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6
95장. 전설의 그분
“이거 뭡니까?”
“애들 간식입니다.”
“이런 걸 먹이면 애들 몸 망가집니다.”
“안 먹으면 나중에 애도 못 낳고 골다공증으로 골골거리며 살 겁니다. 몸에 좋은 유기농 야채에 발효 숙성 빵, 한우로 만든 수제 햄버거입니다.”
“그래도 팬들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합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팬도 그 다음이죠.”
“그런데 당신 뭡니까? 회사 직원도 아닌데 막 들어와도 됩니까?”
‘인상이 참…….’
조 이사님과 헤어지고 KNB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내일 장기자랑을 위해서 손을 맞춰봐야 한다.
거주하고 있는 건물은 소소했다.
논현동 뒷골목에 위치한 3층의 아담한 건물이다.
지하까지 통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잘 나가는 회사는 아니지만 건물은 번드르르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부드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건물 자체 느낌이 음산했다.
지독한 한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음모를 꾸미기 적당한 장소로 보였다.
그런데 눈앞의 황 실장이라는 매니저는 괜찮았다.
인상을 찌푸리면 겁이 날 정도지만 애들 걱정하는 마음은 순수했다.
애들이 연습하고 있는 지하 입구에서 딱 마주쳤다.
‘신념이 있는 관상이라……, 인중이 진중하게 패였다. 미간에 주름살 세 줄은 귀인을 만나면 풀리는 삼도행운상이라……, 아저씨 땡 잡았네.’
“서련이 동네 오빠입니다.”
“서련이? 아! 당신이 그 한국대 법학과생?”
아저씨 말투가 점점 짧아졌다.
“아세요?”
“서련이가 돈 벌어서 사시 공부 뒷바라지한다고 행사를 얼마나 악착같이 뛰는데 모르겠소.”
서련이 이 기특한 것, 진짜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아니 투자 안목이 대단했다.
돈 벌어서 나에게 투자하면 대박 칠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영특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리고 오늘과 이틀 동안 애들 예약했습니다. 아시죠?”
“어? 그럼 호텔도?”
황 실장 눈치가 빠르다.
“네. 제가 그랬습니다.”
“돈 많은가 보네.”
내 나이를 알자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이 아저씨 뭔가 인생이 평범한 것 같지 않았다.
말 놓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았다.
“자수성가했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아냐?”
“대학교 신입생은 자수성가하면 안 됩니까?”
“…….”
할 말이 없는 듯 입맛을 다시는 황 실장이었다.
“제 명함입니다.”
회사 주소와 대표 이름이 박혀 있는 명함을 건넸다.
“진짜야?”
“그럼 가짤까요?”
황 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애들 이거 타고 다녀요? 차가 너무 낡은 것 같은데요?”
아니 그래도 카니발은 돼야지 스타렉스 구형 모델은 아니다.
그것도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다.
이걸 타고 전국을 누비고 다녔을 FOB 애들을 생각하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안 사주는 걸 어떡해. 나도 월급 200이다. 이것저것 떼고 나면 애들 분유 값도 안 나온다.”
“결혼하셨어요?”
생긴 모습은 노총각 아재인데 재주도 좋다.
“……, 곧 이혼당할 것 같다.”
처음 만났는데 인상과 달리 황 실장은 속마음까지 술술 얘기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곧 동쪽에서 귀인을 만날 겁니다. 그때 인생 2막이 다시 열릴 겁니다.”
“혹시 박수무당?”
“미쳤어요. 제가 어디를 봐서 박수무당 같이 생겼어요!”
“……, 그렇게 보이는데. 우리 집 할머니가 용한 당골래였다. 나도 좀 볼 줄 알아.”
이, 이 아저씨 갑자기 위험해 보인다.
키는 170센티미터 중반에 배는 살짝 나오고 머리칼이 이마를 덮은 황 실장이다.
인물은 별로지만 그래도 친근한 인상이다.
그러고 보니 눈빛이 평범하지 않다.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무언가가 있다.
“에이~ 농담하지 마십시오. 신 받아서 뭐 하게요. 알고 보면 다들 불쌍한 분들이에요.”
“신이 불쌍해?”
나머지는 천계 상급 비밀이라 언급할 수 없다.
그분들 내 포인트에 목을 매는 건 1급 영업 비밀이다.
“한 번 찾아오십시오. 술이나 한잔합시다.”
“미성년자 아냐?”
“대학생은 괜찮아요. 좀 세상 유도리 있게 삽시다.”
“그래……, 내가 그게 좀 부족하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걸 보니 세상을 좀 배운 것 같다.
강하면 부러뜨리려는 자들이 넘치는 게 또 세상 법칙이다.
“알면 반성하시고 저 들어갑니다.”
“내 거는 없어?”
