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4
43장. 졸업 축하드려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집에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무리 비싼 외제 스포츠카를 타도 휴게소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았다.
돈이 많아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의미 없었다.
호떡을 사 먹고 화장실도 똑같이 사용했다.
배가 고파 충무김밥 라면 정식도 먹었다.
누구나 똑같은 일상.
돈이 많다고 하루 열 끼를 처먹을 수는 없다.
변비도 걸리고 많이 먹으면 살도 찐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본을 잊지 말자 다시 다짐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똑같은 한 줌의 재 신세였다.
그래도…….
“죽여줬어!”
흑호를 타고 처음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규정 속도로 달렸지만 가끔 한 번 밟아 줄 때마다 머리칼이 쭈삣 섰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내 아파트에 도착했다.
“역시 집이 최고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청소된 거실이 날 반겼다.
넓은 창 너머로 장주강과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서울에서는 특급 호텔에 머물렀지만 집만 못했다.
잠시 창가에 서서 밖을 보며 귀향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부모님과 쌍둥이들은 잘 있겠지?”
가족이 그리웠다.
아직 개조한 시골집에는 가보지 못했다.
부모님은 많은 걸 묻지 않았다.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인감증명서를 떼 주고 인감도장까지 나에게 줬다.
미성년자라고 내 발목을 잡지 않았다.
두 분 다 내가 뭘 하는지 모르지만 나를 믿었다.
지난 첫 번째 생에서는 이렇게 부모님이 나를 믿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더 고맙고 감사했다.
“왔다는 연락드리고 오랜만에 친구들 한 번 불러볼까~.”
고향에서만큼은 금융투자가의 모습을 벗었다.
먼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어~ 아들 집에 도착했어?”
“네. 지금 막 왔습니다.”
“저녁 뭐 먹고 싶어?”
역시 엄마다.
아들이 도착하면 한 상 푸짐하게 차려내고 싶은 엄마의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친구들 좀 만나서 오늘은 놀다 내일 들어가겠습니다. 기다리지 마세요.”
“너무 늦지 말고. 아빠하고 쌍둥이들이 너 보고 싶어 난리다.”
“내일 오후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사랑해! 아들~.”
“네, 어머니. 저도 사랑합니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언제나 따뜻한 둥지 같은 엄마다.
전화를 끊고 친구 번호를 눌렀다.
“대선아 뭐하냐?”
“뭐 하긴 방구석 파고 있다! 새꺄! 서울에서 혼자 학원 다니니까 좋냐? 배신자 새끼! 여태 너에게 넘긴 내 야동 우정을 버린 냉정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냉정한 난 형철이 불러 콜라에 간장치킨이나 뜯어야겠다. 저녁으로는 중화원 찹쌀탕수육을 먹어볼까나…….”
고삐리들에게 치킨과 탕수육은 신과 레벨이 같았다.
언제나 배고픈 영혼들을 홀리는 건 너무 쉬웠다.
“치, 친구야!”
“친구? 우정도 버린 내가 친구 맞아?”
“왜 그래. 친구~ 너 서울물 먹더니 목소리가 세련된 것 같다. 하하하하.”
대선의 가식적인 웃음이 듣기 좋았다.
“그래?”
“신상 구해 놨다. 너에게 제일 먼저 주마! 내 각별한 우정의 증표다!”
애들 수준하고는…….
과거에 이미 다 본 거야, 임마!
그리고 난 홍콩에서 엄청난 미녀와 키스도 해봤어!
“그건 됐고. 애들 불러라. 오늘 거하게 한 턱 쏜다.”
“우와와와와와와! 장태산 내 친구야! 내가 너 격하게 사랑한다!”
같은 말인데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과 왜 이렇게 다를까?
흑심 가득한 저 변절자의 사랑.
그래도 좋다.
친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다.
내가 죽기 전까지 서로 위로하고 없는 돈 쪼개서 밥 사주고 용돈까지 줬던 녀석들이다.
“오늘은 한 번 달려볼까~.”
내일 예린 선배의 졸업식이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예린 선배.
마음에 이는 무거움을 털었다.
과거에는 말도 못 꺼내봤던 내 짝사랑이자 첫사랑.
