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79
680장. 목숨과 미래.
“저급한 TS 따위가 감히 날 모욕해?
부아아아아앙!
슈퍼카를 몰고 화풀이에 나선 양동찬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빠아아아아앙!
교통량이 많지 않은 도로 위에서 강한 클랙슨 소리가 울렸다.
“비켜 이 잡동사니들아!!!”
운전석 창을 내리고 양동찬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악을 썼다.
태어나 처음으로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무시를 당했다.
모멸감과 경멸 가득한 시선을 한꺼번에 받았다.
도저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엘리트 코스로만 뻗어왔던 자신의 인생에 찍힌 오점.
부모님의 기대와 학업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공작소에 들어가 더러운 토사물을 쏟아냈다.
잘난 척의 끝을 달리는 여동생은 물어뜯기에 신선한 먹잇감이 돼줬다.
그럴싸한 쇼 윈도우 부부로 최고의 찰떡궁합을 보이는 부모도 마찬가지.
두 분 모두가 각자 애인을 두고 있다는 것쯤은 양동찬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모른 척하며 꾹꾹 눌러 참기도 했다.
부모님이 보장한 윤택한 환경과 누리고 있는 재정적 지원 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눈 감고 적당히 타협하면 얻을 수 있는 쾌락과 행복이 넘쳤다.
그러다 일정 수준까지 스트레스가 쌓이면 공작소에 배출했다.
다른 쓰레기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것들을 골라 사진과 함께 첨부하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주지. 해킹이 확실해! 도대체 국정원은 뭐 하는 거야? 뒤에서 확실히 밀어준다고 했으면서!”
공작소 뒤에는 국정원이 있었다.
양동찬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고용호 교수를 통해 연이 닿은 공작소 창립 멤버들.
놀랍게도 그들은 평범한 신분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중들에 대한 여론 몰이를 위해 국정원 비밀요원이 자금을 대고 사이트를 개설해 놓은 것이었다.
사실 양동찬은 공작소의 서울 강남 지역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발각됐다.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면접장에서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
국정원 특수 전산 요원들이 서버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활동했지만 결국 털리고 말았다.
“긴급회의를 열어야겠어. 아무래도 TS 그 새끼들 수상해.”
부우우우우우 아아앙.
양동찬은 가속 페달을 더 강하게 밟았다.
평일 오전.
미사리 쪽으로 뻗은 도로는 한산했다.
간간이 앞서 달리는 차들은 깔끔하게 칼치기로 재끼며 달렸다.
– 가슴 깊은 사랑~♫.
양동찬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X발! 누구야!”
한바탕 시원하게 욕을 내뱉으며 통화 버튼을 누르는 양동찬.
“여보세요?”
02로 시작되는 서울 지역 전화번호.
양동찬은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까칠하게 전화를 받았다.
– 오정그룹 인사관리팀입니다.
‘오정?’
지난 주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오정그룹.
며칠 후에 신입사원 연수가 잡혀 있었다.
“무슨 일로…….”
– 양동찬 씨, 신입 연수에 나오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본 결과 안타깝게 최종 불합격 처리되었습니다.
“투서요! 그게 무슨…….
뚜뚜뚜.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도 않고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이…… 무슨 개소리야!”
양동찬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TS그룹 면접장에서 큰소리치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양동찬의 머릿속을 스친 섬뜩한 생각 하나.
“TS에서?”
대책 없이 치솟던 분노가 거짓말처럼 싸늘하게 식어갔다.
생각보다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스멀스멀 공포가 몰려왔다.
– 가슴 깊은 사랑~♫.
그때 다시 울리는 스마트폰.
02로 시작되는 또 다른 낯선 번호.
“여……보세요.”
이번에는 양동찬도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가 떨렸다.
– 엘자그룹 인사팀입니다.
무덤덤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
인사팀이라는 말에 양동찬은 혼란스러웠다.
“무슨 일로…….”
