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Blacksmith's Vengeance RAW novel - Chapter (62)
6.이것이 복수다
1
해커의 부하들을 골탕 먹인 다음 날 아침.
유한은 휴일의 느긋함을 만끽하며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했다.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듯한 어지럼증이 가심과 동시에, 대장장이 지그가 가도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에서 퀘스트를 마치고 귀환하다 시간이 늦어 이곳에서 접속을 종료했던 것이다.
“푸르릉~!”
유한이 접속함과 동시에 짐마차도 함께 소환되었다. 반갑게 투레질을 하는 말을 다독이고 있는 유한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봐, 학생.”
유한을 부른 마법사 차림의 아저씨는 다소 고압적인 말투로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아침부터 게임에 접속해서야 되겠어? 부모님이 그렇게 하라시던?”
유한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다짜고짜 나타나 훈계라니, 아저씨야말로 뭐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대충 상대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 것 같았다. 길을 가는 어린 유저들이 얼굴을 보일 새라 후드를 꼭 눌러쓰고 후다닥 달려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마법사 아저씨,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티쳐스임이 분명했다.
“캐릭터 이름이 지그? 어느학교 몇 학년 몇반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마법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니, 마법서가 아니라 마법서인 척 하는 명단 목록이다. 여러학교의 학생들이 감시대상에 있는지, 이름이 적힌 목록은 마치 전화번호부처럼 빽빽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뭔데 이래라저래라 간섭해요?”
아침부터 기분이 확 잡친 유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설마 호구가 반항할 줄 몰랐던지 마법사는 눈을 동그랗게 떳다.
“너,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알게 뭐요! 그리고 난 졸업했으니 신경끄시지!”
검정고시를 통과했으니 졸업한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유한은 톡 쏘아 붙이며 삿대질 하는 마법사를 떠밀었다. 마음같아선 그냥 칼로 푹 찔러주고 싶었지만, 그래선 자신에게 득 되는 일이 없다.
“이, 이이!”
뒤로 떠밀려 넘어진 마법사는 유한을 붙잡지 못했다.
망신을 당해서 얼굴이 뻘게진 그는 근처에 있던 다른 학생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야, 너희들 어느 학교 몇학년 몇반이야?”
“왜 대딩한테 엿먹고 초딩에게 시비예요.”
“아, 절라 왕재수. 티쳐스 즐이삼!”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지 유한은 대장간으로 말을 몰았다. 찝찝해진 기분을 씻고 싶었기에 짐마차의 속도를 최고로 올렸다.
“하여간 별의별 인간들이 다 설쳐요.”
평일도 아닌 일요일에도 게임한다고 간섭하다니. 현실에서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까 싶었다.
얼마 후, 짐마차는 케이트 산맥의 지그 대장간에 도착했다.
쿵쿵! 뚝딱뚝딱!
마을공사하는 소리가 제일 먼저 그를 반겼다.
그리고 돈이라면 지옥 불길 속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리지스가 그를 찾았다.
“어서와. 퀘스트 이야긴 시아에게 들었어. 신전에서 한건 했다며?”
“응, 근데 그건 새로 주문 들어온 거야?”
“그래, 없어서 못 팔 정도니까 서둘러 제작해 줘.”
뭐가 그리 대단한지 유한은 주문서를 봤다.
대부분 강철로된 투구들이었다. 그것도 얼굴 전체를 가리거나 눈가리개 차양이 달린.
‘이게 뭐야?’
참 이상한 일이었다. 주문서의 투구들은 방어력이 좀더 높긴 하지만 시야를 가리는 불편함이 있어 유저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이 갑자기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됐다는 건지?
“요새 이런 투구랑 후드, 수염가면 같은게 애들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거든. 티쳐스 때문에.”
“엥? 선생 패거리 때문이라고?”
티쳐스라고 해서 학생들 캐릭터를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본캐를 족쳐도 부캐가 있고, 제 3의 캐릭터가 있을수도 있다.
그래서 티쳐스의 선생들은 학생들의 캐릭터 명단을 공유하고, 그것도 미흡하다 싶으면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유저들을 마구잡이로 붙잡는단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는 물건들이 인기짱이야.”
이걸 좋아해야 하는건지.
그러고 보니 리지스도 차림새가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키를 높이는 구두를 신고, 후드가 달린 로브를 덧입었다. 거기다 화장까지 진하게 해서 언뜻 봐서는 여대생처럼 보일 정도였다.
“네 랭크에 별로 어렵지 않을테니 얼른 만들어줘. 아 ! 그리고 지그 너 골렘 부품 만들생각 없어?”
“골렘 부품이라니?”
유한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리지스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일만 하지말고 손님들에게 정보 좀 들어. 얼마 전에 철십자 길드의 거대 목인병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는거 몰라?”
“그건 알지. 근데 그거랑 골렘 부품이랑 무슨 상관인데?”
철십자 길드가 거대 목인병ㅇ르 이용해 패색이 짙은 길드전을 이겨 버린것이 몇몇 길드를 크게 자극했다고 한다.
