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05
여섯, 일곱…
대제성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나 이들이 탄성을 내지른 것은 한제가 타오르는 향 아래서 일곱을 셀 때까지 버텨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향에 붙은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2대 주작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것은⋯⋯?”
사묵자 역시 표정이 급변했고 운락 대사는 오른손의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금 빠르게 결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의 향이 꺼졌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2대 주작은 바들바들 떨리는 심신을 진정시키며 불이 꺼진 향을 바라보았다.
“향이 꺼지다니, 이럴 수가⋯⋯.”
“일곱… 일곱이었어.”
“아니야, 향이 꺼졌어. 어쩌면 영원히 버틴 걸지도 모르지.”
한데 그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의 환계를 의미하는 두 번째 향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건드린 적 없었지만 두 번째 향에서는 분명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제는 인의 환계의 하늘을 뚫고 그 너머의 무궁무진한 땅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수많은 균열이 있었고 그중에는 인의 환계로 통하는 것도 있었다.
한제는 곧장 그 균열로 튀어나왔다. 온몸을 뒤덮은 화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대지를 밝게 비추었다.
한편, 그 대지의 끄트머리 민둥산 꼭대기에는 가부좌를 튼 선비 차림의 중년인이 있었다. 두건 아래로 드러난 미간에 허상의 주작 낙인이 새겨진 이 사내는 두 눈을 뜨더니 기이한 눈빛을 번득였다.
“동족의 기운⋯⋯.”
한제가 나타난 순간 하늘을 뒤덮은 불바다가 격렬하게 번득이면서 파란색의 화염을 일으켰다. 이 화염은 눈 깜짝할 사이 온 세상을 채운 듯했다.
남색 화염이 뒤를 따르더니 두 화염은 서로 뒤섞였다. 뒤이어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색의 빛이 나타나 하늘을 뒤덮더니 마기에 가까운 보라색 화염이 됐다.
파란색과 남색, 보라색의 화염은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한제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혼백은 무너져 내리려 했으며, 체내에서는 갖가지 화염이 일어났다.
체내의 화염이 삽시간에 몸을 뚫고 나와 폭발했고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네 종류의 화염이 활활 타오르면서 육신을 갈가리 찢었다. 체내에 녹아들었던 주작 역시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불타올라 소멸됐다.
한제의 혼백은 무너져 내렸고 파란색, 남색, 보라색의 화염이 그 주위로 다가왔다. 일곱 가지 색깔의 화염이 한데 응집하자 마치 무지개가 하늘을 불태우는 것만 같았다.
주작 낙인의 중년 남자는 기묘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힘차게 뻗었다. 그러자 미간의 낙인이 돌연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일곱 빛깔의 화염을 향해 달려들었다.
같은 시각, 대제성의 첫 번째 향 아래 서 있는 한제의 전신은 일곱 가지 불빛으로 뒤덮였고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은 눈 깜짝할 사이 온몸을 뒤덮었고 급기야 그 틈으로 피까지 줄줄 흘렀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2대 주작은 곧장 날아가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는 두 번째 향에 오른손을 얹고는 신식을 주입했다.
남몽도존 역시 한 걸음 나섰다. 뒤이어 그의 온몸에서 남색 빛이 번득였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두 번째 향을 두드렸다.
한편, 지의 환계에서는 구전업겁이 한제의 혼백을 불사르고 있었다.
한데 그의 혼백이 막 흩어져 사라지기 직전에 세 갈래의 힘이 나타나 일곱 빛깔의 화염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 일곱 빛깔의 화염에서는 돌연 기이한 힘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뿜어져 나왔다.
무척 오래된 기운을 풍기는 이 힘은 일곱 빛깔의 화염 안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흘러나왔다.
중년 사내의 낙인은 이 기이한 힘에 닿자마자 1천만 리 바깥까지 튕겨나갔다.
잠에서 깨어난 듯한 그 기이한 힘은 어느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접근할 자격을 가진 이가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 저게 뭐지?”
2대 주작의 신식 역시 이 기이한 힘에 지의 환계 바깥까지 밀려났다.
남몽도존의 신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제성의 두 번째 향 아래에 선 2대 주작의 오른손은 허공으로 튕겨 올라간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 힘은 무엇이란 말인가!”
남몽도존 또한 두 손가락이 저릿한 느낌에 몇 걸음 밀려나며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허나 한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는 방금 그 엄청난 힘의 정체를 단박에 눈치챘다.
“천역주⋯⋯.”
남몽도존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몸을 돌려 이천매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번에도 무사할 것이다!”
한편, 운락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른손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거대한 향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비밀스러운 일들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 구름 위에 누워 있던 묘음도존이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번득였다.
‘수도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군!’
한제의 혼백이 완전히 불살라지려던 순간, 천역주가 나타났다. 봉계의 지존이 남겨두고 간 뒤로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천역주가… 그동안 한제가 심신을 수차례 뒤졌음에도 마치 실종된 것처럼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천역주가 이 순간 나타난 것이다.
그 순간, 일곱 가지 색깔의 화염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천역주의 기이한 힘에 빨려 들어가 불멸의 화염의 씨앗으로 변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갓난아이 주먹만 한 구슬 주위로 일곱 개의 씨앗이 맴돌았다.
뒤이어 흐릿한 허상이 나타났는데 일곱 개의 씨앗이 그 허상의 일곱 부위를 점했다.
허상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일곱 빛깔의 화염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거대한 폭풍이 됐다. 드디어 구전업겁의 마지막 관문이 강림한 것이다.
폭풍의 중심에서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하늘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온 세상이 색을 잃은 것처럼, 폭풍을 제외한 모든 것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흑과 백뿐이었다.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은색이었다.
