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60
862장. 베이다이허의 약장수.
“류미! 할아버지 허락도 없이 약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구나.”
“아니 그게…….”
류미는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갑자기 나타난 원자바오 전 총리의 말에 당황해 선뜻 대꾸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손녀인 류미를 무척 예뻐하지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미약하던 공청단을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은 인물.
공청단으로 상무위원에 두 사람이나 포진시키고 총리를 다시 한 번 만들어 냈다.
태자당과 손을 잡고 상해방 뒤통수를 제대로 쳤던 원자바오.
외손녀 류미를 보며 자상하게 웃고 있지만 식구들은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류평과 온수려, 원자바오와 류미를 포함한 네 사람이 전부인 가족 간의 오붓한 식사자리이지만 이 또한 정치적 행보의 연장선이었다.
“…….”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광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류미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입을 열었다.
“장립이라는 놈은 마음에 들고?”
“이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괜찮은 남자에요.”
류미는 확신하듯 대답했다.
“저도 봤지만 대단한 녀석인 건 확실합니다.”
류평이 딸 류미를 거들며 나섰다.
조용하고 자상한 인상을 하고 있지만 원자바오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이중인격을 소유했다.
가족이나 최측근만 겨우 알아챌 정도였다.
상해방이 뒤통수를 얻어맞을 당시에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만큼 술수에 능하다.
그런 그가 지금 장립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이다.
긴장감이 흘렀다.
“남자라……. 요즘 세상에도 그런 말을 들을 만한 녀석이 있다고?”
원자바오가 흥미로운 듯 되물었다.
장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수중에 갖고 있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식구들 반응을 보고 싶어 가볍게 던진 말에 류평과 류미가 장립에 대해 적극적인 호응을 보냈다.
“괜찮은 남자에요. 흥미로울 정도로.”
칭찬에 인색한 딸 온수려도 장립을 두둔했다.
‘매력이 있는 놈이군.’
원자바오도 요즘 장립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차였다.
장택민이 키우는 새로운 사냥개라는 소문이 귀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직접 만나 보실래요?”
원자바오의 관심을 알아채고 류미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정도로 자신할 수 있더냐?”
“네! 정말 괜찮은 남자에요.”
“허허. 우리 손녀 마음을 이렇게 훔쳐 버렸다니 고약한 녀석이구나.”
원자바오의 웃음에 금세 공기가 부드러워졌다.
1차 관문은 패스.
“내일 초대할까요?”
“그러자꾸나. 오자마자 베이다이허를 소란스럽게 만든 놈이 어떤 놈인지 보고 싶구나.”
“제대로 저녁을 준비하겠습니다.”
“예의는 차려야겠지.”
“알겠습니다.”
온수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다이허에서 저녁식사는 중요한 행사가 됐다.
바쁜 원자바오가 식사 초청을 허락한다는 건 장립에 대한 평가가 그만큼 박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만나보면 진짜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눈빛을 반짝이며 즐거워하는 류미.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원자바오가 그런 류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누구도 능구렁이 같은 원자바오의 속을 알 수는 없었다.
평범한 신분에서 중국을 통치하는 최고 권력자가 된 살아 있는 야심가.
그가 일면식도 없는 장립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
‘도대체 장립이 뭐라고?’
상무위원 왕정은 기가 찼다.
장택민의 말은 확실히 뒤를 봐주겠다는 소리였다.
완벽하게 자기 사람이 될 만한 자들에게만 건네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 장립이 그 대상이 됐다.
과거 자신도 어렵게 들었던 말.
홍콩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고 이렇다 할 공로도 없는 해외 화교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장택민의 호의 어린 대우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장 주석의 말은 무척 진지했다.
장립이 이악산의 아들을 상대로 벌였던 행동에 대한 문제까지 막아주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이악산을 달래려면 많은 이권을 포기해야만 한다.
왕정은 그 일을 감수할 만큼 장립이 가치 있다고 판단되지 않았다.
오늘 장립이 저지른 실수는 최악이었다.
이악산은 아들 이광을 병적일 정도로 보살폈다.
널리 온갖 악행이 파다하게 알려져 있는 이광.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천방지축에 오만방자하게 사방을 휩쓸고 다녔다.
겁날 것 없었던 이광이 오늘 같은 치욕을 당했다.
충분히 이악산이 태자당을 등에 업고 장립을 가만두지 않을 건 자명한 일이다.
