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94
웅, 웅-.
주먹과 함께 뻗어 오는 거대한 마나의 물결.
순간 고민했지만 유원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
화안과 감각지대, 헤르메스의 발걸음.
연습해야 할 세 가지 능력 외에는 이번 싸움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규칙을 깨는 순간, 지금 이 싸움은 훈련이 아닌 단순한 애들 싸움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화아아악-!
부아르의 주먹과 함께, 마나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덮쳐 온다.
그 파도에 빠져들기 전에 저것을 뚫고 나갈 방향을 읽어 내야 한다.
[‘화안’이 길을 읽습니다.]확장된 감각 속.
시간이 느리게, 더 느리게 흘러간다.
머리의 과부하는 그만큼 더 가속됐지만 그만큼 판단을 내릴 시간은 늘어나고, 눈을 통해 보는 시야도 명확해졌다.
마나의 흐름이 피부로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밀려드는 마나의 물결 속, 파고들 점이 보였다.
‘여기다.’
유원은 검을 들었다.
점은 아주 작았다.
또한, 파도가 움직이면서 함께 움직였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이 거대한 파도를 꿰뚫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적중시켜야만 한다.
유원은 파도를 피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검을 있는 힘껏.
내지른다-
* * *
슈아악-.
칼끝이 뻗어 오는 게 보인다.
찰나의 시간 속, 부아르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받아친다고?’
유원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의 마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 그저 힘 하나만으로 자신의 주먹에 맞서고 있었다.
‘거인족보다도 더 무식한 놈이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힘에서는 자신이 앞서던 상황.
이리저리 피하는 걸 잡아 보겠다고 거기에 무리해서 힘을 끌어올린 것인데, 유원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면 승부를 해 왔다.
승자가 누가 될지는 부딪치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오빠-!”
깜짝 놀란 뉘아르가 소리쳤다.
자칫 유원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르파를 볼 면목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부웅-.
부아르의 주먹이 뻗어졌다.
‘이미 늦었어.’
그 순간.
츠앗-.
거대한 마나의 파도 속으로, 얇은 선 하나가 끼어들었다.
쿠구구구-.
전방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처럼 뻗어가던 막대한 마나의 기파가 갈라졌다. 마나의 흐름 속으로 끼어든 얇은 선은, 순식간에 우르파의 옆을 지쳐 나갔다.
“뭣…….”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뻗어지는 주먹을 회수할 순 없었다. 우르파는 바로 코앞으로 다가오는 선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어떻게.
이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뚫고 들어온 걸까.
스읏-.
부아르가 본 ‘선’은 유원의 검이었다.
주먹을 피하고, 주먹과 함께 뻗어진 거대한 마나의 파도를 뚫어내고.
유원의 칼끝이 부아르의 목 아래에 들어와 있었다.
“…….”
“…….”
“와…….”
주위의 거인들은 침묵하거나,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유원이 부상을 입을 걸 걱정하던 뉘아르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부아르와 함께 유원과 싸우고 있던 당사자였으니까.
‘대체 뭐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패널티를 감수한 부아르의 일격. 거기에 맞서, 유원은 검을 찔렀다.
터무니없이 약한 공격이었다. 분명 바위와 계란이 부딪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바위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스윽-.
부아르가 꼼짝도 하지 않자 유원은 목에 겨누었던 검을 치웠다.
이제 다 끝난 싸움이었다.
“흠…….”
유원의 눈이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눈앞이 어지럽게 흔들렸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성공했네.”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부아르를 상대로 승리했다.
거신의 핏줄.
게다가 자신보다 훨씬 상위 층계에 올라간 플레이어.
어느 정도 운이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런 부아르를 상대로 마나와 스킬을 거의 쓰지 않고 승리했다는 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였다.
“져, 졌다.”
부아르는 뒤늦게 패배를 시인했다.
칼이 목까지 다가올 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으니 이건 자신의 완벽한 패배였다.
“그래도 너희는 좀 낫다.”
덕분에 조금 피로한 수준까지 화안과 감각지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헤르메스의 발걸음을 사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오늘처럼 많이 쓴 적은 처음이었다.
랭커를 상대할 일이 없었던 유원에게 부아르 뉘아르 남매는 무뎌져 있던 감을 끌어내기 딱 좋은 상대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유원이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던 훈련에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부아르와 뉘아르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유원의 손을 바라보던 부아르는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나야말로.”
꽈악-.
손에 들어간 부아르의 힘에서 참을 수 없는 오기가 느껴졌다.
“잘 부탁한다.”
* * *
열흘이 지났다.
지난 열흘 동안, 유원의 일과는 매일 똑같았다.
싸움.
그리고 또 싸움.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부웅-.
샥, 샤샥-.
“뉘아르!”
“어!”
위로 도약했던 뉘아르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거구의 덩치, 그리고 두 다리에서 뿜어진 힘이 바닥을 찍으며 아담의 가지를 흔들었다.
원래 뉘아르의 덩치보다 훨씬 더 큰 힘이었다.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인가.”
탑의 플레이어라면 10층에서 모두가 많든 적든 무공을 배운다.
뉘아르의 기술은 무림계의 무공을 응용한 기술이었다.
“아직 안 보여 준 기술이 더 있었나 보군.”
유원의 검이 뉘아르의 허리를 베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잡았다!”
열흘 전 유원의 손에 쓰러졌던 거인, 콴트가 유원의 등을 향해 메이스를 내리친다.
슈악-.
꽝-!
메이스는 헛발이었다.
바닥을 내리친 메이스. 어느 방향으로 피했을지는 뻔했다.
“불칸, 다리울!”
“그래!”
방향을 예상하고 있던 불칸과 다리울이 함께 움직였다.
