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2
61장. 면접(1)
“홍콩의 밤도 월가와 같군.”
홍콩 페닌술라 호텔의 로열 스위트룸에서 한 남자가 시원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도시의 대낮처럼 밝은 홍콩의 야경이 낯설지 않았다.
아니, 월가가 있는 맨해튼보다 더 뜨거운 욕망이 숨 쉬는 게 보였다.
월가가 공식 결투장이라면 이곳은 승부를 조작하는 음모자들의 세계다.
로버트 라이언.
올해 나이 49세.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과와 동 대학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인재다.
월가에서 잔뼈가 굵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딜러로도 근무했고, 투자은행과 헤지펀드 업체에서도 콜을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탐욕스러운 게임에 지쳐 관리자로 살았다.
피가 튀는 전장이 싫어 승진과 돈을 멀리하고 한발 물러났다.
월가는 룰과 규칙도 없었다.
돈이라면 영혼까지 팔고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월가의 주인들이 싫었다.
함께 웃고 커피를 마시던 동료들조차 등에 비수를 꽂았다.
가끔 예전과 같이 세계 금융계를 휩쓸고 싶은 욕망이 불끈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로버트는 자신을 다스렸다.
시스템과 직원 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여기저기 깔린 정치권과의 인맥도 많았다.
경제계에 퍼진 학교 인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태동을 보이자 로버트는 해고됐다.
근무하던 선물 투자 펀드 회사에 지속적으로 위기 신호를 보냈지만 묵살 당했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터지자 관리자인 로버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았다.
로버트는 분노했다.
월가가 자신에게 보인 마지막 배신에 이를 갈았다.
복수하고 싶었다.
느닷없는 해고에 신용이 막혔다.
몇 년 동안 알츠하이머와 암 투병 중인 장모의 수술비용으로 거액을 지출한 상태였다.
엄청난 돈과 노력과 자금에도 장모는 유명을 달리했다.
로버트는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그를 배신했다.
돈 많은 이혼남인 직장 상사와 바람이 났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자산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
나름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지만, 결과에는 가정에 소홀했다는 죄목이 더해졌다.
비싼 변호사를 고용한 아내는 재산의 90프로를 빼앗아갔다.
직장에서 해고되자 퇴직금마저 털어갔다.
아이들마저 직장과 돈이 없는 자신을 멀리했다.
생활은 피폐해져 갔다.
나이도 많은 자신을 월가의 탐욕자들은 고용하지 않았다.
이미 용도가 다한 폐기물 신세였다.
더욱이 이혼까지 당한 집도 없는 매니저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홈리스 사 되기 딱 좋았다.
그때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매튜 교수의 제자 클라라고 했지…….”
좌절에 빠진 로버트가 대학교 동문이자 시카고 대학 교수에게 하소연을 했다.
어디 취직할 수만 있다면 이제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조직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다.
홍콩에서 면접 일자와 일등석 항공권을 통보받았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똑똑.
그때 밖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십시오.”
하룻밤에 만 달러는 족히 나갈 룸이다.
한때 펀드 매니저로 잘나갔던 로버트도 이런 호화 객실은 처음 들어와 봤다.
스르륵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또각또각.
바닥에 깔린 붉은 양탄자 위로 두 개의 구두가 보였다.
힐이 높은 구두가 잘 어울리는 모델 같은 여인과 그 옆에 기죽지 않을 만큼 멋진 동양 청년이 들어왔다.
“로버트 라이언 매니저님이시죠? 클라라 리라고 합니다.”
클라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클라라. 이제는 매니저가 아니라 직장도 없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매튜 교수님께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경제 학도였지만 세상의 유혹에 눈 멀어 학문을 배반한 친구라고 말입니다.”
“매튜는 고마워해야 합니다. 제가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는 저 대신 매튜가 서 있었을 겁니다.”
로버트의 유머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매니저급으로 상류층을 상대했던 기품은 어디 가지 않았다.