이 일로 상해방 거물들이 몇 명이나 비밀 공안에 끌려가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예상할 수 없는 그 사태를 두고 딜을 주고받는 두 사람.
‘진선의 명일까?’
왕정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장립의 매력.
장택민을 조종하는 진선이 장립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지켜보던 양광도 왕정과 비슷한 심정으로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
상해방의 주인인 장택민은 함부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인사로 유명했다.
두툼한 안경 뒤에 감정을 숨기고 냉철하게 일을 진행시켰다.
본래 인정은 박하지 않았다.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많은 혜택을 몰아주기도 했다.
그 덕에 조직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의 충성심이 높았다.
태자당과 공청단의 합작으로 수세에 몰리긴 했지만 상해방이 버틸 수 있는 저력 또한 장택민의 수완에서 나왔다.
그런 장택민이 장립을 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장립의 선택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는 순간.
특별히 고민하며 기다릴 일도 없었다.
지금은 권좌에서 물러나 있지만 상해방의 저력은 아직도 대단했다.
중국에서 큰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 세력을 등에 업어야 가능했다.
장립이 짧은 기간 홍콩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던 이유 역시 상해방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장립의 입에서 거절을 표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헛!”
“!!!”
양광이 신음을 토했고 왕정은 크게 당황했다.
이런 제안을 그 자리에서 즉시 거절하는 멍청이는 세상에 없어야 맞다.
그동안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의외의 대답에 양광과 왕정은 어이가 없었다.
챙그렁.
부엌에서 듣고 있던 양소려가 그만 접시를 떨어트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장립의 대답.
“뭐라고?”
장택민이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건넨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석님의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전 누구에게도 귀속되고 싶지 않습니다.”
완곡하면서 확실한 장립의 거절 의사.
“립! 자네 바본가?”
양광이 당황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라며 물었다.
결코 쉽게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장택민의 행보 하나하나는 여러 정치적 의미를 담는다.
그런 장택민을 물 먹인 장립.
자칫 하다가는 상해방의 적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이유를 알고 싶군. 자네에게 닥친 위기가 별일 아니라 생각하는가?”
장택민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를 지그시 응시하는 장립.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느닷없이 명언을 읊기 시작한 장립.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청아한 장립의 음성이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장립을 바라봤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장립의 기행.
장택민과 여러 권력자들 앞에서 이렇게 간 크게 옛 성인의 명언을 언급하는 자는 없었다.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궁핍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만드니라.”
장립은 장택민을 뻔히 바라보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맹자의 가르침을 읊어댔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 인내를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어떤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장립은 성인의 말을 빌려 앞으로 겪어야 할 상황 따위는 미래를 위한 초석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양광과 왕정은 어처구니가 없는 시선으로 장립을 빤히 바라봤다.
오늘 자신이 벌였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괴물.
저런 식이라면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나기 전에 죽은 목숨이 될 수도 있었다.
이악산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때 장택민이 거실이 떠나가라 광소를 터트렸다.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노여움 같은 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재밌어……. 정말 재밌어. 하하하하하.”
손으로 눈가의 눈물까지 닦아내며 웃어재끼는 장택민.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깊은 뜻을 짐작하지 못한 양광과 왕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부족하지만 제 뜻입니다. 주석님.”
“알겠네.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존중해 줘야지.”
장택민이 장립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의 대가로 장립은 앞으로 상해방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미친놈!’
왕정은 나름의 사고로 장립을 확실하게 파악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보를 보건대 장립은 딱 미친놈이었다.
‘뭔가 계책이 있나?’
양광은 처음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던 장립을 떠올렸다.
뭔가 숨겨진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과의 만남도 본인의 입으로 계획적이었다고 밟힌 바 있다.
또 과감하게 홍콩에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앞으로 펼쳐질 일을 예상한 듯 계획을 실현해 가는 장립.
이번 거절 역시 그 범주 안에 들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술상이 준비되었습니다.”
양소려가 쟁반 위에 술과 돼지고기 야채 볶음을 들고 나왔다.
요리는 간단했지만 냄새가 꽤 괜찮았다.
“수고했다.”
장택민이 고마움을 전했다.
“입에 맞으실지 걱정입니다.”
“네 음식 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지 않더냐. 걱정 말거라.”
“송구합니다.”
양소려와 술의 등장에 다소 굳어 있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한 잔 받게.”
“제가 먼저…….”
“아니야. 베이다이허에 영웅이 출현했는데 내가 먼저 따라줘야지.”
“그럼.”
