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5
44장. 형제의 축복
“형제여 일어나라.”
‘형제? 이번에는 누구야!’
예린 선배 졸업식이 끝났다.
마무리가 생각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소녀에게 졸업 선물을 건넨 후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옆집 엄마 냉장고를 털었다.
아버지가 마시려고 쌓아놨던 맥주 6캔 한 세트를 들고 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장주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한 캔, 두 캔, 여섯 캔.
맥주를 비울 때마다 내 추억도 비웠다.
짧지만 행복했던 예린 선배와의 추억.
이제는 안녕이었다.
소파에 앉아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깨웠다.
딱 감이 왔다.
신이다.
“누구십니까?”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따뜻한 벽면 난로 모닥불이 타오르는 서양 저택의 거실이다.
거실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서재 벽면에 세워진 거대한 서고에는 고풍스러운 책들이 가득 꽂혔다.
비어 있는 벽장에는 검과 창, 방패 같은 소품도 보였다.
기품 넘치는 귀족가의 대저택이다.
한 남자가 나를 보고 있다.
코가 유달리 오똑한 사내는 30대 중반의 멋들어진 신사다.
버버리의 체크무늬 옷을 입었다.
부담 가게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보면 호감이 갈 정도로 깔끔하게 생겼다.
“형제여. 난 생갈트의 기사다.”
“기사요?”
기사라면 어깨가 떡 벌어지고 눈빛이 부리부리한 남자가 생각났다.
그러나 눈앞의 생갈트의 기사는 전혀 그런 기사와 거리가 멀었다.
몸매가 호리호리했다.
생각하는 사색가? 과학자? 지적인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가만 생갈트의 기사라면……, 전설의 그분?’
갑자기 대학교 교양 문학 시간에 들었던 한 남자의 이름과 별명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 유명해서 이 시대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인이다.
“그래 노바다. 형제여.”
맞다. 그분!
“노바가 아니라 카사노바 아닙니까?”
“날 알고 있었나, 형제여?”
“한때 진심으로 존경했던 분입니다!”
과거 생을 살 때 피가 뜨거운 수컷들이 이상향으로 꼽았던 남자다.
노바 형을 닮고 싶은 수컷들은 천지에 널리고 널렸다.
지아코모 카사노바.
배고픈 남자 시간 강사가 읊어주던 찬란한 그의 일생이 떠올랐다.
상업 도시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수도원장이 되었고, 열여섯 살에 이미 법학박사였다.
뿐만 아니라 의학, 수학, 화학, 상인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다.
비단 제조 공장 사장을 비롯해 시인, 바이올리니스트, 격투가, 역사가, 마술가, 엔지니어로 활약했다.
특히 확률 통계에 강해서 프랑스 국영 복권 조직을 위탁 받아 경영했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희대의 사랑받는 바람둥이…….’
그의 진정한 능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 버버리 체크무늬를 처음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깔끔한 외모와 달콤한 언변으로 여인들을 정복했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매력으로 만나는 여인들 모두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생전 수백 명의 여인과 동침했어도 완벽한 피임으로 단 한 명의 사생아도 남기지 않은 걸로도 유명했다.
그런 그가 나를 찾아왔다.
‘왜? 나를?’
전혀 짐작도 못할 방문이다.
이별이 주는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쑥 방문한 카사노바.
게다가 나를 형제라 불렀다.
내가 형제? 그건 또 왜!!!
“이별의 아픔이 괴롭나, 형제여?”
“아니요. 지금은 아닙니다.”
카사노바의 방문에 괴로움 따위의 여운을 느낄 수 없었다.
과거 존경했다지만 지금은 좀 멀리하고 싶었다.
“흠……, 형제에게서는 나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제, 제가요? 에이~ 설마~. 저 아직 키스도…….”
해봤네.
카사노바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귓가에는 비슷한 느낌이라는 말이 자꾸 걸렸다.
극구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이 안 됐다.
가슴에 손을 얹고 부모님 이름으로 내 영혼이 순결하다 맹세할 수 있냐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형제는 형제를 알아보는 법이다.”
졸지에 카사노바의 형제급이 됐다.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대놓고 자랑거리도 아니다.
“신이십니까?”
“그렇다.”
“……지옥에 계시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악신?”
“무슨 소린가? 난 제우스 올림피아 쟁탈배 1785기 차차석이다.”
“악한 짓 많이 하셨잖아요? 세계적 바람둥이가 무슨 신이 될 수 있습니까!”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의 상식으로 카사노바는 지옥에서 구르고 있어야 정상이다.
세상이 다 아는 불륜의 대가다.
처녀보다 유부녀들을 더 사랑했던 노바 형이다.
그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간단 말인가.
“난 죄를 짓지 않았다.”
뭐지? 이 당당함의 정체는?
“회고록에서 고백하셨잖아요. 스쳐간 뭇 여인과의 불륜들 말입니다. 특히 유부녀들!”
“불륜? 무슨 소린가. 난 단지 외롭고 슬픈 여인들의 마음과 몸을 어루만져 주었을 뿐이다. 밥을 원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면 선업이 되는 것처럼 그 이치 또한 마찬가지다. 형제는 외롭고 지친 자들에게 먹을 것과 위로를 주지 않는가?”
