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28
629장. 태양의 종자 (2)
꿀꺽 꿀꺽.
와인 몇 병을 비웠지만 속에서 타오른 불길은 쉬이 잡히지 않았다.
마음속의 불을 끄기라도 하려는 듯 계속 와인을 마시는 손대균.
그렇다고 취하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때리는 한 마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느냐.’
까마득한 후배의 날선 물음.
반세기를 살아온 남자였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했다.
한때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했던 명예와 돈.
그리고 가문의 영광과 가족.
지금에 와서 그 모든 시간에 후회만 남겼다.
무한히 존경했던 아버지는 친일파에 독재자의 후견인.
돈은 차고 넘쳐났지만 그 또한 대부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
가족…….
이 역시 가장 아픈 자리가 되어 버렸다.
나름 화목하게 꾸렸다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다들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살았다.
손대균 스스로 극구 거부했던 한 가지 모습.
그렇게 몸에 담기 싫었던 아버지의 권위가 어느새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다.
딸 유리가 프랑스로 떠난 이후부터는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들은 아들대로 자기 일에 바빴다.
과거 자신이 보내온 시절과 달리 아들은 갖춰진 부와 권력을 당연하듯 즐겼다.
가족 모두 물에 뜬 기름처럼 따로따로.
보이지 않는 벽이 답답하게 목을 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간간이 즐기던 와인도 이제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독 수준이 됐다.
뚜렷한 의식을 갖고 추진해 오던 일도 매사 보람이 없었다.
리앤장을 대적할 만한 로펌이나 단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알아서 모두 기었다.
사회에서 교류하던 친구들도 속에서 이미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무언가를 숨긴 채 다가왔다.
원하는 바 목적이 없으면 어색하기만 한 사이.
그나마 세대를 뛰어넘어 속 시원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상대 장태산.
장태산은 간접적으로 실질적 변화를 요구했다.
기존의 모든 걸 다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
“나쁜 놈…….”
손대균은 장태산을 떠올리며 욕을 퍼부었다.
녀석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더 괴로웠다.
음지에서 태어났지만 손대균의 유전자 한쪽이 끊임없이 햇빛을 원했다.
아니 의식적으로 무한히 성장할 즈음 스스로 양지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양쪽에 한 발씩 걸치고 살아가는 회색분자의 형상.
장태산이 말했던 속 의미는 그거였다.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가도 이내 차갑게 식었다.
탁.
마지막 잔을 비웠다.
한강을 중심으로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사이로 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모두 안식처인 자신들의 집으로 향하고 있을 자정을 넘는 시각.
이제 손대균도 둥지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러나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윽.
스마트폰을 손에 든 손대균.
무의식적으로 단축번호 7번을 눌렀다.
손대균 인생에 있어서 행운 같은 이의 번호.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
신호가 길게 울렸다.
그러나 받지 않는 상대.
“휴우.”
손대균은 긴 한숨을 쉬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한…….
– 아빠?
종료버튼을 막 누르려는 찰나 들려온 따듯한 음성.
“어……. 아빠다.”
– 아직 집에 안 들어갔어요? 지금 여기가……. 5시인데…….
“미안. 아빠 때문에 깼지?
– 아니에요. 오늘 제출할 그림이 있어 일어나려던 참이에요. 그런데 아빠는 이 시간에……. 어디에요? 집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엄마하고 싸웠어요?
딸 손유리 목소리에 금세 걱정이 담겼다.
서울에 잠시 들어왔다 간 그 날 이후 그나마 조금 가까워졌다.
그 역시 장태산 덕분이었다.
따뜻한 딸의 말 한마디에 손대균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술도 친구도 그 무엇도 채울 수 없는 부녀간의 깊은 정(情).
마음이 온돌방에 누운 듯 따스해졌다.
장태산의 말이 맞았다.
지켜봐 주고 걱정해 주는 태양과 같은 이들의 사랑.
그 사랑을 나눠 먹으며 사람들은 살아가는 게 맞았다.
온몸에 따뜻한 피가 돌았다.
“용돈 필요 없어?”
– 으흐. 돈은 많을 수록 좋아요~
“보내줄게.”
– 사랑해 아빠~.
이제는 스스로 자립해 돈을 벌고 있는 손유리였다.
그럼에도 용돈을 주겠다는 아빠에게 자연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아빠 손대균을 위한 그녀만의 배려.
“나도…… 사랑해 우리 딸.”