장택민은 좌우에 앉아 있는 측근들보다 장립에게 먼저 술을 권했다.
심사숙고 끝에 전한 자신의 제안을 가볍게 거절해 버린 장립.
그럼에도 감정 없이 담담하게 대했다.
또로록.
잔에 술이 채워졌다.
수수로 만들어진 마오타이주의 독특한 주향이 테이블 주변으로 퍼졌다.
오래 전 제조되어 그 깊이와 주향이 더욱 좋은 고급 마오타이주.
“주석님의 넓은 아량에 감복하며 경의를 표합니다!”
장립이 잔을 들고 예를 갖추고 난 뒤 술을 쭉 들이켰다.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 주도(酒道).
잔을 깨끗하게 비워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립의 모습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단아한 풍채와 잘 어울리는 몸짓 하나하나.
장택민이 흡족한 시선으로 장립을 바라봤다.
‘괜찮은 녀석이야.’
쉽게 인간을 믿지 않고 단 시일에 평가하지 않는 장택민이 장립을 인정하고 있었다.
진선의 명이 있어 눈에 담긴 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 배포가 생각보다 더 컸다.
같이 일을 도모하기에 안성맞춤인 인물.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곧 나를 찾게 될 것이다.’
장택민은 장립이 현재 구석으로 몰렸음을 알았다.
이악산의 수하들이 이미 이곳을 감시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장립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지금이야 베이다이허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호기를 부리고 있지만 곧 이곳의 무서움을 절절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장립이 술병을 들고 잔을 채웠다.
또로로록.
장택민 주석을 비롯해 왕정과 양광의 잔도 차례로 채워졌다.
“오늘은 예절을 잊고 주신의 술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하게.”
잔을 높이 드는 장택민.
“주석님의 건강을 축원합니다!”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택민의 건강을 축원했다.
동시에 깨끗하게 비워진 잔.
“…….”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내가 늙은 몸이긴 하지만 여덟 병의 술은 비울 수 있으니 다들 눈치 보지 말게.”
장택민이 잔을 비우며 호탕하게 말했다.
“작년에 주석님과 대작하다 제가 먼저 쓰러졌지 않습니까. 살살해 주십시오.”
양광이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도 장담 못 할 것이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좋은 단약을 하나 챙겨먹었거든. 그걸 먹고 나면 한 달 동안은 매일 술을 마셔도 탈이 없지!”
장택민이 호기를 부렸다.
“부럽습니다. 저도 그런 단약이 있다면…….”
양광이 입맛을 다셨다.
진선이 내린 귀한 단약은 장택민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때.
“제가 하나 드릴까요?”
회귀의 전설 2부
베이다이허의 약장수.(2)
“???”
장택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말한 단약은 진선이 특별히 제조한 보물이었다.
천금을 준다 해도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
중국 오지 산천에서나 자생하는 귀한 약초를 사용한다.
지금껏 장택민이 이 나이가 되도록 건강하게 몸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다 진선의 단약 덕분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장립이 허풍을 떨었다.
마치 동네 약국에서 구할 법한 피로회복제를 권하듯 말한 것이다.
“동생에게 그런 약이 있나?”
양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워낙 기이한 행동을 했던 장립인지라 양광으로서는 설마 하는 심정이 들었다.
사실 장택민 주석이 먹는 단약은 인세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임을 잘 안다.
과거에 운 좋게 딱 한 알 먹어본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효과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양광으로서는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네.”
장립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여기는 베이다이허야! 주석님이 계시는 자리에서 허언을 하면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야!”
도리어 왕정이 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장립을 겁박했다.
‘제까짓 놈에게 무슨 단약이야!’
그간 왕정도 몇 개 선물로 받아본 적이 있는 진선의 단약.
한 개 먹고 나면 한 달 내내 힘이 샘솟는다.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지치는 기색 없이 회춘을 경험하는 것이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금방 깨는가 하면 취중에도 기력이 넘쳤다.
몇 년에 한 번 얻을까 말까 한 귀한 단약이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장립이 수중에 갖고 있다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천하의 사기꾼 같은 놈!’
미친놈에 이어 장립을 사기꾼으로 단정 짓는 왕정.
“그래 그 약을 지금 볼 수 있겠나?”
장택민이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진선을 통해 자신에게만 허락된 단약은 상해방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진선이 제조해 건네고 있지만 그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풍부하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청정 지역이 줄고 오지까지 오염되어 가는 중국 전역.