지난번 길드 전에서 패배한 다크나이트&B.O.B 길드도 충격을 받은건 마찬가지.
“그래서 정보를 입수한 길드들이 카잔 공국 일대의 던전과 유적들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거대 목인병과 비슷한 수준의 골렘을 개발할 수 있는 단서들을 발견했대.”
그게 마녀 데보라가 남긴것인지, 아님 데보라에게 영향을 준 고대유산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조만간 몇몇길드들이 거대 병기를 보유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 큰 길드들이 톱니바퀴나 강철와이어따위를 주문하고 있어.”
“아하, 그것들이 골렘을 만드는 부품이 되는 거구나?”
“어때? 지그 넌 생각 없어?”
“글쎄, 주문받은 부품만 만드는 거라면 별로 흥미가 없는걸.”
현재 정밀 조립스킬은 7랭크.
블랙아이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 조립 스킬이 3랭크가 되어야한다.
만약 골렘 조립에 한몫 거드는 것이라면 적극 동참했을 테지만, 단순 부품 생산이면 사정이 다르다. 부품만 생산하는 것이면 정밀 조립스킬의 랭크를 그닥 올릴 수 없을 테니까.
흥미가 없다는 유한의 말에 리지스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나중에 생각바뀌면 언제든 이야기해. 일단은 주문받은 투구들을 서둘러 만들어 주고.”
“오케이.”
대장간으로 들어간 유한은 일꾼들에게 최대한 빨리 투구들을 만들어 리지스 상단에 넘기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개인 작업실에서 부족한 스킬수련에 들어갔다.
철공소를 짓기 위해서는 제련, 생산, 합금, 주물 스킬이 모두 5랭크 이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지그는 제련과 생산은 3랭크로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합금과 주물은 부족했다.
‘어디 또 동상이나 종을 만들어 달라는 데 없나?”
예술품을 만들면 주물의 스킬 경험치를 많이 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예술품을 만드는 퀘스트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재료를 구해 예술품을 만들 수도 없는 것이 재료비도 재료비지만 퀘스트로 만드는 것과 달리 스킬 경험치를 적게 준다는 문제가 있었다.
드림맥스가 단순 노가다로는 스킬랭크를 올리기 힘들게 만든 것 같았다.
그렇게 유한이 아쉬워하고 있을때, 대장간 문이 열리더니 유저 하나가 들어왔다.
“저기 이거 수리 가능합니까?”
그가 내민 것은 시퍼렇게 녹슨 검이었다.
한창 합금 작업에 열중하던 유한은 내심 귀찮았지만, 그래도 찾아온 손님을 박대할 수 없는지라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유저에게서 검을 건네받은 유한은 찬찬히 살폈다.
비록 시퍼렇게 녹이 슬어 있었지만, 물결문양을 이루고 있는날이 인상적이었다.
유한은 수리에 앞서 검을 감정했다.
내구:45
설명:물결모양의 날을 가진 살벌한 검. 베이면 상처부위가 잘 낫지 않는다.
부수효과: 그리티컬이 20% 증가한다. 상대의 회복속도를 30 % 느리게 만든다.
‘이건 처음 보는 검인데…….’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유한은 아르페디아 대륙의 무기들을 대부분 만져 봤고, 공식 홈페이지나 공략사이트에 소개되어있는 레어무기들에 대한 정보도 알고있었다.
그런데 이 플랑베르주라는 녀석은 정보에 없는 것이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어요?”
유한이 검을 수리하며 은근슬쩍 물어보자, 유저는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 냈다.
“얼마 전 내가 카잔공국의 바닷가 마을에 퀘스트를 하러 갔었는데 말입니다…….”
자신을 레벨 120대의 전사라고 소개한 유저는 바다에 출몰해 어부들을 잡아먹는 거대식인 상어를 퇴치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약 이틀간 바다에서 악전고투 끝에 거대식인상어를 잡았는데, 놈의 뱃속에서 이 검이 나왔다고.
“나도 검이라면 제법 만져 봤는데, 이건 참…….”
그도 처음 보는 형태의 검이라고 했다.
그 뒤에도 유한은 유저와 몇 마디 더 나눴는데, 그처럼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나 해양 몬스터에서 아이템을 습득 했다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더구나 그런 아이템은 지금까지 게임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 대부분이라고.
‘요즘은 바다가 대세인가?’
저번의 대규모 업데이트도 그렇고, 이젠 사냥을 산이나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해야하는 모양이다.
2
s낯선 검을 수리해 준 유한이 다시 합금과 주물스킬 수련에 매진하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개인 작업실의 문이 열리더니 채린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거기다 언제나 활을 들고 다니는 손이 비어있었다.
“어서 와. 근데 너 왜그래?”
“저기, 지그야…….”
유한이 빤히바라보자 채린은 우왕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네가 준 가방 잃어버렸어.”
“뭐?”
