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71
772장. 살인도 활인검.
‘멋있다…….’
고연지는 당당함을 넘어 카리스마가 넘치는 장태산을 보며 감탄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자신의 마음을 훔쳐간 나쁜 남자.
문학 감수성뿐만 아니라 스포츠 재능도 탁월한 사람이다.
한때 법대의 우상으로 불리기까지 했던 그가 오늘도 여전히 매력을 풀풀 날렸다.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재계 서열 3위인 엘자그룹 주인인 아빠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하긴 첫 대면 때부터 이미 그랬다.
가볍게 생각하고 장태산을 대했다가 큰 코를 다쳤던 아빠.
오늘도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희비가 그대로 드러나는 아빠의 얼굴.
고연지는 아빠의 낯빛에서 완벽하게 엘자가 장태산에게 무릎 꿇었다는 걸 알았다.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LCD 분야에서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엘자의 투자가 더뎌진 사이 핵심 연구원들과 기술을 빼돌려 빠르게 추격해 온 중국.
무선 사업부를 비롯해 가전 사업마저 중국에 밀렸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배터리 사업도 다른 분야처럼 같은 수순을 밟았다.
장태산이 배터리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그것도 접어야 할 판이었다.
배터리 사업까지 망가졌다면 엘자라는 거대 공룡은 이미 쓰러졌어야 맞다.
그룹을 지탱해 주던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했던 대형 사업들.
그 사업체들이 제 역할을 못 하게 되면 기타 계열사는 덩달아 파산할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이다 보니 더 타격이 컸다.
안타깝게도 그런 위기 속에서도 그룹의 움직임은 둔했다.
‘모두 다 엘자를 위해서였어…….’
신사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장태산은 전혀 새로운 계열사를 요구했다.
누가 봐도 엘자를 위한 제안이었다.
기존 대주주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사업체.
고연지도 그 덕분에 CMS 사업부 대표이사가 됐다.
‘임윤아…….’
고연지는 자연스레 임윤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장태산이 자랑스럽다는 듯 깊은 눈길 속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부러움이 한없이 밀려왔다.
자신보다 장태산과의 인연이 빨랐던 임윤아.
행동도 거침이 없고 적극적이었다.
장태산의 부모님과 두 여동생과도 친분이 남달라 보였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끈끈한 무언가가 흘렀다.
‘난…… 바보였어.’
장태산과 술자리를 몇 번이나 가졌었다.
그런 자리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고연지.
장태산 주변에 항상 끊임없이 넘치던 미녀들에 주눅이 든 탓이었다.
시도도 해 보지 못하고 패배감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고연지도 좀 달라졌다.
엘자그룹 계열사 대표가 되면서 잠재되어 있던 포텐이 톡톡 터졌다.
소심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에게도 승부사 기질이 넘친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도전하겠어!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인생이야!’
장태산을 저대로 두고 바라만 볼 수 없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장태산은 반드시 필요했다.
사랑과 야망.
두 가지를 모두 채워 줄 수 있는 남자.
고연지는 속으로 다짐하며 뜨거운 시선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경쟁자가 하나 더 늘었네.’
임윤아도 촉이 좋은 여자였다.
자신과 장태산을 천천히 바라보는 고연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면 고연지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강적이다.
재벌가에서 재색을 두루 겸비한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다.
게다가 고연지는 장태산과 대학시절부터 종종 어울리던 사이.
‘한국에 들어오기를 잘했어.’
아버지 병환을 빌미로 본격적으로 오정그룹에 합류한 임윤아.
경영에 참여하는 일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책으로 펼쳐진 세상보다 더 치열한 현장 경영의 세계.
책이 아닌 사람과 조직을 통해 부딪치며 진짜 인생을 배워가고 있었다.
매일 매일이 전쟁 같은 나날.
그 안에서 이렇게 살아남아 오늘 같은 큰 사업을 따내면 거기서 얻어지는 성취감이 장난 아니었다.
임윤아의 피에 흐르는 오정 가문의 경영 능력.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야 할 때가 왔다.
‘태산 씨. 당신, 난 포기 못 해.’
처음에는 떠밀려 시작되었던 만남이지만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관계가 돼 버렸다.
