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5
686장. 미래 경영(4)
꿀꺽.
고광문은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치 못한 즉석에서의 투자 제안 금액과 대표 선정 조건.
막내 여동생을 돌아봤다.
자신 못지않게 놀란 듯 눈만 껌벅거리는 여동생 고연지.
말이 좋아 100억 달러지, 엄청난 투자금액이었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이용해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다. 엘자의 이름으로…….’
외면하기 힘든 미끼였다.
엘자의 명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퇴색해 가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이럴 때 다른 사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 그룹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표가 연지라면 더욱 안심이 됐다.
명분도 좋았다.
아직 여러 장애가 있지만 현재로선 눈에 띄지 않은 사업 부분이라 크게 이슈화될 우려도 없다.
“어떤 사업을 생각 중이십니까?”
거절할 생각은 애초 하지도 않았다.
장태산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궁금했다.
국가도 산업부분에 100억 달러를 일시에 투척하지 못한다.
엘자 입장에서도 장기 투자 계획을 잡아야 하는 예산.
자칫하다가는 회사가 공중분해가 될 수 있는 큰 자금.
그런 큰 투자금액이 순댓국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오고간 액수가 됐다.
‘뭔가 있어. 저 눈빛……. 다 계획적이야.’
대한민국 내 기업체들 중 아버지인 고자룡 회장을 능가하는 전문 경영자는 몇 명 없다.
그 몇 안 되는 인물들에 자연스럽게 장태산을 집어넣는 고광문.
“최근 저에 관련한 얘기 들은 적 있습니까?”
장태산이 웃으며 물어왔다.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들었어.”
연지가 답했다.
“러시아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에 관련한 부품 공장을 가동 준비 중이라 들었습니다.”
고광문도 알고 있는 얘기를 솔직하게 말했다.
재계에 소문이 하나둘씩 돌고 있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투자였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부품 공장은 오정과 엘자의 협의가 있은 후에야 가능한 사업이었다.
“그 연장선입니다.”
“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장태산의 지금까지 투자 패턴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TS나 동룡, 천일, 삼룡 같은 경우는 회사 내실을 다져 다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IMF 이후 외국계 자본은 사모 펀드를 내세워 기업 인수 후 합병이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살려낸 후 작업을 거쳐 다시 팔았다.
그 이익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부품 공장에 대한 독립적 신규 투자는 의외였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모노즈쿠리 기본법을 아십니까?”
“모노즈쿠리라면……. 일본이 1999년에 재정한 제조 기반 기술진흥 기본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영자 수업을 위해 참고했던 일본의 중요한 법률이다.
엘자에서도 일정 이상 고위 직급이 된 임원에게 회사 차원에서 학습 과제로 던져 주는 내용이었다.
“맞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계속되는 화학, 기계, 소재 분야에 대한 전폭적 국가 지원과 장인정신의 조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만든 법률입니다.”
‘별걸 다 아는군.’
고광문은 장태산의 방대한 지식에 내심 놀랐다.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일본에 대한 경제 지식이었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수치심의 나라입니다.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후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 미국 같은 열강들의 간섭은 일본에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지금껏 일왕 아래 우수한 민족이라 여겼던 자신들의 열등한 상황을 뼈저리게 깨달은 거죠. 그런 수치심을 바탕으로 화혼양재(和魂洋才) 같은 이념을 설파하며 산업기술을 이용해 수치심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했죠.”
갑자기 주제가 일본의 경제 역사 강의로 흘러들었다.
고광문과 고연지는 뭔가에 홀린 듯 장태산의 말에 빨려들었다.
장태산의 말에 듣고 싶은 해답이 있을 거란 사실을 두 사람은 알았다.
“일본은 경제 호황기 시절 글로벌 가치사슬 중에서 부품과 조립, 제조를 담당하며 엄청난 부를 일궜습니다. 미국의 허락 하에 열심히 자신의 장점을 살려 미국보다 돈을 더 벌어들인 셈이죠. 하지만……. 오만한 사무라이 정신이 그들을 다시 수치심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이 미국 GDP의 40%에 이르자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을 삼켰습니다. 한 번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에 대한 경제 제제였던 셈입니다.”
또로로록.
빈 잔에 다시 소주를 채우는 장태산.
꿀꺽.