일전에 유한은 남바린 영지의 아스콰이어 상점에서 파우치백을 사 준 적이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연두색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거야?”
“그게 있잖아…….”
간만에 반 친구들하고 사냥터에서 신나게 광렙한 채린.
그녀는 획득한 아이템들을 정리하기 위해 가까운 영지에 들렀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야. 하필이면 선생한테 걸리고 말았어. 그래서 바람의 활이랑 아이템들을 뺏기?立─?흐흑!”
가방도 털렸다.
채린은 다른 아이템은 몰라도 유한이 선물해 주었던 가방은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악귀 같은 선생은 온갖 으름장과 협박을 늘어 놓으며 앗아가 버렸다.
“선생이라면 혹시 저번에?”
“아니,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아니지만 그 선생도 티쳐스래.”
순간 유한의 얼굴이 아귀처럼 일그러졌다.
‘감히 내가 채린이한테 준 선물을?”
비록 가방 하나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것은 유한이 채린에게 사 준 최초의 선물이자 우정의 징표였다. 그런데 그걸 강탈해 가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티쳐스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이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시아야, 그 선생 어디서 만났어?”
“왜? 거기 가려고?”
“내가 가서 다시 받아올게.”
유한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채린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 할텐데. 그선생 지독하다고 소문이 자자해.”
“걱정 마, 다 돌려 받을 방법이 있으니까.”
유한은 채린에게 물어서 그 선생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 그리고 걱정돼 따라오겠다는 채린은 간신히 말린뒤 여행을 떠났다.
티쳐스의 그 선생이 있다는 곳은 랑스 영지였다.
과거 푸른 새벽 길드의 본부가 있던 곳으로 남바린 영지와는 한시간 거리였다.
아바란 왕국 동부의 도시 랑스.
크고 번화한 성으로 들어간 유한은 지나가는 유저를 붙들고 물었다.
“저기요, 혹시 아틸라란 유저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 그 선생요?”
역시 채린의 말대로 그 선생은 랑스에서 꽤나 악명을 떨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렇게나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는데 바로 아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빌어먹을 선생은 왜 찾습니까?”
말이 곱지 않은걸 보니 이 유저도 티쳐스에 당한듯해 보였다. 나이도 유한 또래 정도였으니.
“그게, 돌려받을 물건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요.”
“어휴, 그 물건이 무언지 모르겟지만, 돌려받을 생각은 안하는게 좋아요.”
그러면서 유저는 아틸라란 선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가 랑스에 나타난 것은 약 한달 전이었다.
처음에는 몇몇 티쳐스의 다른 선생들과 함께 학생 단속에 나섰던 그는 합법적인 아이템 강탈에 재미를 들인 뒤 혼자 남아 단속을 계속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랑스이 유저들이 그를 알고 피하자 최근에는 도시보다 인근의 사냥터나 던전에 자주 출몰한단다.
“흥, 아틸라? 이름 한번 어울리게 지었군.”
아틸라.
고대 동로마 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훈족의 왕으로 약탈과 방화, 파괴에 능했다고 한다.
그런 이름을 캐릭터 명으로 하다니, 이 선생도 참 어지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에게서 대충 들을 걸 다 들은 유한은 가까운 사냥터와 던전을 뒤지기 시작했고, 반나절을 꼬박 허비한 끝에 목표로 하는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저 작자인가?’
눈이 쭉 찢어지고 턱이 뾰족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몽크가 바로 아틸라였다.
그는 사냥터를 어슬렁 거리다가 목표를 발견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덮쳤다.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하는 학생들을 일명 계도라는 명분아래 가차없이 벗겨 먹었다.
“어허! 너 부모님이 이렇게 게임하고 노는 거 아시냐?”
“학교 어디야? 너희 선생님은 공부하지말고 이렇게 게임하고 놀라던?”
“어쭈? 로그아웃 하려고? 벌써 스크린샷 찍었거든. 니이름 티쳐스의 수배명단에 올라갈 텐데 그래도 튈래?”
학생유저들에게 있어 티쳐스 수배 명단에 올라가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 수배명단에 올라가면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난다 해도 또 언제 다른 선생에게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스크린샷이 찍히면, 로그아웃으로 튀든, 한동안 게임을 접든 소용이 없었다.
스크린샷의 정보가 티쳐스 홈페이지에 올라가면, 각 학교 선생들이 자기네 학생인지 아닌지 파악해서 현실에서 압박을 가해온다.
아이템 다 토해 놓으라고 말이다.
“아 그러지 마시고 한번만 봐주세요.”
“삼만 골드 드릴테니까 홈피에 신고는 제발…….”
“전 거지에요. 갑부녀석 가르쳐 줄 테니 그녀석 벗기세요.”
빈털터리가 되는 것만은 피하고자 하는 학생유저들이 타협을 요구했다.
“오냐, 이 선생님도 너희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
교활한 아틸라는 선처를 베푸는 척하며 타협을 받아들였다.
