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5
94장. 고수란?
“다니에에에에엘!!!”
그녀가 달려왔다.
멀리서 봐도 누구나 관심을 보일 미녀다.
그리고…….
“!!!”
나를 발견한 그녀가 달려와 한 마리 나비처럼 품에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홍콩 스타의 거리에서 그렇게 영화를 찍었다.
그리움이 쌓인 클라라는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클라라의 긴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코에 파고드는 그녀의 연하고 부드러운 향수 냄새가 피부를 자극했다.
쪽!
클라라가 품에서 고개를 들더니 입술에 도장을 찍었다.
두 손으로 목을 두른 채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나만 바라봤다.
“보고 싶었어. 다니엘.”
보고 싶음이 너무 컸던 것 같다.
클라라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나도.”
“피이, 그런 사람이 이제 놀러 와?”
클라라도 한국 여자들처럼 질투할 줄 안다.
“일이 바빴어.”
“나도 바빴어. 한국이 가깝고도 멀다는 걸 요즘 느껴.”
클라라와의 인연이 상당히 긴 것 같다.
몇 달 동안 얼굴을 못 봤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매일처럼 문자를 주고받았다.
“가자.”
“응~.”
클라라는 당연한 듯 팔짱을 꼈다.
홍콩도 겨울은 추웠다.
클라라와 한쪽 어깨를 마주하며 길을 걸었다.
“요즘 바빴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국제전략운영팀에 발령받았는데……, 거짓말 조금 보탠다면 매일 전쟁이야.”
클라라 얼굴이 지쳐 보였다.
상업금융과 투자금융 둘 다 다루는 홍콩상행 은행이다.
국제전략운영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피곤이 밀려오는 것 같다.
“거래 좀 터줘?”
“정말?”
“로버트 대표에게 부탁해 봐.”
“맞아! 로버트 선배님에게 할 말도 있었는데 잘 됐다.”
“왜?”
“잘 모르겠는데 상부에서 로버트 선배님과 안면이 있는지 물었어. 그리고 조만간 자리를 만들어 달라던데? 선배님 요즘 잘 나가는 거야?”
로버트를 연결해 줬지만 클라라는 아직 그의 위치를 모르는 것 같다.
“오늘 직접 물어봐.”
저녁 시간에 로버트 애인과 함께 식사가 예약되어 있다.
“선배님이 잘 나간다는 뜻은……, 자기도 그렇다는 뜻이지?”
클라라가 바보는 아니다.
그녀의 물음에 답은 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는 부모님도 몰라야 할 비밀이다.
“나 학생이야. 부자 아냐.”
대학생이 되어서야 신분을 밝힐 수 있었다.
“알고 있었어.”
“정말?”
“한국 학기 중에 찾아오지 않았잖아.”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클라라, 대학생은 맞는데 신입생이야라고 차마 밝히지 못했다.
“뭐야?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 거야?”
“자기가 밝히지 않았잖아.”
자기라는 말이 참 듣기 좋다.
클라라는 다니엘이라고 부르다 어느새 자기야로 불렀다.
뭔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 주에 부모님과 함께 놀러 와. 약속했잖아.”
“오! 안 잊고 있었어?”
“그럼.”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어.”
“휴가 낼 수 있지?”
“물론이지. 나 자기 엄마가 해주는 갈비 먹고 싶어.”
클라라는 엄마 요리를 좋아했다.
“좋아하실 거야.”
클라라의 손을 잡고 홍콩 거리를 걸었다.
친구보다는 가깝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먼 사이.
지금 클라라와 나의 관계였다.
***
“우리 너무 싸게 넘긴 게 아닐까?”
“형님. 요즘 같은 불경기에 30억이면 잘 받은 겁니다. FOB 애들이 떴다지만 걔들 행사비 뽑아도 앞으로 5억도 못 건집니다. 그리고 요즘 이 바닥 경쟁이 치열합니다. 다음 곡 실패하면 바로 망합니다. 우린 성공한 편입니다. 제국의 소년들 때문에 7억이나 쭉 빨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때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빌어먹을 보이 그룹 같으니라고! 현재 투자비는 다 빠졌고……, 이제 어떻게 한다? 정리해? 아니면 계속해?”
