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30
937장. 위험에 빠진 후계자(2).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기회? 이 제안이?”
“어차피 대한민국은 VIP 세상입니다. 법조계의 견제는 형식적입니다. 의회도 여당이 다수입니다. 대통령이 명하면……. 저희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부회장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승계 작업의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으음.”
오정그룹 부회장 집무실.
회장이 부재인 관계로 오정그룹은 임준형의 손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 그의 경영권을 인정했다.
내심 욕심을 부리던 임아현은 장태산과의 문제가 빌미가 돼 자리를 내놨다.
임성철 회장의 부재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기업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정의 핵심 인사들이 개입한 컨트롤타워는 막강했다.
장한수 실장을 통해 제대로 교육받은 비서진들이 임준형을 보좌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오정그룹.
부회장실에서 더없이 민감한 대화가 오갔다.
임준형의 오른팔 격인 오광연 비서가 지금 현재 오정의 흐름에 대한 개인 의견을 피력했다.
임준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어 가능한 발언이었다.
물 흐르듯 가야 하는 그룹 운영을 위해서는 죽는시늉까지 할 수 있는 최측근이 필요했다.
애초 거대 그룹은 혼자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금 당장 임준형 역시 미래전략실과 비서실 등의 도움으로 오정을 이끌었다.
그 무리들 중에서도 비서실장은 진정한 최측근이라 할 수 있었다.
선대부터 대대로 이어져 온 경영 방식을 습득한 임준형도 몸의 일부라 할 만한 가신을 두었다.
아직 장한수 실장 정도의 능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 믿음직했다.
“주순자와 가까이하는 건 위험해.”
“어쩔 수 없습니다. 똥이 더러운 걸 모르지 않지만 잘만 이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보를 들어 아시겠지만 VIP를 주순자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VIP는 대한민국의 여왕입니다. 여당 정치인들과 검찰, 법원, 언론계 모두가 지지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탄탄한 지지기반인 상당수 국민들이 존재합니다.”
오광연은 현 정세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오 실장, 세상이 변하고 있어. 4차 산업이 꿈틀거리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이 통할까? 난 요즘 생각이 많아.”
임준형이 다른 때 같지 않게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
오광연의 눈빛에 이체가 어렸다.
‘호랑이 피는 거저 대물림되는 게 아니군.’
오광연은 임준형에 대해서 다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외부로는 재계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샌님 이미지가 강하게 어필돼 있는 인물이다.
얼마 전까지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눈에 띄게 변해갔다.
우려됐던 임성철 회장의 부재 공간을 빠르게 메우며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임준형의 각성.
과거 같았다면 신중하지 못하게 덥석 물었을 미끼에도 심사숙고하는 반응을 보였다.
“부회장님. 그래서 더 기회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정치권이나 법조계, 언론의 협조를 쉽게 얻을 수 없을 겁니다. 그 전에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합니다.”
오광연은 갖고 있는 생각을 밀어붙였다.
임준형의 약점은 완벽하지 않는 승계구도였다.
과거에 행해졌던 방식과 달리 지금에 와서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과정이었다.
그사이 시민단체들의 고소와 고발, 국가 기관의 순환출자에 대한 제재가 숨통을 조여 왔다.
더 이상 얼렁뚱땅 승계를 진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상속세만 해도 규모가 엄청 났다.
이런 상황에 임성철 회장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오정은 탄탄한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다.
아무리 안정궤도에 든 임준형이라고 해도 세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음…….”
임준형이 진한 신음을 흘렸다.
오정의 주인으로서의 입지는 자신 대에서 끝날 걸 예감했다.
시대적으로 아무리 자식들이라 해도 더 이상 승계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런 만큼 버틸 수 있는 한 오래 버텨야 했다.
부친에서 자신에게로의 승계 작업 완성은 반드시 이뤄야만 했다.
다만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장태산을 언제까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광연이 은근슬쩍 또 다른 빈틈을 노리며 입을 열었다.
임준형의 각성에는 장태산의 역할이 컸다.
한때 임성철 회장은 아들인 임준형보다 장태산을 더 신임했다.