자기네 학교 학생이 아니면 몽땅 벗겨 먹는 것이 불가능한데다, 아이템 다 내놓으라고 하다 로그아웃해 버리면 자신은 얻는게 없다.
적당히 협박해서 뜯어내고,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또 뜯고. 끝까지 도망친 괘씸한 녀석들은 찍어서 티쳐스 홈페이지에 올리고.
아틸라는 이런 식으로 학생 유저들에게서 엄청난 골드와 아이템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아니 뭐 저런게 다 있어?’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한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해커에게 바츠를 해킹당한 뒤로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털어 가는 놈들이 가장 얄미웠는데 저 선생은 벌건 대낮에 보란듯이 학생 유저들을 뜯어 먹고 있었다.
‘이 망할 꼰대. 넌 이제 내 손에 죽었다!’
그렇지 않아도 티쳐스가 한번 걸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물 먹여 주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주 죽여달라고 땅을 파고 있으니 묻어 줄 수밖에.
어느 정도 아틸라란 선생에 대해 정보를 수집한 유한은 일단 로그아웃을 했다.
3
‘오늘은 또 어느 놈을 털까.’
아틸라는 오늘 밤도 어김없이 랑스 인근의 사냥터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그는 원래 평범한 학교 선생에 지나지 않았다.
퇴근하면 자취방에 갖다놓은 캡슐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즐기기도 했지만, 게임 속에서도 그는 평범한 존재로 살고 있었다.
변한 것은 한달 전부터.
그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이웃학교의 선생들과 필드에서 만나 ‘특별한 사냥’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선생들은 티쳐스라고 불리는 길드의 일원이었다.
그들과 함께 게임 세상을 누비며 학생들을 맘껏꾸짖고, 아이템을 팔아 현질한 돈으로 지갑을 두둑하게 채워보니 더 이상 평범하게 게임을 즐길수가 없었다.
합법적인(?) 강탈에 재미를 들여 버린것이다.
그는 곧장 티쳐스에 가입했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선생이 필요했던 티쳐스는 그를 환영했고, 랑스 인근의 단속을 그에게 위임했다.
이후로 아틸라는 랑스에서 제왕처럼 군림했다. 아무리 레벨이 높은 유저라도 현실에서 신분이 학생이면 그의 사냥감에 불과했다.
간혹 대학생이나 일반인 유저가 ‘애들 벗겨 먹는 게 좋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무시해 버렸다. 그에겐 좋은 명분이 있었다. 학생들을 계도하겠다는.
‘헐헐헐! 오늘은 제법 왕건이가 걸려야 할텐데.’
마치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 처럼 주위를 둘러보던 아틸라의 눈에 고슴도치와 놀고있는 유저 하나가 보였다.
제법 돈이 많은지 차림새가 괜찮았다.
요새 간접광고다, 메이커다 뭐다 하면서 디자인과 옵션이 괜찮은 고가의 아이템들이 팔리고 있었는데, 저 유저는 바로 그런 아이템들로 치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이. 살펴보니 대충 고교 2, 3학년쯤 되는것 같았다.
‘흐흐! 일단은 스크린샷 부터 콱!’
최대로 확대해서 상대방을 찍은 아틸라는 번개같이 달려가서 상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이놈 자식! 학생이 벌건 대낮에 공부는 안 하고 게임질이냐? 너 학교 어디야?”
“자, 잘못했어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선생님.”
유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싹싹빌었다.
‘으흐흐! 알아서 숙여 주는구나.’
약삭빠른 녀석들은 잽싸게 튀거나 로그아웃을 하는데, 이녀석은 연방 굽실거리며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녀석의 이런 태도 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꼭 아이템을 갈취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상대의 굽힌 모습을 보면 교감이나 자취방 할멍구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죄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짐짓 거만한 얼굴로 물었다.
“오냐, 내가 용서하면 다시는 게임 안 할 거지?”
“예, 공부만 죽어라고 파겠습니다.”
“좋아. 그럼 아이템 다내놔.”
“예?”
그의 말에 유저는 눈을 의아하게 떳다.
아틸라는 이쯤에서 한번 강하게 밀어붙일 필요를 느꼈다. 그는 일부러 무서운 얼굴을 했다.
“어허!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할건지 안할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다시는 게임 안한다며? 그런데 아이템이 뭐가 아까워?”
“그, 그래도 그렇죠.”
“이거 안 되겠구먼! 스크린샷을 티쳐스 홈페이지에 올려놔야 정신을 차리려나…….”
“안돼요! 우리선생님한테 들키면 전 죽어요.”
울상을 짓던 유저는 착용하고 있던 장비와 무기들을 아틸라에게 넘겨주었다. 제법 럭셔리한 차림이었던 유저는 한순간에 천옷 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짜식, 진작에 내주면 얼마나 좋아.’
아틸라는 희희낙락하며 돌아섰다.
그런데 돌아서 얼마 걸어가지 않아 그의 귀에 원한이 깃든 욕설이 들려왔다.