– 양동찬 씨, 합격이 취소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취소요! 왜요!!!”
악을 쓰듯 묻는 양동찬.
– 그건 본인이 더 알 것 같은데요? ……천황폐하만만세님.
“으헉!”
양동찬은 공작소 아이디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 야! 양동찬. 나 한국대 경제학부 선배다. 이 새끼야, 학교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너 어디 가서 한국대 입에 올리지도 마.
“으으으.”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양동찬은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 멍청한 새끼야, 조신하게 살아. 세상이 공작소 같은 줄 알아? 대기업 쪽은 기웃거리지 마. 이미 물 건너갔으니까. 이 덜떨어진 친일파 새끼!
뚝.
자신을 학부 선배라고 밝힌 엘자그룹 인사팀 남자가 거침없는 말을 쏘아붙이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연속되는 불합격 통보에 양동찬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부우우우우웅.
그 와중에도 고속 질주를 멈추지 않는 양동찬.
“잇씨! 다 죽여 버릴 거야! 이 개새끼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으아아아아아아!”
급기야 양동찬은 운전대를 잡아 흔들며 울분을 터뜨렸다.
수모도 이런 수모가 없었다.
자신을 농락한 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찔렀다.
빠아아아아아앙! 빠아아아앙
그때 갑자기 들려온 강력한 클랙슨 소음.
정신이 번쩍 든 양동찬이 정면을 확인했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피할 겨를도 없이 양동찬 입에서 터지는 비명.
연속된 불합격 통보.
혼미한 정신에 중앙선을 침범한 것도 모르고 과속을 하던 양동찬.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정면에서 마주 달려왔다.
콰아아아앙! 콰과과과과과과광!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크아아아악!”
짧은 비명이 섞여 울렸다.
콰자자자자자작.
수억 짜리 슈퍼카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덤프트럭에 박혀 구겨졌다.
툭 투두둑.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짓이겨진 양동찬의 슈퍼카.
피 묻은 스마트폰이 충격에 튕겨져 나와 도로 위에 떨어졌다.
***
‘로비스트? 나를?’
존 피어스 의원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막내딸을 구해준 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대가로 이런 청탁을 해올 줄은 몰랐다.
세상에 어떤 자도 미국 상원의원인 존 피어스에게 로비스트가 돼 달라고 청탁하지 않는다.
물론 국회 의사당에는 수많은 로비스트들이 존재했다.
미국의 법률과 정치가 거의 모두 로비에 의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총기협회를 비롯해 오바마 케어를 거부하는 보험협회가 대표적이다.
기업들뿐만 아니라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같은 국가 등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많은 로비스트들을 이용했다.
해외 무기 판매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임기 2년의 하원의원에 비해 중장기적 권력을 갖고 있는 상원의원에 대한 로비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공식적 정치자금 후원뿐만 아니라 여러 루트를 통해 지원되는 비밀 후원도 많았다.
존 피어스도 로비스트들과 몇 차례 만남을 가진 일이 있었다.
강골 기질이 강하다 보니 큰 자금의 로비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구를 유지하고 선거자금을 모을 수준의 로비는 허락했다.
“진심인가?”
“그럼요. 상원의원님께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몰상식하지는 않습니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군.”
씨익.
다니엘 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허허.”
존 피어스는 다시 한 번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의원님들도 여러 로비 단체 후원으로 법을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지 않습니까.”
“난 로비의 대상이지 로비스트가 아니네.”
“생각을 달리해 보십시오. 로비스트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면 친밀한 협조자라는 표현으로 정정하겠습니다.”
“말장난, 좋아하지 않네.”
존 피어스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다니엘의 도를 넘는 태도는 존 피어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로비 자금은 충분히 제공하겠습니다.”
“돈은 필요 없어. 엠마 일로 한 번은 자네를 도와줄 수 있네. 국가의 이익과 내 양심의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야. 그뿐이네.”
존 피어스는 대가의 한계선을 명확히 그었다.
