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79
280화
“너. 도대체 어떻게 지옥에 와서 군주의 증표까지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이지?”
제파르는 언럭키의 정체를 한 눈에 꿰뚫어 봤다.
사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악마와는 확연히 다르게 생겼으니까.
인간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악마라면 누구나 다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맞습니다.”
언럭키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왜 지옥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지상으로 돌아갈 테고?”
“그렇겠죠.”
“잘됐군. 그때 나와 군대가 함께하고 싶다.”
제파르가 떠올린 묘수였다.
지옥에서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보다 상위 서열의 군주들은 너무 강했고 훨씬 더 넓은 영역을 다스렸다.
군주의 힘은 휘하 세력의 크기와도 비례하는 법.
이미 대부분의 영토는 군주들이 차지한 상태였다.
상위 서열일수록 실력 차이가 커지는데, 제파르는 이번 레라지에와의 전투에서 확실히 느꼈다.
16위에서 14위로 올라가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그럼 낮은 서열의 군주를 공격해서 뺏는 건 안 되는 겁니까?”
“그건 안 됩니다. 아주 적법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하위 서열의 군주를 공격하면 공적으로 지정됩니다.”
대답해준 건 벨키서스였다.
악마 군주들은 강자 독식을 바랐지만, 지옥이 영원한 투쟁 속으로 흘러 들어가길 바라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세력 자체가 약해진다.
지옥밖에는 인간들의 세상도 있고 천계도 있다.
그들끼리 한없이 싸우다 보면 다른 세계와 균형이 안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맺은 협약이 자기보다 낮은 서열의 군주를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레라지에가 제파르를 뒤쫓아와 마무리 짓지 않은 이유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러한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위 서열의 군주는 무조건 도전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이군요. 너무 안 좋은데요?”
“안 좋을 것도 없소. 어지간해서는 도전 자체가 안 일어날 만큼 군주들 간의 실력 차이는 크니까.”
낮은 서열의 군주들은 일반 악마들의 도전을 경계하면서 호시탐탐 위를 노렸고, 상위 서열 군주들은 단련하며 도전자들을 처리한다.
약육강식의 지옥이지만 여러 군주가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래. 벨키서스의 말이 맞다. 내가 이번에 레라지에에게 도전한 건 깨달음을 얻고 강해졌기 때문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강하더군.”
제파르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세상으로 나가면 다르지. 거긴 널리고 널린 게 인구와 빈 땅이잖아.”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다스리는 영주들이 있습니다.”
“흥. 인간 영주들쯤이야 내가 콧김만 불어도 벌벌 떨며 무릎 꿇을 거다.”
제파르는 자신감을 표했다.
실제로 그럴 것이다.
아무리 영주 휘하에 기사들이 있다고 하지만, 제파르와 최상급 악마들이 진격해오는데 기사와 병사 수준에서 막기 힘들 것이다.
언럭키는 얼마 전 전쟁에서 봤던 악마들의 세력과 지금까지 지나쳐온 인간들의 도시를 떠올려봤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월드 사가는 왕국 개념이 아니고 도시 국가 개념이니까…어지간한 도시 세력으로는 제파르의 진격을 못 막을 거야.’
연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악마들이 이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들의 세상으로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그게 쉬웠으면 진작에 악마 군주들이 인간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겠지.
“그래. 보통은 불가능에 가깝지. 아니면 기껏해야 흑마법사 같은 놈들에게 계약을 대가로 힘의 편리만 빌려주는 식일 뿐이니까. 하지만 너는 인간이잖아.”
“저야 다닐 수 있겠지요.”
“그래. 그리고 우리가 동맹을 맺는다면, 네가 충분히 우리를 지상에서 소환할 수 있을 거다. 너는 네크로맨서니까.”
“?”
제파르는 설명 대신 책 한 권을 던졌다.
[스킬북 : 지옥 악마 소환]-스킬 등급 : 레전더리.