“일단 더 받아 낼 수 있는지 타진해 보고 결정하시죠. 그것도 안 되면……, 애들 스폰 붙여서 비쌀 때 넘깁시다. 요즘 찾는 곳들이 많습니다.”
“흐흐흐. 두당 3억씩만 챙겨도 그게 얼마냐. 이래서 걸그룹 키우는 거 아니냐. 한 방 터지면 대박! 망해도 본전.”
“애들이 삼삼하니 잘 컸죠. 특히 서련이는 최소 10억짜리입니다. 얘가 말만 잘 들으면 더 뽑을 수도 있습니다.”
“흐흐흐. 아끼고 아껴두고 있잖아. 삼삼하니 잘 컸는데 넘기기 전에…….”
사장 양덕광이 음심을 드러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가격 좋을 때 저번 애들처럼 약 좀 쓰고 사진 찍어서 처리하면 됩니다.”
동생 양덕수는 일가견이 있는 듯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계획했다.
“황 실장 그 새끼가 문제지. 지 딸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싸고 돌아? 확 잘라버릴까?”
“그것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자기도 가수 출신이라 그런 겁니다. 황 실장이 그래도 애들은 잘 케어하지 말입니다. 실력도 좋은 편이고 성격이 무기라 건드는 놈도 없고 좋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 새끼 화나면 나도 쪼니까. 크크크.”
KNB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사장 양덕광은 동생 양덕수와 은밀히 얘기를 나눴다.
어릴 적부터 두 형제는 돈 되는 일에는 의기투합을 잘했다.
동생 양덕수는 이 바닥에서 로드 매니저부터 시작해 실장 명함까지 달았다.
그러나 욕심이 생겨 부동산으로 재산 좀 불린 형 앞으로 사업체를 하나 차렸다.
양덕수는 그동안 바닥에 구른 능력으로 실력 있는 애들을 모아 데뷔시켰다.
몇 번 투자했던 걸그룹 애들은 대부분 망했다.
다행히 스폰 붙여서 본전은 찾았다.
하지만 대세라던 보이 그룹은 쪽박을 찼고, FOB가 중박을 터트렸다.
사업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투자도 30억 넘게 들어왔다.
사업을 더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FOB 애들 쭉 돌리고 한밑천 챙겨 튈 생각이었다.
멍청한 투자자 놈이 경영 일체를 맡겼다.
여자 아이돌이면 환장하는 놈들이 많아 스폰으로 팔아넘기는 건 일도 아니다.
인기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돌리는 게 이 바닥 전통이다.
“그건 그렇고 투자자 새끼 뭐 하는 놈인지 알아봤어?”
“잘 모르겠습니다. 신생 투자회사였습니다. 삼우 로펌 변호사들이 알아서 하는 걸 보니 돈 좀 있는 놈이 확실합니다.”
“병신 새끼. 크크크.”
사장 양덕광은 요즘 아주 만족했다.
수중에 현찰이 확 꽂히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다.
“아! 그리고 누가 내일 저녁부터 3일 동안 FOB 애들 풀로 사용한다고 했지?”
“그건 모르겠고 투자자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행사비 2배를 준다고 했으니 손해날 일도 없습니다.”
“흐흐흐. 요즘 세상에 왜 이렇게 호구가 많은지 모르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호구가 넘쳐야 형님과 제가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크크크.”
두 형제는 음흉하게 웃었다.
다들 죽을 쓰는 판에 자신들처럼 돈 버는 곳이 없었다.
조금 더 땡기려는 욕망에 눈이 번들거렸다.
지금 자신들이 누구의 돈을 빌렸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
“이런 쌩 양아치 새끼들이 다 있어요?”
보고서를 보면서 머리에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세상은 넓고 악인은 정말 많았다.
“돈만 밝히는 전형적인 연예계 거머리들이다. 두 형제가 아주 제대로 밝히는 놈들이다.”
“둘 다요?”
“똑같은 놈들이다. 형이 물주고 동생이 행동 대장이야. 그룹 소속 여자 애들 키워주겠다고 사기 친 뒤에 나중에 스폰비 받고 돌렸다.”
돌렸다라는 말이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의미를 깨닫고 얼굴이 팍 찌푸려졌다.
이건 상상하던 그 이상의 세계다.
“개새끼들!”
