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호숫가를 바라보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찌륵찌륵 작은 벌레들이 우는 소리와 고요한 물소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비현실적인 숨겨진 공간에 천천히 다가갔다. 물이 찰랑거리는 근방의 땅이 촉촉했다.
나는 신발 아래로 사부작거리는 흙의 질감을 느끼다 순간적으로 그를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아니, 잠깐. 눈앞의 광경이 아름다운 건 그렇다 치고, 여기에서 목욕을 하자고요?”
날씨가 이렇게나 추운데?
부요의 시기가 지나 토벌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건 북부의 땅이 점점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 물이 얼거나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 해도 야외의, 그것도 밤의 호숫가에 몸을 담그기엔 날이 너무 찼다.
‘지금 몸 담갔다가는 감기 걸리기 딱 좋겠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발을 벗고 물에 살짝 발가락을 담가 보았다. 그러고는 짙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도리질을 쳤다.
‘훈훈했던 우리의 데이트를 극기 훈련으로 바꾸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내가 지은 표정이 제법 필사적이었는지, 그가 땅에 떨어트린 물건들을 정리하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코끝에 맴도는 바람처럼 시원한 미소를 지은 클로드가 다가와 가볍게 내 옷깃을 한 번 더 여며주었다. 혹시라도 차가운 밤바람이 옷 사이로 스며들까 걱정하는 손길이었다.
“나디아, 그대는 당연히 안 됩니다. 애초에 그대를 위해서 모닥불도 피울 생각이었고.”
“아…….”
그제야 그가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샀던 몇 가지 용품들이 떠올랐다.
추억거리로 공작가에 가지고 가서 나눠 먹으려나 싶었던 몇 가지 음식과 주전자, 담요 등의 생활용품이 지금 쓰려던 거였구나!
전쟁을 여러 번 겪어서인지 그는 야영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클로드는 땅을 고르고 주위에 동그랗게 돌을 놓은 뒤 오두막에서 가지고 온 가방 속에서 마른 잎과 나무껍질, 그리고 나무 장작을 꺼냈다.
“이 근방의 나뭇가지들은 대체로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마른 장작을 들고 오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불 피울 거리를 찾는다고 그대를 여기 혼자 두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건 고마운 일인데…….”
얼결에 그가 불을 피우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한 말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방금 나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클로드는?’
그렇게 머릿속으로 의문을 가질 때쯤, 모닥불에서 화르르 불길이 피어올랐다. 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른 불꽃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환하게 빛났다.
모닥불의 불과 꼭 어울리는 그의 주황색 눈이 불꽃과 함께 너울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 공작님.”
“음?”
“눈이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수면 위로 내려앉은 달을 보았을 때처럼 불쑥 말을 건넨 탓일까, 쪼그려 앉아 불을 피우던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누가 보아도 감탄을 할 만큼 잘생긴 얼굴이 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야말로. 모닥불 탓인지, 그도 아니면 유난히 밝은 달 탓인지 그대의 눈 안에 별이 박힌 기분이 들어.”
혼잣말에 가까운 클로드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술렁였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리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으며 빠르게 말을 돌렸다.
“아니. 그, 그래서! ‘나는’ 당연히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에요? 설마 공작님은 호수에 들어가시려고요?”
“아, 예.”
“역시 그럴 리가 없……. 네?”
아니, 갑자기 정신이 확 드네. 나는 담담한 클로드의 대답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빈말이 아닌지 모닥불을 피우고 내가 앉을 자리에 복슬복슬한 깔개까지 얹어준 그가 오두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상의를 벗었다.
“아니, 아니, 잠깐만요! 공작님! 그러다 얼어 죽어요!”
“제가 말입니까?”
클로드는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당기고는 호숫가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미처 말릴 시간조차 없었다.
태연한 표정으로 허리가 물에 잠길 정도의 수위까지 들어간 그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 날씨는 아직 제대로 된 추위도 아니라서. 게다가 한겨울에도 참을 수 없을 때면 종종 몸을 담그고는 했던 터라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기사들도 마수와 크게 전투를 벌이고 나면 그 피를 씻어내기 위해서 가볍게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기도 합니다. 게다가 여기는 애초에 물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요.”
거기까지 말한 클로드는 진짜 목욕이라도 하듯 손으로 물을 뜨고 세수를 했다.
달빛이 내려앉은 호수와 그 가운데 반쯤 옷을 벗고 물에 젖은 남자라…….