카사노바의 지론에 입이 막혔다.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카사노바를 미워했다는 여자는 없다고 들었다.
한 여인을 만날 때마다 신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랑을 평등하게 나눠줬다는 카사노바.
그게 선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차라리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오묘한 카르마 포인트의 세계여!
“옥황상제 우화등선 배는 뭡니까? 저번에 오셨던 분은 거기 대상이라고 하시던데.”
“그 차이를 모르나?”
“네. 모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도대체 왜 이렇게 돌아가며 내 꿈에 나타나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축구 좋아하나, 형제여?”
“그럭저럭요.”
“간단하게 설명해 주겠네. 옥황상제 우화등선 배는 아시아컵, 그리고 제우스 올림피아 쟁탈배는 유럽컵이라네.”
“……, 그게 끝이에요?”
“그럼 더 무슨 설명을 원하나?”
그것도 이해 못하겠냐는 듯한 노바 형의 눈빛.
그 간단한 말로 신들 세계를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아프리카컵, 아메리카컵도 있어요?”
“당연하지. 사는 곳이 다르고 조상도 다른데 신들도 다른 게 정상 아닌가?”
“뭐 그런…….”
개 잡동사니 같은 구별이 있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내가 회귀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이 안 됐다.
“그런데 전 아시아컵 소속이잖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유럽컵인 제우스님 소속 신들이 찾아오는 겁니까?”
“형제여. 그대는 공용이라네.”
“네???”
“그런 게 있다. 형제여~ 아직 비밀이니까 나중에 알아내 보도록 하라.”
내가 지하철 개방 와이파이도 아니고 공용이란다.
난 누구에게도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딱히 부를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카사노바가 소유한 재능이 많다고 했지만 딱히 부럽지는 않았다.
나도 요즘 능력하면 한 능력한다.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지식은 언제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라네. 형제여, 그대와 정당하고 공평한 등가교환을 원한다네~.”
“제 카르마 포인트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요즘 부쩍 늘어난 형제의 포인트를 나눠주면 안 되겠나?”
“집 수리하시게요?”
언어학자 크리스 반스데일 신이 생각났다.
그는 포인트를 얻어 집을 고쳤다.
하지만 이 집은 포인트가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라네.”
“그럼 왜요?”
“요즘 기력이 딸려……, 약이 필요하다네.”
“기력요? 신들도 그런 게 딸려요?”
“형제여, 신들과 인간들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육신만 없을 뿐 우리도 희로애락을 다 느끼며 산다네.”
카사노바 입에서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퍼뜩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진짜 그건 아니겠지 생각을 붙들고 질문을 던졌다.
“설마 그 약이 비아로 시작하는 그 약 아니죠?”
“…….”
노바 형이 입을 다물었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남자에게는 참 가슴 아픈 사연이다.
노바 형이 말년에 발기가 안 돼 어느 귀족가의 시골 성에서 사서로 살다 쓸쓸히 죽었다 들었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그것이(?) 문제였다.
“여자 친구가……, 한둘은 아니죠?”
“…….”
역시나 노코멘트.
하아, 저 형님 죽어서도 답이 없다.
신이 되어서도 그 버릇 남 못 줬다.
“저에게 뭘 주시겠습니까?”
“오! 포인트를 나눠줄 수 있겠나? 형제여!”
“내놓으시는 거 봐서요.”
노바 형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신들이 날 찾아오는 건 아쉬워서가 확실했다.
마음대로 내 포인트를 갈취하지 못했다.
갑질은 아니지만 챙길 때 더 챙기고 싶었다.
“형제여~ 무엇이 필요한가? 명석한 판단력? 수학적 사고? 사업 수단? 그것도 아니면……, 그 노하우???”
마지막 그 노하우에 몹시 흔들렸지만 참았다.
어차피 나도 전생에 세 번 뜨겁게 연애해 봤던 남자다.
“다른 거 없어요? 특별하게 확 땡기는 그 어떤 거요~.”
“흐음…….”
생각에 잠긴 카사노바.
그 고심을 보며 난 입맛을 다셨다.
“형제가 버는 포인트의 1프로를 한 달 정산으로 나에게 넘긴다면……. 내가 지금껏 배웠던 모든 인생 노하우를 복사해 주겠다.”
“네? 보, 복사요?”
죽기 전 삶의 모든 걸 복사해 주겠다는 엄청난 제안.
심장이 뜨거워졌다.
이거 안 받으면 바보다.
“어떤가, 땡기지 않나? 매달 최신버전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노바 형 목소리가 낮고 은밀해졌다.
와아…….
이 형님 장사할 줄 아는 양반이다.
1프로라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특히 마지막 최신버전 업데이트!
지금 만나고 있다는 정체 모를 여신들과의 썸씽도…….
우르르 내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계약 체결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노바 형!”
“오오오! 형제여! 그대에게 제우스의 축복이 죽어서도 함께 하기를!”
그리스 신들 중에 가장 바람둥이라는 제우스.
노바 형 그 축복…….
조용하고 은밀하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노바 형 왜 저렇게 대놓고 좋아서 죽는 거야?
그까짓 1프로가 그렇게 좋은가?
# 4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