“야이 돼지 같은 놈아! 남의 아이템 그렇게 처먹으면 좋냐!”
“뭐! 뭐라고?”
방금 아틸라에게 욕을 한 것은 좀전에 아이템이 털린 유저였다. 그는 아무래도 억울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던지, 악을 쓰듯 욕설을 내뱉었다.
“대가리나 확 벗겨져라! 엿같은 인간아!”
“이, 이 자식이 진짜!”
유저에게 있어 아이템은 생명과 같다.
아틸라도 예전엔 평범하게 게임을 했었기에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간신히 획득한 아이템을 빼앗기면 분한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욕설을 들어줄 만큼 아틸라는 속이 넓지 못했다.
조카뻘밖에 안 될 녀석이 감히 자신에게 욕설을 하다니!
단숨에 유저 앞에 달려간 아틸라는 그대로 귀싸대기를 한 대 날렸다.
화끈하게 따귀를 맞은 유저는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너 이 자식 어디 감히 어른에게 욕설을…….”
아틸라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불길한 효과음과 함께 갑자기 안내창이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쿠쿵! PK를 했습니다.
-레벨 10이하의 초보자를 죽이셨음으로 가중처벌을 받습니다. 게임시간으로 120시간 동안 머더러 상태를 유지합니다.
‘뭐? 머더러? 내가 머더러라고?’
갑자기 머더러가 되었다고 하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틸라도 초보를 PK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초보를 보호하고, PK에도 정도를 두기위해서 게임 초창기부터 드림맥스에서 그렇게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방금 싸대기 한방에 쓰러진 유저가 초보라니!
분명 초보답지 않은 호화로운 차림새 였고, 랑스는 레벨10이하의 초보가 돌아다녀도 될 만만한 필드가 아니었다.
‘제길, 지금 이 상태로 남들 눈에 띄게 되면?’
조만간 자신에 대한 수배 퀘스트가 발동될 것이다.
학생유저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겠지만, 일반인들은 다르다. 이근처에서 워낙 분탕질을 쳤기에 그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자들에게 걸리게 된다면?
‘이,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돼. 아니, 그냥 로그아웃할까?’
아틸라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옆의 풀숲이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 하고 있던 아틸라는 심장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랐다.
“헐, 이게 뭐야. 머더러 아냐?”
때 맞춰 나타난 것은 바로 유한이었다.
그는 기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틸라를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4
랑스에서 아틸라의 뒤를 미행하던 유한은 로그아웃을 한 뒤에 레벨 1의 바츠 캐릭터로 접속했다.
여전히 발덴에 머물고 있었던 바츠.
그 생초보 캐릭터를 선택한 유한은 곧장 골드러시 상인연합의 발덴 지부로 찾아갔다. 이미 한 번 유한의 부캐를 만난적이 있었던 딜론은 반갑게 그를 맞아줬다.
유한은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돈을 좀 빌려 달라고요?”
“한 오만 골드 정도요, 일이 끝나면 바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만 골드가 작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가 돈이 궁해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유한은 티쳐스와 랑스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아틸라란 선생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아틸라를 손봐주려 한다고 하자, 딜론은 냉큼 5만 골드를 건네 주었다.
“안 갚으셔도 됩니다.”
“예?”
“나도 교육계에 몸담고 있지만, 그선생들은 혼 좀 나야됩니다. 스스로 학생을 계도 한다면서 오히려 온갖 민폐를 끼치고 있으니까요.”
얼마전 딜론 휘하에 있는 상인들 중 티쳐스에 걸린 학생들이 있었다. 그때 티쳐스는 학생들의 아이템뿐만 아니라 길드에서 거래할 물건들까지 몽땅 먹어치웠다.
항의를 해봤지만, “왜 애들을 당신 장사하는 데 이용해먹냐’는 소리만 들었다.
“무법자도 그런 무법자들이 없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혼을 내세요.”
“크크, 기대하고 계십시오.”
유한은 딜론에게 받은 돈으로 유명 메이커가찍힌 옷과 무기들을 샀다. 그렇게 차려입고 남은 돈으로 이용료가 비싼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랑스까지 왔다.
랑스에 도착한 유한은 미리 지그를 로그아웃시켜둔 필드로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틸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가만, 아무리 생초보라도 이 정도 피통이면 한 방에 가기 어렵겠지?’
그렇게 생각한 유한은 필드에서 가장 약한 동물인 고슴도치를 건드렸다. 고슴도치의 레벨은 3 정도로 캐릭터 바츠를 상대하기에 딱 적당했다.
“끽!”
한창 먹이를 먹고 있던 중에 공격을 받은 고슴도치는 유한을 향해 가시를 내밀었다. 그러나 옵션이 좋은 옷을 입고 있어 바츠의 피통은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저 님 뭐하는 거지?”
“갑부 같은데 고슴도치를 테이밍 하려나 보지.”
“테이밍 하는거야, 아님 노는거야?”