욕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사무실 방음이 잘 돼 있어 밖에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약물 사용에 협박용 섹스 비디오까지 찍어뒀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당했던 애들이 고소도 못 하고 은퇴한 애들이 많아.”
“와아아……, X발이네요.”
이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었다.
“자살한 애도 있어.”
“미친 개새끼들…….”
생각만 해도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타인의 꿈을 이용해 자신의 더러운 욕심을 채우는 쌩 양아치다.
막연하게 알던 것과 달리 직접 현실로 마주치자 분노는 배가 됐다.
과거 이 정도까지 서련이를 키우던 업체가 막장인 줄 몰랐다.
일반인에게는 거의 공개가 되지 않았던 정보다.
“확 쓸어 주십시오! 다시는 세상 빛 못 보게 확실히 밟아야 합니다!”
서련과 멤버들이 그런 악당 밑에서 사육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더 늦게 알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탈탈 털 거니까 걱정 마라. 멍청한 새끼들이 30억을 거저 주는 줄 알 거다. 딱 보아하니 업무상 배임이라 횡령으로 걸면 딱인 케이스야. 그리고 당한 애들 내용까지 고소하면 되고. 에이스급 후배들에게 부탁하마.”
삼우에서 임원이 되더니 조 이사님도 변했다.
자신감이 넘치고 과거의 검사 같은 위엄을 뽐냈다.
검사를 지명할 수 있는 국내 대형 로펌 이사라는 자리가 저 정도다.
“매니저라는 자는 어떻습니까?”
“황 실장이라 불리는 녀석은 괜찮다. 너는 알려나 모르겠지만 15년 전에 한 곡 크게 뜬 적이 있지.”
“그런데 가수가 매니저를 합니까?”
“비주얼이 안 돼. 성격이 지랄 맞고 타협을 몰라.”
“그런 분이 양아치 회사에 들어갔답니까?”
“몇몇 아이돌들을 육성한 전력이 있어. 그런데 목이 뻣뻣해서 대부분 안 좋게 잘렸다. 돈도 없고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간 것 같다.”
조 이사님이 정보를 자세히 물어왔다.
투자하고 신경 안 쓰는 그런 바보는 아니다.
서련과 FOB는 인연이 깊다.
그들이 연예계에서 오래 살아남아 각자 목표한 인생 꽃피웠으면 싶었다.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황 실장이라는 이가 궁금했다.
통통 튀는 FOB 애들이 황 실장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맡기려고?”
전직 검사라고 조윤태 이사님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괜찮은 인재는 언제나 필요했다.
“봐서요. 투자해서 손해나면 안 되죠.”
“됐다. 누가 봐도 이건 너에게 손해나는 장사다.”
조 이사님이 몰라서 하는 소리다.
서련과의 인연으로 시작됐지만 손해나는 일은 아니다.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그런 엔터테인먼트 사업 하나 있어도 괜찮다.
한류는 한국의 대표 문화 수출 산업이다.
국위선양에 그만한 아이템도 없다.
자본과 인력, 그리고 한국인만 소유하고 있는 특유의 흥과 감각이라면 충분히 더 성장할 먹을거리다.
“확실히 옭아맬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그런 양아치 새끼들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인류 평화에 도움이 됩니다.”
“알았다. 내가 검사는 아니지만 초임 때 품었던 열정은 아직 그대로다.”
조 이사님 목소리에 호기가 드높았다.
조 이사님을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인 것 같다.
이제 2주 후면 대한민국을 자기 사유 재산이라 생각하고 사기 작업했던 인간이 대통령에 취임한다.
국정원을 동원해 국민들을 빨갱이로 만든 희대의 사기꾼이다.
나만 홀로 답답했다.
하지만 아직 방법이 없다.
촛불처럼 스스로를 태워 깨어나기 전에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빠르게 처리 부탁합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 청소는 가능했다.
“맡겨줘. 다음 주 중에……, 싹 콩밥 먹일 테니까.”
조 이사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의 법칙에서 하수는 직접 손을 쓰는 자다.
중수는 남의 손을 빌리는 자다.
고수는……,
남의 손을 차용하면서 직접 뒤통수 후려치는 손맛을 제대로 아는 자다.
물론 난 손맛 아는 고수를 추구한다.
기다려라 개새끼들아!
곧 내가 후리러 간다!
# 9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