햄버거를 보고 황 실장이 입맛을 다셨다.
밉상은 아니다.
“참나. 원래 그렇게 인간성이 좋아요?”
“나도 먹고 살아야지. 저녁 안 먹었다.”
“드세요.”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수제 한우버거 세트 하나를 넘겼다.
“고맙다.”
‘저 정도면 인간성도 수준급인데?’
강한 첫인상과 달리 동네 형을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연예계에서 버티려면 저 정도 넉살은 필요했다.
때가 되어야 귀인도 만나는 법이다.
그렇게 호랑이 같은 황 실장에게 떡 하나(?) 빼앗기고 첫 번째 고개를 넘었다.
“하나 둘 셋! 좋아, 박자 좋고! 리듬감 살려!”
쿵쿵거리는 안무 음악이 요란스러웠다.
리더 주민의 목소리가 짜랑짜랑 울렸다.
지하 연습장은 쾌적하지 않았다.
겉모습과 달리 지하는 엉망이다.
겨울임에도 곰팡이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런 지하실 20여 평에 대형 삼면거울이 설치된 공간에서 FOB 애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 중이다.
한겨울임에도 땀 냄새가 후끈 맡아졌다.
아! 걸그룹의 땀 냄새라니……,
걸그룹 덕후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날 죽일지도 몰랐다.
촉촉이 땀에 젖은 걸그룹은 매혹 덩어리 그 자체다.
하지만 짠한 마음이 더 들었다.
차도 거지 같고 공간은 더 열악했다.
이런 곳에서 2년 가까이 수고한 애들이 대견했다.
“어! 오빠다!”
그때 긴 머리 소녀 미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빠?”
“꺄아아아아! 태산 오빠다!”
“오빠아아아아아!”
애들이 우르르 문 앞에 서 있는 나에게 달려왔다.
이건 뭐 3년 전 헤어진 엄마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반가움이 느껴졌다.
흐뭇하게 양손을 벌리고…….
“먹을 거다! 먹을 거!”
“해, 햄버거!!!”
“우아아아아아아아아!”
휙휙 갑자기 양손이 가벼워졌다.
품에 안길 것처럼 달려왔던 애들이 먹을 것만 날름 채갔다.
“잘 먹겠습니다!”
“오빠~ 진심 사랑해요.”
서련이까지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진심 사랑한다 말하고 햄버거를 집어 들었지만 진심이 1도 안 와닿았다.
“넌 먹었어?”
그래도 나이가 한 살 많은 주민이 햄버거 하나를 들고 다가와 물었다.
“같이 먹으려고 넉넉히 사왔다.”
“이거 먹어. 네 눈에는 넉넉하게 보일지 몰라도 애들한테는 한참 부족하다.”
“매니저 아저씨 알면 혼나지 않아?”
살짝 겁을 줬다.
“호랑이를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는 건 허락했다는 소리지. 흐흐.”
오올! 주민 똑똑해.
그렇게 걸그룹 소녀들과 행복한 수제 한우버거 타임을 가졌다.
먹성이 진짜 좋았다.
햄버거를 입에 물고 한 손으로는 감자튀김을 집어 들어 빈 입에 쑤셔 넣었다.
제로 콜라는 한 번 빨아들일 때마다 쪽쪽 사라졌다.
순식간에 클리어!
“우, 우리 이렇게 먹어도 괜찮은 거야?”
“햄버거에 영혼을 팔다니……, 히잉.”
그리고 찾아온 현자타임.
바닥에 널린 햄버거 포장지와 각종 쓰레기를 보며 애들은 멘붕이 됐다.
“괜찮아.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다.”
위로의 한 마디를 던졌다.
“와아! 그 말 진짜 멋있어요!”
“진짜예요?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 뻥 아니죠?”
“오빠 한국대 생이니까 맞을 거야. 과학적인 거죠?”
전국 비만인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빵, 음식을 팔기 위한 거짓말 광고가 시대를 뛰어넘어 전파됐다.
“당연히……, 뻥이지~.”
“우아아아아아앙!”
“오빠, 나빠! 거짓말 대장! 구라쟁이!”
자기들이 먹고 나에게 덤터기를 씌웠다.
“걱정 마. 그거 먹고 딱 5시간만 오빠랑 운동하자.”
찌리릿!
애들 눈에서 고출력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왔다.
저번처럼 보너스 포인트는 받지 못했다.
쌓였던 식욕 스트레스 지수가 낮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뭘 준비해? 그냥 우리 노래하면 돼?”
햄버거를 잘근잘근 아작 낸 주민이 물었다.
“아니……, 너희들은 나와 함께…….”
자신감이 훅 치고 올라왔다.
홍콩에서 돌아왔던 어젯밤.
난 비행기에서 그분을 영접했다.
