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26
중년 문인이 냉소했다.
“여우같은 성격은 어디 안 가는군. 멀리서도 그 더러운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천문도(天門道) 성녀인 셋째 언니에 어찌 비할 수 있겠어? 아마 여태 처녀겠지? 선존에게 납치되어 꽤나 훌륭한 여인으로 자랐던데 안타깝게도 선존의 늙은 몸으로는 별다른 재미를 주지 못했겠지. 결국 그 예쁜 몸의 호사를 누리게 되는 것은 누가 되려나? 호호호!”
매혹적인 목소리는 까르르 웃으며 탁삼과 함께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백의의 문인은 서늘한 눈빛으로 차게 코웃음을 치고는 길을 떠났다.
★ ★ ★
한제는 오래된 무덤의 균열에 들어선 순간 한 줄기 전송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균열 안의 광경을 살피기도 전에 재빨리 수십 척을 물러나면서 결인을 그려 밝은 빛으로 몸을 감쌌다.
오래된 무덤인 만큼 더 신중하기로 결심했다. 더구나 자신보다 먼저 들어온 자들이 많을 테니 더욱 신중해야만 했다.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강력한 힘이 그의 몸을 뒤덮은 빛인 광영순과 충돌했다. 광영순은 그 힘을 그대로 튕겨냈다.
“윽!”
누군가가 낮게 신음하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것이 느껴졌다. 한제가 균열 안으로 진입한 순간 기습한 상대가 반격에 곧장 후퇴한 것이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이제야 사방을 또렷하게 살필 수 있었다. 이곳은 균열 밖과는 전혀 달랐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분명 다른 곳이었다.
균열 안으로 들어온 순간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구역으로 전송되는 듯했다.
하늘은 어두웠고 땅은 짙은 안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다처럼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안개는 꾸물거리면서 이따금 뭔가를 삼키려는 듯 음산한 아가리와 같은 시커먼 구멍을 드러내곤 했다.
허공에는 수많은 암석 조각이 떠 있었고 그 위에는 머리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저 앞에서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놀란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한제를 기습한 자였다.
하늘에는 수십 명의 수련자들이 떠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사방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상황을 파악했다. 이들은 서로 연합해 균열 안으로 들어온 이를 기습해서 빼앗은 것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더 멀리서는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수련자들이 암석 조각 위에 올라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암석 조각은 기이한 힘으로 둘러싸여 있어 누구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곳에 모인 수련자는 어림잡아 수백 명에 달했으나, 전혀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한제는 작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기습을 받은 그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위험한 곳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언젠가 더 큰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던 중년 사내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제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어 번개처럼 돌진했다.
세 번째 천쇠에 이른 중년 사내는 방금 자신의 기습이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지간히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도 기습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자신과 저 동료들은 어지간한 강자도 그렇게 처리해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런 강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따져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작았기에 이런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는 그 위압감을 미리 알아챌 수 있으니 그때는 기습을 멈추면 되는 것 아닌가?
‘한데 저자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도 아닌데 너무도 쉽게 내 기습을 피해냈다! 저 침착함과 힘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길함을 느낀 그는 뒤로 물러나던 와중 한제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곧장 이를 악물고 방향을 틀어 아래쪽의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에게서 도망치기란 힘들 것임을 직감하고는 차라리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더라도 안개로 뛰어드는 편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산전수전을 겪은 자만이 보일 수 있는 기민한 반응이었다.
한제는 한층 속도를 높여 중년 사내에게 돌진했다. 이에 안개가 있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중년 사내는 기겁을 했고 가슴을 두드려 원신의 피를 한 움큼 뿜어냈다. 혈둔술은 손실이 큰 대신 위력이 뛰어난 만큼 지금 상황에서는 효과적이었다.
‘제법이로군!’
상대의 빠른 분석과 과감한 결단력에 한제는 내심 감탄했다. 허나 저자는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한제는 정신술을 발휘하지도 붉은 검을 소환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술법이나 법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위력을 보여야 했다.
순식간에 결론을 내린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휘둘렀다.
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타난 역령인은 단숨에 주위에 있던 수련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허상으로 나타난 역령인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중년 사내에게 돌진했다.
이 무렵, 중년 사내는 혈둔술의 속도에 힘입어 거의 안개에 다다른 상태였다. 한데 그때 사방의 안개가 격렬하게 꿈틀거리면서 위쪽으로부터 어마어마한 힘이 강림하자 기겁을 했다.
쾅!
세상을 붕괴시킬 듯한 소리와 기세로 달려든 거대한 역령인이 곧장 안개에 떨어졌다. 그러자 안개는 빠른 속도로 꿈틀대며 퍼져 나갔고 움푹 팬 손자국이 생겨났다.
“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역령인은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고 안개의 바닥에는 손바닥 모양의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피 안개와 원신이 파멸되면서 남긴 원력이 흘러나왔다. 달아나던 중년 사내는 거대한 손바닥에 관통당해 흔적도 없이 소멸된 것이다.
설명하기에는 장황하지만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안개의 바닥에 남은, 소름 끼치는 손바닥 모양의 구멍은 점차 안개로 뒤덮여 사라졌지만 이 상황의 충격은 이곳에 모인 모든 수련자들의 마음에 새겨졌다.
모든 수련자들의 두 눈빛이 한층 신중하게 변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이들도 있었고 한제로부터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한편, 저 멀리 허공에 떠 있는 어느 암석 조각 위에는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잔뜩 겁먹은 눈으로 떨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의 목숨만 남은 봉멸족 소녀였다.
그녀와 봉천랑족 사내는 이곳에 휘말려 들어오면서 흩어지게 됐다. 사내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이 소녀는 한제와 같은 구역으로 떨어진 것이다.
