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7
96장. 장기자랑
“7조 조원들 다 왔어? 선배님들과 함께 7호차에 올라타!”
“9조! 9조! 여기로 모여!”
“뭐라고? 동식이 신림동에 갔다고? 아이고 두야……, 신입생이 아주 고시병에 단단히 걸렸네.”
“예림아. 너 화장 완전 잘 받았네. 완전 예뻐!”
“광준아. 대사 다 외웠지? 흐흐흐. 오늘 기대 만땅이다.”
법대 앞 주차장은 난장처럼 시끄러웠다.
무려 200명의 신입생 대다수와 재학생 상당수가 모였다.
일찍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그들을 구경했다.
그래도 한 번 살아본 대학생 시절이라고 들뜨지 않았다.
인생 좀 산 조교의 심정으로 상기된 신입생들을 봤다.
“좋을 때다~.”
입에서 절로 청춘을 칭찬하는 말이 나왔다.
멀찍이 벤치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대 신입생이 되었다는 걸 이제야 다들 실감하는 것 같다.
동네 수재 소리 듣던 녀석들도 수재들 틈에서는 일반인이 됐다.
과거 다녔던 지방대 오티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피부가 순수했던 여자애들은 어느새 화장으로 얼굴을 떡칠했다.
머스마 새끼들은 고삐리 때를 벗고 이제 대학생 같았다.
얼굴에 여드름이 활화산처럼 터졌지만 옷차림이 달라졌다.
졸업식도 끝나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본 느낌이다.
앞으로 사법고시라는 큰 전투를 앞두고 휴가를 받은 군바리처럼 상기됐다.
그에 반해 우리 10조는…….
“10조! 10조! 여기로 모여. 얘들아!!!”
아린 선배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선배도 사시 때문에 정신을 온전히 이쪽에 쏟지 못했다.
한국대 법학과 학생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았다.
어슬렁거리며 10조 아이들이 법대 벤치 쪽에 모였다.
그동안 몇 번 문자가 오고 갔지만 스마트폰 단톡 기능이 없던 때라 다들 서먹했다.
전화 통화를 하기에는 같이 한 시간이 없었다.
다들 잘난 맛에 사는 녀석들이 고개 숙이는 법도 몰랐다.
첫날 만났던 애들만 눈인사를 건넸다.
이런 애들과 함께 장기자랑을 준비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안녕.”
생각에 잠긴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어요.”
보지도 않고 답했다.
사람마다 독특한 체취와 즐겨 쓰는 향수가 있다.
특히 여자들은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다가오는 여자의 향기만으로도 그녀가 누군지 알았다.
“마셔요.”
불쑥 손유리의 손이 앞에 나타났다.
법대 자판기에서만 나온다는 빈이 형님의 캔커피다.
“방학 때 학교에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닙니까?”
“이쪽 업계가 그래요. 방학도 없어요. 다음 학기 전공 포트폴리오 완성하려면 방학 반납해도 부족해요. 법대생들이 신림동 가는 거랑 똑같아요.”
한국대 학생들은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지방에 있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학교에 남아 공부한다고 폼은 잡았지만 경쟁자가 없어 뜨겁지 못했다.
캔커피를 따 한 모금 마셨다.
이제 뽑아온 따끈한 캔커피는 빈이 형님 미소처럼 부드러웠다.
“준비는 다 끝났어요?”
고개를 돌려 손유리를 봤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물감 튄 야상점퍼를 입고 있다.
법대 선배들의 심장을 심쿵하게 만드는 그녀는 오늘도 예뻤다.
다시 사는 인생은 확실히 달랐다.
전생에는 티비에서나 봤던 미녀들이 줄줄이 옆에 있다.
“뭐가 말입니까?”
“장기자랑 혼자 준비한다고 아린이가 그러던데요?”
“혼자 아닙니다.”
“네?”
아린 선배가 나에 대해 알려면 한참 멀었다.
평범한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능 캐릭터가 나다.
“장태산 어딨어! 태산아!!!”
아린 선배가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커피 고맙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잘 하고 와요.”
손유리가 밝게 웃었다.
“내일 연락하겠습니다.”
“네~.”
손유리와의 아침 만남은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오티에 참석했다.
***
“아오! 꼰대들 아주 제대로 미쳤어. 바빠 죽겠는데 2학년까지 참석? 미친…….”
오동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법대 꼰대들은 양반이다. 경영학과 노친네들은 4학년 빼고 다 의무 참석이다.”
“흐흐흐. 그래도 이번 신입생들 중에 괜찮은 애들 많단다.”
오동성을 호위하듯 따라가는 경영대생들이 입맛을 다셨다.
“나도 소문으로 들었다. 조금 있으면 볼 수 있겠지. 동성아, 말만 해라. 콱 찍어서 넘겨주마.”