같은 학교 동문이라 그런지 클라라와 로버트는 말이 통했다.
“인사하세요. 오늘 면접 주관자이신 다니엘 장 대표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야경이 멋진 홍콩 여행을 허락해주신 다니엘 대표님께 감사함을 먼저 전합니다.”
둘도 악수를 나눴다.
‘저 나이에 대표야? 동양 친구들 나이를 맞추는 게 어렵지만 너무 어려 보이는데…….’
로버트는 혼란에 빠졌다.
홍콩에서의 면접이라 어느 정도 동양인 상사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다.
월가의 실력자들 중에서도 홍콩에 진출하는 자들이 많았다.
개방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에 홍콩만큼 좋은 입지 조건이 없었다.
외국인 투자가 까다로운 중국 업체 주식도 홍콩 증시에는 상장된 것들이 많았다.
그걸 투자하는 자들이 상상 이상이다.
개중에는 어둠 속 아시아인도 다수다.
비밀스럽게 법인과 자금을 굴리는 아시아 부자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자리에 앉아 대화를 하죠.”
다니엘이라는 친구가 자연스럽게 창가에 있는 회의 의자에 앉았다.
모든 행동이 어색하지 않았다.
“둘 다 커피 어때요?”
“고마워요. 클라라.”
“커피는 내 심장의 피와 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로버트는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클라라가 웃으며 간이 주방으로 커피를 가지러 갔다.
“다니엘 대표님, 제가 여유가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로버트. 말씀하세요.”
“나 같은 월가의 폐물을 어디에 쓸 생각입니까? 마누라에게는 이혼을 당했고 집도 없는 신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전 돈을 벌기에는 전쟁터에서 많은 나이입니다.”
로버트는 자신을 무시하던 인간들에게 복수는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근본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렸다.
다니엘은 조용히 로버트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래서 꿈도 버리셨습니까?”
***
“!!!”
로버트의 동공이 확장되는 게 보였다.
스스로를 낮춰 말하고 있지만 난 로버트라는 사내에게서 아주 강렬한 상남자의 향기를 맡았다.
지금은 날개가 꺾인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다.
고난을 끝내고 이제 인생 2막이 본격적으로 펴질 관상이다.
내가 아는 관상에 의하면 로버트는 최고의 2인자감이다.
‘관상학에도 조예가 깊어지다니…….’
나도 내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홍콩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클라라의 지도 교수 추천으로 한 남자에 대한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
나의 손발이 될 인재가 시급하게 필요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인정할 만한 인물을 얻어야 했다.
아직 비자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아 마음대로 미국에는 갈 수가 없었다.
홍콩으로 면접자를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비행기 일등석 표에 차비까지 보냈다.
제갈공명의 삼고초려에 미치지 못하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
내 직원이 된다면 손발이 돼 줄 첫 번째 인연이다.
하지만 내심 걱정도 많았다.
유세라 팀장과 달리 큰 판에서의 인재 등용이다.
지난 생에 서른 살 넘게 살았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자칫 잘못 등용했다가는 내 속살이 전부 까발려질 것이다.
국제 금융 마피아 소리 듣고 인터폴에 수배되거나 CIA 비밀 조직원에게 총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때 그분들이 나타났다.
‘신들이 쌍으로 오는 건 처음이었지. 훗~.’
비행기 안에서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신들과 접신할 때의 방법이었다.
앞서 잠들지 못했을 때도 찾아왔던 신들이기에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쌍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신들도 그렇게 똑똑한 것 같지는 않아~.’
생각만 해도 웃겼다.
약 5시간 전…….
“아이야~ 나를 보고자 청했느냐?”
“네? 누구십니까?”
“난 남사고라고 한다.”
“남사고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두 명밖에 이용하지 않는 홍콩발 일등석 안에서 공간이 바뀌었다.
웅장한 기와집이 사방으로 보이는 커다란 사통팔달의 거리였다.
