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95
* * *
아침이 밝았다.
유원은 큰 산짐승의 고기를 뜯었다. 다 함께하는 식사 자리였다.
“이제 내일이지? 시험이.”
부아르는 아쉬운 투였다.
한 번도 유원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도 아쉬웠지만,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조금씩 정이 쌓인 것도 컸다.
“그래.”
“끝나고 나면 다시 들를 거냐?”
부아르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나면 언젠가는.”
유원은 빈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20층에 다시 오게 되면, 그래서 이곳이 다시 생각나면.
조금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 정도 찾아올 생각은 있었다.
“그래도 완전 정이 없진 않네. 말하는 건 영 싸가지 없는 게.”
“밥 먹어, 밥.”
퍽-.
뉘아르가 옆에서 고기로 부아르의 머리를 때렸다.
그래도 동생 말은 잘 듣는 부아르였다. 뉘아르는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숙여 유원을 보았다.
“미안해요. 오빠가 아직 철이 없어서…….”
“괜찮다.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도 아니고.”
“그렇게 느끼셨으면 다행이고요.”
우적, 우적-.
부아르는 평소처럼 많은 양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유원도 적게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거인족의 식사량을 따라갈 순 없었다. 불칸 같은 경우에는 아예 유원보다 큰 고깃대를 잡고 뜯을 정도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부아르가 막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분명 너, 바다의 돌을 찾고 있다지 않았나?”
유원이 이곳에 오고, 거인족 플레이어들과 대련을 하느라 잊고 있던 이야기였다.
바다의 돌.
20층의 세계에서는 거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아이템.
실존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 아이템을 찾기 위해, 유원은 거인족에게 접촉했다.
“그랬지.”
“그건 어떻게 된 거냐? 시험을 치르고, 다음 층으로 넘어가면? 다시 아래로 내려오려고?”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부아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바다의 돌은 찾을 거다.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 전에.”
“아까 너 분명, 오늘 시험을 치를 거라고…….”
말을 하던 부아르의 눈이 커졌다.
유원이 방금 전에 한 말도 까먹는 바보천치가 아니라면 지금 하는 말의 의미는 하나였다.
“혹시 시험에?”
20층의 시험과 바다의 돌이 관련이 있다는 것.
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었다.
“어르신도 알고 계시냐?”
“대충은.”
“하…….”
부아르의 입에서 한숨이 뱉어졌다.
“그게 진짜로 우리랑 관련이 있는 거였나…….”
거인족이 바다의 돌을 가지고 있다.
꽤 오래전부터 세간에 떠돌던 헛소문이었다. 그 소문으로 인해 거인족은 수많은 플레이어와 랭커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바다의 돌을 내놓으라고.
그건 어디에 있는 거냐고.
아는 게 있다면, 다 말하라고.
“너희 아버지가 거신 중 한 명이라면 아마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클 거다. 말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냐?”
“중요하다.”
“그럼 소문대로 그냥 우리가 차지하면 될걸, 왜…….”
“바보야?”
뉘아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일 시험에 참여한다는 게 뭐겠어? 바다의 돌이랑 시험이 관련이 있다는 거 아니야?”
“그런 거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의 돌.
다른 이름으로는 해신석, 트라이던트의 조각으로 불리는 아이템.
그 아이템은, 20층의 시험과 관련이 있었다.
“그럼 왜 어르신이 널 찾은 건데?”
“내가 제일 세니까.”
주저 없이 나온 대답에 부아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건 콴트와 불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만약 ‘20층’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놓고 본다면, 유원은 최강의 플레이어 가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랭커에 근접했을지도…….’
부아르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돌.
기간토마키아가 끝나고 천 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거인족을 괴롭혀 온 전설이었다.
어쩌면 눈앞에 있는 이자가, 그 전설을 끝낼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르신도 너무하시는군.”
팅-.
콴트는 들고 있던 고깃대를 신경질적으로 접시 위에 떨어뜨렸다.
“그럼 다 알면서 지금까지 침묵하셨다는 거잖아? 그 허무맹랑한 전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통 받는지 아시면서.”
“콴트.”
“그렇잖아? 내가 밖에서 그거 때문에 시비가 걸린 게 몇 번인데? 썅, 죽을 뻔한 적도 있었어!”
콴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깟 돌멩이 하나쯤, 그냥 줘 버렸으면 되잖아! 애들 안전보다 그깟 보물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어?”
거인족은 탑을 오르며 크고 작은 시비에 휘말린다.
그 큰 덩치에 압도되어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인족의 사정을 잘 알고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오는 시비 중 반절은, ‘바다의 돌’을 얻어 낼 목적이었다.
콴트의 외침에 부아르와 뉘아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우르파를 두둔하고 나섰을 두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할 말이 없었다.
콴트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실제로도 두 사람이 유원과 처음 만났을 때도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시비가 걸렸던 상황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돌멩이 하나가 뭐라고 대체, 어르신은……!”
“잘하신 거다.”
식사를 끝낸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키였지만 눈높이는 콴트가 더 높았다. 그는 분노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유원을 노려보았다.
“잘한 거라고?”
“그래.”
“우리 일족도 아닌 게,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
“그게 넘어갔으면, 너흰 다 죽었을 거다.”
유원은 몸을 돌려 던지듯 말했다.
“멸족보다는 낫지.”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쾅-.
콴트가 몸을 날렸다.