모든 수련자에게 충격을 선사한 주인공인 한제는 정작 덤덤한 얼굴로 근처의 암석 조각으로 향했다. 폭이 약 1만 척 정도 되는 암석 조각 위에는 흉측한 머리가 하나 있었다. 감기지 않은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는데 누군가가 낙인을 파내어 간 듯 미간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하지만 낙인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한제는 이 머리가 고신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머리의 앞에는 길이가 30척에 달하는 거대한 깃발 하나가 꽂혀 있었다. 깃발은 생기를 잃은 듯 아래로 축 늘어진 채였다.
한데 한제는 암석 조각 근처에서 저항력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은 힘이었다.
한데 잠시 주위를 살펴보던 한제가 돌연 급변한 얼굴로 몸을 홱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하늘에서는 반짝이는 빛과 함께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한제를 기습하려다 실패한 탓인지 이번에는 누구도 달려들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사람은 백의를 입은 여인이었다.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은 아름다웠으나 그 안에는 서늘함이 어려 있었다.
한편, 그녀를 본 한제는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그녀의 외모가 균열 밖에서 보았던 중년 문인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백의의 여인 역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순간, 이 오래된 무덤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콰르릉!
어두운 하늘에서 먹먹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이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분노의 포효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안개로 이루어진 대지는 한층 더 격렬하게 꾸물거렸다. 수없이 많은 용들이 그 안에서 몸부림이라도 치는 것만 같았다.
한편, 태고 성신에서는 안개 속에 나타났던 균열이 급속도로 맞물리더니 완전히 닫혀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짙은 안개만이 드리워져 있었다.
잠시 열렸던 오래된 무덤이 그렇게 닫혀버린 것이다.
균열이 사라진 순간, 무덤 안의 한제는 더없이 강력한 위기감이 심신에서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 아래쪽에서 격렬하게 꿈틀대는 안개 속에서 폭이 1백 척에 달하는 안개의 기둥이 회전하며 솟구쳐 올랐다.
“크아악!”
“컥!”
안개의 기둥을 미처 피하지 못해 휩쓸린 수련자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숨을 거두었다. 그들의 미간에 새겨져 있던 숫자 낙인은 번득이는 문양이 되어 어딘가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주위에 모인 수백 명의 수련자는 혼란에 빠졌고 허공에 떠 있던 암석 조각 중 일부는 저항력을 잃었다.
세 사람, 세 사람, 또 세 사람
총 아흔아홉 개의 암석 조각이 저항력을 잃은 순간, 안개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기둥에 닿은 수련자들은 단숨에 죽어버렸고 그들의 미간에 새겨져 있던 숫자 낙인은 문양이 되어 허공에 떠올랐다.
한제의 아래쪽에서도 안개 기둥이 튀어나왔다. 이에 한제는 재빨리 힘을 잃은 암석 조각 중 하나로 올라탔다.
그의 두 발이 암석 조각에 닿은 순간, 안개 기둥이 암석 조각의 가장자리를 스치며 솟아올랐다. 하지만 한제는 무사했다.
주위에서는 수많은 수련자가 한제와 같은 선택을 했다. 하지만 저항력을 잃은 암석 조각은 아흔아홉 개뿐인 반면 수련자는 수백 명이었기에 암석 조각 하나에 여러 명이 올라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어느 암석 조각 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올라서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불쑥 솟아오른 안개 기둥이 눈 깜짝할 사이 그 암석 조각을 뒤덮었다. 그러자 그 위에 놓여 있던 고요의 머리와 두 명의 수련자는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 해도 저 힘에 직격당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런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두 명 이상의 수련자가 올라탄 50개 이상의 암석 조각은 두꺼운 안개 기둥에 그대로 뒤덮여 사라졌다.
한제는 경계심을 드높인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한 줄기 기운을 발산했다. 그러자 그가 선 암석 조각으로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 곳곳에서는 암석 조각을 차지하지 못한 이들은 하나둘 안개 기둥에 의해 목숨을 잃어 갔다. 더 이상 빈 암석 조각은 없었기에 살고 싶다면 누가 먼저 차지한 암석 조각을 빼앗아야만 했다. 두 명 이상의 수련자가 올라선 암석 조각은 소멸한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챘기 때문이다.
한제가 차지한 암석 조각 주위로도 십여 명의 수련자가 핏발 선 눈을 번득이며 몰려들었다.
혼자 살거나, 다 함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상황에서 사람 사이의 정 따위가 통할 리 없었다.
안개 바다에서 솟아오른 안개 기둥이 넘실거리는 살기를 발산하는 동안 마흔 세 명의 수련자가 마흔세 개의 암석 조각에 올라타 있었다.
몇몇은 운이 좋은 덕이었지만 나머지는 수준도 높고 거친 이들이었다. 특히 개중 몇몇 음험한 자들은 자신과 같은 암석 조각에 올라탄 상대를 죽인 상태였다.
수백 명의 수련자가 마흔세 개의 암석 조각으로 달려들고 그 암석조각 위의 수련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 한제 또한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한 줄기 방어막을 형성해 자신의 암석 조각으로 달려드는 십여 명의 수련자를 저지했다. 그중 수준이 가장 높은 이는 네 번째 천쇠에 이른 노인이었고 가장 수준이 낮은 자는 정열기 후기였다.
이들은 모두 죽음의 위기 앞에서 모든 힘을 폭발시켰다.
콰쾅!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여러 수련자들의 신통력이 떨어지자 한제의 방어막은 진동하고 왜곡되기 시작했다. 가능성을 본 십여 명의 수련자는 더욱 힘을 내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법보를 동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