– 오! 우리 아빠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혹시……. 갱년기?
“이 녀석! 아직 팔팔하다~.”
– 그런 분이 집에서 마미랑 술 한잔하시지 밖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빨리 집에 들어가서 엄마 손 꼭 잡고 주무세요. 그래야 사랑받아요.
먼 곳에서도 가족을 배려할 만큼 다 성장해 버린 딸.
그런 손유리를 매몰차게 몰아붙이고 아프게 하면서까지 외국으로 내보냈던 손대균은 할 말이 많지 않았다.
“미안하다. 유리야…….”
툭 튀어 나온 진심.
– ……이제는 괜찮아요. 그리고 이곳에서 아빠 많이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 아빠가 바쁜 시간 쪼개서 놀이동산도 가고 여행도 가고……. 엄하게 훈육도 하고……. 그게 다 아빠만의 사랑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다 알아요.
딸의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손대균은 다른 때 같지 않게 진한 위로를 받았다.
미안하다거나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이 아쉬웠다.
“유리야…….”
– 네. 아빠~.
새벽 시간임에도 손유리 목소리는 밝고 건강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넌…… 아빠가 지켜준다!”
손대균은 확고하게 마음을 굳혔다.
자신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사랑해 주는 딸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그게 설사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행동이 된다 해도 말이다.
– 정말요?
“그럼 아빠만 믿어. 손유리 아빠 손대균이 신께 맹세한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아빠가 든든한 방패가 될 거야.”
– 헤에에…….
이십 대 중반을 훌쩍 넘어가는 딸이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아버지……. 제 딸은 저처럼 살게 하지 않겠습니다. 햇살 아래서 살게 할 겁니다!’
음지에서 기생하는 회색분자의 삶이 아닌 양지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손유리.
손대균은 다시 한 번 힘을 내 마음을 굳혔다.
‘장태산. 너 진짜 멋진 녀석이야!’
그리고 고마운 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떠올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게 무한한 장태산.
손대균은 장태산 덕분에 한발 더 양지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순간 갑자기 들려온 알림음.
포인트 축적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았다.
“누군지 몰라도 감사~.”
자정이 훌쩍 넘어가는 깊은 밤 시간이다.
손대균 이사와 잠깐 마셨던 와인이 아쉬움을 남겼다.
집에 들어와 창밖을 내다보며 최근 매입한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와인을 개봉했다.
와인은 오래 묵혔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토양과 일조량 및 강수량과 병충해를 비롯해 제조자의 정성과 시설까지 모든 게 하모니를 이룰 때 완벽한 제품으로 탄생한다.
인생도 마찬가지.
모두가 부족한 채로 세상에 태어난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할 뿐이다.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고 전진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도처에 깔린 여러 유혹과 욕망.
그리고 악신들이 매혹적인 형태로 낚시질 하는 끈질긴 파멸의 덫.
그것들을 돌파하고 빛으로 나가는 삶이 진짜 삶이다.
“똑똑한 분이니까 잘 알아서 하겠지.”
손대균 이사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본래 본성이 착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선대가 지은 악업을 끊고 돌파해야 할 이번 생의 과제.
나는 손대균 이사를 믿었다.
띠리리리리리.
스마트폰이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
– 회장님. 접니다.
“네 의원님.”
– 보내주신 자료 잘 받았습니다.
주현태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한 무기는 한두 개가 아니다.
섬멸전이 최종 목표.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모든 결과는 국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능력 없는 오너가 그룹의 자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큰 기업의 경영자가 된다.
누가 봐도 세금만 축내는 일이다.
세상 경제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다.
대충 경영해서 돈 벌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정치권과 유착해 갑질하고 세금으로 연명하던 기업 운영은 이제 멈춰야 했다.
앞으로는 기술력을 보유한,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그런 관점에서 동룡 주현태는 아웃이다.
“주현태가 홍기태 산업은행장과 만난 자료입니다. 내일 국회 기자실에서 한 방 터트리세요. 부실기업의 정경유착 증거자료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하하. 포장은 제 전문입니다.
2선의 양우석 의원은 과거와 달리 많이 여유로웠다.
아무리 줏대 있는 정치를 하고자 해도 열정만으로는 안 됐다.
목표를 위해 각종 기술을(?) 습득해야만 그 난잡한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3선 가셔야죠.”
– 회장님만 믿습니다.
“내용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강력하게 발언하셔야 합니다.”