욕심을 과하게 내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
시원한 바깥 풍경.
도도한 장주강이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한국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이예린 양에게 시장님께서 특별 상장을 수여하고 계십니다. 모두 박수로 이예린 양의 영광된 미래를 격려해 주십시오!”
“휘이이이이이잇~.”
“언니 짱!!!”
짝짝짝짝짝짝.
장주여고 실내 체육관에서 벌어지는 졸업식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빛났다.
사방에서 격하게 박수가 터졌다.
올해 우리 시에서 예린 선배보다 성공한 수능생은 없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입고 나온 교복도 너무 잘 어울렸다.
그 사이 머리칼이 많이 자라 있었다.
살짝 한 볼 터치 화장이 그녀를 한층 성숙해 보이게 만들었다.
단정하게 땋아 내린 머리칼이 소녀의 청순미를 폭발시켰다.
걸음도 당당했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상장을 받았다.
“이예린 양, 기다리는 선후배 동문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 한 마디 해주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사랑하는 부모님,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교육에 열정이 가득한 선생님들과 내 친구들~ 그리고 선배님과 후배님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비록 오늘 학교를 떠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장주여고의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남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울고 웃었던 내 친구들……. 우리 잊지 말고 서로를 기억하자.”
또랑또랑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이예린! 이예린! 이예린!!!”
“친구야~ 사랑해!!!”
슈퍼스타 저리 가는 환호를 받으며 예린 선배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럼 마지막 식순으로 교장 선생님의 인사를 끝으로 제48회 장주여고 졸업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갔다.
체육관 가장 뒤편에서 예린 선배를 봤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찾아주신 내외빈 여러분 편안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교장 선생님의 인사로 졸업식이 끝났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고생들이 남학생들과 다른 하이톤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파워는 남학생들 못지않은 괴성이다.
그래도 밀가루와 달걀 같은 건 없었다.
장주고와 장주여고는 지역 명문이라 처음부터 이벤트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시작된 사진 촬영.
교실에 가기 전에 졸업식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부모와 친척들이 서로의 자녀들을 찾아 뭉쳤다.
“저기요.”
그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
“핸드폰 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내 옆에 서 있던 여고생이 날 보고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였다.
아직은 학생이라 깔끔하게 청바지에 스니커즈 신발, 그리고 아이보리 목도리에 체크 코트를 걸쳤다.
가볍게 머리도 헤어 에센스를 발랐다.
나름 꾸미고 나오자 사람들이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여자 친구 졸업식에 왔습니다.”
“아……, 네.”
아쉬움을 표하며 여학생이 돌아섰다.
“거봐. 내가 여자 친구 있을 거라 했잖아.”
“……, 부럽다.”
“정말 멋있지 않냐? 우리 시에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었어?”
“혹시 아이돌 연습생 아냐?”
날 보며 여학생들이 수군거렸다.
태극오행양의심법의 수련이 더해 갈수록 키가 커지고 눈, 코, 입, 귀, 얼굴이 변해갔다.
오관이라 불리는 외모가 반듯해졌다.
키는 며칠 전 185센티미터를 돌파했다.
예린 선배에게 걸어갔다.
그녀 주변에는 다른 졸업생들과 사람이 몰려 있었다.
내 눈에는 그녀만 보였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의원님, 바쁜 국회 일정에도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전혀 안 바쁩니다. 지역구 관리를 위해 요즘 시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지원장님, 아니 서울 고등법원 부장판사님이시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중년의 남자가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지역 국회의원과 법원 고위직 인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면 상당히 높은 자리다.
그 중년 남자가 눈에 익었다.
‘이강석 대법관?’
과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미래 조근영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대법관이 된 정치법관이다.
그가 한국자유당 소속 국회의원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냥 평범한 공무원에 불과합니다.”
“우리 조카 녀석이 예린 양 학교 선배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부장판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의원님이 딸자식을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래서 걱정입니다. 다 큰 자식 일이 제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럼 부장판사님은 승낙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나이가 이른 감이 있지만 저렇게 벌써부터 좋아하고 있으니…….”
두 중년 남성의 시선이 향하는 곳.
‘선배…….’
