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27
그들의 눈이 광기로 번득이는 것과 달리 한제의 두 눈은 싸늘한 살기로 번득였다. 그 상태에서 그는 차분하게 결인을 그린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 손짓에 거대한 손바닥이 형성돼 사방을 휩쓸었는데 멀리서 보면 그 손바닥이 회전하면서 거대한 회오리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한제에게 달려들던 수련자의 절반이 그 회오리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안개 바다에서는 대량의 안개 기둥이 솟구쳤고 이에 사방에서는 수십 명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잃었다.
피비린내가 짙게 풍기고 비명이 울려 퍼지자 아직 암석 조각을 차지하지 못한 자들은 더욱 포악하게 달려들었다.
“비켜라! 그곳은 내 자리다!”
“당장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한제의 암석 조각을 노리는 이들은 이제 아홉 명이었다. 이들은 시뻘건 눈으로 각종 법보와 신통술을 발휘해 공격에 나섰다.
한제는 발을 한 번 구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 어느 중년 수련자 앞에 이르렀다. 상대는 화들짝 놀라 입을 쩍 벌렸는데 그 입에서는 어스름한 빛으로 둘러싸인 작은 검이 나타나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중년 수련자가 뱉어낸 빛의 검이 튀어나온 순간 한제는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한 박자 더 빠르게 상대의 미간을 두드렸다.
쾅!
손가락이 닿은 순간 원력을 불어 넣자 상대의 육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원신도 소멸됐다. 하지만 그의 육신과 원신은 흩어지지 않고 피 안개가 되어 한제에게 흡수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상대를 죽인 뒤 이번에는 백발노인의 뒤로 향했다.
막힘없이 유려하게 이동한 한제는 곧장 왼손으로 노인의 등 복판을 강타했다.
펑!
막 고개를 돌리려던 노인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피 안개로 무너져 내려 한제의 왼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다음 순간 어느 청년의 곁에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의 청년은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한 움큼 피를 뱉어냈다.
피는 허공에서 거대한 붉은색 두개골이 되어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지르며 한제를 삼켜버릴 듯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흥!”
한제는 짧게 코웃음을 치더니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청년에게 돌진했고 붉은 두개골이 가까워지자 짧게 외쳤다.
“꺼져!”
그 낮은 외침은 사방에서 안개가 몰아치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모든 소리를 제압했다. 그 외침에 붉은 두개골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곧장 흩어져 사라졌다.
뒤로 물러나던 청년 역시 그 외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순식간에 육신이 먼지처럼 부스스 흩어지면서 피 안개가 되어버렸다.
단숨에 세 명을 죽였으나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달려들었던 나머지 여섯 명의 수련자도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섬뜩함을 느꼈으나, 그들로서는 그럼에도 상대에게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한다면 죽여주마!”
한제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앞을 세 번 가리켰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을 듯 수많은 검기가 나타나 세 갈래로 나뉘더니 엄청난 속도로 세 명의 수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세 명은 두 사내와 한 여인으로 그중 한 명의 중년 사내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허리를 굽히며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검기가 덮쳐드는 순간, 그는 낮은 기합을 넣으며 두 손을 위쪽으로 확 들어 올렸다.
콰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보라색 빛의 장막이 나타나 중년 사내의 손짓에 따라 펼쳐지면서 검기를 저지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그가 펼쳤던 빛의 장막도 무너져 내렸다.
“컥!”
빛의 장막을 꿰뚫은 검기는 사내의 체내로 파고들었고 이에 사내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무너져 내렸다.
또 다른 목표가 된 중년 여인은 매우 빠른 속도로 도망치려 했다. 허나 도저히 검기를 떨쳐낼 수는 없었고 이내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날아갔다.
“꺄아앗!”
그럼에도 겨우 목숨만은 건진 여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났다.
그녀의 어깨를 뭉그러트리고 지나간 검기는 근처에 있던 다른 수련자를 순식간에 관통했고 이 수련자는 당연히 그대로 죽음을 맞게 됐다.
검기가 노리던 마지막 한 사람은 네 번째 천쇠에 이른 노인이었다.
노인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소환한 아홉 마리의 흑룡으로 온몸을 에워쌌다. 이 용들은 포효를 내지르면서 노인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았다.
펑! 펑!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끊임없이 달려드는 검기를 저지하는 사이 뒤로 물러나던 노인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짓에 한 수련자가 끌려오더니 달려들던 검기의 희생양이 됐다.
“크아악!”
방패가 된 수련자는 순식간에 육신이 산산조각 나며 목숨을 잃었다.
눈 깜짝할 사이 세 사람, 그리고 또 세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이제 한제의 눈앞에는 마지막 세 사람이 남아 있었다.
한제는 암석 조각 위에 뒷짐을 지고 선 채 싸늘한 눈으로 세 사람을 훑어보며 짧게 외쳤다.
“꺼져!”
오른팔을 잃은 여자 수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죽음은 두려웠지만 지금 그녀는 그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 백발의 수련자가 풍기는 엄청난 위압감에 압도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아 암석 조각이 필요했으나, 다른 암석 조각을 노리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네 번째 천쇠 수준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한 사람은 이 암석 조각을 노리던 이들 중 수준은 가장 낮았지만 속도가 매우 빨라 번번이 한제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자였다. 물론 그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떠나갔다.
콰르릉!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암석 조각이 두꺼운 안개 기둥에 뒤덮였고 그 위에 오른 채 다투던 여섯 명의 수련자는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렸다. 이어서 근처에 있던 또 하나의 암석 조각 역시 파괴됐고 그 위의 수련자들도 사라졌다.
