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83
584장. 변호사 장태산 (2)
“으헉! 아, 아버님!!!”
“자기야? 자기야? 왜 그래? 자기야!”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 염중천.
한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내연녀가 놀란 눈으로 염중천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어? 자기 악몽 꾼 거야?”
“……으으으.”
아직도 소름끼치는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염중천이 신음을 흘렸다.
온몸에서 뚝뚝 흐르는 식은 땀.
“냉수 가져와.”
“……응.”
내연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염중천.
내연녀는 슬립 가운을 걸치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그게 무슨 꿈이야…….”
꿈이 생시처럼 너무 선명했다.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했던 아버지가 나타났다.
펄펄 끓는 용암이 출렁이는 지옥 솥에 몸이 담근 채 뭐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 고통이 알알이 전해졌다.
살점을 태우고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고통.
그랬다가 다시 살점과 뼛속이 차오르고 또 타들어가는 게 반복됐다.
매캐한 냄새가 꿈에서 깼는데도 생생하게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반복되는 고통에 흉하게 일그러지던 아버지의 얼굴.
두 눈에 흐르던 진득한 붉은 피눈물.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꾼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산을 은닉해 놓은 상태로 사망해 버려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접신이 되지 않았던 아버지.
그랬던 아버지가 꿈에 보였다.
느낌상 무언가 다급한 일이 있는 듯 애절한 모습으로 소리쳤다.
“분명 입술 모양이……. ‘넌 그러지…… 마’였어. 그게 무슨…….”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꿈이다.
용한 무당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은 지성을 드리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에 아버지와 조상님들을 위해 큰 스님을 몇 차례나 모셨다.
거하게 49재를 지내고 천도제도 몇 번이나 올렸다.
이후 조상님들 덕분에 원하는 일들이 술술 풀렸다.
둘째 상천이도 얼마간의 로비와 정당한 협박을 빌미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아직 초선이지만 지역구가 탄탄하니 재선에 그 이상도 가능한 상황이다.
막내 동천이도 치안감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다.
새로이 청와대에 입성한 정권 주인과 인연이 깊은 실세와 연이 닿았다.
선거자금도 넉넉히 건넸었기에 승진은 확실시 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2월이 지나고 경찰 정기 인사 시즌이 되면 중요한 요직에 앉게 될 게 분명했다.
잘만 하면 집안에서 경찰총장이 탄생할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염중천의 앞날도 고속도로였고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아낌없이 관리해 온 로비.
그중에서도 별장에서 이루어진 성접대로 엄청난 이득을 봤다.
협박과 자금을 이용해 쓸 만한 여성들을 모집했다.
고위 검사, 판사,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선별 작업에 힘 좀 썼다.
이후 계획대로 비밀리에 질퍽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놈들이 잘도 어울려 놀았다.
그들은 꿈에도 현장을 영상으로 떠놓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술에 섞은 약 성분까지 더해져 이성적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극한 쾌락과 향응을 즐겼다.
지독한 인간 본성 밑바닥에 숨겨진 충동을 부채질 했다.
짜릿한 중독이었다.
한 번 빠지면 일상에서 맛보는 쾌감은 쾌락을 안겨주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다.
최근에 와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파티가 벌어졌다.
과거에는 인사들을 상대로 조심스럽게 초청해야 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염중천 선에서 골라 선택할 정도로 별장 파티는 인기가 넘쳤다.
누구 하나 감히 염중천을 터치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고위 권력자를 포섭한 염중천.
꾸리는 사업도 잘 나갔다.
지방 중견 건설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보란 듯이 알짜 관급공사를 따냈다.
대형 건설업체에서도 염중천의 그런 능력을 알아보고 사업 파트너로 삼았다.
가장 최근에는 골프장도 인수했다.
비자금도 수준도 수백억이 넘어갔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의 정점에서 맛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맛보며 살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방금 꾼 악몽은 염중천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여기…… 물 드세요.”
꿀꺽 꿀꺽.
내연녀가 건네는 냉수를 단숨에 들이켜는 염중천.
‘뭔가 있어……. 뭔가…….’