거의 유원과 동시에였다.
불칸은 유원이 뛰어오른 방향으로 향했고, 다리울은 유원이 한 번 더 도약할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부아르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불칸, 다리울과 마찬가지로 허공으로 뛰어오른 유원을 향해 날아들었다.
제아무리 허공에서도 추가적인 도약이 가능하다 한들,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잡았다!”
불칸이 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섯 명 중 가장 덩치가 큰 불칸은 단숨에 유원의 허리를 움켜잡으려 했다.
그런데.
슷, 슷슷-.
유원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
“뭐야?”
“어디 갔어?”
사라진 유원을 쫓아 다섯 명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 유원을 쫓아 도약했던 불칸의 발목이 잡혔다.
콱-.
부우웅-.
허공에서 불칸의 몸이 위로 한 차례 더 높이 떠올랐다.
어느새 불칸의 발밑으로 도약해 내려간 유원이, 그의 발목을 잡아 휘두른 것이다.
“으아아아!”
거구의 덩치가 휘둘러지자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흉기가 되었다.
퍽, 퍼퍽-!
“끅!”
“컥!”
휘둘러진 불칸과 부아르, 다리울이 부딪쳤다. 뉘아르는 겨우 사정 범위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탁-.
위로 뛰어올랐던 유원이 바닥에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뉘아르와 콴트가 움직였다.
웅, 웅웅-.
뉘아르의 주먹에 마나가 감돌았다.
무식한 힘이 깃든 주먹은 대기를 흔들며 유원에게 뻗어 갔다.
구구구구-.
부아르와 같은 기술.
파도가 되어 밀려들어오는 마나는 촘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피할 곳도, 파훼할 점도 보이지 않았다.
뒤쪽에는 콴트의 메이스가 있었다. 유원은 방향을 틀었다.
방향은 콴트가 있는 쪽이었다.
스윽-.
유원의 칼끝이 움직였다. 가운데 있던 유원이 사라지고, 유원의 칼끝이 움직여 메이스의 방향을 살짝 틀어 냈다.
그러자.
쩌엉-!
유원의 검과 콴트의 메이스가, 뉘아르의 주먹과 함께 부딪친다.
‘내 힘을 이용해서……?’
콴트는 어느새 유원과 나란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뒤늦은 발견이었다.
콰드득-.
“끄아아아아!”
팔꿈치로 내리친 콴트의 팔목이 부러졌다. 팔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콴트를 뒤로하고, 유원이 뉘아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웅, 붕-.
다섯 명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뉘아르였다.
그녀는 정면으로 달려든 유원을 향해 두 주먹을 휘둘렀다. 몇 초 사이 뻗어진 주먹을 몇 번이나 피해 냈지만, 유원은 결국 뉘아르에게 멱살을 잡혔다.
“으라앗-!”
기합성과 함께 뉘아르가 그대로 유원의 몸을 들어 올려 바닥에 내팽개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유원의 몸이 들어지질 않았다.
묵직-.
무거웠다.
분명 자신에 비해 어린애처럼 작은 유원이, 깃털처럼 가벼워야 함에도 무거워서 들리질 않았다.
“나도 해 봤다.”
스윽-.
그 짧은 사이, 거리를 좁혀 온 유원의 검이 뉘아르의 목에 닿아 있었다.
“천근추.”
천근추는 특별한 스킬이 아니었다.
힘을 한쪽에 실어, 무게를 키우는 무림의 기술 중 하나였지.
방금 전, 뉘아르가 쓰는 걸 보고 한 번 써 본 건데 생각보다 그게 괜찮은 수로 작용한 것이다.
“…….”
뉘아르는 허탈한 듯 몸에 힘을 풀고 주먹을 아래로 내렸다.
싸움이 끝났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다른 거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거나, 콴트처럼 부상을 입어 신음을 흘렸다.
뉘아르는 어이없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제 다섯 명도 쉽게 이기네요.”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승부가 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싸움이 시작되고 불과 몇 분 만에 다섯 명이 모두 바닥을 뒹굴고 자신은 목에 칼이 들어와 있었다.
“열흘 전이랑은 딴판이에요.”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두 명으로도 할 만하다 싶었다.
자신들 두 남매가 함께 싸우면 종이 한 장 차이로 닿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커져 갔다.
그리고 그때쯤, 유원이 제안했다.
“한 명을 더 늘려 보지.”
지원자는 콴트였다.
혼자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그들 남매와 함께 유원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기는 건 늘 유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그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지는 않은데…….”
유원은 늘 그랬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명이면 충분할 것 같다가도, 막상 싸움이 끝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건 세 명이 되고, 네 명이 되고서도 다르지 않았다.
“익숙해지고 있는 건가요?”
“익숙해져야 하는 스킬이 하나 있어서.”
유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뉘아르를 더 허탈하게 만들었다.
유원이 마나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분명 다른 스킬도 여럿 있을 건데, 유원은 그것을 쓰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스킬을 쓰게 하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럼 대체, 제대로 싸우면 얼마나 더 강해지는 거지?’
몇 번씩이나 떠올린 생각.
꼭 그 끝을 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조금만 쉬고 다시 해 보죠. 아니면 이번엔 한 명을 더 늘려 볼까요? 여섯 명으로.”
이번에도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는 달랐다.
“아니.”
충분히 땀을 흘린 유원은 몸을 돌렸다.
“이제 그만하지.”
“예? 왜요?”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유원은 이제 막 2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였다.
단지 실력 때문에 싸울 때마다 그것을 망각하게 될 뿐이었다.
“너희도 잘 쉬어 둬라.”
유원은 특히,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크게 다친 콴트를 보며 말했다.
“큰 싸움이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