조선시대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살살 녹였던 전설의 그분.
그녀의 이름은…….
***
“여긴 또 어디야!”
아린 선배에게 큰소리 뻥 쳐놨기에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서울로 가는 홍콩행 비행기에서 안대를 차고 신을 불렀다.
그동안 신들의 조력이 필요치 않아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노바 형님도 새로운 연인을 만난 듯 나타나지 않았다.
그간 모아 놓은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하기 위해 신을 찾았다.
흥과 제대로 놀 줄 아는 한반도 정서에 맞는 신을 원했다.
그러자 빛과 함께 공간이동이 됐다.
쿵! 쿵!
강렬한 비트음이 울려 퍼지는 대형 지하 장소였다.
과거 생에 몇 번 가봤던 홍대 클럽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공간은 컸다.
스테이지도 엄청났다.
어스름한 조명이 묘하에 깔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트음에 고막이 떠날 것 같았지만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팟!
갑자기 강렬한 사이키 조명이 팟 하고 켜졌다.
“!!!”
그때 무대 중앙에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으며 한 여인이 등장했다.
뒷모습만 보였다.
몸에 꽉 달라붙는 블랙 가죽조끼와 바지를 입었다.
굴곡이 완벽했다.
뒤태만으로도 압도당했다.
“헐…….”
신이 내린 기럭지와 몸매였다.
긴 생머리는 질끈 포니테일로 묶여 있었다.
쿵~♫ 쿵쿵쿠우웅~♬.
비트에 맞춰 여인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강렬한 음률이었다.
헤비메탈 락 같으면서도 아이돌 댄스곡처럼 경쾌했다.
딱딱
박자에 맞춰 여인의 몸은 손끝과 발끝, 온몸의 선들이 움직였다.
쿵칙~♪ 쿵쿵 구구구구구구 쿵~♫.
어깨가 자연스럽게 들썩였다.
나조차 여인의 강렬한 춤에 영혼을 빼앗겼다.
걸그룹 골반 댄스처럼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섹시함이 발산됐다.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며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두둥 둥 쿵쿵 칙~♬.
혼자서도 저렇게 완벽한 춤이 완성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이돌들의 칼군무보다 더 절도 있고 아름다웠다.
쿵!
그리고 짧지만 강렬했던 음악과 춤이 끝났다.
“허어억.”
나도 모르게 몰입되어 있다 깨어나자 숨이 턱 막혔다.
“오빠가 나 불렀어?”
오, 오빠?
등 뒤에서 훅하고 달콤한 땀 냄새와 함께 심장을 원투로 가격하는 여인의 끈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담백하게 들렸다.
이중적 음색을 소유한 여인의 목소리.
두근두근 심장이 제 멋대로 뛰었다.
“귀엽네~.”
어느새 여자는 눈앞으로 이동해 왔다.
‘오! 마이 갓!’
절로 신을 찾게 되었다.
대장금 누님 이외에 두 번째 만나는 여신이었다.
느낌이 완전 달랐다.
대장금 여신은 단아한 한국의 귀부인 같다면 이 누나 여신은…….
요물이었다. 요물……,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심히 아름다웠다.
얼굴을 딱 보는 순간 그냥 국보급 여신이었다.
거기에 더해 가미된 그녀만의 요염한은 순수한 검은 눈동자와 더불어 야릇함의 극치였다.
뜨거우면서 차가운 이중적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빛은 냉정했다.
하지만 저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붉은 기운은 사내의 혼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누……, 누구세요?”
부르긴 불렀다만 누군지 모르는 신이었다.
흥이 많은 한국 신을 찾았지만 여신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오빠, 좀 닦아 줄래?”
여신의 손에 비단 수건이 들려 있었다.
땀에 살짝 젖은 긴 머리칼을 풀어헤치며 가느다란 목선을 드러냈다.
꼴깍, 침 안 넘어가면 그건 남자도 아니다.
매혹미? 고혹미?
비단 수건을 들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뒷목을 닦았다.
주름 하나 없는 새하얀 그녀의 목선은 그 자체가 핵폭탄이었다.
상당히 많은 미녀를 만났지만 신 앞에서 모두 무릎 꿇고 경배를 올려야 했다.
인세에서 맡을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체취 또한 일품이었다.
조용히 그녀의 젖은 땀을 닦아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
아우! 이거 그린라이트도 아니고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난 흥 많은 놀 줄 아는 신을 원했다고요!
“풋!”
갑자기 그녀 입에서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 청산리 벽계수(靑山裏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그때 정체 모를 그녀 입에서 낭랑한 시조 한 수가 뽑아져 나왔다.
아! 그리고 난 깨달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한 여인의 이름이 팍하고 떠올랐다.
“지, 진이 누님?”
# 9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