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6
687장. 이 맛에 사업한다.
“조건은?”
“……평범한 건 아닙니다.”
“그래?”
고자룡 회장은 자택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오늘 누구와 만나는지 보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이제 오늘의 만남이 남긴 결과를 확인할 때였다.
아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밀렸군.’
기본적으로 사업가는 전장을 책임진 장수와 같았다.
그의 기세에 따라 휘하 병사들의 운명이 정해졌다.
고자룡은 아들 고광문이 장태산에게 이미 기세에서 밀렸음을 알아챘다.
‘괴물 같은 녀석이야.’
씁쓸했지만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자신도 장태산 앞에서 패했지 않은가.
일개 전무인 아들이 그런 장태산을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정의 임성철 회장도 장태산에게 몇 수 접어 줄 정도였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장태산은 일기당천(一驥當千)의 무적 장수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막내딸을 선친의 유언까지 어기고 그룹 업무에 투입했다.
장태산과의 인연을 그대로 놓을 수 없었다.
거침없는 직언은 자존심 상하고 마음 아팠지만 그는 분명 성공한 투자자였다.
엘자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게 확실했다.
“부끄러웠습니다.”
“한 잔 마셔라.”
또로록.
본가에 들어온 아들 고광문에게 고자룡이 양주를 한 잔 따라줬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단숨에 잔을 비우는 아들.
복잡한 심경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후우.”
깊게 숨을 고르는 고광문.
고자룡은 조급하게 닦달하지 않았다.
자신도 과거 재계의 거물들을 만날 때마다 알게 모르게 겪어 온 일이었다.
당연히 심기가 위축될 만했다.
“그래 장태산이 뭘 요구하더냐?”
아들이지만 엘자그룹의 전무이기도 한 고광문.
고자룡이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
‘겨우?’
아직 공정 단계 관리 업무라 사업이라고 말하기에는 약했다.
의외의 대답에 고자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자 금액이 100억 달러입니다.”
“뭐, 뭐라! 100억 달러!”
하지만 아들의 다음 말에 크게 놀랐다.
환율을 감안하면 11조가 넘는 거금이었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투자하기에는 너무 큰 자금이다.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통해 기업을 육성한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기업? 러시아에 건설할 예정이라던 반도체 부품 기업?”
고자룡은 몸이 달았다.
엘자의 자금력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빚을 내 투자와 투자를 거듭해도 중국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소재 부품 사업입니다.”
“구체적으로.”
“모노즈쿠리 기본법에 명시된 산업 기반 기술 사업입니다.”
“모노즈쿠리 기본법? 왜?”
고광문의 말에 고자룡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융 투자자에게는 특히 매력 없는 사업들이다.
투자한 자본에 비해 결실을 맺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기업들이 꽉 잡고 있는 소재 부품 사업이 아닌가.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기업들이나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부품 분야의 일본 소재 기업들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애국자였습니다.”
“애국자? 장태산이?”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국가가 못 할 일을 본인이 대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으으음.”
고자룡이 신음을 토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도대체 장태산이 누굽니까? 일개 개인이 국가도 추진하기 꺼려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황당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술이 들어가자 고광문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해냈다.
“그 정도냐?”
아들에게서 나온 뜻밖의 말에 고자룡이 되물었다.
“어린 나이지만 해박한 경제 지식과 국가에 대한 애정이 무척 강했습니다. 누가 봐도 손해가 막심한 사업입니다. 장태산이 아니면 대한민국 기업가들 누구도 뛰어들지 못할 겁니다.”
고광문의 목소리에 다른 때와 달리 힘이 잔뜩 들어갔다.
교주를 알현하고 은혜를 받은 열성 신도 같았다.
“냉정해라.”
고자룡은 아들에게 냉정하기를 주문했다.
“…….”
고광문이 입을 다물었다.
“엘자의 이름을 원하더냐?”
“아시고 계셨습니까?”
놀라서 되묻는 고광문.