두 가지 극단적인 색의 화염은 한제를 향해 응집하더니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일곱 빛깔의 폭풍과 한제를 짓눌러 버리려는 것만 같았다.
백색 화염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옴에 따라 두려울 정도의 열기가 일곱 빛깔의 폭풍을 불살랐다. 폭풍이 순간 회전을 우뚝 멈추자 백색 화염이 그 안에 녹아들면서 하나의 색을 더했다.
한제는 이제 여덟 빛깔의 화염에 둘러싸였지만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최후의 검은 화염을 바라보았다. 검은 화염으로부터 시작해 검은 화염으로 끝나는 구전업겁은 하나의 순환을 이루었다.
검은 화염이 달려든 순간,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콰쾅!
천지가 찢겨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검은 화염은 여덟 빛깔의 폭풍을 아홉 빛깔로 바꾸었다.
아홉 종류의 화염이 모두 나타나 엄청난 위력의 폭풍을 형성했다. 한제는 폭풍 속에서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휘날리고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체내에서는 일곱 가지의 불멸의 화염뿐만 아니라 흑과 백의 화염 역시 빠르게 응집되고 있었다. 백의 화염은 단전에 흑의 화염은 미간에 응집했다.
두 갈래의 화염까지 완벽하게 받아들인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콰쾅! 쾅!
사방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업의 윤회에 불을 붙여라!”
한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체내에서 아홉 빛깔 화염이 미간으로 모여들어 눈 깜짝할 사이 융합하더니 아홉 가지 색깔의 연꽃으로 변했다. 색깔이 서로 다른 아홉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이 만개한 순간, 아홉 가지 색깔을 띤 주작 한 마리가 그 안에서 나타났다.
“캬아아아아!”
주작은 연꽃 속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었다.
네 번째 각성을 알리는 주작명(朱雀鳴)이었다.
이 소리는 대제성에서도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절반 정도 타들어 가던 두 번째 향의 불이 멈추더니 아홉 빛깔을 발산하면서 대제성을 밝혔다.
2대 주작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향해 길게 웃었다.
‘으하하하! 녀석이 구전업겁을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업의 윤회에 불을 붙여 주작을 네 번째로 각성시켰군. 허나 주작을 완벽하게 각성시키고 허상의 화염의 경지에 이르려면 엄청난 화염의 힘이 필요하다. 속임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도와줘야겠어!’
2대 주작은 잔뜩 흥분한 눈으로 몸을 날리더니 수련자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틈에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아주 멀리서부터 광기 어린 포효가 들려왔다. 분노와 불굴의 의지가 담긴 이 포효는 2대 주작이 데려온 거대한 염룡의 소리였다.
“뭐, 뭐지?”
대제성의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란 눈으로 포효하며 몸부림치는 염룡을 바라보았다. 2대 주작은 염룡을 타고 향 위로 솟아올라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염룡의 머리에 앉은 딱지가 쩍 벌어지면서 폭포와 같은 피가 뿜어져 나와 타오르는 지의 향을 적셨다.
“쿠오오오!”
염룡은 극심한 고통에 눈물을 머금은 채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젠장, 가만히 좀 있어라! 저 녀석이 주작을 각성시키면 풀어줄 테니!”
2대 주작은 퍽 소리가 나도록 염룡의 몸통을 때리더니 한 줄기 화염의 힘을 그 체내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염룡의 머리에서는 더 많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허나 2대 주작의 말을 알아들은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를 악물고 스스로 더 많은 피를 짜내기 시작했다.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염룡이니 피도 당연히 많았다. 허나 2대 주작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 부분 고름집에서 난 피였다. 그곳의 피는 염룡의 정화를 더 많이 품고 있기에 훨씬 귀했고 양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용의 피는 떨어지자마자 향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무렵, 지의 환계에서는 한제가 아홉 가지 색깔의 연꽃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거대한 주작이 끊임없이 울면서 몸부림을 쳤다.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무궁무진한 불이 끊임없이 번득이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 주위를 뒤덮고는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는 한편 왼쪽 눈에서 화염을 번득였다. 아홉 가지 색상의 화염이 그 왼쪽 눈동자에서 회전했는데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화염의 회오리를 형성했다. 회오리 역시 아홉 가지 색상이었다.
하나로 합쳐진 아홉 개의 색, 주작의 네 번째 각성!
한제의 마음은 한없이 맑았다. 이미 세 번의 각성을 경험한 그는 주작이 한 번 각성할 때마다 화염의 힘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이전의 세 번과는 뭔가 달랐다. 주작의 네 번째 각성은 실체의 화염에서 허상의 화염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주작을 네 번째로 각성시킨 자는 단 넷, 1대 주작, 2대 주작, 3대 주작, 4대 주작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한제로 인해 그 수는 다섯이 되었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화작족 선조도 허상의 화염으로부터 얻은 한 줄기 힘을 지니긴 했지만 주작을 각성시키지는 못했다. 그가 허상의 화염을 손에 넣었다 해도 정통 주작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주작을 네 번째로 각성시키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화염의 힘이 필요했다.
한제가 올라탄 아홉 빛깔의 연꽃은 무궁무진한 아홉 빛깔의 화염을 발산했고 이 화염은 일제히 한제의 체내로 몰려들었다. 덕분에 한제의 왼쪽 눈에서 나타난 화염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캬오오오!”
한제의 뒤에서는 주작이 한층 더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하늘과 땅을 가르고 지의 환계를 진동시킬 정도로 우렁찬 소리였다.
‘아직 화염의 힘이 부족하다!’
고개를 번쩍 쳐든 한제의 몸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왼쪽 눈에서는 화염의 회오리가 튀어나와 주위를 맴돌며 화염의 폭풍을 형성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폭풍은 지의 환계를 파괴해버릴 것만 같았다.
하나가 된 아홉 개의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