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85
* * *
“결국 이렇게 됐군.”
바닥에 떨어진 제우스의 입에서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스가르드.
제아무리 몸부림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최강의 길드.
제우스는 그들과 싸우는 걸 포기했다. 아스가르드는 올림포스로서도 어쩔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라그나로크를 떠올렸다.
아스가르드를 꺾을, 거인들의 힘을.
하지만 결국 자신은 땅 위에 드러누웠고 아스가르드는 자신을 잡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결국 이 신세였다.
“못났다, 못났어…….”
제우스의 시선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올라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창들이 떨어져 내렸다.
푹, 푸푸푹-.
수십 개의 순백의 창이 제우스의 몸에 박혔다.
온몸의 마력이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이랭커의 마력을 구속하는 아이템이 무려 수십 개였으니,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그와 싸우던 헤라클레스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발키리들을 바라보았다.
“헤라클레스님 되십니까?”
구릿빛 피부의 여전사가 다가왔다.
은빛 갑옷으로 무장한 발키리들의 수장을 향해, 헤라클레스는 날 선 목소리로 답했다.
“이건 아스가르드에서 낄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우스에 대한 처분을 원하신다면, 직접 손을 쓰셔도 괜찮습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올림포스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이 싸움은 어디까지나 올림포스의 것이다.
발키리들은, 그리고 아스가르드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우스에 대한 처분은 가장 먼저 헤라클레스에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하지만 그의 숨통을 끊는 게 아니라면, 신병은 저희 쪽에 인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이유로?”
“살아 있는 제우스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저희 아스가르드뿐이니까요.”
헤라클레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죽은 후라면 모를까, 살아 있는 제우스는 언제든 이 탑의 큰 화근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는 그럴만한 힘도, 지식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를 죽일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헤라클레스.”
발키리의 말에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수십 개의 창이 몸에 박힌 제우스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
전장은 조금씩 정리되었다.
포세이돈은 다시금 발키리들에 의해 아스가르드로 끌려갔다.
헤라클레스에 의해 전투 불능이 된 제우스의 병력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전쟁은 끝났다.
“큰일을 해냈군.”
유원에게 다가온 토르는 묠니르를 어깨에 걸친 채 싱글벙글 웃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다.
아무래도 유원에 관한 소식을 이미 꽤 들은 모양이었다.
‘엮여서 좋은 건 없다.’
토르는 오딘의 아들이었다.
반가운 얼굴. 유원은 그와도 꽤 많은 전장을 누볐다.
하지만 지금 마주칠 얼굴은 아니었다.
“필요해서 한 일이다. 칭찬받을 거 없어.”
“필요해? 뭐가?”
토르의 시선이 유원의 손안으로 향했다.
“혹시, 그거?”
벼락.
제우스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
유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마주치는 유원을 보며, 토르는 픽 웃어 보였다.
“너무 경계하지 마라. 정당하게 취한 전리품을 탐할 만큼, 아스가르드는 파렴치하지 않으니.”
알고 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최소한 아스가르드에서만큼은 벼락을 탐내지 않으리라는 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던가.
그런 점에서, 아스가르드는 유원이 유일하게 믿고 있는 ‘가장 맑은 물’이었다.
단지,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시계태엽은 크로노스와 오딘이 함께 만든 물건이다.’
시간에 관한 능력을 지닌 크로노스였지만 시계태엽은 그 혼자 만들어 낼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이템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았으니까.
‘알게 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지만…….’
오딘과의 만남은 분명 계획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를 만나지 않고 일을 진행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엔 이 탑에서 오딘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영향력은 지나칠 만큼 컸다.
단지.
‘변수는 가능한 없는 편이 낫지.’
때가 아니다.
아스가르드와의 접촉은 몇 수 나중의 일.
지금은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게 좋다.
“싸우느라 피곤한데. 용건만 간단히 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궁금해서 말이다. 아버지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플레이어가 대체 누군가 해서.”
“아버지……?”
유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오딘?”
“너무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게 좋겠군.”
턱-.
꾸우욱-.
유원의 어깨에 손을 올린 힘이 강해졌다.