“장태산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많지 않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엘자는 1년 안에 넘어갈 것이다.”
고자룡은 자신이 판단한 장태산에 대한 견해를 엘자 운명에 적용했다.
“이해가 갑니다.”
고광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원하지만 종속되기는 원치 않을 것 같은데……. 지분 관계와 대표 문제는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사회에 명분을 던져줘야 해.”
‘다 짐작하고 계셨어! 역시……. 아버지!’
고광문은 고자룡의 혜안에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자신과 다르게 몇 수를 앞서 살피고 있었다.
“엘자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새로운 법인을 원했습니다. 짐작하셨던 대로 지주 회사 편입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대표는…….”
잠시 뜸을 들이는 고광문.
“누구더냐? 우리 측에서도 관여가 가능해?”
장태산이 준비한 사업에서 고자룡은 미래를 점치고 있었다.
대표가 아니더라도 임원을 몇 명 정도는 끼워 넣어야 했다.
“연지를 추천했습니다.”
“연지를? 네가?”
“장태산 대표의 추천입니다.”
“뭐라고?”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기초업무를 배우기 시작한 막내딸.
그런 연지를 회사 대표로 세우겠다고 했다는 장태산.
순간 퍼뜩 스치는 생각이었다.
“인질……이다.”
“네?”
“언뜻 선물 같지만…… 연지를 인질로 잡겠다는 의미다.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연지와 엘자가 감당해야 한다.”
“아!”
“다른 조건은?”
“모노즈쿠리 기본법과 비슷한 기술진흥법을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당 쪽 의원들을 법안 발의자로 포함시키라고 했습니다.”
“귀찮은 대관업무까지 맡겼구나…….”
고자룡은 단숨에 장태산의 의중을 읽어냈다.
‘노련한 녀석이야. 나도 게임이 안 돼.’
압도적인 자본과 뛰어난 머리에 애국심으로 무장한 청년.
모든 것들이 우발적 행동 같았지만 철저히 계획적이었다.
“지분은 연지 명의로 5%를 제안 했습니다. 그리고 엘자의 투자금 1억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닐 텐데?”
이사회를 설득하기에는 명분이 약했다.
바보를 상대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엘자라는 이름을 팔기에 모양이 좀 빠졌다.
“배터리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배터리 사업? 장태산이?”
“아버지, 무조건 승낙하고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조급해진 고광문이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자본금을 투자한다고 하더냐?”
“테슬러 납품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뭐라고! 테, 테슬러 납품!!!”
***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순댓국에 마신 소주가 아쉬웠다.
치이이익.
사무실로 와 편의점에서 구입한 맥주캔을 땄다.
“지금쯤이면 고자룡 회장 속이 뒤집어졌겠군. 후훗.”
이 맛에 사업하는 거다.
남들이 짐작 못 할 패를 던져서 한 방에 승부를 보는 도박 같은 이 맛.
엘자는 반드시 넘어올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전기차 강자는 테슬러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걷는 고자룡 회장이라도 테슬러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내가 알던 지난 생의 테슬러는 일본산 배터리를 장착했다.
자동차 공장 옆에 기가 팩토리 배터리 공장까지 건설했다.
무식한 머스크답게 추진력 하나는 엄청났다.
일본 기업의 20억 달러 대신 내 자금이 투입될 것이다.
테슬러 전기 자동차에 공급되는 원통형 리튬 이온 전지.
그걸 빼앗아 올 생각이다.
아니 승부는 이미 끝났다.
내가 보낸 샘플에 이미 머스크는 무릎을 꿇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유럽에도 패키지 형태로 공급이 될 것이다.
한 번 선정되면 앞으로 10년 이상 쭉쭉 단물을 빨 수 있다.
그래서 더 엘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이 벌어진다.
또 TS그룹 역량으로는 모자란 부분이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나의 실체가 밖으로 드러날 수도 있었다.
엘자를 앞에 세우고 뒤에서 밀어주는 형태가 안성맞춤이었다.