-스킬 효과 : 지옥의 악마를 소환한다. 소환할 수 있는 악마의 등급과 숫자는 악마와의 친밀도, 지옥과의 연관도, 레벨과 연관되어 결정된다.
-스킬 사용 제한 : 어둠(暗) 속성 계열의 소환 스킬을 사용하는 자.
“…….”
언럭키는 보자마자 눈치챘다.
“이거 때문에 제가 에오나루스님을 타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준 거였군요.”
“흐흐. 그렇지.”
제파르는 본인의 소중한 대검까지 집어 던지며 언럭키의 도주를 도와주었다.
그 대가로 지금도 영향이 있을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정말 바보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알겠다.
제파르는 언럭키가 네크로맨서인걸 보고 저 스킬을 떠올렸을 것이다.
인간이 군주이면서 네크로맨서?
제파르가 인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자 아닌가!
네크로맨시 소환 스킬도 어둠(暗) 속성 계열의 소환 스킬로 분류되니 말이다.
곰 같은 외형에 비해, 머리는 여우처럼 꾀가 넘치는 자였다.
‘의도는 대충 알았고…’
솔직히 말하면…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 역시 하이 랭커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아니. 월드 사가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려면, 단순히 하이 랭커로 부족할 수도 있었다.
천 명의 하이 랭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자.
‘이왕이면…랭킹 1위.’
그쯤 되면 독대를 하건 요청을 하건, 회사에서도 쉽게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랭킹 1위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월드 사가 전체에 강력한 입김을 끼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빠른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도 열심히 나아가는 선두의 랭커들을 제치고, 훨씬 더 앞지를 수 있는 무언가.
만약 이 악마들과 함께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고 거기서 나오는 온갖 던전과 사냥터를 독식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되면 하이 랭커까지 고속도로 뚫리는 거지.’
그렇기에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다만 언럭키는 그런 표정은 싹 숨겼다.
그 대신, 180도 태도를 바꿨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업상 파트너가 되자. 뭐 그런 얘기지?”
“…말이 짧아졌군?”
“왜. 비즈니스 파트너끼리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얘기 좀 하겠다는데.”
“…….”
제파르는 어이없다는 듯 언럭키를 쳐다봤지만 언럭키는 오히려 당당했다.
“싫어? 싫으면 나도 그냥 돌아가지 뭐. 나한텐 별로 솔깃한 제안이 아니거든. 그냥 이대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야.”
급한 건 자신이 아니고 제파르였다.
솔직히 말하면 언럭키는 그냥 지옥을 떠나 인간들의 도시로 가도 상관없는 것이다.
아쉽긴 하겠지만, 제파르만 할까.
놈이 무력을 써서 붙잡는다고 해도, 꽤 자신이 있었다.
‘지금 한 판 붙어도 솔직히 할 만 할 것 같단 말이지.’
제파르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해골들을 싹 다 소환하고 파티원들과 함께라면 놈과 함께하는 최상급 악마들까지 이길 만했다.
솔직히 이기는 것까지는 몰라도, 무사히 도망칠 자신은 있었다.
제파르도 그걸 깨달았는지 언럭키의 도발에 발끈하는 대신 잘 받아들였다.
“크흐흐. 그래. 우리는 사업상 파트너지. 그래 좋다. 원하는 게 있나?”
“많지.”
원하는 거야 많았다.
이제 와 느끼는 거지만 언럭키는 욕심이 많았다.
분명 작업장에 갇히기 전만 해도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건만.
점점 생활이 풍족해질수록 바라는 게 많아진다.
언럭키는 뭘 대가로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제파르의 태도를 보아하니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 것 같은데.
“혹시 이런 거 있나?”
언럭키가 인벤토리를 열고 성검을 꺼냈다.
-파지지직
새하얀 그 검은 잡자마자 손바닥에서 번개가 튀었다.
어둠 속성의 네크로 엠페러가 신의 성물을 쥔 대가였다.