잊고 있었다.
나중에야 너무 함부로 불러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아스가르드에서 오딘이라는 이름은 성역과도 같았다.
“알겠지?”
“기억해 두지.”
“좋아. 말이 통하네, 이 친구.”
툭, 툭-.
토르는 움켜쥐었던 유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직후, 그는 품 안에 손을 넣어 뱃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아버지께서 주는 거다. 받아 둬라.”
유원은 토르가 건네는 뱃지를 살폈다.
익숙하게 생긴 문양이었다.
금색으로 반짝거리는, 큰 궁전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모양의 뱃지.
‘이건…….’
이름만 들어 봤지, 직접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황금 성의 징표.
성역, 발할라(Valhalla)에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입장표.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지?”
“초대장이다.”
“초대장?”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거든,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
주목할 만한 사건인 건 사실이었다.
무려 아스가르드와 같은 거대 길드 중 하나인 올림포스가 뒤집어진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10위권 안쪽의 하이랭커, 제우스가 속해 있는 큰 전쟁에서 살아남은 건 지금까지 알려진 유원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 놓기 충분했다.
“어차피 금방 올라올 거잖아? 올라와서 한 번 들리라고. 대접은 섭섭지 않게 해 줄 테니.”
“영입 제안이라면 달갑지는 않은데.”
“그냥 손님으로 모시고 싶은 거다. 정중히.”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만날 시기를 자신이 정할 수 있었다.
“그러지.”
유원은 뱃지를 받아 챙겼다.
발할라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이럴 때는 오딘의 엉덩이가 무거운 게 고마웠다.
‘이걸로 두 개째인가.’
비슷한 아이템을 얻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디아블로의 뿔.
41층의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유원은 41층의 시험을 통과하고, 디아블로의 분신과 녀석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이걸 어떻게 또 활용한다…….’
황금 성의 징표는 올림포스의 일을 해결하고 아스가르드에게서 얻은 일종의 보상인 셈.
단순한 아이템이 아닌 만큼,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온전히 유원의 몫이었다.
“그럼, 또 보자고.”
용건을 마친 토르는 몸을 돌렸다.
저 멀리서 발키리들이 포세이돈을 연행해 오고 있었다.
“친구.”
저벅-.
전장의 정리를 맡은 토르는 그렇게 발키리들을 향해 걸어갔다.
유원은 널찍한 토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손안에 들어온 황금 성의 징표를 바라보았다.
‘친구라…….’
제 딴에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유원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오딘의 아들에게 이런 말도 다 들어 보네.’
과거로 오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유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징표를 인벤토리 속에 집어넣었다.
* * *
올림포스의 침몰은 그 어떤 이동수단보다 빠르게 탑 곳곳에 퍼졌다.
주된 이야기는 하데스와 포세이돈, 헤라클레스의 반역이었다.
삼신의 분열.
왕좌를 계승한, 왕의 핏줄 헤라클레스.
소문이라는 뼈에 살과 가죽이 붙어 사실과 거짓이 섞인 또 다른 형태가 만들어졌다.
삼신의 분열이 아스가르드의 계획이라는 둥.
헤라클레스가 사실은 제우스의 아들이 아니라는 둥.
혹은, 사실 이 모든 게 제우스의 또 다른 그림이라는 둥.
하지만 그런 소문과는 상관없이 올림포스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그럼 결국, 살려서 보낸 건가?”
유원은 차 한 잔을 두고 헤라클레스와 마주 보고 앉았다.
장소는 전쟁이 벌어진 32층의 작은 집이었다. 전쟁터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으로, 싸움의 여파가 닿지 않은 곳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원래 묵던 오두막처럼 작고 허름한 장소.
그렇기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묵을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래. 그렇게 됐다.”
“죽일 수 없었나 보군.”
“모르겠다. 결심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그래도 부자지간이라는 건지. 선택을 못 내리고 있으니, 데리고 가 버리더군.”
한 순간에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이라 지시한 아버지.
분명 어머니 알크메네에 대한 애착이 깊은 헤라클레스에게는 둘도 없는 원수였다.