알게 모르게 장태산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후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재계 황태자를 잡는 재계 저승사자가 장태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근히 자존심이 센 임준형.
오광연의 계획적인 비수에 순간 눈썹이 꿈틀거렸다.
“부회장님. 장태산과 로버트 라이언이 오정전자를 비롯해 계열사 주식을 상당히 긁어모았습니다. 소문으로 끝날 일이 아닌 냉혹한 현실입니다. 여기에 임윤아 상무님이 힘을 실어준다면…….”
오광연은 뒷말을 뱉지 않았다.
오너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가장 큰 경영 리스크가 바로 경영권 문제였다.
안타깝게 임성철 회장이 쓰러지기 전에 마무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만큼 1차 계열사를 키워 합병한 후 흡수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준비는?”
‘됐어!’
임준형 회장의 질문에 오광연은 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임준형 회장이 견고해지는 만큼 그 후광은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오정의 비서실장은 계열사 사장단보다 파워가 더 막강했다.
“황도영 전무가 접촉 중입니다. 과거 주순자 집안과 인연이 깊습니다.”
“뒤탈은?”
“법적 하자 없는 선에서 깔끔하게 나갈 겁니다. 주순자가 만든 법인에 문화체육 기금 형태로 계열사 지원이 나갈 예정입니다. 타 그룹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좀 무리하게 요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리?”
“액수를 정해 놓고 시작한다고 합니다.”
“미친년…….”
평소 입이 점잖기로 알려져있는 임준형이 거친 욕을 뱉었다.
실세답게 VIP 뒤에 앉아 권력을 잡고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 주순자.
장태산이 주순자와의 관계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만도 없었다.
어떻든지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다.
아무리 밑에서 온갖 작업을 완벽하게 해도 VIP가 고개를 흔들면 끝이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는 자리였다.
“부회장님. 잠시면 됩니다. 법무팀에서도 깔끔하게 처리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추진해 봐.”
“넵!”
“그리고…… 오 실장.”
“하명하십시오!”
임준형이 안경 너머로 오광연을 조용히 쳐다봤다.
“가끔 오 실장이 보여. 조심해.”
“!!!”
그의 말은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말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해석하기가 간단하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오광연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눈에 띄게 성장해 버린 임준형 부회장.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혈통의 소유자인지도 몰랐다.
***
“황도영 전무 뒤에 오광연이 있을 겁니다.”
담담하게 입을 여는 장한수 실장.
그를 야심한 시각에 불러냈다.
조윤태 변호사의 경고에 가만히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가볍게 여직원들과 저녁만 먹고 헤어졌다.
오늘만 날이 아니었다.
연락을 취하자 장한수 실장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과거 신분과 달리 지금은 온전히 내 사람이다.
그는 오정에 관한 모든 정보를 꿰뚫고 있다.
오정에 관해서는 임성철 회장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황도영이 누굽니까?”
“주순자의 부친 주철성이 황도영의 부친과 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사이비 시절 어울리던 죽이 잘 맞았던 사이입니다. 당시 주순자와 혼인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였죠.”
“사기꾼 집안이군요.”
“네.”
지금은 고인이 된 주철성에 관해서 말하자면 입만 아팠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독재 정치 시절의 큰 사기꾼.
부를 위해서라면 온갖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농락했다.
또 현 정권의 권력자인 조근영을 이용해 엄청난 잇속을 챙겼다.
그런 그가 다시 부활했다.
죽어서도 딸 주순자를 이용해 조근영을 조종했다.
이 정도 위세라면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누구도 선뜻 시도하지 못한 장기투자의 귀재였다.
“승계 문제가 부회장을 괴롭게 만들었군요.”
“네.”
장한수 실장은 과거처럼 과묵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협박에 굴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장한수를 볼 때마다 임준형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장한수를 배척할 게 아니라 중용했어야 옳았다.
오정의 뼈대를 만들어 낸 개국공신에 대한 대접이 박했다.
그 덕에 나만 이득을 봤다.
“안타깝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뒤탈이 날 겁니다.”
“회장님은 그렇게 예견하십니까?”
“네.”
“……오정의 장악력은 생각보다 깊고 넓습니다.”