첫 만남 당시 임윤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번뇌를 산산이 부셔버렸던 남자.
이제 본격적인 비상을 위해 날개를 활짝 펴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당신을 가장 빛나게 만들 거야!’
임윤아는 담담하게 속으로 다짐했다.
어차피 장태산 덕분에 다시 살게 된 인생이라 해도 무방했다.
임윤아는 새로 등장한 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태산과 그녀는 누가 뭐라 해도 가장 핫한 사이임은 분명했다.
‘장태산…….’
고자룡 회장은 자신이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민망함에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게임 자체가 불가했다.
감춰 놓은 장태산의 어마어마한 판돈.
올 인이라는 말도 무의미했다.
사업 아이템 규모가 전 지구적 규모였다.
몇 년, 몇 십 년 앞을 내다보고 있는 장태산의 신기술.
고자룡은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을 매력적이게 포장했다.
“장 회장, 다음 아이템은 뭔가?”
한껏 겸손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 미끼를 내놓으라고 부탁하는 고자룡.
“가시죠.”
장태산이 앞서 나갔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세 사람.
각자 계산은 달랐지만 단 한 가지 마음은 같았다.
절대 장태산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는 것.
***
계획한 일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판이 벌어졌다.
이건 모두 다 하늘과 선대 조상들의 뜻.
내 손에 칼자루가 쥐여졌다.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사업 아이템을 세상에 풀면 단숨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숫자로만 존재하는 넷상의 화폐와 개념이 달랐다.
마음만 먹는다면 오정을 비롯해 엘자는 물론 한국 기업 대부분을 한순간에 무너트릴 수도 있었다.
왼손에 들린 살인도(殺人刀).
지금도 KI그룹을 향해 살인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인성을 가진 KI그룹의 오너 가족.
평직원들이 아래에서 아무리 성실이 일하더라도 윗대가리가 썩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도 겸비하지 못한 무늬만 상류층인 자들이 너무 널리고 널렸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자들에게는 가차 없이 살인도가 사용됐다.
그와 반대로 오정과 엘자는 내가 사용하는 활인검(活人劍)의 혜택을 받았다.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 살리는 데 사용되는 활인검.
잘못된 바를 꾸짖었을 때 스스로 변화를 따른다면 활인검으로 나쁜 것들을 잘라내어 살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가차 없이 살인도가 휘둘러졌다.
절대 봐줄 수 없는 일.
대기업에 딸린 사람들의 목숨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럴 때는 오너만 교체하면 됐다.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취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살인검과 활인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살활자재(殺活自在) 수준의 인성은 아니지만, 내가 기준으로 삼는 부분은 명확했다.
평범한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보아 회생불능으로 썩은 것들은 도려내고, 그나마 살릴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들은 살리기.
물론 그것을 분별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분별을 위한 혜안을 얻는 데는 내 카르마 포인트와 연관되어 있다.
알면 알수록 카르마 포인트의 사용 범위가 가진 능력은 무서웠다.
죽어서 신이 되었다 해도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카르마 포인트.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풍족한 미래 양식이자 보이지 않는 귀한 자금이었다.
고자룡 회장이나 다른 이들이 느끼기에는 내가 절대 갑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법칙 안에서는 슈퍼 을에 지나지 않았다.
칼자루를 쥐었다고 해도 허튼 생각을 품으면 그 칼날에 의해 내가 다칠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칼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무한히 필요했다.
그사이 두 번째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 마스터를 환영합니다.
스르릇.
다른 연구소 직원들과 달리 나는 모든 공간을 프리패스로 통과할 수 있다.
안면인식을 비롯해 여러 안전장치를 통해 관리되는 나의 왕성.
명령 한마디에 연구소 전체가 순식간에 폐쇄될 수도 있었다.
“마스터라고 하니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떠올라요.”
임윤아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공상도 언젠가는 상상이 되고, 상상은 또 언젠가 현실이 됩니다. 양자 공학이 발달하면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텔레포트도 가능하게 됩니다.”
“정말요? 그게 가능해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에요?”
고연지가 소녀처럼 흥분하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고 있는 이런 기술들은 과거 사람들에게 꿈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처럼 우리의 공상은 오늘 같은 미래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우주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만.”
“확언 같네요. 마치 경험한 것처럼.”