최소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은 묵혀 약효가 배어야 할 영초들이 눈에 띄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겨우 남아 있는 것들도 대기오염과 산성비로 녹아내렸다.
진선도 말은 안 했지만 재료 수급 문제로 약을 제조하는 게 쉽지 않은 눈치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장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나?”
양광이 다급히 물었다.
“방에 있는 여행 가방에 단약이 있습니다.”
“그래…….”
양광은 자신만만한 장립의 태도에 곧 하고 싶은 말을 줄였다.
만약 그의 말대로 진짜 단약을 소유하고 있다면…….
꿀꺽.
양광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벅저벅.
방으로 사라지는 장립.
“주석님. 저 자식은 사기꾼입니다!”
왕정이 조용히 장택민에게 속삭였다.
“기다려보면 알게 되겠지요.”
양광은 당당하기 그지없는 장립에게 이미 마음이 기울었다.
“만약 그 약이 가짜이고, 독이 들어 있다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조용히 하게.”
장택민이 신중한 표정으로 자제를 구했다.
“…….”
장택민에게 오늘 두 번이나 제지를 당한 왕정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장립,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장립은 왕정과 여러모로 상성이 맞지 않았다.
눈엣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그를 제치기에 오늘이 아주 기회였다.
이악산과의 악연에 이어 장택민 앞에서 단약으로 사기를 치려드는 장립.
왕정은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잡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약성은 금방 확인될 터.
저벅저벅.
드디어 장립이 방에서 나왔다.
비단 보자기에 싸여 있는 물건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게 뭔가?”
장택민이 먼저 물었다.
“영생선단(永生仙丹)입니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다.
영생하는 신선들이나 먹었음직한 단약의 이름.
“열어봐도 되나?”
“물론입니다.”
장립이 비단 보자기에 싼 물건을 내려놨다.
스르릇.
장택민이 떨리는 손으로 매듭이 지어진 비단포를 풀었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 상자가 나왔다.
딸깍.
조용한 소음이 침묵에 잠긴 공간에 울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큰 구슬 크기의 황금 빛깔의 단약.
“약효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황금박을 입혔습니다.”
“하아!”
상자가 열리자 단박에 상쾌한 향기가 물씬 풍겼다.
코로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신이 맑아졌다.
‘이건 진짜야!’
진선의 단약을 수십 년간 복용해 온 장택민은 확신했다.
영단은 향이 맑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점의 오염원만 있어도 바로 썩으며 악취를 풍겨 버리는 영단.
“장립! 이거 나에게 팔게나!”
***
팔아? 이걸?
장택민의 간절한 눈빛에 폭소가 터질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약도 먹어 본 자가 약빨 좋은 걸 아는 법.
장택민 뒤에 누가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알림음을 들었다.
– 중국 조상신이 당신을 눈여겨봅니다.
– 신선이 되려는 이무기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놀랍게도 장택민 뒤에 조상신과 전설의 이무기가 버티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직 도를 추구하는 영물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래서 기꺼이 약을 풀었다.
화타에게 포인트 바치고 습득한 단약 처방이다.
한 번 먹으면 반드시 두 번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전설의 화타표 단약방.
들어가는 재료들은 풍부했다.
지구에서는 찾기 어렵고 부족한 여러 재료들이 이계에는 널렸다.
엘프들에게 얼추 대표적인 재료 특성을 말하면 금방 구해왔다.
수백 년 묵은 산삼도 이계에는 널리고 널렸다.
부모님과 친하신 분들 상대로 명절 선물용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아 심심할 때마다 틈을 내 제조해 두었던 물건이다.
생각보다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가루를 내어 성수와 섞어 대충 동그랗게 말면 그만이다.
금박이야 그럴싸해 보이라고 한 겹 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하고 깨끗한 좋은 물건이라 아공간에 담을 수 있었다.
갖고 있던 것 중에서 몇 개를 꺼내왔다.
단약을 본 장택민의 눈이 희번덕했다.
저 나이 먹고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나.
젊음을 되돌릴 수 있는 묘약은 천금을 주고라도 구해야 할 물건이 맞다.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약장사를 하게 됐다.
“주석님……. 약성을 확인해 봐야 합니다!”
첫 인상부터 어딘가 마음에 안 들던 왕정이 제 눈으로 약을 보고도 끝내 시비를 멈추지 않았다.
아저씨는 패스.
본래 약 파는 건 약장사 마음이다.
“주석님은 이 단약의 가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물론이네! 영생선단이라는 이름에 딱 맞을 거라 확신하네.”
