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7
그리고 그 위압감 아래, 어두웠던 밤하늘에는 돌연 나타나서는 안 될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그 순간, 노인은 오래전부터 대륙에 떠돌던 소문을 그리고 그 태양이 의미하는 존재의 신분을 떠올렸다.
두려움에 질린 노인은 칠규에서 피를 줄줄 흘리게 만드는 낮은 고함소리를 들었다. 뒤이어 노인은 결국 바들바들 떨리는 심신을 안은 채 혼절해버렸다. 의식을 잃기 직전, 노인은 종주 칠채선존과 그의 아내가 칠도종에서 튀어나와 두 개의 태양이 나타난 곳으로 돌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그로부터 며칠 뒤에야 깨어났고 자신의 수준이 한참 아래로 떨어졌음을 알게 됐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칠도종 종주는 홀로 돌아왔다. 한데 안색은 어두운 반면 두 눈만큼은 매우 밝게 번득였다.
돌아온 칠채선존은 자신의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제자와 몇몇 선비, 백 명의 호위병과 네 명의 장군을 데리고 동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동부를 철저히 봉쇄하고 수많은 봉인을 배치했다. 심지어 기억의 주인조차 본 적이 없던 강력한 법보들을 꺼내 동부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기억의 결정에 수많은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인지 그 동부에 관한 기억은 몇 개의 장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한데 한제는 그 기억의 조각 안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은색 옷을 입은 그 여인은 선존의 시녀 중 한 명이었다. 바로 한제의 저물공간에 있는, 일곱 빛깔 사내의 조각상을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그 은시였다.
또 다른 기억의 조각에서 한제는 칠채선존을 보았다. 계내와 계외에서 원고 선황, 원고 선존이라 부르는 그자는 바로 그의 조각상으로 새겨진 장본인이었다.
여러 사람을 데리고 동부 안으로 들어갔던 칠채선존은 출구와 입구를 봉인한 뒤 곧장 뭔가에 몰두했다. 동부에 남은 선비와 백 명의 호위병, 그리고 네 명의 장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선존의 권위에 이의를 표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그중 감히 누구도 선존에게 질문 따위 하지 않은 채 각자 폐관수련을 하며 선존의 소환을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부 밖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의 주인은 호흡하던 중 그 소리에 의해 퍼뜩 깨어났다.
“칠채도존! 아내마저 내팽개친 것을 보니 분명 막대한 보물을 손에 넣은 모양이구나. 자 네가 나를 노리고 뿌린 미끼를 따라 이렇게 왔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보자!”
그 목소리에 어린 극강의 위압감에 기억의 주인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도고 엽막, 내가 너를 이곳으로 초대한 것은 맞으나 내가 품고 있는 것이 과연 꿍꿍이인지 아닌지는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도고 엽막이라는 말이 기억의 주인인 노인의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 고국의 대존, 도고 엽막의 이름은 선강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어진 일들은 끊어지고 깨진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 한제로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본 것은 마지막 조각 속 기억이었다. 그 조각 안에서는 매우 혼란한 전투를 볼 수 있었다. 너무도 흐릿하고 복잡해 전투에 참여한 것이 누구인지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확실한 건 백 명의 호위병과 네 명의 장군 그리고 몇몇 선비들이 세 사람을 둘러싸고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 세 사람은 흐릿한 데다가 금빛을 번득이고 있어 제대로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이 전투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 중 한 명이 짙은 금빛을 번득이며 크게 웃더니 한달음에 칠도종 사람들을 휩쓸고 돌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칠채도존 네놈이 직접 나와 무릎을 꿇지 않겠다면 이 몸이 직접 들어가도록 하지! 크하하하!”
금빛을 번득이며 돌진하는 사람의 웃음소리를 들은 순간, 한제는 심신이 바들바들 진동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돌문 앞에 이른 순간, 돌문 안에서는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채 미간에 닿아 있던 기억의 결정은 가루로 부서져 흩어졌다.
“광인의 목소리였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저물공간 안으로 신식을 넣은 한제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잠들어 있는 광인을 보았다.
한제의 안색은 한층 어두워졌다. 기억 속에서 그가 보았던 것들은 그의 여러 의혹을 풀어주기도 했으나 동시에 여러 의문을 낳기도 했다.
