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58
659장. 리처드 요한슨.(3)
– 어리석은……. 나의 후손들아……. 신벌을 두려워마라……. 이 땅은 너희에게 고난과 축복을 동시에 내리는 신들의 대지니라.
검은 뱀과 황금 뱀이 휘감는 형상이 조각된 향로에서 뭉클뭉클 연기가 피어올랐다.
신의 뜻을 전하는 사령의 기괴한 음성이 공간을 채웠다.
“고난과 축복을 받드옵니다!!!”
“받드옵니다!”
사제에게 고개를 숙이고 전해지는 메시지를 받드는 이들.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폭발 등을 겪은 후 신은 후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일본을 보호하는 조상신들도 막아내지 못한 신벌.
우주의 섭리에 의한 벌인 만큼 두려움은 컸고 그럴수록 더욱 신에게 의존했다.
– 쇠탈의 후예가 너희를 노린다! 놈이 짠 그물이 하늘을 덮는구나……. 오! 어리석은 나의 후손들아! 손에 무기를 들거라! 너희들은 수천 년 동안 바다를 지배하던 나의 핏줄! 무기를 되찾아라……. 쇠탈의 후손들은 발아래 꿇리어라! 그게 너희들이 살아갈 수 있는 미래의 터전 마련의 계기가 될 것이니라.
기다리던 신탁이 드디어 내려왔다.
“명을 따르옵니다!”
“따르옵니다!!!”
신탁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명확했다.
손에 무기를 들라.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평화 헌법에서 삭제된 군을 다시 되살리라는 명령이었다.
고개를 숙이는 자들의 눈동자가 희열에 차 번들거렸다.
이번에 겪은 지진과 쓰나미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고난과 축복의 땅인 본토가 위험해졌다.
세계 각국과 일본 신민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원전 폭발 사고가 남긴 피해는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막심했다.
핵원료 상당수가 녹아내려 지하수는 물론 가까운 바다까지 모두 오염됐다.
절실하게 새로운 땅이 필요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잠자던 군대를 일으켜야만 했다.
자위대 따위가 아닌 일본 천황의 군대.
과거 막부들을 몰아내고 천황에게 권력을 몰아준 메이지 유신의 시대가 다시 펼쳐질 것이다.
군국주의 부활은 막연한 자연재해의 불안감으로 살아가는 일본 신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이 되어 줄 게 확실했다.
신민들의 우려와 걱정 어린 시선을 돌릴 방향 전환이 필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신의 말처럼 수천 년 동안 한국과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 해상을 넘나들며 무력을 과시하던 일본 선조들의 힘.
이제는 되찾아 올 때가 됐다.
– 아이들아……. 칼이 없는 자는 반드시 망하는 법이다……. 세상은 다시 피가 넘치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하라. 쇠탈의 후예를 반드시 처리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후손은 안전한 땅에서 만세에 걸쳐 양육될 것이다.
신탁은 계속 이어졌다.
과거 실패했던 대륙 통치.
다시 피가 흐르는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신.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세계 패권을 쥔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
그 양국의 전쟁은 어느 날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반드시 되찾겠습니다!”
“되찾겠습니다!!!”
쿵쿵!
신탁을 받은 자들이 이마를 땅에 박았다.
정치인과 야쿠자, 경제계의 수장.
그들에게 나기와 나미의 신들이 전쟁의 씨앗을 심었다.
***
‘……자신감인가?’
리처드 요한슨은 자신을 마주하며 웃는 한국인 다니엘 장을 보고 놀랐다.
이미 다니엘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다.
로버트 라이언의 조언자이며 한국에서 자수성가한 슈퍼 리치.
요즘 들어 드러나지 않은 자산이 더 있을 거라는 보고가 추가로 올라왔다.
몇 년 동안 차일드 방계 가문이 심혈을 기울여 계획한 먹거리에 느닷없이 포크를 들이민 세력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환율과 선물 시장에서는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졌다.
차일드가는 직계와도 빵 조각을 놓고 싸울 만큼 먹거리 앞에서는 냉정했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알게 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력 하나.
슬그머니 그림자만 언뜻 비치다 사라졌지만 드러내 간 파이 크기가 컸다.