근처를 지나가던 유저들이 한마디씩 쑥덕거렸다. 유한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슴도치의 공격을 허용했다.
천천히 레벨 1인 바츠의 피통이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고슴도치의 가시에 여러번 찔리자 HP가 거의 바닥에 다다랐다.
이제 스치기만 해도 죽을 정도가 되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목표물인 아틸라가 나타났다.
‘나이스 타이밍~!’
유한은 아틸라에게 쩔쩔매는 척 연기를 한 뒤 욕설을 뱉어 그를 도발했다. 그렇게 아틸라의 화를 북돋은 그는 귀싸대기 한방에 장렬히 전사했다.
‘크하하하!’
유한은 죽으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바로 아틸라의 머리위에 떠오른 붉은 글씨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지그로 접속 할거야.”
요정의 귀여운 목소리를 들으며 유한은 다시 아르페디아 대륙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장이 지그의 모습으로.
서둘러 바츠가 죽은 지점으로 달려간 유한은 기겁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틸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헐, 이게 뭐야. 머더러 아냐?”
쾌재를 부른 유한은 마이티소드를 뽑아 들었다.
머더러는 모든 유저들의 적.
현상범 퀘스트가 내걸리지만, 퀘스트와 상관없이 가까이 있는 유저라면 누구나 죽여도 된다.
머더러가 된 유저는 죽을때 아이템을 높은 확률로 떨어뜨리기에 머더러만 찾아서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유저들이 있을 정도였다.
“큭!”
아틸라는 유한이 휘드른 마이티 소드를 막았다.
머더러가 되었지만 순순히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유한의 일검은 그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틸라가 전투형 신관인 몽크였지만, 레벨은 고작 32.
학생유저들을 착취한다고 레벨 업에 소홀했던 그가 레벨 108인 유한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유한이 대장장이라도 76의 레벨 차이는 속되게 말해 ‘넘사벽’의 수준이었다.
캉!
“아이고!”
유한의 일검이 또 한번 떨어지자 아틸라는 볼썽사나운 꼴로 바닥을 뒹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던 그는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눈 대장장이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대장장이 녀석은 아까 죽었던 갑부초보였다. 캐릭이 바뀌엇다지만, 이목구비라든지 얼굴 생김새가 똑같았다.
“훗,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씁니다. 선.생.님?”
“나, 난 널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아. 변명은 들을 필요 없고 아까 날 죽인 대가를 이제부터 치르시면 됩니다.”
그때부터 유한의 처절한 응징이 시작 되었다.
그는 일부러 칼을 안 쓰고 발로 자근자근 밟으며 아틸라의 피통을 깎아 나갔다.
게임이라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조카뻘밖에 되지 않는 녀석에게 두들겨 맞는다 생각하니 아틸라는 온몸이 수치심으로 부들부들떨렸다.
“너 이새끼 어디 학생이야? 감히 선생님한테 폭력을 휘두르고도 무사할 줄 알아!”
“아아, 저 학교 안다니거든요. 그리고 이건 게임 아닙니까, 게임.”
유한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아틸라를 발로 밟아 죽여버렸다.
– 머더러를 죽였습니다. 경험치를 100얻었습니다.
[참나무 몽둥이]를 얻었습니다.[바람의 활]을 얻었습니다.
아틸라가 떨어트리고 간 아이템 중에서 채린의 장비로 보이는 것이 나왔다. 활대를 살펴보자 시아라는 이름이 확실히 새겨져 있었다.
‘훗, 이걸론 아직 멀었다.’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은 유한은 근처의 부활 포인트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마침 유한의 손에 죽은 아틸라가 부활하고 있었다.
“죽어라, 악덕 선생!”
“크악!”
유한은 다짜고짜 이단 옆차기로 아틸라의 옆구리를 날렸다.
아틸라는 기겁한 얼굴로 도망쳤다. 아니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유한은 건틀렛의 와이어를 날려 도망치는 아틸라를 월척을 낚듯 끌어당겼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유한은 씨익 웃었다. 그 미소가 아틸라에게는 대마왕의 미소만큼이나 잔인하게 보였다.
“너, 너 이새끼 이거 안놓을래!”
“어허! 아직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시나 봐요. 선.생.님?”
유한이 검을 뽑아 그의 목을 슬쩍 찔렀다. 화들짝 놀란 아틸라는 근처의 유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 살려! 불량 학생이 선생을 팬…….”
아틸라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이다. 부활 포인트 주변에서 쉬고 있던 유저들은 그의 머리위에 뜬 붉은 글씨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머더러다.”
“오잉? 머더러가 떳네.”
“죽여! 먼저 죽이는 사람이 아이템 먹는다.”
누군가의 선창과 함께 유저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칼을 박아 넣은 것은 아틸라를 잡고있던 유한이었다.
“케에엑!”
결국 아틸라는 부활 1분만에 유한에게 죽었다. 또 다시 아이템을 잔뜩 떨어트린것은 물론이다.