그리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절치부심 노력했지만 2000년대 초반 세계화의 바람 속에 설계와 핵심기술, 유연한 판매망을 소유한 한국과 대만에 IT 제조업 주도권을 빼앗겼습니다. 일본이 20년을 넘어 30년 불황으로 향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앞서 말했던 일본이 산업 네트워크를 차단한다는 말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군요.”
고광문이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빙긋 웃는 장태산.
“고 전무님이 이끌 엘자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난 이해가 안 가. 지금 한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세계 IT 업체에 중요한 공급원이야. 그걸 일본이 끊는다고? 왜? 명분은? 반도체 대량 소비자인 미국이 가만있을까?”
고연지도 지금껏 배웠던 지식을 활용해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연지는 국문과가 아니라 경영학과가 어울렸어.”
“나도……. 진작 내 특성을 알았다면 전과라도 했을 걸.”
“스마일 커브라는 말을 알아?”
“그게 뭔데?”
“설계, 개발, 부품과 조립, 제조, 판매, 서비스 같은 가치사슬 체계에서 각자 강점인 분야의 이익이 급증하는 그래프를 말한다. 조금 전 장 대표님이 언급했던 일본의 부품과 조립, 제조에서 강점을 보여 이익을 보는 부분은 그래프가 스마일 하게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익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이렇게?”
고연지가 메모장을 꺼내 자신이 이해한 그래프를 그려봤다.
돈 주고도 들을 수 없는 경영에 관련한 현장 강의였다.
“바로 알아들었네.”
“헤에~.”
장태산의 칭찬 한마디에 고연지가 활짝 웃었다.
‘대표라고 했어. 태산이가 날 밀어주려고 하고 있어. 이 기회를 잡아야 해.’
고연지 얼굴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꿈만 같았던 대표 자리.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샘솟았다.
“이 스마일 구조에서 일본이 반격을 사직할 겁니다. 중국보다는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과감히 글로벌 사슬 체계의 판을 깨는 겁니다.”
“확신하시는군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말씀드렸듯 자유무역 또한 그렇습니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자국민들 모두 IT 발달로 빠른 정보 접근성을 획득했습니다. 자국에 손해가 나는 걸 투표권자들 대부분은 싫어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 생태계에서 한국에 뒤처지는 걸 수치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곧 터집니다. 일본의 신임 수상 아베는…… 대 일본주의를 신봉하는 자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고광문은 장태산이 예견하는 아찔한 상상에 골치가 아파왔다.
엘자의 주력 사업인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사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오정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뿐만 아니라 고품질 부품 조달처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상당수가 일본 제품들이다.
소재 부품 분야에서 일본의 지위는 막강했다.
세계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제품 중에 일본산은 부품 소재 분야에서 200개가 넘었다.
그런 부품을 일본 정부가 통제한다면.
“으음.”
고광문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부품 한두 가지만 공급되지 않아도 모든 공정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모노즈쿠리 기본법에 의해 지원되는 분야는 26개. 경제산업상 주도로 기술 연수, 특허 관리, 연구 개발이 이뤄진다. 법에 의해 세액 공제 및 연구비 혜택, 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한국은…….’
엘자 전무인 고광문은 한국 실정을 잘 알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은 고사하고,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착취하기 바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탄탄하게 연대하는 일본과 달랐다.
주종 관계가 아닌 공생 관계를 추구하는 일본 산업계.
무서운 특성이었다.
특허와 싼 값으로 경쟁자를 몰아붙이는 일본의 주요 소재 기업들.
알게 모르게 한국 대기업들은 일본에 종속되어 갔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웃집 개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감히 넘볼 수 없도록 기를 확 죽여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
‘이웃집 개들이라 하면…… 중국과 일본.’
장태산의 말에서 고광문은 이웃집 개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애국자?’
보통 투자자들은 돈에 영혼을 판 자들이라 알려져 있다.
이익을 위해 인수한 회사의 인력을 제일 먼저 쳐내는 게 일이었다.
그러나 장태산은 달라 보였다.
이웃집 개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거금을 풀 생각을 했다.
‘부끄럽군.’
조국의 이상을 품고 사는 엘자 그룹이지만 장태산에게는 못 미쳤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통해 그럼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조금 전 말했던 부품 사업?”