고연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눈치로 보아 아직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난 맛을 봤다.
지구에서 유일한 7서클 마법사가 나다.
엘프들에게 착실하게 이동 마법진에 대해 배웠다.
몸소 경험도 해봤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
몇 십 년 뒤 양자 공학이 발달하면 그때나 팔아먹을 생각이다.
아직도 감춰둔 엄청난 기술이 무궁무진했다.
최소 10대는 먹고 살만한 판돈은 남겨두고 싶다.
세상을 지배하는 차일드 가문처럼 장씨 가문도 그렇게 유구하게 흘러가도록 만들 생각이다.
“이곳은…….”
“차세대 에너지 사업부입니다.”
현재 핵심으로 밀고 있는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 사업부.
“테슬러에 공급하는 배터리 말인가?”
“엘자 합작 회사와도 연관 있습니다.”
“저 장치는 뭔가요?”
대형 홀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배터리 연구소를 비롯해, ESS 연구소 등.
그중에서 신기하다고 여길 만한 장면을 목격한 임윤아가 대형 유리창을 가리켰다.
“장치요?”
인문대생 고연지는 아직 임윤아가 가리킨 장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흐음.”
고자룡은 유리창과 연결되어 있는 전선을 유심히 쳐다봤다.
괜히 한 그룹을 경영하는 오너가 아니었다.
“뭘까요?”
빙긋 웃으며 세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특수 유리창?”
고연지다운 답변이다.
“너무 포괄적입니다.”
“에너지와 관련 있을 것 같은데…….”
임윤아는 좀 더 접근했다.
“태양광 패널 같은데……. 맞나?”
정답자가 나왔다.
“맞습니다.”
“특이한 패널이군. 단순히 유리처럼 보이는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는 고자룡 회장.
“35%.”
가볍게 던진 팁.
“35%라면……. 설마 에너지 효율?”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는 고자룡 회장.
“네.”
“아!”
간단한 답에 탄성이 뒤따랐다.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자룡 회장의 넋 나간 얼굴.
이번에는 진가를 바로 알아봤다.
“유리창이 태양광 패널이라면……아!”
임윤아도 곧 신음을 흘렸다.
엄청난 사업 가치를 알아챘다.
“현재 태양광 패널의 효율성은 보통 15에서 20% 사이입니다. 그것도 장소에 구애받는 조건에서 말입니다.”
사업 설명회는 계속됐다.
“하지만 제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패널은 35%입니다. 킬로와트시당 생산 단가가 10원도 안 됩니다.”
“어, 엄청나군.”
고자룡 회장이 말을 더듬었다.
현재 기술로는 킬로와트시당 30원이 최저 생산 단가였다.
그에 비해 몇 배나 더 이익이 나는 태양광 사업.
“고 회장님, 장점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이건 혁명이야. 혁명…….”
분명 보기에는 투명한 유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엄청난 효율이 나왔다.
“일반 가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투명한 유리입니다. 투과되는 에너지 중에서 35%를 차단하고 흡수합니다.”
“이게 다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색이 진해질수록 흡수하는 에너지양은 많아집니다. 블랙에 가까울수록 효율이 높아져 45% 정도 됩니다.”
“믿을 수 없군.”
“다시 말씀드리지만…… 보는 것만 믿으십시오.”
스으윽.
고자룡 회장이 유리를 매만졌다.
“유리 생산 단가는?”
“이중창 가격에서 조금 비쌀 뿐입니다.”
“에너지 효율 보증 기한은?”
“반영구적입니다. 유리를 이물질로 뒤덮어 더럽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감격에 찬 시선으로 유리를 바라보는 고자룡 회장.
“납이나 기타 환경오염 물질이 없습니다. 부셔지면 버리고 다시 갈면 됩니다.”
“발전소들…… 모두 망하겠군.”
진정한 신재생 에너지.
모든 건물과 가정에 태양광 유리창이 설치되면 전기세 부담에서 해방될 것이다.
일조량이 부족한 비 오는 날이나 겨울철에는 다소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혁명이었다.
“장 회장…….”
고자룡 회장이 나를 불렀다.
격하게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확고한 결심.
“하실 말씀이라도…….”
“엘자! 장 회장이 가져가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