장택민이 그 자리에서 열렬한 단약의 신봉자가 됐다.
먹어보지도 않고 약성을 확신했다.
단약 중독자.
제대로 걸렸다.
나에게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던 좀 전의 당당했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주석님이십니다. 이 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사박.
어느새 주방에서 일을 보던 양소려도 나타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빛을 발하는 단약을 바라보는 그녀.
특히 내공을 수련하는 이들에게 단약은 최고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양광도 장주석의 확신에 찬 말에 이끌려 이미 단약에 온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권력도 좋지만 일단 몸보신의 기회가 왔을 때는 주저 없이 보신을 해야 했다.
두 사람의 모습에 왕정은 울상이 됐다.
나를 어떻게든 찍어 내려 애썼던 그가 도리어 개털이 됐다.
“화타께서 비전으로 남긴 단약침약방으로 제조한 명품 중의 명품 단약입니다.”
“화타!!!”
“오!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감탄에 젖은 저마다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믿는 자에게는 귀에 쏙쏙 박히는 이름 화타.
왕정은 아주 글러먹었다.
바로 부정적 언사가 튀어나왔다.
“장립! 그 현란한 입술로 어디서 거짓을 고하는가! 화타는 침술로 유명했지 단약을 제조하지 않았다!”
애쓰는 왕정.
“봤어요?”
“뭐, 뭐라고?”
“화타께서 단약을 제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구요?”
“닥쳐! 그럼 넌 그 단약에 대해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
제대로 걸렸다.
“제가 그 화타의 비밀 의술을 이어 받은 후손입니다.”
순도 100%의 진실이라 그만큼 나는 당당했다.
“!!!”
“아!”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반신반의했다.
양소려가 나지막하게 신음을 터트렸다.
중국인들에게는 전설의 선인으로 남아 있는 화타.
그런 인물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것은 당연했다.
이럴 때일수록 꼭 필요한 건 오직 팩폭!
“양광 형님, 요즘 심통이 잦지 않습니까?”
“어? 자네가 그럴 어떻게…….”
“스트레스로 인해 기혈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치하면 후에 큰 사달이 날 수 있습니다.”
약을 팔 때는 아픈 곳을 찾아 콕 찍어 언급하는 적절한 능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처럼 길거리에서 되는 대로 내뱉으며 만병통치약을 팔던 시절이 아니었다.
양광은 상해방의 자금을 관리하는 자.
잊을 만하면 태자당에서 공격하니 마음 편하게 자금을 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스트레스는 쌓이고, 나이도 있다 보니 신체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먼저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
내 눈에는 그게 보였다.
심장 부근을 막고 있는 어혈.
양광의 번뇌 중 핵심점이었다.
스윽.
자연스럽게 품에서 침통을 꺼냈다.
드워프들이 두들겨 제대로 갈아 준 옛날 침.
장침과 단침이 섞여 있는 침은 미스릴로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소독도 필요 없다는 말이다.
광물 자체가 셀프 소독이 됐다.
그래서 꽤 비쌌다.
“그게…… 뭔가?”
“보시다시피 침입니다.”
“침?”
“화타 선인께서 사용하던 당시 침 그대로입니다.”
“…….”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제부터는 믿거나말거나.
“자격증은 있나?”
왕정이 끝까지 시비를 턴다.
“화타 선인도 자격증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둠의 자식들을 고쳐주며 포인트를 착실하게 모으고 있는 화타 악신.
그에게 한의사 자격증이 있을 리 만무하다.
“형님. 한 번에 치료해 드리죠.”
양광을 지그시 바라봤다.
“……알겠네.”
홀린 듯 양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가슴팍까지 옷을 걷어 올렸다.
“아닙니다.”
“이곳이 아닌가?”
“단 하나의 침이면 됩니다.”
양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침을 들고 양광의 등 뒤쪽으로 돌아갔다.
침들 중에서 중침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머리통 중심인 백회혈을 짚었다.
“리이이입!!!”
양소려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백회혈은 사혈에 가까웠다.
자칫 잘못 침을 꽂으면 목숨을 잃거나 심한 장애를 얻을 수 있었다.
“심화의 근본이 이곳에 있습니다. 심장 통증은 샘물이 샘솟는 발현처일 뿐입니다.”
화타의 심정으로 침을 들었다.
그제야 파르르 떠는 양광.
“절 믿으십시오.”
믿음직스런 약 장사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스르륵.