“도고 엽막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광인의 정체도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지. 게다가 이전에 은시는 분명 그 문은 자신이 연 게 아니라고 했지. 혹시 그렇다면 광인이 그 문을 통해 들어온 걸까? 그 전투의 결과로 광인은 이성을 잃은 채 미쳐버렸고 원고 선역은 폐허가 됐으며 칠도종의 남은 사람들은 폐관수련을 시작했겠지.”
한제는 차근차근 정보를 정리해갔다.
“동부의 주인이자 칠도종의 종주인 칠채선존 역시 중상을 입었을 거야. 그래봐야 모든 건 추측일 뿐이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킨 물건이라는 건 천도일 수도 있지만 천역주일 수도 있어. 천역주와 천도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천역주는 나침반 모양 법보의 일부다. 그것이 천도일 가능성은 많지 않지. 그렇다면 그건 대체 뭘까?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번득였다.
“그러고 보니 당시 섬뢰족이 어느 날 외부에서 온 신비의 수련자 한 무리가 계외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곤극 채찍은 그들이 가져온 법보 중 하나라고 했지. 그들은 또 누굴까?”
뭔가를 알 것도 같았다. 겹겹의 면사를 걷으며 최종적인 답안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칠채선존이 중상을 입고 폐관수련을 하는 중이었다면 내가 소하성역 칠채계에서 만났던 그 칠채도인은 누굴까?”
어차피 더 고민해봐야 답은 나올 수 없었기에 한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생각을 접었다. 대신 그는 전방의 원고 선역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네 줄기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사실 한제는 그 네 줄기 기운을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유도 단지 석상들을 파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저 네 줄기 기운 중 익숙한 이의 기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을 찾아 거래를 해야 했다.
한제는 원고 선역 깊은 곳으로 향했다.
수백만 리를 질주한 그는 소매를 휘둘러 광풍을 일으켰다. 이 맹렬한 바람은 남아 있는 고족의 석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석상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며 한제는 무거운 얼굴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석상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서 부상을 치료 중이던 선인들의 허상이 나타나 다급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저 멀리 사방에서 일고여덟 명의 선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모두 온몸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반면 한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전에는 강력한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흥미도 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그들에게 수혼술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자신을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신경 쓸 생각도 없었다. 허나 그는 아직도 살육에 목말라 있는 상태였으니, 만약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았더라면 저들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그때 저 앞에 네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높은 산처럼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이 석상들 뒤로는 고족의 석상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거대한 조각상들의 미간에는 회오리가 하나씩 회전하고 있었는데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네 갈래의 매우 강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한 석상에서는 매우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타락의 땅에서 봤던 1대 주작의 기운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둘 중 하나는 분신의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가늘게 뜬 눈으로 석상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칠채선존 휘하 주작 장군! 나와라!”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발아래 둔 듯한 느낌이었다.
뒤따라오던 일고여덟 명의 선인은 멈춰선 채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봤다.
그때, 음침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거만한 놈!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배아를 파괴하고 원고 선역의 선인을 여럿 죽인 것은 주작의 후손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다! 이 백호가 주작을 대신해 한 수 가르침을 내리마!”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한 석상 미간의 회오리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그에게서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풍겼다.
그때 한달음에 조각상에서 빠져나와 한제에게 달려든 노인의 움직임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한 마리 맹호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듯했다.
그리고 노인의 뒤로는 거대한 백호의 허상이 떠올랐다. 백호의 두 눈은 험악한 빛으로 번득였고 몸에서는 온 세상을 뒤흔들 듯한 위엄이 가득했다. 공현기 초기에 이른 노인의 수준이 여실히 느껴졌다.
한제는 돌진해오는 노인을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슬쩍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주먹이 노인의 몸에 꽂힌 순간 온 세상이 뒤흔들렸다.
그 순간, 백발노인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나더니 두려움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반면 한제는 비록 약간 휘청거리긴 했어도 밀려나지는 않았다.
“부상에서 다 회복됐다면 모를까, 지금의 너는 내 적수가 아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온다면 그때는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
한제의 목소리에서는 살기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돌을 돌이라고 말하듯 더없이 차분했다. 하지만 백발노인은 침묵했다. 두 사람은 한 번 맞부딪쳤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노인은 심신이 격렬하게 진동했고 솟구쳐 오르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 한 마디에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은 한제의 서늘한 눈과 시선이 마주쳤고 다시 한번 심신이 울리는 것을 느끼고는 내딛었던 발을 재빨리 거두어들였다.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막상 이곳에 들어와 보니 원고 선역이라는 곳도 특별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구나. 그런데도 폐허가 된 이곳 선강 대륙 수련자들이 스스로를 선인이라 칭하며 동부 안 세상의 수련자들을 통제하려 드는 꼴이 그저 우스울 뿐. 내 눈에는 너희들 역시 미물과 다를 바 없다.”