5
아틸라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가 접속할 때마다 유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유한에게 두들겨 맞아 죽었고, 유한이 없을때는 부활포인트에 있던 유저들에게 죽었다. 그렇게 몇번 죽고나자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들을 거의 다 떨어트리고 말았다.
‘제길! 이게 대체 무슨 꼴인지!’
하지만 부캐로는 아틸라로 은행에 넣어둔 골드와 아이템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도움을 청해 봐?’
티쳐스 길드원들에게 부탁해 머더러 카운터가 끝날때까지 지켜달라고 하면 될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같은 티쳐스라도 친한 선생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결국 유저들이 잘 접속하지 않는 늦은 새벽 시간을 노려 부활했다.
그런데 이 징한 대장장이 놈은 부활포인트옆에 아주 간이 대장간까지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어이구, 이제 오십니까? 많이 기다렸습니다.”
“으아아아!”
아틸라는 그대로 미친 바퀴벌레 처럼 달렸다. 또다시 와이어에 끌려 갈까봐 지그재그로 뛰는 그의 질주는 정말 처절해 보였다.
유한은 이번에 와이어 건틀렛을 쏘지 않았다.
얼마전에 배워서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쇼크웨이브!”
유한은 망치와 끌을 들고 머리 위에서 긁었다. 순간 소름끼칠 정도로 섬뜩한 쇳소리가 일어 아틸라를 향해 날아갔다.
끼아아아아아악ㅡ!
“으악! 뭐, 뭐냐!”
마치 선반 위에서 쇠를 가는 듯한 음성이 귀를 파고 든다 싶더니 HP바가 쭉 떨어졌다. 얼마 후 또다시 파공성이 들렸고, 아틸라는 그 자리에 엎어져 절명했다.
-머더러를 죽였습니다.
경험치를 100 얻었습니다.
-350골드를 얻었습니다.
묵주를 얻었습니다.
-쇼크웨이브가 성공했습니다.
경험치가 30올랐습니다.
소리를 울리는 방법을 다양하게 하면 스킬을 폭넓게 응용할수 있습니다.
“헐, 이젠 이런 것밖에 안 남았나?”
유한은 아틸라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주었다. 그런 그에게 부활한 아틸라가 식식거리며 다가와서 삿대질을 했다.
“너 인마 버그 캐릭터지!”
“아니거든요.”
“아닌데 어떻게 대장장이가 쇼크웨이브를 써!”
음유시인들이나 쓰는 스킬을 대장장이가 쓴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분명 버그캐릭터나 아님 옳지 못한 수단을 사용해 게임의 설정을 파괴한 것이라 생각했다.
“너 같은 놈은 내가 운영자에게 신고하면…….”
“아, 얼마든지 신고해 보슈. 그건 그렇고 이제 또 죽으셔야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한 유한의 칼질에 아틸라는 또 다시 사망했다.
“크아악! 이 망할 놈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틸라는 캡슐 안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래봤자 자신의 귀청만 아플뿐.
그래도 복수 수단을 찾은 그는 캡슐에서 나와 자신을 괴롭히는 버그 캐릭터가 있다며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해당 캐릭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는 거였다.
“크아악! 이게 말이 되냐고!”
펄펄 뛰던 그는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 일단 며칠 쉬면 놈도 가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틸라는 3일 동안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았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동안은 120시간의 머더러 카운터가 정지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 지긋지긋한 놈에게서 벗어나는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3일 후, 망할 대장장이 놈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이제 갔나 보군.”
“우와! 머더러가 떳다!”
유한은 갔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유저들은 있었다.
그들은 아이템을 노리고 아틸라를 공격했고, 머더러 카운터가 끝날때까지 아틸라는 죽었다 살아나기를 계속 반복했다.
이미 떨어트릴 아이템은 죄다 떨어트렸지만, 죽는다는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거기다 경험치까지 쭉쭉빠지고 레벨까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레벨 업에 신경 쓰지 않았다지만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아이고. 이제 다끝났구나.”
간신히 120시간의 머더러 카운터에서 벗어난 아틸라는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왔다.
인벤은 몽땅털렸지만, 그래도 마을 은행 금고에는 그동안 모아둔 골드와 아이템들이 많았다. 이번에 머더러가 되어 털린 수당은 그가쌓아놓은 재산의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부라도 상실의 아픔은 컸다. 그것도 아주 집요한 놈에게 털렸기에 마음이 더 쓰리고 기분은 더러웠다.
“망할 자식! 내 이놈을 가만 두나 봐라!”
아틸라가 식식거리며 은행에서 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뭔가 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목을 강하게 휘감는 것이 아닌가.
‘헉! 설마 이것은!’
속절없이 뒤로 끌려간 아틸라는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유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어, 오랜만 입니다. 선생님.”
“으아악! 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래?”
겨우 한번 죽었다고 그러는 것은 아닐것이다.
부활포인트에서 기다렸다가 몇번을 죽이고, 또 머더러 카운터가 끝난 이상황에서도 공격을 하는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훗, 이제 그걸 물어보십니까?”