불길한 꿈 때문에 기분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염중천은 잔뜩 인상을 쓰고 머릿속을 굴렸다.
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꿈이 뭔가를 경고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심상치 않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위험 리스트를 작성해 봤다.
지금까지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염중천의 남다른 감각에서 기인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얼굴 하나.
‘설마???’
***
“JS 로펌 변호사 장태산입니다. 여기 명함.”
“네…….”
‘뭐야? 전화로 통화했을 때 느낌과 완전 다르잖아.’
조은희는 명함을 받으며 당황했다.
사실 어제 통화할 때 ‘지금까지 이런 변호사는 없었다.’ 라는 멘트에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변호사와 통화한다기보다 치킨집 사장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첫 통화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처지였기에 약속을 잡았다.
5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나름 주변에 쓸 만한 인맥도 제법 생겼다.
몇몇 아는 변호사를 통해 넌지시 남편과 이혼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일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방이라 그들도 남편에 대해서 웬만큼은 다 알고 있었다.
그 끝에 한소리 들었다.
죽을 각오 아니면 절대 꿈도 꾸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
시설탐정의 말이 맞았다.
염씨 가문이 당대에 들어 대단한 집안으로 우뚝 선 건 분명했다.
이혼 얘기를 꺼내는 것만 듣고도 다들 두려워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장태산 변호사.
전화 말투와 달리 인상이 매우 좋았다.
나이 50먹은 아줌마가 얼굴을 붉힐 만큼 잘생겼다.
호감이 급상승했다.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인적이 드문 단골 한방 찻집에서 만났다.
넓은 진양호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앞이 확 트이고 고즈넉한 장소였다.
“여기 쌍화탕이 맛있어요.”
조은희는 자리를 잡고 미리 차를 주문했다.
“어제 전화로 간략하게 사건 내용만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건 내용을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울에서 직접 지방까지 내려온 장태산 변호사의 자세는 진중했다.
그것만으로도 믿음이 갔다.
갓 변호사가 됐다고 들었지만 뭔가 달라 보였다.
눈빛이 맑고 정광이 어른거렸다.
태도는 신중했고 목소리는 듣기가 좋았다.
“이거 밖에 알려지면…….”
“변호사에게는 직무상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위반 시에는 형법상 업무상비밀누설죄로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조은희가 망설이자 장태산 변호사가 담담하게 변호사 의무를 설명했다.
“…….”
“상호 신뢰가 없다면 이번 의뢰는 맡을 수 없습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한마디 하더니 정말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장태산.
“아니에요! 여기 있어요…….”
화들짝 놀란 조은희는 CD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지금껏 폭행을 당할 때마다 떼어놓았던 진단서들이었다.
“남편 분의 불륜 증거가 들어있다는 CD입니까?”
“네…….”
“보셨습니까?”
“네……. 하아…….”
대답하면서 조은희는 긴 한 숨을 토했다.
사진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이 CD에 담겨 있었다.
차마 다 볼 수가 없었다.
인간 세상에 재현된 소돔과 고모라의 실사판 같았다.
남편 때문에 속상해 교회에 다니며 신앙을 지켜왔던 조은희였기에 괴로움이 더했다.
용서의 여지는 없었다.
하루라도 더 부부로 엮여 있다는 게 남은 인생에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억울했다.
“폭행이 지속적이었군요.”
진단서를 꺼내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변호사.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날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애들도 더는 보기 싫었던지 대학생이 되니 모두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어요.”
“안타깝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아직 이런 부부간의 폭행이 일어나다니…….”
“부끄럽군요…….”
“사모님 잘못이 아닙니다. 이런 사건 대부분은 남편 분들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암암리에 학습된 결과인 거죠. 한마디로 보고 자란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예 여자를 짐승 취급하는 거지요.”
장태산 변호사의 말에 조은희의 다친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수없이 남편과 대화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일단 한 번 화가 나면 물불을 안 가렸다.
자신의 분이 풀릴 때까지 조은희를 트집 잡고 늘어지다 나중에는 주먹을 들었다.
친일파 가문의 오만하고 더러운 피는 결코 정화되지가 않았다.