천천히 백회혈에 침을 꽂아 넣었다.
내공을 조절해 침을 보호했다.
수욱.
손잡이를 남기고 깊숙이 박히는 침.
“으으!”
“아!”
마치 자신들의 머리에 침이 꽂이는 듯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이들.
씨익.
그들을 돌아보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힐!
그리고 가볍게 마음속으로 외친 마법 영창.
전기치료 효과처럼 침을 타고 흘러들어갈 순수한 생명의 기운.
부르르르.
몸을 떨기 시작하는 양광.
팟!
잠깐 그렇게 순수한 생기를 흘려보낸 후 침을 빠르게 뽑았다.
치료는 짧고 굵었다.
그 순간.
“하아! 이……럴 수가!”
길게 시원한 숨을 내쉬며 깊은 감탄을 토해내는 양광.
순식간에 전신에 쌓여 있던 탁기가 사라졌다.
딱 봐도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기의 상태를 보이는 양광.
양광이 가뿐하게 몸을 돌렸다.
파밧.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립! 저 단약! 내가 사겠네!!!”
회귀의 전설 2부
베이다이허의 약장수.(3)
“준비가 끝났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주석님.”
비서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이는 덩치 큰 거인.
커다란 창밖으로 자금성의 아름다운 불빛이 보였다.
중남해라 불리는 자금성 중해와 남해가 맞닿아 있는 주석궁.
중국 국가보호지역이고 과거 황제들이 잠시 쉬어가던 행궁 자리가 존재했다.
그런 중남해에는 국무원과 서기처, 중앙판공청 등 중앙 국가기관과 당 핵심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언제나 묵직한 기운이 감돌던 중남해는 요 며칠 동안 고요하고 잠잠했다.
상당수 고위 공산당원들이 베이다이허로 떠났다.
시진핑도 어제 그곳으로 가야 했지만 중요한 일을 처리하느라 늦어졌다.
세계 각국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가 심심찮게 들어왔다.
테러 위협도 간간이 벌어졌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테러.
외부에 발표하지 못했지만 주석의 경호원들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 정도로 중국의 국가 주석 자리는 위험했다.
‘올 여름도 무사히 지나가려나.’
마저 서류에 사인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진핑.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견뎌냈는지 모른다.
중국 공산당 원로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문화혁명 때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방 운동에 뽑혀 시골 오지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굶어 죽을 뻔했던 시진핑.
그때 큰 경험을 쌓았다.
생존하지 못하면 품었던 이상도 개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자신을 낮추고 믿을 만한 동료를 만들었다.
얼굴에 단단하게 새긴 웃음 근육도 철저하게 계산되어 만들었다.
힘이 약한 태자당의 공산당원으로 고위직에 올랐다.
아버지의 명함을 잘 이용했다.
알게 모르게 동료들을 밟고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천지회의 도움도 컸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의 동아줄처럼 도움을 줬던 천지회.
사실상 그들의 아낌없는 도움으로 이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새기게 된 중국몽.
“아직도 멀었어…….”
“네?”
그림자 같은 비서가 시진핑의 혼잣말에 반응했다.
“아닐세.”
시진핑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감춰진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다.
진짜 비밀은 개에게 털어 놓으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을 정도였다.
지도자의 덕목 중 최고는 바로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소리장도(笑裏藏刀)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인상 좋은 시진핑도 손에 피를 많이 묻혀온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친구인 장택민 주석도 자신을 많이 밀어주었다.
그들을 철저히 이용해 공청단과 손을 잡고 권력을 쥐었다.
살아남기 위해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을 날리고 상해방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아직도 전쟁은 진행 중.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갔지만 올 겨울이 되면 2차 전쟁이 시작된다.
천지회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상해방이 군부에 심어 놓은 인사들을 파악했다.
지시가 내려지는 순간 모두 부패혐의로 낙마시키고 재산을 빼앗을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권력은 시진핑 라인이 잡게 될 터.
일이 이렇다 보니 매일 엄청난 기가 소모됐다.
전쟁과 동시에 인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게 해야 한다.
고성장의 단꿀이 인민들 입속에 들어가야 정권이 유지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시진핑.
‘장립…….’
시진핑은 기밀 보고서를 통해 올라온 장립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에 참가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화교.
장택민과 어울리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권력층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오늘 베이다이허에서 벌어진 일도 빠짐없이 보고됐다.
‘운이 좋은 녀석이야.’
