나의 물음에 눈만 껌벅였다.
마치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 같았다.
경계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화룡아. 프라이팬 좀 달궈라~. 중불로 천천히~.”
성에 딸린 부엌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녹슨 대형 가마솥과 몇몇 식기들이 보였다.
천장에는 고기를 걸어놓는 갈고리가 있었지만 텅 비었다.
먹을 게 없어 사용 못했던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빈 곳이 많았다.
“아공간!”
아공간에서 프라이팬과 각종 냄비 시리즈, 접시, 가위, 칼 등을 꺼냈다.
물론 모두 다 스테인리스였다.
이계에 첫 진출한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이다.
“돌이야~”
바람의 정령도 소환했다.
녀석은 바람돌이라는 약칭으로 불렀다.
“먼지 싹 날려줘.”
휘이이이잉.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엌에 바람이 일어나 먼지들을 창밖으로 날렸다.
AI로봇도 부럽지 않는 순수 자연산 인공지능 정령이었다.
“아공간 참 좋아. 썩지도 발효도 안 되고 그대로 보관되다니……. 하르케우스 님 고맙습니다~ 종종 선물 하트 날려주십시오~.”
접시들이 빠진 아공간 한쪽에 고추장과 된장을 비롯해 엄마 표 식재료들을 놓았었다.
그 중에서 굵은 천연 소금, 스텐 그릇에 담겨 있는 유기농 올리브유, 통후추, 집 간장, 유기농 설탕, 양파, 간마늘, 천연 꿀 등을 꺼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틈틈이 시골집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획득해 두었던 살림 밑천들이었다.
“멧돼지 녀석 참 실하네~.”
도축해 놓은 멧돼지 고기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다행히 수컷이 아니라 냄새가 없었다.
살점 사이사이에 적당한 지방층이 보였다.
갈비부터 시작해 전지, 후지, 겹살이, 목살까지 넉넉했다.
아공간은 농장에서 사육해 도축한 고기를 거부했다.
오염된 사료와 항생제로 길러진 고기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 제대로 영업 한 번 해봅시다.”
제롬 상단주를 노렸다.
오크 덕분에 마력석과 가죽을 획득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영지민들을 돌봐야 했다.
영주라 불리는 이름값에 대한 책임이 컸다.
타다다다닥.
손에 들린 식칼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촤자자자자작.
양념 냄비통에 간장, 설탕, 꿀, 다진 양파, 간마늘, 소금을 넣고 간을 맞췄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부었다.
“배가 불러야 마음이 넉넉해지는 법이다.”
요리에 몰두했다.
두툼한 멧돼지 목살 두 개가 프라이팬에 놓였다.
치이이이이잇.
달궈진 올리브유 위에서 목살이 구워지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영주님. 제롬입니다.”
연회장 입구 문 밖에서 제롬 목소리가 들렸다.
“식탁에서 기다리라.”
“알겠습니다.”
문을 열고 제롬이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
그리고 들려오는 탄성.
영업 시작을 제대로 알리는 소리였다.
***
‘이건 도대체……. 뭐야!’
제롬은 깜짝 놀랐다.
사람 한 명 살지 않았던 거지꼴 영주성이 분명했다.
오크만 아니면 찾아들지 않았을 저주 받은 성.
저녁 식사 대접이라 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영주가 자신들의 식량을 허겁지겁 축내던 모습이 제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영주성의 응접실은 상상했던 바를 훌쩍 뛰어 넘었다.
코에 스며드는 구수한 고기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상인 제롬의 눈을 황홀하게 사로잡는 물건들이 즐비하게 보였다.
“미, 미스릴!”
놀라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상인이다 보니 귀한 세상 물품들을 잘 알아 보았다.
지금 응접실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각종 그릇들은 미스릴만이 낼 수 있는 빛깔이었다.
‘영, 영주 정체가 뭐야!’
덜덜덜 제롬의 몸이 절로 떨렸다.
만약 미스릴이라면 이 방에 있는 양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대마법사들과 이름 높은 기사들, 귀족들이나 미스릴을 사용했다.
그것도 자신들의 명예라 할 수 있는 마법지팡이와 검 따위에 잔뜩 발랐다.
이렇게 하찮은 식기로 사용하는 인간은 감히 없었다.
드래곤이라면 몰라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건 인간 대장장이 솜씨가 아니다!’
제롬의 눈동자는 정확히 상품들을 감별했다.
똑같은 동일 규격으로 저렇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 대장장이는 없었다.
또 얇기는 얼마나 얇은가.
제롬은 안으로 들어서는 것도 잊은 채 미스릴로 추정되는 접시와 그릇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자~ 어서 앉으라. 특별히 상단주를 위해 요리를 했다.”
어느새 부엌에서 나온 영주가 제롬을 향해 웃었다.
“화, 황송합니다. 영주님.”
제롬은 몸가짐을 더욱 가다듬고 조심했다.
영주가 달리 보였다.
마력을 다루는 정령사였다.
거기에 드워프가 제조한 물건들을 음식 접시로 사용하고 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재력가가 확실했다.
작은 상행을 이끄는 제롬이 함부로 상대할 수 있는 소영주가 아니었다.
지금도 손에 들린 원형의 커다란 고급 접시 위에 하찮은 고기 따위를 담았다.
과거 대 제국 황제나 누리던 호사였다.
‘모든 게 다 미스릴이다.’
영광스럽게도 영주가 건네주는 접시를 받아든 제롬은 놀라고 또 놀랐다.
식탁 매트도 없는 고풍스러운 나무 식탁 위에 그냥 놓인 포크와 나이프도 미스릴이었다.