자신들보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밟는 게 가풍이 된 집안이었다.
남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못지않은 성격의 형제들도 동서들을 폭행했다.
특히 국회의원이 된 남편의 둘째 동생은 골프채를 휘둘러 동서를 중태에 빠뜨린 적도 있었다.
아주 치가 떨리는 염씨 가문.
“남편 집안이 대단해요. 시동생들이 국회의원에 현직 지방경찰청장이에요. 남편도 인맥이 대단하구요. 변호사님……. 수임 가능하세요?”
조은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 이상 전쟁을 치러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깡패들한테 끌려가 소리 없이 죽게 될 수도 있었다.
남편과 어울리는 사람들 중에 인상이 아주 험한 깡패들도 몇 명 존재했다.
그걸 알고도 조은희는 용기를 냈다.
“어려운 사건인 건 인지하고 계시는군요.”
“물론이에요. 계약금 2천만 원에 성공 수임료로 위자료와 재산분할 금액의 10퍼센트를 지불할 생각이에요.”
남편 재산이 최소 100억대는 된다고 알고 있는 조은희.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최대한 안전하고 신속하게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다.
“이번 사건은 돈이 핵심이 아닙니다.”
“네?”
“이 사건,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세상이 변해 모든 게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테지만, 남편 분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 예외적인 세상을 살고 계십니다. 제가 잠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상당히 높은 권력자들과 유착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자칫…….”
뒷말을 흐리는 변호사.
“……도와주세요! 그 짐승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요! 불쌍한 여자 인생 구제하는 셈 치시고 도와주세요.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또로록.
조은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범한 여자는 마음 떠난 남자와 단 하루도 살기 힘든 법.
단 1퍼센트도 남아 있지 않은 남편에 대한 마음.
이제는 자유를 찾고 싶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요?”
“하지만 각오하셔야 합니다. 남편 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언론에 크게 터트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모님과 아이들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아!”
언론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아는 조은희.
언론을 통한다는 말은 최악의 경우에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한바탕 편지풍파가 일어날 게 확실했다.
조은희의 이혼 문제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다.
국가의 상류층과 권력층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쉽고 평화로운 이혼은 세상에 없습니다.”
장태산 변호사의 말이 조은희 귀에 박혀들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짐승 같은 놈과 남은 생을 다시 견디며 살아야 할지.
그게 아니면 모든 걸 던지고 자유를 찾을지.
다시 조은희가 선택해야 할 몫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는 절대 피해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 여자인 조은희 인생보다 더 소중한 아이들 문제도 변호사는 짚었다.
그래도 선뜻 입에서 승낙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칠갑산 산마루에~♬.
조은희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잠시만…….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이 시간에 왜?’
남편의 전화였다.
요즘은 일주일에 하루나 집에 들어올까 말까 한 염중천이 웬일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 너 뭐하고 있었어?
“네?”
갑작스런 염중천의 추궁.
조은희는 당황하고 놀라 손을 바들바들 떨렸다.
– 내가 경고했었지. 우리 집안에 뼈를 묻어야만 네 인생은 마무리 될 거라고 말이야. 만약 허튼짓 하면…….
여차 하면 소리도 없이 죽여 버리겠다고 했던 얼마 전 폭행 때의 말.
파르르 파르르.
조은희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공포에 몸을 떨었다.
역시 개새끼는 개새끼일 뿐.
“알고 있어요.”
의외로 목소리가 차갑게 나왔다.
확실하게 마음을 정했다.
– 애새끼들 단속이나 잘해. 중요한 사업 중인데 신경 쓰게 만들면 너희들 뜨거운 맛 볼 줄 알아.
자식들에게도 인정사정없는 염중천.
“네……. 알겠어요.”
조은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 며칠 못 들어가니까 그렇게 알고.
뚝.
염중천은 자기 할 말만 내뱉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아아…….”
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는 조은희.
몇 번 숨을 몰아쉬고 앞에 앉은 장태산 변호사를 똑바로 쳐다봤다.
활활 눈동자를 태울 듯 타오르기는 거대한 분노.
“X발! 이 개새끼를 내 인생에서 치울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겠어요!”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