‘절경이네. 장관이고. 이게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니고 뭐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호숫가 쪽으로 다가갔다. 호수 위로 솟아 있는 큰 바위들을 조심스럽게 밟자, 그와 나의 거리가 얼추 가까워졌다.
야시장에서 산 치마를 걷은 나는 천천히 발을 호수에 담그며 바위 위에 앉았다. 차가운 물 탓에 생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으나, 클로드의 몸을 보느라 사실 추운 줄도 몰랐다.
‘아, 내가 보이는 거에 이렇게나 약한 사람인 걸 어쩌란 말이야.’
솔직히 어디에서 조각 같은 몸매를 가진 남자가 한밤중에 달빛 아래 몸을 씻는 걸 보겠나. 나는 턱을 괸 채 좀 더 주의 깊게 그가 목욕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참에 내 사심이나 가득 채워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뭐! 외간 남자도 아니고 내 남자 내가 음흉하게 보겠다는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쯤, 내 시선을 눈치챈 클로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나디아.”
“네?”
클로드는 되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대로 내가 앉은 바위 쪽으로 걸어왔다. 여유롭게 내 앞까지 다다른 그가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뚝뚝 물이 떨어졌다. 매끄러운 피부 위로 흐르는 물방울이 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그가 나를 보며 밤하늘을 닮은 미소를 그렸다.
“왜, 왜 더 목욕 안 하고 나한테 와요?”
“그냥. 그대가 나를 만지고 싶어 하는 듯해서 말입니다.”
“…….”
“어떻게, 만져보시겠습니까?”
이 사람, 또 사람 홀리는구먼! 하지만 나는 유혹에도 약한 사람이지!
못 이기는 척 그의 말에 따라 슬금슬금 손을 움직이려던 찰나, 클로드가 내 쪽으로 조금 더 몸을 붙이며 작게 속삭였다.
“물론 그 값이 얼마일지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클로드의 가슴에 닿으려던 손이 그 순간 멈췄다. 쓰읍, 어렵네. 아, 물귀신이 어디 있나 했더니만 여기에 있었어.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그를 바라보고는 휙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는 조건 달린 건 안 삽니다. 안 사.”
“저런, 흥정도 생각이 없으십니까?”
“네네, 없습니다.”
클로드는 모닥불이 피워진 곳으로 돌아가려는 내가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내 손을 잡은 채 천천히 나를 붙들어 주었다.
다시 물에 들어갈 생각은 없는지 근처에 놨던 천으로 몸을 닦은 그가 벗어둔 상의를 다시 꿰입었다.
“음, 나 때문이면 신경 쓸 거 없이 좀 더 즐겨도 되는데.”
“저는 그대와 있는 게 더 좋습니다. 이건 그대가 없을 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날이 풀리면 그때는 저도 같이 해요.”
모닥불을 사이에 둔 채 그가 나를 보며 잘게 눈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멋져서 나도 그를 마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야시장에서 간식을 먹긴 했습니다만, 워낙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서……. 배가 고프지는 않으십니까?”
“음, 아직은?”
“그럼 따뜻하게 차를 끓이는 게 낫겠군요. 주전자에 찻잎과 물을 좀 넣어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내가 주전자에 찻잎과 물을 넣는 사이, 클로드가 능숙하게 모닥불 위로 높은 대와 주전자를 걸 수 있는 고리를 달았다.
불 위에 주전자를 올리자, 모닥불에서 또다시 타닥거리며 불씨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함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은은하게 불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갑갑하기 그지없던 지하 감옥도, 시끌벅적하던 야시장도 모두 떠오르지 않을 만큼.
아무런 말 없이 지그시 물이 끓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오늘 집 가지 말까요?”
답 대신 나를 돌아보는 시선은 여전히 선명한 주황빛을 띠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를 더 묻는 듯한 눈빛에 나는 속에서 생각나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그냥, 아무도 없이 이렇게 둘이 날이 밝는 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피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은 정말 일이 많았는데…….”
“그래서요. 오늘이라서 더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작가로 돌아가는 것 역시 좋았다. 거긴 이제 내 집이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게다가 아무런 언질 없이 나왔으니 줄리엔과 헤르잔 모두 걱정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아.’
아무리 방에 클로드와 둘이 있다 해도, 공작가는 늘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공작가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이 그랬다.
클로드 카르테인도, 나디아 골드게이트도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기 쉬운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지금이 그와 내가 오롯이 둘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클로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조용히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를 꺼내 차를 따른 그가 바위를 옮겨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언제든 피곤하면 어깨에 기대 주무셔도 됩니다.”
“네.”
클로드에게서 건네받은 차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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