“됐어, 임마.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안아 그룹 셋째 오동성은 경영대 친구들과 함께 학과 오티 장소인 보영 휘닉스 파크 리조트에 먼저 와 있었다.
마지막 학부생 입학이라고 2학년까지 의무 참석 명령이 하달됐다.
법대라는 학과는 각자주의가 강했지만 교수의 명령에는 바로 반응했다.
교수가 가진 힘은 판검사 지역 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몇 명 정도는 교수 힘으로 서울이나 경기도 안쪽에 배정시킬 수 있었다.
오동성도 교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대기업은 언제나 정부의 타깃이 되었다.
빠르게 정보를 입수해 대처하지 못하면 콩밥 먹을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투덜거리면서도 참석했다.
“그래도 어제도 안타 정도는 쳤잖아.”
“아주 좋았어. 지지배들이 제대로 놀 줄 알더라.”
오동성과 어울리는 경영대생들은 다들 안아 그룹 소속 직원 자제들이다.
그룹에서 그들을 포섭한 후 오동성에게 제공했다.
학교 졸업 후 특채하기로 약조가 됐다.
조국일보 반대식이나 최상득 아들 최지형과는 격이 달랐다.
학교에서의 손과 발 같은 존재다.
오동성의 리포트를 대신하거나 강의 대타도 뛰었다.
철저하게 오동성의 심복으로 활동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휘이이~ 휘이이이~.”
스키를 타고 저녁까지 먹고 도착한 리조트 대강당에서 환호와 휘파람이 터져 나왔다.
“벌써 시작한 거야?”
“빨리 끝내고 술이나 처먹지, 무슨 장기자랑은…….”
오동성은 학교생활에 관심이 없었다.
판검사 가능성 있는 인간들과는 돈과 술, 여자로 인맥을 쌓아 두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조언대로 움직였다.
자금은 무제한이다.
안아 그룹 회장의 꿈은 대한민국을 암중에서 휘어잡고 있는 오정그룹 장학생들을 따라잡는 것이다.
대강당 문을 열고 셋이 들어갔다.
“완벽한! 법학과 9조의 장기였습니다. 내게 강 같은 정력의 율동과 노래라니……,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90년대 학번들의 철 지난 오티 단골 소재를 이곳에서 볼 줄 몰랐습니다.”
지원금이 곳곳에서 쏟아져 유명 개그맨 고병만을 사회자로 섭외했다.
이곳 휘닉스 파크도 무료다.
한국대 출신 회장의 배려였다.
“하하하하하하하.”
법학과 9조 장기자랑은 완전 구시대적 아이템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끝났다는 후련함에 모두 다 만족한 표정이다.
“그럼~ 오늘 의상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경영학과 10조의 화려한 공연을 감상하겠습니다! 모두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짝짝짝짝짝짝.
힘찬 박수가 울렸다.
2시간이 넘게 공연 시간이 흘렀다.
강단 무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법학과 교수들과 동문, 학생들이 앉았다.
그 반대편에는 경영학과 교수와 동문, 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불꽃 튀는 경쟁이 치열했다.
일단 단합이 잘 되는 경영학과 공연이 더 화려하고 볼만했다.
예비 소집일부터 합숙한 조가 있을 정도였다.
법학과와 달리 대기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합동과 단합이 경영학과의 전통이었다.
“동성아, 저기 걔 아니냐?”
“누구?”
“니 이거~.”
친구가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며 흔들었다.
“신림동에 처박혀서 공부나 할 것이지…….”
이예린을 보고 오동성은 인상을 더 찌푸렸다.
한 번 버린 여자는 절대 다시 찾지 않았다.
아무리 예쁘고 헌신한다 해도 오동성은 싫증이 나면 버렸다.
“그래도 진짜 법대생치고는 예쁘다.”
“그럼 뭐 하냐. 소문 쫙 났는데.”
오동성에게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예린은 한쪽에서 손뼉을 치며 구경하고 있었다.
작년 예비 소집 때 오동성에게 찍혀 넘어갔던 그녀다.
“와아아아! 몬태규 가문의 개자식들을 죽여라!”
“캐플릿가의 똥개들을 잡아라!!!”
차자자자장 창!
중세 시대 사내들의 쫄바지를 입고 나타난 경영학과 9조원들이 칼을 휘두르며 실감나는 전투를 벌였다.
그들의 검에는 복사한 돈, 어음, 수표 등이 붙어 있었다.
성벽이 그려진 그림 화판까지 등장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오! 같은 하늘 아래 몬태규의 개자식들과는 살 수 없습니다!”
“신이시여! 캐플릿가를 끝장내 주시옵소서!”
죽은 가문 사람들을 붙잡고 통곡하는 경영학과 배우들은 비장미까지 넘쳤다.