– 신용 강등 기업에 뭘 믿고 세금으로 살려낸 대웅 건설을 맡기는지……. 분명한 건 썩은 정치인들이 문제입니다! 회장님 의중이 아니더라도 제가 용서치 않을 겁니다.
양우석 의원은 신념이 있었다.
누가 봐도 동룡은 자격이 없었다.
국회에서 발표가 나면 여론은 더 들끓을 것이다.
자금 지원을 하려던 산업은행을 비롯해 정치인들은 여론에 밀려 발을 뺄 것이다.
주현태 회장의 완벽한 고립.
서서히 목을 죄어 들어갔다.
늪에 빠진 짐승처럼 발버둥치는 그의 모습이 선하게 눈에 그려졌다.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새어머니를 살해한 악마.
그놈이 바닥을 기며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부족한 건 없습니까?”
– 넉넉합니다.
“감시 조심하십시오.”
– 최대한 조심하고 있습니다. 이 폰도 아는 지인 겁니다.
만사를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다.
나를 노리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느껴졌다.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기득권은 나를 싫어했다.
“몇몇 언론사에서 확실히 지원 사격해 줄 겁니다.”
– 감사합니다.
양우석 의원은 스타 정치인이 되어 갔다.
간판 의원이 되고 나면 누가 함부로 터치할 수 없는 법.
3선 국회의원이 되면 그 때부터는 진정한 자신만의 정치 철학을 펼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때까지 서포트를 잘 해야 했다.
지난 생에는 이름도 없던 정치 야인이었던 그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명운이 담긴 판이 어떻게 굴러갈지 나도 몰랐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 회장님을 믿고 이 대한민국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
가슴 뜨거운 양우석 의원 목소리에서 그의 뚝심이 느껴졌다.
다양한 인간들의 욕망이 투영되는 정치판.
그중에서도 국회는 의외로 민의가 가장 적절하게 반영되고 실현되는 곳이었다.
국민들이 욕심에 눈이 멀면 그들을 대표하듯 닮은꼴의 인간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호의호식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정의에 목말라 하면 또 그들의 바람대로 희망하는 정치인들이 민의를 대변한다.
정치판에 들어선 정치인들을 욕할 게 없었다.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원인이 바로 그들을 뽑은 국민들의 탓.
[마지막 간추린 뉴스 시간입니다. 먼저 정치부 소식입니다. 오늘 청와대는 청문회가 끝난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문화부 장관에…….]TV에서 방송되는 심야 뉴스.
와인잔을 들고 뉴스를 시청했다.
[외교부 장관에 오병성 전 외교부 차관을 임명했습니다.]마침 귀에 들려온 익숙한 이름 하나.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아베의 수족과 같다는 평가를 받아온 간신배 오병성.
그의 이름이 언급됐다.
조근영 정권 동안 가장 장수한 장관으로 이름을 올리는 자였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차관까지 해먹고 리앤장의 고문으로 있다 청와대에 입성한 인물이다.
얼굴에 박혀 있는 큰 점이 인상에 남았다.
평생 강한 자의 눈치를 보고 사는 상머슴 관상이었다.
주인에게 충성하지만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타락한 정치인의 관상을 한 오병성.
화면에 비춰진 그자의 비릿한 웃음기 띤 얼굴 사진에 신물이 올라왔다.
대한제국 시절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의 후예와 다를 바 없는 인사다.
저자가 추진한 여러 잘못된 외교협상으로 대한민국은 위기에 빠진다.
긴긴 세월 쌓아온 양 국가 민족들 간의 감정싸움이 정치 논리에 양념으로 올려지고, 그 이후에 간악한 아베가 그걸 이용해 장수 총리가 된다.
심심하면 대한민국을 자극해 우익들의 표로 정권을 유지해 가는 아베와 그 일당.
그걸 알고도 저자는 겨우 100억에 한 많은 이들의 자존심을 헐값에 팔아먹었다.
외교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고개 숙이고 저자세로 협약을 추진한 매국노.
2020년 초에 발견된 놈의 비자금.
놀랍게도 일본 전범기업의 후원을 10년 동안 몰래 받아왔던 게 그때서야 들통이 난다.
“하아아…….”
그 자의 이름을 듣자 길게 한 숨부터 터져 나왔다.
아직도 벅찬 토착왜구와 독재정권의 잔재 청소.
지금으로서는 와인 한 잔 들이켜며 속을 다스릴 뿐이었다.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