이제 조각은 단 스물여덟 개만 남게 됐다. 암석 조각을 차지하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던 수련자들도 이제는 여든 명도 채 남지 않았다.
한제는 암석 조각 위에 버티고 선 채 냉랭한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저 멀리 봉멸족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하나의 암석 조각을 차지하고는 가부좌를 튼 채 미간에서 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녀의 미간에서 흘러나와 암석 조각을 감싼 부드러운 빛은 주위 수련자들의 공격에도 약간 흔들리기만 할 뿐 무너지지는 않았다.
한제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은 소녀 외에도 다섯 명이 더 있었다.
첫 번째는 균열 앞에서 마주친 중년 문인과 닮은 백의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덤덤한 얼굴로 먼 곳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암석 조각에 달려든 수련자는 비명을 내질렀고 두 눈에서 검은 피를 흘렸다. 온몸에서도 검은 기운을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독에 당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중년 수련자였다. 무명옷을 입은 그는 왼손에는 술동이를 오른손에는 7척 길이의 장검을 쥐고 있었다.
“고족의 말씀에 따르면 흔쾌히 석 잔을 연거푸 들이키면 오악도 가볍게 넘을 수 있다고 했지.”
그는 술을 들이켜며 오른손에 쥔 검을 무심히 휘둘렀다. 별다른 동작도 아니었는데 그 검의 끝은 자신의 암석 조각을 노리고 달려들던 수련자의 미간으로 날아들어 상대의 미간을 꿰뚫었다.
죽은 자의 미간에서 분출된 피는 암석 조각 위에 매화 모양으로 흩뿌려졌다. 자세히 보니 그 암석 조각 위에는 열 송이가 넘는 매화가 피어 있었다.
보라색 도포를 입은 사내도 눈에 띄었다.
어두운 표정의 사내는 음산한 기운을 발산했는데 그는 소매를 휘둘러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물고기를 소환했다. 짙은 비린내를 풍기는 물고기는 암석 조각을 노리고 달려드는 수련자들을 전부 집어삼켰다.
나뭇가지처럼 빼빼 마르고 키가 큰 흑의의 사내도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매우 빨라 한제로서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사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의 잔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암석 조각을 노리던 수련자들은 하나둘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갔고 그들의 원신은 저 아래 안개의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소문, 소문, 그리고 또 소문
비쩍 마른 수련자로부터 멀지 않은 곳의 암석 조각에는 대조적으로 비대한 남자가 있었다. 도포를 입고 납작한 모자까지 쓴 그는 선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주판을 들고 가볍게 흔들었는데 그때마다 타닥 하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안 맞아. 계산이 안 맞아.”
비대한 수련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터질 듯한 볼 살이 출렁였다. 이어서 그는 손을 들어 수없이 많은 금제를 소환해 사방에서 달려드는 수련자들에게 날려 보냈다.
금제에 닿은 수련자들은 바르르 떨다가 마치 봉인이라도 된 것처럼 안개의 바다로 추락했다.
남은 스물여덟 개의 암석 조각 중 일곱 개는 주인이 정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목숨을 건 수많은 쟁탈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암석 조각을 차지하는 자라면 절대 보통 수련자일 수가 없었다.
특히 한제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공격하던 수련자 중 네 번째 천쇠에 이른 노인이 어느새 암석 조각 하나를 차지한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나머지 다섯 사람의 수준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각기 다른 부족에서 온 이들은 마치 사신처럼 엄청난 독기를 발산했다.
가장 수월하게 암석 조각을 차지한 이는 녹색 도포의 노파였다. 얼굴 가득 혹으로 뒤덮인 노파가 알 수 없는 법술을 발휘하자 그녀가 노리는 암석 조각에서 싸우고 있던 수련자들은 눈빛이 흐릿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일제히 물러났고 노파는 여유만만하게 그 위에 자리를 잡았다.
안개 바다에서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점점 많은 안개 기둥이 솟았고 전투는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단 스물여덟 개의 암석 조각과 그 숫자만큼의 수련자만을 남기고서야 살육도 굉음도 그쳤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는 호흡을 통해 좀 전에 삼킨 수련자들의 원신과 혈육의 힘으로 부상을 치료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살아남은 수련자들은 조용히 호흡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금 전의 싸움은 짧았지만 서로의 신통술을 파악하고 힘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했다.
한제가 그들을 살핀 것처럼 그들 역시 한제를 살피고 있었다. 단숨에 여섯 명을 죽이고 한 번의 외침으로 모두를 제압했으며 천쇠에 이른 수련자를 뭉개버렸으니 사람들이 그를 경계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한제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후로 신통술을 발휘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력을 최대한 숨기면서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경계심을 심어주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이는 제법 성과가 있었다.
‘저자 방금 전의 전투에서 별다른 신통술을 발휘하지 않았어. 실마리조차 파악할 수가 없군.’
거대한 허상의 물고기를 소환해놓은 보라색 도포의 사내는 가부좌를 튼 채 한제를 살폈다.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두웠다.
다른 사람들도 경계심 어린 눈으로 한제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외침으로 상대의 신통력을 붕괴시키고 육신을 소멸시켰지. 그렇다면 저자의 신통술은 소리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저자는 자신이 죽인 자들을 피 안개로 흡수했다. 근래 태고 성신에서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마공이야!’
비대한 수련자는 연신 웃는 얼굴로 한제를 살피며 주판을 흔들었다.
‘저자는 누구보다 나를 죽이고 싶어 하겠지. 협력자를 찾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