그렇게 암전이 찾아오고 새로운 장면이 빛 속에 나타났다.
“라라라라라라~♫.”
아리아와 함께 한 소녀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멋들어진 드레스를 입고 한 바퀴 휘돈 소녀는 황금빛으로 염색한 긴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시선이 소녀에게 집중됐다.
“오오오오오오!”
“누구야? 겁나 예쁘네?”
“경영학과 신입들 중에 쟤가 얼짱이래.”
“대기업 사장 딸이라고 하던데?”
사방에서 수군거렸다.
“호오…….”
못마땅하던 오동성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흘렀다.
신입생만이 풍길 수 있는 신선한 매력이 쭉쭉 소녀 몸에서 풍겨 나왔다.
드레스와 분위기가 한층 더 소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노래하는 목소리 또한 신비로웠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녀다.
“오! 내 사랑 줄리엣! 나의 타오르는 화산 같은 사랑을 받아주오!”
그때 상대 배역으로 낙점된 경영학과 남자 신입생이 진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줄리엣에게 청혼했다.
나타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세레나데 형식의 노래를 제법 불렀다.
“안 돼요. 로미오……, 우리들의 인수합병은 이뤄질 수 없어요. 사랑하지만 사랑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답니다.”
현실적인 줄리엣의 등장이다.
“줄리엣~ 그러지 마오. 내가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크고 넓다오!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는 가문들의 M&A는 기필코 이뤄질 것이오! 적대적 M&A를 반드시 성사시키겠소이다! 내 영혼을 지독한 유대인 사채업자에게 파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오!”
“우호 지분을 확보하셨나요?”
줄리엣은 로미오의 당찬 포부에 호감을 표했다.
“그렇소! 로렌스 신부님이 우리들 사랑을 위해 사모펀드 자금을 모집하고 있소이다! 두 가문의 불행을 끝내기 위해서는 합병을 추진한다고 하였소이다! 나를 믿으시오! 내 사랑은 그 어떤 백만장자가 발행하는 백지수표보다 보증된다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경영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에 반해 법대생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나름 경영학과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이다.
이렇다 할 장기자랑을 준비 못 한 법학과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 와중에도 연극은 계속 진행됐다.
제법 대사가 길었지만 두 배우는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
누가 봐도 장기자랑의 1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 줄리엣 당신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넘어가 시집을 갈 줄은 난 몰랐소! 아버지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당신의 사랑도 결국……, 다이아몬드에 약한 여자였구려! 당신 때문에 백화점에서 수없이 긁혔던 신용카드는 연체가 되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오! 사채 이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소! 난 이제 깨달았소! 사랑은 말보다 돈이라는 것을……, 크으으으으으.”
파산신청이라 쓰여 있는 종이를 입에 물고 처절하게 쓰러지는 남자 주인공.
여자 잘못 만나 패가망신한 남자의 모습을 패러디하며 끝이 났다.
그렇게 퓨전 형식의 요상한 연극은 끝났다.
“훌륭하다! 무적 경영학과 08학번!!!”
“휘이이이이 휘이이이이이이이~!”
짝짝짝짝짝짝짝.
경영학과 교수와 학생들 모두 만족하며 박수를 힘껏 쳤다.
스토리가 산으로 갔지만 여주인공의 압도적인 미모와 괜찮은 연기력에 모두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워어~ 엄청납니다. 조금 전 그 여주인공 배우 아니세요? 세상에! 제가 방송국에서 봤던 그 어떤 여배우들보다 빛이 났습니다. 혹시 시간 나면 연락처 좀 가르쳐 주십시오. 꼭! 우리 소속사로 모시고 싶습니다.”
고병만이 사심을 보일 정도로 여배우는 매력 만땅이었다.
“자! 이제 법학과 08학번 신입생들의 마지막 장기자랑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경영학과 10조의 무지막지한 공격 앞에 참담한 심정일 텐데……, 그래도 끝까지 지켜봐야죠. 마지막에 웃는 자가 언제나 승자라는 것 다들 아시죠? 모두 열렬한 박수로 한국대 법학과 10조를 환영해주십시오!!!”
고병만이 손으로 무대를 가리키며 박수를 유도했다.
승리가 예정된 경영학과 생들은 승자의 자세로 여유롭게 박수를 쳤다.
법대생들은 10조의 무개념을 알기에 기대 없이 대충 손을 부딪쳤다.
탁!
그때 강당의 모든 불이 일시에 꺼졌다.
“뭐……, 뭐야?”
“갑자기 불은…….”
파바바밧!
짧은 암흑 뒤에 무대 조명이 중앙을 비췄다.
그리고 보이는 일곱 명의 실루엣.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실루엣 주인공을 알아본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F, FOB???”
그리고 걸그룹을 아는 남자들 다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9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