이광을 상대로 그런 문제를 일으키고 무사할 수 있는 자는 중국에 거의 없었다.
특히 그는 어떤 권력과도 접점이 없는 일개 해외 화교 출신의 젊은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장립은 살아남았다.
시진핑도 상대하기 조심스러운 류평과 천지회 리장창과도 연이 닿았다.
게다가 뒷배는 장택민.
과거 그 나이 때 시진핑도 얻지 못했던 장장한 연줄들이다.
“내일이면 볼 수 있겠지…….”
호기심이 동했다.
베이다이허에 처음 참석한 자리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장립.
끼리릭.
시진핑은 편안하게 의자를 뒤로 젖혔다.
고요하기만 한 황궁의 황제.
적막한 고요와 평안함이 부드러운 이불처럼 그를 덮어왔다.
***
‘대단한 보물이다!’
양소려도 스승님 덕분에 몇 번 복용해본 적 있는 상급 단약.
냄새와 풍겨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장립이 꺼낸 단약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귀물.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다 홀린 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복용하는 순간 내공이 한층 증진될 게 자명했다.
무공 수련과 관계가 없는 장택민 주석 같은 사람들에게는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보단이다.
장립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왕정도 입을 꾹 다물었다.
‘침술도 진짜야.’
백회혈을 찌르는데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인체 혈도를 꿰고 있어야 하고, 정밀하게 침 끝을 조절하지 못하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장립이 다시 보였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악동 같기만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느껴지는 위험한 신호.
단약 몇 개로 단숨에 좌중의 집중을 한몸에 받으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양소려 자신도 그 좌중에 당연히 포함됐다.
지금처럼 정체되어 있는 벽을 뚫기 위해서는 단약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빤히 상황을 알면서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입장.
양소려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장립에게서 단약을 얻을 수 있다면 체질에 맞지 않는 미인계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장택민 주석과 아버지 양광이 이미 단약에 마음을 빼앗겼다.
두 사람 사이에 양소려가 낄 처지가 아니었다.
“하하. 이거 어떡하죠. 지금 준비한 선단은 이게 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단약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탁한 기운들이 영초들을 많이 훼손시켰습니다.”
실적 좋은 제약사 영업사원처럼 분위기를 쫙 까는 장립.
“양광. 내가 먼저 말했네.”
“아! 죄, 죄송합니다.”
한발 늦게 양광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다.
침 한 방에 장립이 화타의 후손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고질병처럼 자신을 괴롭혀 왔던 심통.
명의들을 찾아가 치료를 몇 차례씩이나 받았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병을 고쳐주지 못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화였기에 보약을 먹고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 처방의 전부였다.
말이 쉽지 상해방 자금을 담당하는 한사람으로서 견뎌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 시진핑과 태자당 놈들이 틈만 나면 샅샅이 뒤를 캤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가동되고 있는 비밀 자금 루트지만 언제 발각될지 몰랐다.
뭐니 뭐니 해도 자금이 있어야 세력을 유지하고 버틸 수 있었다.
양광의 책무가 막중한 만큼 병도 심해졌다.
그런 고질병을 장립이 침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해 줬다.
거짓말 같지만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콕콕 주기적으로 찔러왔던 심통이 어떻게 거짓말처럼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더해 단약까지 얻게 된다면 젊은 시절의 건강을 다시 찾게 될 게 틀림없었다.
“립. 그걸 나에게 넘기도록 하게.”
장택민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장립에게 매달렸다.
장택민이 저렇게 요구할 정도의 단약이라면 차후 훌륭한 뇌물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특히 공청단의 늙은 구렁이 원자바오도 요즘 약을 구한다는 소문이 솔솔 들려오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육신.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자 하는 욕망은 늙어갈수록 더 강해졌다.
진선의 명을 따르는 것도 이 약과 관련이 있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 좀 더 살다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다 죽는 건 억울했다.
“그게…….”
장립이 선뜻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원하는 게…… 뭐가 있나?”
장택민의 입장은 약자였다.
“돈인가?”
“아닙니다.”
“그럼 이악산?”
“그것도 아닙니다…….”
탁자 위에 버젓이 탐나는 물건이 놓여 있지만 주인 허락 없이는 손을 댈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알아서 뇌물로 바치고도 남았겠지만 장립은 오늘 처음 만난 인물.
단독으로 길을 가겠다는 그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런 와중에 대놓고 물건을 강탈할 수도 없는 장택민으로서는 애가 탔다.
‘상급이야! 그것도 최상급!’