단순히 쥐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정도의 번개.
잠깐 잡아 꺼내는 와중에도 HP에 꽤 타격이 왔다.
“이거랑 비슷한 수준의 물건 정도면, 내가 너와 동맹을 맺어줄 대가로 충분한 것 같은데.”
“허 참.”
제파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티펙트의 수준은 차치하고서라도, 지옥의 군주가 신의 성물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군.”
“쓸데없는 말은 됐고. 있어 없어?”
“없다. 내가 아무리 군주라도 그런 물건은 쉽게 가질 수 없지.”
“역시 그런가…”
“서열 5위 안쪽의 군주들이라면 하나씩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10위 바깥의 군주들에게는 그만한 아티펙트가 없다. 애초에 그건 최소 반신급 이상의 권능이 깃들어야만 만들 수 있는, 세계에 몇 안 되는 보물이니 말이다.”
언럭키는 아쉬움에 혀를 찼지만 납득은 했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은 언럭키도 물건으로 본 건 성검이 유일했다.
올마스터의 비전들은 스킬북 형태라서 이미 다 흡수해버렸고.
그 외에 에픽 등급은 아직 그 어떤 유저도 들고 있는걸 확인 못 했다.
‘숨기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진짜로 미발견된 물건일 수도 있지.’
행운의 무지개 능력을 지닌 그조차 하늘이 점지시켜줬을 경우에만 하나 얻는 게 겨우인 에픽 등급.
군주라도 없을 만했다.
“근데 그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군.”
“도발하는 거냐? 지금 네 상황에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인데.”
“아니. 해결책을 말해주는 거다.”
“?”
“지옥의 보물 중에는 ‘혼돈과 맹약의 계약적’이라는 물건이 있지. 효과가 뭔지 아나?”
“…글쎄.”
“너 같은 특정 속성을 지닌 자가 속성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보물이다. 쉽게 말해, 네크로맨서의 힘을 지닌 네가 그 성스로운 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뜻이지.”
“!”
언럭키의 눈이 크게 떠지자 제파르가 히죽 웃었다.
“내가 그 위치를 알고 있다. 이 정보면 동맹의 대가로 충분한가?”
“그야 물론…”
그 순간이었다.
-쿵!
-쿠르르릉!
성 전체가 흔들리는 듯, 거대한 진동이 멀리서부터 퍼져왔다.
제파르와 언럭키 일행이 다 같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순간, 부하 악마 한 마리가 밖에서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제, 제파르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중요한 손님이 와 계시는데 이게 무슨 소란이냐!”
제파르가 짜증을 내면 보통 휘하 악마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급박한지 그런 것도 없었다.
“레, 레그녹스가 쳐들어왔습니다!”
“…그 돼지 트롤이? 여기 뭐 먹을게 있다고 와?”
“모르겠습니다…다만 빨리 내놓으라면서 닥치는 대로 보이는 것들을 때려 부수고 있습니다.”
“내놓으라니? 뭘?”
“그건…저도 잘….”
악마는 혼란스러운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눈빛만 보면 꼭 복수에 미친 도살자 같긴 했습니다.”
“식탐에 미친 돼지가 아니고? 그 놈이 먹을 것 말고 다른 거에 눈 돌아갈 수도 있나?”
“다른 곳으로 유인해보려고 음식을 던져봤는데 거들떠도 안보더군요.”
“…그건 좀 충격적이군.”
그 트롤이 음식에 정신이 안 팔리다니.
제파르는 오래 사는지 보니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고민에 빠졌다.
“복수라…레그녹스가 무슨 복수를 할 게 있다고 내 영토에 온단 말이냐.”
레그녹스는 군주급의 강자.
멀쩡할 때면 모를까, 지금은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칼리스먼이 언럭키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속삭였다.
“이봐. 너 찾아온 거 아니냐?”
“…쉿.”
언럭키가 칼리스먼의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