하지만 적어도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수천 년의 긴 시간 동안 아버지였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선택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너답군.”
“뭐가?”
“우유부단한 거.”
헤라클레스는 유원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난 거인 학살자다. 백만에 달하는 거인족을 죽인. 우유부단이라니, 그런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괜찮았냐?”
헤라클레스의 눈이 커졌다.
괜찮았냐니.
잠시 대답이 없는 헤라클레스에게, 유원이 말을 덧붙였다.
“계속 거인들을 죽이면서, 후련했는지 묻는 거다.”
“……후련?”
“아마 아니었을걸. 내가 처음 본 너는, 그렇게는 안 보였거든.”
“어떻게 보였는데 그러지?”
“얼른 다 끝내고, 이 지옥에서 도망치고 싶어 보였다.”
알크메네의 복수.
그것은 헤라클레스가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하는 숙제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헤라클레스는 계속 망가져갔다.
“기간토마키아는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건, 거인 학살자의 완성을 위한 무대이기도 했지.”
“그게 무슨 소리냐?”
“전쟁이 아니었다면, 과연 네가 움직였을까?”
유원의 질문에 헤라클레스는 거인 학살자라 불렸을 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은 눈이 돌아가 있었다.
알크메네에 대한 복수심. 거인들에 대한 적대감.
그로 인해 거인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주먹부터 휘둘렀던 건, 아마 ‘전쟁터’라는 판이 깔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에도 난,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던 건가.’
전쟁.
헤라클레스는 그 속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싸움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고.
거인들은 올림포스의 적이며, 언젠가 탑에 더 큰 재앙을 일으킬 존재들이라고.
그렇기에 헤라클레스는 거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수 있었다.
복수라는 걸, 비로소 실천할 수 있었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기간토마키아를 이용했던 것이다.
“혹시 후회되냐? 제우스를 죽이지 못한 게?”
“조금은.”
“그럼 지금이라도 찾아가 봐라. 아마 지금이라도 아스가르드는 제우스의 목을 네게 건네 줄 테니까.”
“됐다. 이미 힘도, 꿈도, 미래도 모두 잃어버린 아저씨.”
더 이상 헤라클레스는 제우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부자 간의 미련.
헤라클레스는 비로소 속에서 그것을 끊어 냈다.
“여기까지 하고 싶다. 딱 여기까지만.”
제우스는 모든 걸 잃었다.
반드시 죽음이어야만 복수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면, 그건 이미 성공한 셈이다.
“이제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살 거다. 그러기엔 너무 피곤해.”
“그러냐?”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손오공처럼 표정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오래 봐 오다 보니 어느 정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복잡한 얼굴.
하지만 적어도 그 가운데 조금의 후련함은 섞여 있었다.
‘그거면 됐지, 뭐.’
제우스가 죽건 살건.
유원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헤라클레스의 마음이었다. 유원은 가능한 그가 속에 담아둔 짐을 털어 내길 바랐다.
그는, 자신의 친구였으니까.
“넌?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헤라클레스는 유원이 탑에 들어온 후 꽤 오랫동안 올림포스와 싸워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물었다.
긴 싸움이 끝났다.
어쩌면 앞으로 유원의 행보에 따라 이 탑이 또다시 흔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부터 만나 봐야지.”
“아저씨? 헤파이스토스 형님?”
“그래.”
유원은 잠시 인벤토리 속에 넣어 둔 벼락을 떠올렸다.
세 개의 조각을 모두 모았다.
올림포스 부수기에 대한 논의가 끝날 무렵.
불쑥, 헤파이스토스가 했던 말이 있었다.
“만약 조각을 모두 모으면, 반드시 내게 가져와라.”
그때의 헤파이스토스의 눈빛을 유원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대장장이로서의 욕심과 열망.
그 불같은 눈빛은 유원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약속했거든.”
비록 이 시대의 헤파이스토스는 아니지만.
“내가 최고의 아이템을 만들어 줄 테니.”
“아저씨랑, 나랑.”
이 시대에서나마, 그 약속을 지킬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