딸의 생명을 구한 건 인정했지만 양심을 팔 수는 없었다.
“의원님께 손해가 아닙니다.”
다니엘이 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의원이 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네. 내 손해는 중요치 않아.”
미국을 위해 피어스 가문은 많은 피를 흘렸다.
한 개인과의 거래에 자존심을 팔 수 없었다.
“새로운 미국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새로운 미국? 무슨 뜻인가?”
존 피어스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심장 박동을 빠르게 요동치게 하는 말들이 다니엘 장의 입에서 연속 흘러나왔다.
일어나는 호기심을 억누르는 데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의원님이 알고 계시는 미국이 아닌 다른 미국이 곧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불의와 타협하고 정의를 돈에 팔아넘기는 그런 미국이 말입니다.”
“뭐라고! 지금 자네 그 무슨 망발인가!”
존 피어스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자신 앞에서 이런 엄청난 말을 내뱉을 위인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미국은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돈 때문에 정의를 팔지도 않는다.
‘위험한 놈이군…….’
다니엘 장에 대해서는 존 피어스도 알아볼 만큼 알아본 상태였다.
주식과 선물 투자로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부를 일궈낸 투자 괴물.
어느새 월가는 물론 미국 정치권 깊숙이까지 들어와 점점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심지어 오바마 측은 이 청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물며 리처드 요한슨과도 인연이 닿아 있는 자였다.
미국을 상대로 뭔가 속을 알 수 없는 꿍꿍이를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권태기라고 아십니까?”
“???”
“목숨까지 내놓을 만큼 사랑하던 연인들도 결국 서로가 귀찮아질 때가 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시들해지고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겐가?”
“미국 국민이 곧 권태기에 빠집니다. 세계를 위해 정의를 수호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슈퍼 히어로 역할을 해왔던 미 국민이 그 노릇에 신물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 돼! 미국 국민들은 언제나 위대한 선택을 했네.”
“노동은 최소한으로, 돈은 많이! 피는 흘리기 싫고 왕 노릇은 계속 하고 싶은 탐욕스러운 욕망이 그런 미 국민들 대부분을 오염시킬 겁니다. 그런 미래가 의원님도 당황할 만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네. 내 가문의 이름을 걸고 단언하지.”
존 피어스는 미 국민들의 합리적 지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 시민들은 문화와 정치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유럽보다 더 합리적으로 사고한다 늘 자부했다.
“의원님도 과거로 현재를 판단하시는군요. 현재로 미래를 보시는 눈은 아직 부족하십니다.”
“다니엘 그만하게! 더 이상 그 입을 함부로 열었다가는 내 주먹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야!”
분노가 폭발한 존 피어스.
다니엘을 향해 감춰 두었던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럼 내기 하시겠습니까?”
“내기?”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수작이야!’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미국이 저급하게 변질될 거라 말하는 겁 없는 한국인.
이제는 내기로 존 피어스를 끌어들였다.
“손해 보는 건 아닐 겁니다. 엠마를 구한 일도 내기 판돈에 올리겠습니다.”
교묘하게 우위를 점하고 파고드는 말솜씨.
“말해보게…….”
“다음 대 미국 대통령, 누가 될 것 같습니까?”
“!!!”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질문의 연속.
“……힐러리겠지.”
공화당이 집권하기에는 적당한 대선 유력 주자들이 없었다.
존 피어스도 2008년 경선에서 오바마에 밀려 낙선했다.
“아닙니다.”
“그럼 누구? 자네가 요즘 만난다는 그 부동산 투기꾼을 말하고 싶은 건가?”
“답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내기 조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럼 조건이 뭔가?”
‘대통령 맞추기가 아니라면…….’
존 피어스는 어느새 다니엘이 벌이는 판에 뛰어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은근히 화를 돋우고 있지만 판을 엎을 수 없게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계속 내놓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다니엘.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조건은……. 바로 미국의…….”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