마침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대장간에 다녀왔던 유한은 안색을 싸늘하게 바꾸고 말문을 이어 나갔다.
“며칠 전에 궁수 여자애한테서 연두색 파우치백을 압수하셨죠?”
“겨, 겨우 가방 하나 때문에?”
기억은 한다. 아스콰이어라고 제법 알아주는 브랜드의 가방이라 아직 처분하지 않고 은행에 넣어 두었다.
아틸라의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에 유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겨우 가방 하나가 아닙니다. 제 정성이 담긴 선물이었다고요!”
“선물? 참나 웃기는군. 버튼 하나면 바로 삭제할 수 있는 아이템에 정성을 담았다니……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깐.”
유한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아틸라가 반성하기는 커녕 비웃고 있지 않는가.
유한의 무시무시한 눈길에 아틸라는 주눅 들었지만, 그래도 뻔뻔한 기색을 버리진 않았다.
여기는 마을 한복판이다. 이놈이 자신을 죽여봤자. 이놈만 손해다.
“문제고 뭐고 간에 돌려줄 겁니까? 말겁니까?”
“돌려주긴 뭘돌려줘, 이놈아. 니가 나한테 털어간거나 내놔!”
머더러 카운터도 끝났겠다. 꿀릴 것이 없는 아틸라는 용감하게 대들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죽었지만, 이번만은 유한이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이놈도 자신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당하지 않겠는가.
“아놔, 말로 좋게 끝내려고 했더니 안되겠구먼.”
“어쩔 건데? 답답하면 칼로 푹 찌르던가. 죽여봐, 죽여보라고!”
“그렇게 말하면 못죽일거 같수?”
“유한은 아틸라를 꽁꽁묶어서 근처 나무로 끌고 갔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밧줄을 가방에서 꺼내 나무의 굵은 가지에 걸었다. 그리고 한쪽끝을 동그랗게 말아 아틸라의 목에 걸었다.
‘뭐, 뭐야? 이놈 설마 날 교수형시키려고?’
진짜 할까 싶었는데, 유한은 정말 저질러 버렸다.
그가 밧줄을 끌어 당기자 아틸라의 몸이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케엑!”
-목이 졸렸습니다. 3분 안에 벗어나지 못하면 HP가 지속적으로 떨어집니다.
정말 죽이려는 것인가. 머더러가 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유한이 막무가내로 이런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 생각이 있었다.
“아이템이란거, 챙기지 않으면 내 게 아니게 되지요.”
아틸라는 목이 졸리는 상황에서도 똑똑히 보았다. 유한이 두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나무둥치에 빙글빙글 감아 묶는것을.
“그리고 그렇게 챙기지 않은 아이템은 삼십초 안에 줍지 않으면 완전히 버려진 것이 돼 버리죠. 그뒤에 남이 주워가도 어쩔수 없는 겁니다. 뭐 쏴버린 화살이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유한이 밧줄을 버렸다해도 현재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여전히 밧줄에 목이 졸린 상태인 것이다.
“즉, 잠시후에 선생님은 내가 아니라 누가 내다버린 임자없는 아이템에 죽는겁니다.”
“……!”
한마디로 유한이 손을 다 쓰고도 머더러가 되지않는다는 소리다. 아틸라는 이제야 저 대장장이 녀석이 보통 영악한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임설정을 그런식으로 파고들어 이용하다니!
“헉!”
아틸라는 목졸려 죽기 일보 직전에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유한이 밧줄을 검으로 잘라버린 덕분이었다.
유한은 땅에 떨어진 아틸라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앞으로 임자없는 아이템에 계속 죽어보실래요? 아님 가방 돌려주실래요?”
“도, 돌려주마.”
아틸라는 은행에서 연두색 파우치백을 꺼내 주었다.
가방을 건네받은 유한은 계속해서 말했다.
“학생들에게 빼앗았던 아이템도 모두 돌려주세요.”
“하지만 나머지 물건은 너하곤 상관없는…….”
“임자없는 창에 꿰뚫리고 싶으십니까?”
아틸라는 소름이 쫙 돋는줄알았다.
이놈은 자신을 매달아 놓고 땅에 꽂은 창에 떨어트릴 생각인 모양이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그런꼴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견뎌 낸다 해도 이놈은 그보다 더한짓을 할지 모른다. 아니 분명 할 놈이다. 어른을 상대로 몹쓸짓들을.
아틸라는 포기하고 은행 안에 있는 아이템을 모두 꺼냈다.
빼앗은 아이템을 돌려준다고 하자, 소눔을 듣고 찾아온 학생 유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제물건을 찾아갔다.
그리고 아틸라는 완벽하게 거지가 되었다.
“앞으로 또 한번 학생들의 아이템을 털면 그때는 정말 캡슐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엄포를 놓은 유한은 휙하고 등을 돌렸다.
그는 아틸라가 노려보거나 말거나 자신의 길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