“그 밑천이 곧 드러날 겁니다.”
“…….”
장한수가 동의할 수 없는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난 확언할 수 있었다.
미래를 겪고 왔다.
물밑에서 알음알음 작업하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싹 까발려진다.
한반도의 호국영령들과 일반 시민들의 조상들이 합심해 시작한 대 정화의 시간.
결단코 살아 있는 사람들은 절대 몰랐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단일민족의 조상신들이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기생해 오던 친일파들과 사이비들을 싹 뒤집어 정화할 때가 도래한다.
오래 전 땅에 묻힌 그 조상들이 곧 현재의 우리고 미래의 후손이다.
절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 모두는 하나다.
어차피 현재 살아 있는 자들 모두도 하루아침에 숨이 끊어져 죽으면 곧장 조상이 된다.
이 땅에서 태어난 이상, 한 겨레로서 세대를 거듭한 한 핏줄이 되는 셈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겨레의 핏줄과 얼이 지켜져 전해졌다.
다만 긴 세월을 거듭하는 동안 암암리에 섞여 버린 섬나라 유전자들이 끝내 문제가 된다.
정신을 오염시키고 민족의 의식을 갉아먹고 대한민국을 왜곡시켰다.
태생이 다른 자들이었다.
그들의 썩은 정신을 싹 태워 버려야 동방의 예의지국 대한민국의 미래가 찬란하게 밝아질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사에 본격적으로 로비가 시작됐을 겁니다. 비서실장 오광연은 욕심이 많은 녀석입니다.”
“장 실장님보다 더 그렇습니까?”
“피가 뜨거운 젊은이 아닙니까. 제 밑에서 잘 배워 나갔습니다.”
은근히 오광연에 대한 칭찬의 말을 내뱉었다.
장한수 실장의 인정을 받은 오광연 비서.
나를 향해 뿜어내던 적개심 어린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현되는 충성심은 나중에 독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그래봤자 장 실장 아류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룹을 책임지고 있다 해도 임준형에게도 따끔한 매가 필요했다.
황태자도 세상의 변화된 시류를 체감하고 뜨거운 맛을 볼 필요성이 있었다.
오정과 같은 대그룹들은 개인 소유의 재산이 될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직원들 모두가 피땀 흘려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산 역사였다.
그런 그룹을 아직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는 자들이 많은 게 문제였다.
“제가 만나 볼까요?”
장한수 실장이 나섰다.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적임자임은 분명했다.
이제는 오정 소속이 아닌 만큼 당당하게 임준형을 향해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적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적임자요? 누구를 말씀하십니까?”
궁금해하는 장한수 실장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임준형 부회장과 접촉했겠군요.”
“네?”
10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다.
장한수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심한 시각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피하는 임준형 부회장임을 아는 것이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켜보시면 압니다.”
장한수 실장에게도 다 오픈할 수 없는 비밀은 존재해야 했다.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존재.
어떻게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지 나도 궁금했다.
***
“건방진…….”
임준형은 화를 삭였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아내와 이혼을 한 후 혼자 지내고 있어 외로운 때였다.
오랜만에 임준형은 여자친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동 중에 받게 된 갑작스러운 연락.
상대를 무시할 수 없어 차를 돌려 약속 장소로 방향을 틀었다.
만남의 장소로 선택한 한 호텔 스카이라운지 바.
한강이 내다보이는 큼지막한 프라이빗룸에 먼저 도착해 상대를 기다렸다.
천하의 오정그룹 주인을 한밤에 불러낸 인물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됐다.
벌컥.
찬물로 목을 적시며 임준형은 예민해진 심경을 가라앉혔다.
스르릇.
그때 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젊은 청년.
가벼운 여름 슈트 차림의 사내는 첫눈에 봐도 꽤 잘생겼다.
“먼저와 계셨군요.”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아닙니다. 이제 왔습니다.”
임준형도 영어로 대꾸했다.
상대가 요구한 사항이라 비서는 룸까지 대동하지 않았다.
스윽.
상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콰악.
손을 잡자마자 전해지는 강렬한 힘.
‘뭐지 이 자식?’
임준형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지는 순간.
“장립이라고 합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