위로 높이 날아든 콴트가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다섯 명이서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잡지 못했던 상대였다.
콱-.
부우웅, 쩌억-!
“컥!”
유원이 콴트의 멱살을 낚아내 바닥에 내다 꽂았다.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인 유원은 바닥에 고꾸라진 콴트를 보며 물었다.
“그러는 너는? 우르파 어르신에 대해 뭘 알지?”
한심하다는 듯 콴트를 비롯한 거인족 어린이들을 쳐다본 유원이 다시 몸을 돌렸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모르면 입을 놀리질 말아야지.”
저벅, 저벅-.
한바탕 자리를 뒤집어 놓은 유원은 그 길로 걸음을 옮겼다. 부아르는 유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콴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괜찮냐?”
“으으…… 하여간 힘 하나는 무식하게 세 가지고…….”
“힘 하나만은 아니지. 그냥 힘만 따지면 내가 저 녀석보다 세.”
“됐고, 나 좀 일으켜 주라. 등이 잘못됐는지 힘이 안 들어가.”
“한심한 새끼.”
부아르는 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겨우 부아르의 힘을 빌려 일어난 콴트는 앓는 소리를 하며 유원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지?”
“또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뭔 짓거릴 해도 안 먹힐 거니까.”
“내가 애냐?”
“애새끼만도 못한 놈이지.”
“끙…….”
“그래도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우르파 어르신을 찾은 것도 그렇고, 아까 한 말도 그렇고.”
바다의 돌이 넘어갔으면 거인족이 멸족했을 거라던 말.
그 말은 부아르를 비롯한 거인들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어쩌면 정말 우르파라면, 그 사실을 알고서 사실을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르신께서 우리에게 뭘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식사 자리에 뜻하지 않은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
* * *
유원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세로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침대와 옷가지를 걸어 둘 봉, 협탁이 전부인 방.
지난 열흘 동안 유원이 지낸 공간이었다.
풀썩-.
유원은 침대 위로 뛰어올라 몸을 눕혔다.
워낙 크기가 큰 탓에 침대의 높이만 해도 유원의 키보다 높았다.
지끈-.
아직 머리가 아팠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화안과 감각지대를 끊임없이 사용한 부작용이 남아 있었다.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는 가능한 자제해야겠군.’
시험을 치르기 전, 컨디션 관리는 필수였다.
감각지대와 화안의 동시 사용은 시험 시작 때까지 금물이었다.
웅-.
퀴네에를 낀 오른손이 떨렸다.
유원은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퀴네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파지지, 파지-.
퀴네에가 스스로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시작되는 현상이었다.
“……또 이 난리군.”
유원은 마나를 움직여 오른손을 통해 흘려보냈다.
그렇게 흘러든 마나는, 퀴네에에서 흘러나온 마나를 강제로 짓눌렀다.
츠츠, 츠-.
저항은 크지 않았다.
다행히 퀴네에는 금방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탄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트라이던트의 조각 때문인가?’
트라이던트.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상징이자, 그의 무기.
트라이던트의 조각은 퀴네에의 본질인 흑신석과 비슷한 아이템이었다. 어쩌면 얼마 전, 유원이 본 ‘눈’의 다른 부분일지도 모른다.
‘20층에 올라온 이후부터 퀴네에가 반응했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 번 정도로 주기가 길었지만, 이제는 점점 간격이 짧아졌다.
여러 이유들이 떠올랐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하나였다.
“……정말로 서로 반응하는 건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이 생각이 들었을 때, 유원은 황당하지만 그럴듯한 가설을 떠올렸다.
‘퀴네에를 드x곤볼 레이더처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웃긴 생각이었지만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세 가지 조각이 원래 하나였다면, 조각들이 서로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니까.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은 꽤 있었다.
때문에 유원은 방에 들어온 후부터 줄곧 퀴네에를 다루는 법을 연습했다.
터무니없이 넓은 방은 수련용으로 쓰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꽈악-.
유원은 위로 뻗은 손을 움켜쥐었다.
생각해 보면 퀴네에가 완성되고, 지금까지 이것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사용법을 연습해 보긴 했지만 아이템의 효과를 최대치까지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게 이번 시험의 열쇠라면.’
유원에게 20층의 시험은 트라이던트의 조각을 얻기 위한 시험이었다.
만약 퀴네에가 그것을 위한 단서가 된다면, 그 방법을 조금 더 확실히 알 필요가 있었다.
유원은 눈을 감고 퀴네에에 집중했다.
‘눈을 떠라.’
츠, 츠츠츠-.
퀴네에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빛의 마나.
이번에는 퀴네에가 혼자 움직인 게 아니었다. 유원이 퀴네에를 사용해, 그것에 의지를 불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눈을…… 떠라.’
유원은 자신의 주위를 뒤덮었던 검은 벽과 정체 모를 노란색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것은 퀴네에 그 자체이자 ‘무언가’의 일부.
그리고 트라이던트의 조각, 즉 자신의 일부분을 되찾고자 하는 존재.
유원은 그것을 계속해서 찾았다.
시험이 하루 전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반응이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빠득-
인내심에 점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화륵-.
유원은 퀴네에를 향해 성화를 쏟아부었다.
“그만 쳐 자고…….”
그러자.
스으으으-.
처음 퀴네에를 손에 넣었을 때와 같은, 검은 벽이 유원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쩌억-.
유원은 코앞에 나타난 노란빛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일어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