열심히 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교묘하게 후방에서 알짜를 챙겨갔다.
유럽과 일본, 중국과 아랍의 자본이 한꺼번에 충돌하고 있어 정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환율 시장은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반복적으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사이 알게 된 사실.
로버트 라이언의 투자 회사에 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놀라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윗선 지시대로만 투자하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로버트 라이언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한때 월가가 낳은 패배자였다.
냉엄한 게임의 법칙에서 패배한 자.
한번 무너진 패배자는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그곳이 월가였다.
그런데 패배자의 낙인이 찍힌 그가 이례적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며칠 전 보고에 의하면 이런저런 투자금만 해도 몇 천억 달러에 육박했다.
비밀리에 운용되는 사모펀드 자금은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너냐.’
리처드 요한슨은 눈빛으로 물었다.
로버트 라이언을 조종하는 자가 눈앞의 다니엘일 수 있었다.
“의원님. 동양 격언에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몇 억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만남도 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의심의 시선은 거두어 주십시오.”
평안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 다니엘 장.
한참 젊은 친구가 제법이다.
“의심 많은 정치인을 이해해 주게. 인연을 만들어 반드시 날 이용하려 드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서 말이야.”
‘만만치 않아.’
리처드는 일단 다니엘을 대화상대로 인정했다.
만약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크게 호통을 쳐서 쫒아냈을 것이다.
미국에 들어온 이상 허튼짓하지 말고 조용히 머물다 돌아가라고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딸과 만나거나 따로 연락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경고했을 것이다.
경고를 어길 시 뒤를 감당해야 한다는 압력까지 넣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워싱턴 정가의 정치인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대한다.
노련한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경제인들과 로비스트들을 포함해 그 범위가 무척 넓었다.
오랫동안 그들을 만나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를 파악하는 힘을 얻게 된다.
더욱이 리처드는 차일드 가문의 방계 수장이 아닌가.
유년 시절부터 이미 탈무드를 비롯해 여러 선조들의 지혜로 무장해 온 사람이었다.
집안의 교육 철학 또한 엄격했다.
지금의 젊은 친구들과 달리 당시만 해도 회초리를 맞아가며 교육 받아 왔다.
“이해합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호감이 가는 행동과 말투.
“사라가 자네를 좋아할 만하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따님이십니다.”
“미술에 천재적이라지?”
“음악 쪽도 나쁘지 않습니다.”
겸손하지만은 않은 다니엘.
차라리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겸손이 미덕인 동양과 달리 서양식 사고에선 자기 어필 능력은 필수였다.
다만 말한 바와 달리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금 운용도 놀랍더군.”
“아무리 그래도 차일드 가문만 하겠습니까.”
“…….”
자신 앞에서 대놓고 차일드 가문을 언급하는 자를 리처드는 오랜만에 마주한다.
미국 정재계에서 차일드 가문을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 사항처럼 여겨졌다.
연방준비은행의 진정한 주인인 차일드 가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대통령을 비롯해 어떤 정치인도 연방준비은행을 임의로 조종할 수 없었다.
미국 경제의 생사를 쥐고 있는 금리와 발권은 연방준비은행만의 권리다.
“용감하군.”
“무례했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다소 가볍게 보였지만 무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꾸 끌리는 호감.
유색 인종에 차별심이 강한 리처드가 스스로 당황할 정도였다.
자세나 행동 모두 제대로 교육 받은 글로벌한 인재로 보였다.
‘한국의 귀족 집안인가?’
한국 역시 양반이라는 이름의 귀족이 존재했다는 걸 알고 있는 리처드.
“귀족 집안 출신인가?”
“먼 선조께서 아시아 해상에서 왕으로 불렸습니다.”
“그렇군.”
리처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슨이라는 가문 역시 역사가 상당히 깊었다.
사라가 만나는 남자가 적어도 평민은 아니기를 바랐다.
물론 다 큰 딸자식의 사생활을 다 간섭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다니엘을 만난 뒤 그간과 다른 행보를 보인 사라에게 놀랐다.
자연스럽게 가문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전까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라였다.
직계 수장인 로리아나와도 틈틈이 연락을 하고 지냈다.