천상제일만사무불통지(天上第一萬事無不通知)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붉은 깃대가 걸려 있었다.
그곳에 족히 수령이 1,000년은 될 것 같은 커다란 당산나무가 서 있었다.
그 나무 아래 단단한 사각 돌이 있고, 그 위에 신선풍의 허연 수염의 할배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선풍도골의 귀인처럼 보였다.
만화에서 보았던 고급진 도사 같았다.
“나를 모르느냐?”
“네. 처음 들어보는 함자입니다.”
이름이 중국풍 같기도 했지만 모습은 한국 할배다.
요즘 여러 이상한 신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이제는 겉모습으로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 못 들었을 수도 있지. 한때 격암 남사고라 하면 알아줬지만 이제는 잊혀져가는 이름이 되었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역사 지식이 짧습니다.”
신들에게 잊힌다는 의미가 뭔지 대충 알기에 머리를 조아렸다.
널리 알려진다는 건 신들의 유통기한이 길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잊혀가면 그만큼 신빨이 떨어지는 거라고 노바 형이 말했다.
“너는 잘못이 없다. 다 능력빨이 떨어지는 내 탓이다.”
구형 외모의 신들도 최신 언어는 잘도 구사했다.
“그런데 주 종목이…….”
“너 관상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 그럼 관상 전문가시군요!”
“큼큼! 내가 이래 봬도 명종 때 임진왜란을 이미 예견했던 그런 예언가였다. 어릴 적 집안에 찾아오셨던 비문(秘門)의 스승님께 천문, 풍수지리, 관상에 대해 배웠느니라.”
“아! 대단한 분이셨군요.”
“당대에 나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단종 때 김종서 장군 옆에 좀 날리던 자가 있었지만……, 그 자는 수양대군이 내세운 가짜를 진짜로 보는 우를 범해 계유정난에 큰 화를 당했다.”
“단종 때라면……, 아! 그 사람이요?”
“그 자를 아느냐?”
네, 압니다! 영화 관상쟁이에 나왔던 그분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2013년도에 개봉해 파란을 일으켰던 영화 관상쟁이.
수양대군의 꼬임에 넘어가 가짜 관상을 보고 역모를 막지 못했던 인물이다.
“진짜 실존했던 분입니까?”
“물론이다. 실록에는 없지만 그 자는 존재했다.”
가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그럼 남사고 어르신께 제가 관상을 배우면 되는 겁니까?”
“포인트가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만…….”
요즘 포인트 앵벌이에 힘쓰지 않았더니 다소 문제가 있었다.
현생의 돈은 갈수록 쌓여갔지만 신들 세계 돈은 누적시키는 게 힘들었다.
“할인가로 부탁드립니다. 다음에 제대로 계산하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부탁했다.
지금 관상학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그럼 반까이 외상으로 할까?”
‘헐!’
신선 할배 격 떨어지게 비속어를 사용하신다.
외양과 달리 뭔가 격이 떨어졌다.
외상이라 말하는 눈빛에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건 바로…….
‘이 신선 할배 포인트 많이 부족하네~.’
순간 입장이 바뀌었다.
때를 기다렸다가 내가 원하자 바로 치고 왔음이 확실했다.
‘집도 없고 대충 길가에 좌판 벌였잖아~ 이건 신계 포인트가 상당히 딸린다는 소리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에 괜히 걸리는 거 아니다.
주변을 빠르게 파악했다.
종로만 가도 가끔 보이는 좌판 사주 선생님들과 다를 바 없었다.
포인트 저렴한 깃발로 현혹하려 했지만 나도 신계 장사가 몇 번째다.
순진해서 넘어갈 시기는 진작 뗐다.
“허어! 형님! 이러시면 안 되죠! 이건 상도의가 아니지 말입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큰 소리를 치며 등장했다.그런데 뭐, 뭐야 또 이 신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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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