선배를 꼭 닮은 중년 여성과 키가 훤칠하고 시원한 마스크의 남자가 예린 선배 옆에 다정하게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예린 선배가 그 남자를 향해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
사랑에 빠진 여자만이 풍길 수 있는 다정함이다.
찌리릿.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전생에 세 번의 이별을 경험했던 나였다.
둘이 어떤 사이인지 바로 짐작이 갔다.
한 발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예린이하고 사진 한 장 찍어 주십시오. 동기 녀석들에게 쫙 뿌려야겠습니다. 예린이 노리는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선배! 그러다 나 시집 못 가면 어떡할 거야!”
“시집? 걱정 마. 내가 있잖아~.”
“피이~ 됐어!”
예린 선배가 저렇게 활달한 성격인지 처음 알았다.
이제 대학교 신입생일 뿐인데 오가는 대화가 정이 넘쳤다.
“예린아, 동성이 옆에 서봐. 내가 봐도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동성이…….
나도 티비에서 봤던 남자다.
안아그룹 셋째 아들이다.
한국대 법대에 입학한 수재에다가 사법고시 합격 후 그룹에 들어가 어린 나이에 상무를 달던 사내다.
바람둥이로 인터넷 가십거리에 자주 올라왔던 놈이다.
그가 예린 선배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찌릿 찌릿.
가슴이 두 번 칼에 찔린 듯 아팠다.
점점 짧아졌던 예린 선배의 연락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대충 짐작은 했다.
우리 둘 다 진지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확인하는 게 어려웠다.
순수해서 더 기억에 남았던 짝사랑의 그녀.
얼굴 가득 행복함이 넘쳤다.
“!!!”
동성이라는 자와 사진을 찍던 예린 선배가 날 발견했다.
깜짝 놀라는 그녀.
움찔 몸이 경직되는 게 보였다.
“왜 그래? 내가 옆에 있으니까 긴장돼?”
동성이라는 자는 날 보지 못 했다.
“네? 네…….”
“그래? 그럼 긴장 좀 더 해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성이라는 자의 팔을 잡는 예린.
나를 똑바로 봤다.
그게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 모르면 바보다.
예린 선배는 나보다 훌륭한 동아줄을 잡은 거다.
여자가 성공한 남자에게 끌리는 건 본능이다.
누가 봐도 현재의 나와 오동성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기업의 아들과 농사꾼의 아들이다.
내가 공부를 잘해도 어차피 오동성도 한국대 법대 선배다.
‘됐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짝사랑은 본래 이루어질 수 없어 더 아름답다는 위로의 문구도 생각났다.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했다.
고개를 숙여 예린 선배에게 인사를 건넸다.
짧았지만 그녀 때문에 난 기쁨을 맛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등을 돌렸다.
손에 들린 큼지막한 꽃다발과 그녀를 위해 홍콩에서 준비한 최고급 향수는 건네주지 못했다.
야생 꽃에서 채취했다는 풋풋한 향이 황홀했던 수제 향수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맑고 고운 얼굴의 소녀다.
예린 선배와 쌍벽을 이룰 정도다.
그러나 주변에 친구나 친인척이 없었다.
졸업식인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교복과 코트가 낡았고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젊은 부부가 그녀 주변에서 맴돌았다.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는 부부.
산 자가 아니다.
그리고 난 알았다.
곁에 아무도 없는 그녀의 부모라는 것을.
뚜벅뚜벅.
그녀에게 걸어갔다.
“졸업 축하드려요.”
“네?”
“아빠 엄마가 그러시네요. 착하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부디 아빠 엄마 몫까지 세상 행복하게 살다 오라고 말씀하시네요.”
“!!!”
소녀는 놀랐다.
눈이 참 맑았다.
그리고 난 손에 들린 꽃다발과 졸업 선물을 건넸다.
손을 떨며 소녀는 무의식중에 꽃다발과 선물을 받았다.
아마 태어나 처음인 것 같았다.
선물의 임자는 따로 있었다.
소녀 옆에 서서 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전하는 두 부부.
그들의 투명한 눈물이 내 눈에 보였다.
씨익.
갑자기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맑은 웃음이 입가에서 잔잔히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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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