엘자와 NK는 대한민국의 대표 배터리 사업체였다.
모양새가 그럴싸해야 했다.
지분 관계를 비롯해 특허료를 두둑하게 청구할 생각이다.
“내 시간에 녹아 있는 돈을 먹기 위해서는 알량한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이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사사로운 이익과 감정은 필요 없어.”
미래에서 보았던 대한민국의 2020년.
중국과 미국의 세계 무역 전쟁 여파로 각국은 국수주의로 전환했다.
자유무역은 후퇴하고 보호무역이 횡횡했다.
세계 대공황의 전조 증상.
돌아보면 오바마는 정말 무능했다.
과거 미국은 일본과 유럽, 러시아가 GDP 40%에 이를 때 철저하게 공격해 무너트렸다.
그러나 도광양회 정신으로 발톱을 숨긴 중국은 70%가 되어서야 미국의 견제를 받았다.
오바마가 장수들을 준비하고도 전쟁을 회피한 덕에 중국은 기고만장했다.
어설픈 인권주의자 길을 걸었던 오바마.
이는 결국 미국 패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다음 대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너무나 호전적이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망나니 칼을 휘둘렀다.
친구가 없는 국가는 오래 갈 수 없는 법.
트럼프로 인해 미국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됐다.
유럽을 비롯해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이 미국을 믿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맏형 같았던 동네 형이 양아치가 되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일본이라는 양아치 의동생도 덩달아 날뛰었다.
트럼프에게 알랑방귀를 뀌던 일본은 한국을 물어뜯는 데 거침이 없었다.
중국에게 희토류로 공격받을 때 방법을 그대로 한국에 투사했다.
비겁한 족속답게 치밀하고 은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했다.
“손 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냐.”
자금을 마련해 놓았기에 가능한 사업 추진이다.
숫자로 떠도는 자금을 현실 세계로 끌어냈다.
“문제는 내부 총질하는 작자들이다. 친일파로 살아가는 토착왜구들……. 그리고 부화뇌동하는 어설픈 중간자들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어.”
국가 발전에 해가 되는 기생충들이 도처에 많았다.
명백히 역사적 사실인 일제강점기를 찬양하는 미친놈들도 버젓이 섞여 존재했다.
나라를 팔아 자신만 호의호식 하겠다고 나서는 놈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사방에 그런 적들이 널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국가가 있어야 개인의 안위도 보장받을 수 있다.
보편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또라이들이 세상 곳곳에서 오염물질처럼 살았다.
한국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를 노리는 적들도 사방에 널렸다.
미국과 일본 모두 한국 반도체 산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양국은 짝짜꿍이 잘 맞았다.
돈을 벌면 헌납할 줄 아는 일본.
그에 반해 한국은 국민 특성상 자존심이 강하고 뻣뻣했다.
“일본은 반도체 주권을 되찾기 위해 게이단렌을 통해 전수조사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업들이 상대해야 한다.”
미래 4차와 5차 산업의 IT 기기들은 고성능 반도체를 필요로 했다.
그걸 빼앗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움직였다.
그에 반해 돈과 권력에만 취했던 역대 무능한 정권들은 그 어떤 대책도 없었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격은 2010년도 초반부터 준비되었던 사안이었다.
그때도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뒤에 칼을 숨기고 있던 일본에 제대로 당했다.
꿀꺽 꿀꺽.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미래를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만큼 마음이 바빴다.
서서히 발톱을 드러내는 이웃집 개들.
그들을 때려잡을 몽둥이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 혼자서는 벅찼다.
그래서 우군을 확보하는 동시에 세력을 넓혔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낼 수 없었다.
이렇게 마시는 한 잔의 맥주.
곁에 아무도 없는 이 밤의 외로움을 맥주가 달랬다.
꿀꺽.
가볍게 목적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맛.
오늘도 하루의 마무리는 술 한 잔.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평한 휴식 방법.
– 조상신들이 당신에게 힘내라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조상신들이 나의 노고를 알아 줄 뿐이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