방계 쪽에서 사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달라졌다.
“의원님, 실례가 안 된다면 앉아서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이런 내가 손님에게 실수를 했군. 하하하. 앉게. 와인도 한잔할 텐가?”
호탕하게 웃으며 리처드는 자리를 권했다.
손님으로 인정했다.
충분히 시간을 내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라는 걸 파악했다.
“흐음~ 색감과 향기로 보니…… 비운의 아르네이스 포도를 사용한 이탈리아 비에띠 레이블이군요. 화이트 와인에서는 귀족급이죠.”
“오! 색감과 향기로 포도주 원산지를 알아낸 건가? 정말 대단해! 소믈리에들이 다니엘 자네를 보면 모두 고개를 숙여야겠어. 하하하하하하하.”
리처드는 진심으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귀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포도주에 관련한 상식.
미국 상원의원들 중 상당수가 사실 격에 맞지 않았다.
카우보이처럼 말 타고 사냥하는 게 취미인 공화당 의원들이 다수였다.
또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귀족 가문이 드물었다.
포도주보다 맥주를 더 사랑하는 이들.
상류층 파티라고 해봐야 고상한 척하는 가짜들이 대부분.
와인과 테이블 매너 그리고 예술에 대한 풍부한 상식이 자연스럽게 넘쳐야 진짜 귀족이었다.
눈앞의 다니엘처럼.
“제가 이탈리아에 좋은 와이너리 몇 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 제조한 피에몬트는 제대로 오크통에서 숙성된 녀석입니다. 얼음에 담긴 모스카토는 디오니소스가 주신 진정한 신의 음료입니다.”
“벌써 군침이 도는군. 여름에 땀이 날 때 마시는 아이스 모스카토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메뉴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달달하게 넘어가는 그 녀석을 마시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지.”
“의원님의 취미 생활을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아부도 멋스럽게 하는군. 제대로야.’
달달하기만 한 아부는 눈치 빠른 정치인이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살이 찌푸려지는 아부는 그만큼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
하지만 저렇게 문화와 지식에 기반한 듣기 좋은 아부는 대화의 연장으로 귀에 착착 감겼다.
자연스럽게 리처드 요한슨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또로로록.
화이트 와인이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채워졌다.
“우리의 만남을 신께서 축복하시는 것 같네.”
“야훼께서는 인연의 참맛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야훼를 믿나?”
“믿는 게 아니라 여러모로 존경합니다.”
알쏭달쏭한 대답을 내놓은 다니엘.
야훼와 직접 접촉한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꿀꺽.
가볍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디저트 같은 대화는 이제 끝낼 타임.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저녁에 워싱턴으로 가야 하네.”
“저도 선약이 있습니다.”
“트럼프가 재밌는 친구지.”
리처드 요한슨은 다니엘의 미국 방문 목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사실까지 파악했다.
딸의 사생활 역시 보고받고 있었다.
“능력 있는 분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네.”
‘트럼프가?’
리처드는 다니엘의 확신에 찬 대답에 의문을 표했다.
오바마를 뒤에서 밀어준 로버트 라이언.
그 뒤에 눈앞에 앉아 있는 다니엘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어차피 한 번은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 리처드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트럼프라니,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파는 자였다.
여성 편력도 많아 수많은 추문이 그의 훈장처럼 따라다녔다.
전형적인 아메리카 졸부.
그런 그를 다니엘이 의외로 높게 평가했다.
‘설마?’
리처드는 순간 다니엘이 트럼프를 다음 대 미국 대통령으로 점찍었다고 직감했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의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리처드의 의문을 장태산이 눈치 채고 말을 이었다.
“능력이 있다면 뭘 못하겠나. 자네처럼.”
“높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묻겠네.”
“성실히 대답하겠습니다.”
“이 세계에 자네 지분이 얼마나 되나?”
리처드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격 떨어지게 돈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중요한 질문이다.
젊은 나이 때는 보통 혈기가 왕성해 자랑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마련.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려 애쓰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궁금한 질문을 통한 하나의 테스트.
씨익.
다니엘이 웃었다.
그리고.
“의원님, 게임 테이블에서 자기 카드를 상대에게 보여주는 겜블러도 있습니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