단약에서 연신 풍겨 나오는 향취에 장택민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서 저것을 먹고 약효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늙어서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장택민은 지금도 애첩이 여럿이었다.
좋은 것들을 챙겨먹고 관리해 온 덕분에 젊은 사람 못지않게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주석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지!’
장립이 내심 장택민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줄 듯 입을 열었다.
얼굴에 금방 희색이 깃드는 장택민.
“드려도 되겠지만…… 그건 어른에 대한 예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장립은 애가 타는 장택민을 들었다 놨다 했다.
금방 장택민의 얼굴에서 희망의 빛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맞네. 내 어찌 후배의 물건을 함부로 받겠나.”
속마음과 달리 장택민은 체면을 차렸다.
보는 눈이 여럿이었다.
그들만 없었다면 더한 제의도 가능했겠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참았다.
최소한의 체통은 지켜야 했다.
하지만 꿀떡꿀떡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욕망이 장택민을 괴롭혔다.
손에 쥔 권력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눈앞의 단약.
오로지 장립의 입을 바라보며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다면 제가…….”
본격적으로 판을 벌이는 장립.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
개꿀잼.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이 있다.
단약 몇 개로 다들 승부욕에 불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장택민이 승자일 수밖에 없었다.
권력과 짬밥 앞에서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할 판.
이대로라면 단약을 몰아줘야 할 분위기다.
하지만.
“모두에게 선물로 한 알씩 드리겠습니다.”
“!!!”
“립!”
오늘 이 사람들 여러 번 놀란다.
우황청심환이라도 선물해 줘야 할 것 같다.
특히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장택민의 얼굴이 볼 만했다.
그에 반해 양광과 양소려의 얼굴은 화색이 만발했다.
왕정도 은근히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칫국을 마시는 모습이 가히 안타까웠다.
“주석님 먼저 받으십시오.”
단약 하나를 집어 들어 장주석에게 공손히 건넸다.
“고……맙네.”
떨떠름한 표정의 장주석.
시선은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채 남아 있는 다른 단약들에 꽂혔다.
“이건 형님 몫.”
“립…… 자네…….”
뜨거운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양광.
이게 다 공짜는 아니다.
뇌물이고 마약이다.
“한 알은 나를 열심히 보필해 준 소려 양에게.”
“이렇게 귀한 것을……. 정말 감사해요. 립.”
양소려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촉촉했다.
내공이 정체 시기인 듯했다.
나야 신성 헬스 케어 원장님 속성 케어로 간단히 돌파했지만 양소려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알을 들었다.
꿀꺽.
왕정의 목울대가 기대감에 꿀렁거렸다.
흐흐흐.
“이건…….”
단약을 들었다.
“고맙…….”
고맙다는 말을 막 내뱉으려던 왕정.
“불량품이군요! 여기 금박 찢어진 것 보이시죠? 하아, 이런 불량품을 어찌 귀한 상무위원님께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단약을 집어 들었다 그대로 다시 회수해 제자리.
“아니 그냥…….”
“다음에 제가 다시 준비해 정식으로 선물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파바밧.
눈치 빠른 왕정이 자신을 엿 먹였다는 걸 알고 레이저를 쐈다.
반사!
깡그리 무시했다.
딸깍.
미련 없이 상자를 닫았다.
모두들 눈치 게임 중.
상자 안의 단약이 불량품이어도 절실히 원하는 게 훤히 보였다.
맛 뵈기 약은 다 풀었다.
이제 남은 건.
“참 안타깝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챙겨올 걸 그랬습니다.”
“단약이 더 있나???”
“물론입니다. 감기약이나 숙취 해소용으로 몇 알 가져왔을 뿐입니다. 집 냉장고에 선단이 대충 50개 정도(?) 있을 겁니다.”
“50개!!!”
장택민 주석의 얼굴에 다시 못 볼 화색이 돌았다.
“필요하시다면…….”
“립! 집이 어딘가! 당장 가세!”
그러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택민 주석, 성격이 보기보다 화끈했다.
베이다이허 기간에 이곳을 비우겠다는 상해방의 수장.
“주석님…….”
왕정이 다급하게 장택민을 불렀다.
“…….”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금세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는 장택민.
나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마음 다 전달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사판을 펼쳐야 할 때.
“선단도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가능할 건데…….”
슬쩍 운을 떼며 장택민을 바라봤다.
그 순간.
“립! 자네 목숨은……. 이제 나와 같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