‘드워프 작품이 맞다!’
포크와 나이프 뒷면에 찍혀 있는 드워프 각인을 보고 제롬은 확신했다.
털이 난 드워프 장인 표식이 박혔다.
드워프만이 이 증표를 사용했다.
“먹으라. 그대를 위해 특별히 요리했다.
“황송합니다. 영주님.”
영주가 제롬에게 요리를 권했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귀한 미스릴로 만든 포크를 드는 제롬.
난생 처음 맞이하는 격조 높은 호사에 경건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
상인이 낚시에 걸렸다.
제롬의 행동에서 무한 감동을 읽어냈다.
상상하던 대로다.
21세기 지구 공장에서 생산한 그릇을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것도 완벽하리만큼 매끈하게 가공된 접시는 그것만으로 작품이었다.
지구에서도 집안 곳곳에 널려 있는 싸구려 스테인리스 제품이 아니었다.
스테인리스 중에서도 최고급품이었다.
서걱서걱.
두툼한 멧돼지 목심 스테이크를 썰었다.
꿀이 가미된 연한 간장 소스에 절여진 스테이크에서는 육즙이 뚝뚝 흘렀다.
양파로 인해 육질이 더욱 연해졌다.
마늘과 후추, 설탕, 소금을 기본 베이스로 한 양념은 혀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우걱.
두툼한 목살 스테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환상이었다.
내가 요리했는데 깜짝 놀랄 정도다.
공기 좋은 곳에서 먹어서인지 꿀맛이 따로 없었다.
방금 전까지 클럽에서 놀다가 와 배가 많이 고팠다.
– 요리 재능이 상승했습니다.
보너스도 받았다.
시스템 알림에 고개를 끄덕여 만족함을 표했다.
“영주님! 정말 맛있습니다!”
제롬은 목살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 먹고 감동했다.
오크에게 쫓겨 오는 동안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했을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빵과 육포, 말린 과일이 전부였다.
용병들이나 마부들이 만든 요리는 죽지 않기 위해 섭취하는 수준이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요리였다.
똑똑 떨어지는 기름진 육즙 가득한 목살 스테이크.
대장금 누님 레시피로 완성됐다.
부드럽고 고소했다.
꿀맛이 가미돼 달콤한 풍미가 한층 더했다.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돼지고기 특유의 기름진 감칠맛이 혀끝을 희롱했다.
후추와 소금으로 잡냄새까지 제거됐다.
제롬 인생에 손꼽히는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가 확실했다.
제롬은 영주 앞이라는 것도 잊고 긴장감도 푼 채 고기를 쑤셔 넣었다.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표정이다.
“어때 맛이 괜찮나?”
빙긋 웃으며 그릇 위 요리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제롬을 봤다.
“대단하신 요리 실력이십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영주님!”
제롬의 진심이 팍팍 전달됐다.
“잘 먹었다니 다행이다.”
“영광이옵니다. 영주님.”
“그건 그렇고 제롬 상단주에게 내가 제안할 게 있는데 들어보겠나?”
“물론입니다. 하명하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도 먹었으니 이제는 영업을 시작할 때였다.
한쪽 바닥에 쌓여 있는 캠핑용 10인 코펠 세트를 들고 제롬에게 다가갔다.
“이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제롬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냄비 같기도 하고 그릇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 자네에게 놀라운 걸 보여주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코펠 뚜껑을 열었다.
“아!”
예상했던 것처럼 놀라는 제롬.
달그락 달그락.
코펠에서 중간냄비, 작은 냄비, 밥그릇, 접시, 국그릇을 순서대로 꺼냈다.
순식간에 식탁 위에 펼쳐진 수십 개의 스테인리스 제품.
반짝반짝 빛을 뽐내며 제롬을 유혹했다.
“마, 마법입니까!”
제롬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당황하는 눈치다.
코펠의 공간성은 충분히 마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누가 만든 줄 아나?”
은근히 물었다.
“드, 드워프입니까?”
확인하는 제롬.
“오! 알고 있었나? 이 물건들은 다 드워프 사(?)에서 제조된 신상이네.”
“대단합니다!!!”
난 절대 거짓말 하지 않았다.
스테인리스를 제조한 공장의 이름이 드워프 사였다.
“냄비는 삼중구조로 만들어서 열전도율과 효율성이 최상이네. 내구성 또한 탁월해 웬만해서는 구멍이 나지 않네.”
허풍을 살짝 섞어 영업의 묘미를 살렸다.
“씻기도 편하고 휴대성도 이렇게 간편하니 얼마나 좋은가? 여행객이나 상인, 병사들이 휴대하면 그만이겠지?”
“물론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그릇은 세상에 없습니다. 제 생전 처음 보는 고급 식기 제품입니다!”
최면에 걸린 제롬은 침을 튀겨가며 만족해 했다.
제롬의 눈동자에 욕심이 가득 담겼다.
팔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익이 되리라는 걸 제롬도 알고 나도 알았다.
마력석보다 더 귀중해 보일 것이다.
꿀꺽.
제롬이 마른침을 삼켰다.
드워프와 친밀한 영주는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이계 상식으로 드워프 물건을 이렇게나 많이 소유한 영주는 더더욱 없을 게 확실했다.
“자네 한 번 팔아보겠는가?”
이제는 뿌려진 밑밥을 거둘 차례.
은근히 제롬에게 물었다.
“영주님!!! 맡겨만 주신다면 최고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쿵!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조아리는 제롬.
흐뭇하게 그런 제롬을 바라봤다.
– 어둠의 마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마음이 토라졌던 마신이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 27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