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44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지만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2각이 흘렀다.
그때, 흘러넘칠 듯한 천둥번개를 품은 번개의 연못에 파도가 일었고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오른쪽 눈동자에서는 번개 문양이 빠른 속도로 번득였다. 1초에 수천 번은 깜빡이는 듯했다. 그리고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사방의 천둥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한제는 섬뇌족 성역에 완전히 진입했다.
그 순간, 섬뇌족 번개 연못은 격렬하게 울렸고 은빛 뱀과 같은 대량의 번개들도 춤을 추듯 이리저리 쏘다녔다.
섬뇌족
한제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 번개가 그의 발아래로 모여들어 체내로 녹아들었다. 한제는 뇌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체내로 녹아든 번개가 그의 오른쪽 눈에 응집되면서 눈동자의 번개 문양은 점점 또렷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제는 어느새 섬뇌족 번개 연못의 깊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그곳에는 천둥번개가 더욱 많았다.
천둥이 울리는 동안 퍼져나간 번개는 그물망처럼 주위를 뒤덮었다. 그 안으로는 누구의 눈빛도 누구의 신식도 파고들 수가 없었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묵묵히 호흡했다. 그의 전신을 뒤덮은 천둥번개는 점점 많아졌고 사방에서 수많은 번개가 몰려들면서 연못은 격렬하게 출렁거렸다.
한제의 기운은 소멸되듯 사라져가다가 결국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제 누구든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한제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이곳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녹아든 셈이다.
한참 뒤, 한 줄기 번개 문양이 한제의 감긴 오른쪽 눈에서 튀어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번개의 연못에 녹아들어 먼 곳으로 뻗어 나갔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그 번개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연못의 모든 천둥번개는 길을 내주었다.
★ ★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번개 연못은 거대한 고리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데 가장 안쪽 텅 빈 구역에는 열여섯 개의 수련성이 있었다.
이 수련성들은 멀리서 보면 번개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별처럼 보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원형 대형의 중앙에는 망가진 대륙이 하나 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붕괴한 것처럼 형태가 불규칙했고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자갈과 조각들이 떠돌았다.
조금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이 새카만 대륙이 바로 섬뇌족의 성지다.
대륙 위의 사당으로 허공에서 강림한 한 줄기 번개가 내리 떨어지고 있었다.
수만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이 번개는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을 수많은 색을 품었다. 여러 가지 색이 서로 교차되어 번개를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주위의 열여섯 수련성 중 하나인 황토색의 수련성에는 수없이 많은 동굴이 있었다.
수만 개에 달하는 동굴들의 크기는 다양했는데 성년이 된 섬뇌족이 한 명씩 들어가 수련을 하는 곳이었다.
섬뇌족은 성년이 되고 일정 수준에 이르면 세 개의 모성(母星)을 떠나 나머지 열세 개의 수련성으로 가서 각자의 동굴을 찾았다.
스스로 동굴을 만들기도 했고 누군가로부터 물려받기도 했으며, 다른 이로부터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섬뇌족 사람들은 서로 싸우더라도 죽이는 것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만약 살인이 발생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나, 죽이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런 잔혹하고 냉혹한 방식은 부족원들을 전사로 키워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약자는 도태되는 법이니까.
이 황토색 수련성에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하나 서 있었다. 가슴팍이 문드러질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멍한 얼굴로 평원 위를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땅을 보며 청년의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나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한스럽다. 수련자로 태어난 것이 한스럽다. 허나… 내가 섬뇌족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한스럽다!”
청년은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감정이 격앙되자 상처에서는 다시 피가 울컥 솟았다.
청년은 쓰게 웃더니 쓰러졌고 그대로 천둥이 번득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한층 슬퍼 보였다.
“나는 수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어!”
청년의 눈빛이 점차 흐려졌다. 한데 그가 갑자기 몸부림을 치듯 오른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득였고 그 상태로 미간의 번개 낙인을 움켜쥐더니 힘껏 뜯어냈다. 그의 미간에서는 섬뇌족의 표식이 완전히 뜯겨 나갔고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청년은 비참하게 웃었고 두 눈이 점차 감겼다.
그가 눈을 감은 순간, 허공에서 나타난 한 줄기 번개가 청년의 존재를 인지한 듯 살짝 멈칫거리다가 곧장 미간이 상처로 달려들었다. 허나 청년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번개가 미간에 녹아든 순간 흩어지던 청년의 혼백과 생기가 돌연 우뚝 멈추더니 빠르게 응집됐다.
미간의 상처와 가슴의 상처는 눈 깜짝할 사이 회복됐다. 미간에서는 번개 낙인이 다시 나타나 어스름한 빛을 번득였다.
한참이 흐른 뒤, 청년은 눈을 떴다. 그 눈에서는 더 이상 슬픈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서늘함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꿰뚫고 삶의 진정한 본질을 간파할 듯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청년이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체내로부터 발산됐다.
주위의 풀들은 감히 견뎌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쓰러졌다.
“꽤 괜찮은 몸이군.”
청년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이내 일어섰다.