고연지도 직장 생활 하면서 눈치가 빨라졌다.
장태산을 친구처럼 대하며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기초 산업 소재 개발에 스마트 팩토리 인공지능을 이용해 완성도를 높일 생각이야. 미국 실리콘 밸리 쪽과도 협의가 진행 중이야. 커넥티드인더스트리즈도 병행 할 거고. 생산과 연구 개발의 중복 투자를 막아 극도의 효율화를 추진해야 돼. 그게 진정한 미래 경영의 핵심이지.”
‘미래 경영!’
고광문은 묵직하게 진동하는 핵심적인 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나아갈 바를 장태산이 말해 주고 있었다.
“뭘 도우면 됩니까.”
“모노즈쿠리법에 버금가는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엘자가 필요합니다.”
“그 말씀은…….”
“국회 쪽에 힘을 써 주십시오. VIP가 경제 타이틀을 좋아하시니 여당 의원들 몇 명 모아서 발의하면 될 겁니다. 취지가 좋지 않습니까. 애국하자는데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로비를 맡긴다 이건가.’
“뒤에서 확실하게 서포트하겠습니다. 오정의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오정과 라이벌인 엘자.
고광문의 자존심이 크게 꿈틀거렸다.
“법안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어차피 여당 쪽에서는 명분 쌓기 용이니 그대로 통과시켜 줄 겁니다. 동시에 엘자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존공영형 비전을 선포하십시오. VIP 초청하시고 언론에 약 좀 치십시오.”
장태산의 지시가 깨알처럼 이뤄졌다.
“전 풍부한 금융자본으로 엔젤 투자자가 되겠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적의 기술을 획득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경제 전쟁이 멀지 않았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이 칼을 들기 전에 먼저 공격하고 빼앗아야 합니다.”
장태산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담겨 있었다.
끄덕.
고광문과 고연지는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비 교주 같은 장태산의 열정에 마음이 움직였다.
‘생존(生存)’
고광문의 머릿속에 박힌 생존이라는 말.
“준비하려면……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네.”
고연지가 실무적으로 접근했다.
“적에게 배울 건 배워야지. 모노즈쿠리 기본법에 사물인터넷과 AI 신기술을 더할 생각이야. 대상 기술과 업체 선정은 어느 정도 진행 중이거든.”
‘벌써?’
장태산의 일처리에 고광문은 할 말을 잃었다.
말만 장황한 투자자가 아니었다.
기본 준비가 끝난 뒤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성격임이 분명했다.
“연구거점은?”
고연지는 꺼내 놓은 메모장에 이것저것 적으며 빠르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거의 완성 단계야.”
“거의? 어디에?”
놀라며 묻는 고연지.
“장주시.”
“장주시라면…….”
“내 고향.”
“아!”
고광문은 다시 한 번 탄성을 터트렸다.
‘장주시에서 대규모 공단과 연구소가 준비 중이라더니…… 그게 장태산 대표 작품이었어?’
손바닥만 한 대한민국이었다.
오정과 엘자는 도시와 협약을 맺어 지역 한 곳에 대규모 산업시설을 육성했다.
그 와중에 들려오던 소문 하나.
수도권에서 제법 먼 장주시에 건설된다는 공단과 연구소 단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어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지만 오늘 그 실체가 밝혀졌다.
‘무섭다.’
고광문은 장태산을 다시 봤다.
저 나이 때 자신은 학교를 막 졸업하고 그룹에 입사해 한참 머리를 싸맬 때였다.
그러나 장태산은 거침없이 거액 투자를 언급하며 미래 경영을 설파했다.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장태산.
워낙 차이가 극심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두려움이 은근히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반드시 잡아야 한다!’
아버지 고자룡 회장이 연지를 그룹에 입사시킨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장태산과의 연을 이용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장태산도 기꺼이 고연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연지를 신 사업체 대표로 삼겠다고 밝힌 장태산.
“이제 중요한 돈 얘기를 하죠.”
장태산이 빙긋 웃으며 고광문을 바라봤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장태산은 고광문을 직시했다.
“돈은 시간에 녹아 있다…….”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품고 있는 말.
“제가 공들여 준비한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면…… 엘자는 성의를 표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전무님은 제가 준비한 조건 모두를 통과시켜 와야 합니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말입니다. ……전무님의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