노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워졌다. 그가 두려움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제가 선인의 기억을 뒤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동부의 누구도 선존의 봉인을 열 수는 없을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한제는 그 일을 해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을 파악해냈다.
“나와라, 주작.”
한제는 백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도 쓰지 않고 다른 조각상의 미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이번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너를 죽여 수혼술을 펼칠 것이다!”
한제의 몸에서 발산된 묵직한 위압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호소산하(虎嘯山河)
백호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은 공현기 초기에 불과했고 이미 한 번의 충돌로 한제에게 두려움마저 느꼈지만 고고하고 존엄한 자존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선인이었다. 또한 아무리 강력해 보인다 해도 한제는 하계 미물에 불과했다. 그런 수련자가 침착하고 덤덤한 모습을 보일수록 백호는 극심한 압박과 동시에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분노의 대상은 한제만이 아니라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고작 일개 하계 수련자에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네놈이 나를 능멸하려는 게냐!”
낮게 고함을 내지른 백호의 두 눈에서 하얀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 빛에는 엄청난 패기가 어려 있었는데 이는 백호가 수련해온 공법과 신통술에 기인한 것이었다.
백호는 한제를 향해 몸을 날리며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가 세차게 휘둘렀다.
“네가 나의 세 가지 신통술을 막아낸다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는 것으로 인정해주마!”
천둥과 같은 노인의 목소리가 원고 선역 전역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의 고함은 마치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내지른 것처럼 요란한 메아리까지 일으켰다.
“첫 번째, 호소산하(虎嘯山河)!”
노인이 두 손을 크게 휘두르자 하늘을 가득 채울 듯 거대한 백호의 허상이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다가 입을 쩍 벌렸다.
“크르르르!”
이때 원고 선역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진동했다. 물고기 비늘 같은 형태의 파문이 일어나며 수없이 많은 불규칙적인 균열이 나타나기도 했다. 땅도 격렬하게 울렸다. 광활한 대지가 격하게 떨리다가 붕괴할 조짐을 보였다. 파도가 치듯 꿀렁거리던 대지에서 일어난 균열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뻗어 나갔다. 마치 대지에 생겨난 끔찍한 상처 같았다.
그러한 백호의 포효는 세상 모든 소리를 뒤덮은 채 수련자의 심신과 육신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형성했다.
대지는 균열과 함께 무너져 내렸고 하늘 역시 붕괴할 듯 왜곡되면서 세상은 어둠에 잠겨 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갈수록 격렬해지는 호랑이의 포효뿐이었다.
한제 위로는 하늘이 와해되고 있었고 발아래로는 대지가 붕괴되고 있었으며, 그의 온몸은 백호의 포효에 뒤덮인 상태였다.
그리고 육신을 흩어버릴 듯 강렬하게 불어닥치는 광풍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마구 휘날렸다. 만약 고신의 육신이 아니었다면 비록 공령기 중기 수준이라 해도 육신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원신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터였다.
또한 호랑이의 포효에는 한제가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한 줄기 위압감이 어려 있었다. 만약 원고 선역이 아니라 동부의 계내나 계외였다면 우주가 뒤집히고 수련성들이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수련자가 비명과 함께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허나 한제는 그런 광풍과 포효에도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두 눈을 감자 세상 모든 것은 거짓이 됐다.
이 거짓은 그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진짜 거짓이 된 것은 아니었다. 진실과 거짓의 본원은 일종의 허상의 본원으로 그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만 진실과 거짓의 본원을 깨달은 한제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몸과 원신, 사상을 비롯한 모든 것은 거짓이 되는 셈이다.
한제가 눈을 감은 순간, 마구 휘날리던 머리카락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나풀거리던 옷자락 역시 바람 한 점 없는 듯 평온하게 내려앉았다. 마치 그에게 불어닥치던 광풍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광풍은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불어닥치는 중이었다. 심지어 호랑이의 포효도 전보다 몇 배로 강해져 있었다. 땅과 하늘 역시 와해되고 붕괴되는 중이었다. 오로지 한제만이 미동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침착함과 덤덤함이 광풍과 호랑이의 포효 속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백호 노인은 낮게 고함을 내지르더니 마치 번개처럼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