강력한 수준이 체내에서 맴돌았고 사방에서 원력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수준은 이 육신의 원래 주인의 수준인 결단기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이한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제의 원신 일부가 방금 숨을 거둔 청년의 육체를 차지한 상태로 그의 본체는 번개의 연못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는 혼자서 섬뇌족 전체에게 대항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태고부터 존재해온 번개를 당장 흡수하려 했다가는 육신도 원신도 견뎌내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섬뇌족의 육신을 탈취해 그 번개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본디 온 세상의 번개를 통제할 수 있는 그라면 섬뇌족으로 위장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죽은 자의 몸이니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 아니, 오히려 나중에 내게 고마워하게 될 것이다.”
한제는 불멸의 번개를 흡수하면 굳이 이 몸에 욕심을 낼 이유가 없다. 바로 본체로 돌아가 떠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 몸의 주인은 육신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한제가 남겨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될 터였다.
육신에 새겨진 기억을 뒤져보니 청년의 이름은 우비로 섬뇌족의 평범한 수련자였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혼자 남아 힘겹게 결단기에 이른 뒤 홀로 동굴에서 수련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영맥 근처의 그 동굴은 제법 괜찮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욕심을 내는 자가 많았다. 결국 우비는 다른 강자에게 동굴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이후 2백 년간 그의 수준은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타고난 수명이 긴 섬뇌족이 아니었다면 진즉 죽어 없어졌을 터였다.
한데 지난 2백 년간 그는 같은 섬뇌족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더욱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동굴을 빼앗은 바로 그 원영기 수련자에게 붙잡히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그 동굴에는 뇌과지(雷果枝)가 한 그루 있었는데 원영기 수련자는 우비에게 그 뇌과를 심고 가꾸게 했다.
섬뇌족 사람들이 뇌과를 삼키면 낙인이 더욱 강력해지고 수명도 늘게 된다. 다만 뇌과를 무르익게 하려면 최소한 결단기에 이른 수련자가 수시로 천둥번개의 힘을 이용해 나무를 자양해야만 했다.
수준이 정체되어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던 우비로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상대가 아홉 개의 도과를 주었고 그중 하나를 삼킨 결과 엄청난 불행과 재난을 겪어야 했다. 만약 섬뇌족에 서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없었다면 진즉 죽어 없어졌을 터였다.
규칙 덕분에 살아남긴 했지만 엄청난 치욕을 당하고 중상까지 입은 데다가 수준을 거의 다 빼앗겼다. 그런 후에야 원영기 수련자는 우비를 내쫓았다.
우비의 기억 대부분은 이처럼 비참했고 하늘을 뒤덮을 법한 원한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나아가 섬뇌족 모두를 증오했다.
여기까지 우비의 기억을 뒤진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부족의 낙인을 강화시키는 뇌과라⋯⋯.”
한제는 태고의 성신에서 수많은 수련자를 삼킨 결과 계내와는 확실히 다른 이곳만의 수련 방식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들은 경지를 수련하지 않고 모든 수준을 미간의 낙인에 응집시켰다.
이 낙인은 일종의 유산으로 그것이 강력해질수록 수련자의 수준도 높아지는 식이었다.
한제는 미간의 번개 낙인을 만지작거렸다. 자기 자신을 응집시켜 만들어낸 이 낙인은 섬뇌족의 낙인과 비슷해 보였지만 사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섬뇌족의 낙인은 불멸의 번개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비유하자면 모든 섬뇌족 사람들의 낙인은 이 번개로부터 갈라져 나온 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한제의 낙인은 그가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잔가지가 아닌 불멸의 번개 자체에 가까웠다.
“도과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어. 우비는 수준이 낮아 중요한 문제는 잘 알지 못한다. 그 원영기 수련자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우비의 기억 속 동굴로 향했다.
이곳은 매우 큰 수련성이었다. 허나 한제는 순간이동을 사용하지 않고 날아서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육안과 신식으로 주위를 관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의 전방에 세 갈래 빛이 나타났다. 일남이녀 중 백의의 사내는 준수했고 두 여인도 매우 아름다웠다. 가장 수준이 높은 사내는 결단기 후기, 두 여인은 결단기 초기 수준이었다.
비검에 올라탄 채 담소를 나누며 이동하던 그들 중 사내가 멀리서 날아오는 한제를 발견했다.
물론 한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사내가 미간을 와락 구기며 외쳤다.
“우비, 이리 와라!”
한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신식을 통해 이 수련성을 하나하나 파악하며 이들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우비, 네놈이 정신이 나갔구나! 감히 내 말을 무시하다니!”
백의의 사내는 서늘한 눈빛으로 한제를 뒤쫓으며 저물대에서 전광이 번득이는 비검을 꺼내 힘껏 던졌다.
비검은 사내의 손을 떠나자마자 전광을 번득이며 달려들었지만 한제 근처에 이르자 바르르 떨며 우뚝 멈춰 섰다.
한제는 신식을 거두고 천천히 돌아서서 서늘한 눈으로 백의의 사내를 마주보았다.
“내게 한 말인가?”
단지 짧은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허나 이 목소리는 서늘하게 번득이는 한제의 눈빛과 합쳐져 거대한 폭풍이 된 듯 사방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