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30
수장은 울컥 피를 토하더니 격하게 떨기 시작했다. 체내에서는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옷에도 줄기줄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이 균열을 통해 대량의 생기가 스며들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수장의 상태는 빠르게 회복됐다.
한제는 작게 탄식했다.
“허! 기이한 갑옷이로군. 그 갑옷 덕분에 세 번째 단계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긴 하나 네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허나 갑옷도 적잖이 손상됐을 터. 한데 네가 갑옷을 통제하는게 아니라 갑옷이 너를 통제하고 있구나.”
이때 한제의 두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덕분에 그의 시야는 평소와 달라진 상태였다. 그는 금제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규칙을 통해 수장의 갑옷에 담긴 비밀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허나 덤덤한 그의 목소리와 달리 수장은 충격에 흠칫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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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성 밖, 다섯 갈래의 빛 고리 주위. 방금 선강 대륙에서 동부계로 들어온 현라 대천존은 빛 고리 안의 광경을 살피다가 기쁜 듯 씩 웃었다.
“녀석의 이름이 이한제였구나. 선족 사이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귀일종의 갑옷에 담긴 폐단을 단박에 알아차리다니, 대단해!”
건곤일적(乾坤一滴)
수장의 마음에는 수진의 파도처럼 요란하고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갑옷을 입지 않은 상태의 그는 네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갑옷을 입으면 그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되어 갑옷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갑옷을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자신의 혈맥으로 융합해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됐다. 허나 이 갑옷은 굉장히 기이해 착용한 후로는 스스로의 의지에 제한을 받아 모든 행동을 갑옷의 통제에 따르게 됐다.
그는 갑옷을 하사한 선조가 폐관수련에 돌입하기 전 남긴 말을 떠올렸다. 선조는 이 갑옷이 제련하기 매우 어려운 물건이라 큰 공을 세우거나 매우 위험한 임무를 앞둔 사람에게만 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런 갑옷은 매우 드물고 진귀한 것이니 절대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장은 단 한 번의 손짓으로 갑옷에 균열을 내고 자신을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한 한제의 힘에 두려움을 느꼈다. 또한 한제가 단박에 갑옷의 비밀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에도 크게 놀랐다.
“갑옷을 벗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한제와 수장 사이에 일어났던 물의 장벽이 가라앉으면서 외부의 시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덕분에 오행성 귀일종의 수련자들은 수장의 위태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분위기는 찬 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착 가라앉았다.
수장의 무거운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이를 악물고 몸을 물려 한제와의 거리를 벌렸다.
한제는 변함없이 덤덤한 얼굴로 수장을 바라보았다. 동부계 출신이 아닌 외부인들에 대해 한제는 조금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수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헛!”
수장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곧장 저 아래 바다를 향해 창을 내던졌다. 창은 한 줄기 남색 빛이 되어 곧장 바다에 내리꽂혔고 바닷물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솟구쳐 회오리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수령의 몸으로 물의 힘을 응집한다!”
수장은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바다를 향해 뻗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바닷속에서 용이 몸부림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수면이 마구 출렁거렸다. 수장이 움켜쥔 손을 들어 올리자 바닷물은 끓어오르듯 상승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단숨에 한제를 집어삼키려는 듯 급속도로 솟구쳤다.
그때 다시 한번 피를 뱉어낸 수장은 잔뜩 지친 기색으로 한 손을 뻗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구름이 열리고 안개는 흩어진다! 빛은 파괴되고 하늘은 소멸한다! 비는 모여 바다를 이룬다!”
우렁찬 외침과 달리 수장의 왼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구름이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빗방울이 한데 모여들었다. 그러더니 하늘에 또 다른 바다를 이루어 아래로 맹렬하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대지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바다와 단숨에 융합해 거대한 구(球)를 형성했다.
혼탁한 바다의 색을 띤 바닷물의 구는 크기가 어마어마해 마치 물로 이루어진 수련성 같았다.
“건곤일적(乾坤一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신통술을 완성한 순간 수장의 육신은 말라붙었고 준수했던 모습은 순식간에 추하게 변해갔다. 또한 육신은 농창(膿瘡)으로 잔뜩 뒤덮이기까지 했다.
수장은 애초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로 사실 그의 자질로는 네 번째 천쇠를 무사히 견뎌내기도 힘들었다. 지금껏 살아 있는 것도 갑옷 덕분이었다. 허나 갑옷의 모든 위력을 발휘한 지금 더 이상 갑옷의 힘으로 보호받지 못하게 되면서 몸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구가 회전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응축하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또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그 안의 압력은 증폭됐다. 만약 이 거대한 구가 한 방울로 응축된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의 우주라 할지라도 단숨에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바로 물의 힘이자 물의 본원이었다.
한제는 자신을 감싼 바닷물의 압력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급속도로 강력해지는 압박에서 파멸적인 기운이 전해졌다.
이 바닷물을 응시하던 한제의 눈에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어찌 보면 잔뜩 흥분한 모습 같기도 했다.
“이건 물의 본원의 힘이야!”
한제는 쾌재를 불렀다.
‘이곳을 빠져나가 저자를 죽이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간단하다. 허나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저 갑옷은 물의 본원의 힘을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 내 눈 앞에서 변화하고 있지. 만약 내가 저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내 본원은 여덟 개로 늘어날 터!’
수장의 갑옷이 통제하는 이 물의 본원은 선강 대륙 귀일종의 방식에 따라 응집된 물의 본원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으로부터 탄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물의 본원은 아무런 숨김없이, 스승이 제자에게 물려줄 때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한제가 이런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리 없었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깨달음에 대한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일곱 개의 본원을 소유한 것이 그 증거였다. 게다가 그는 물의 본원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다. 천역주에 가장 먼저 흡수시킨 것이 물이었고 천운자로부터는 한 방울 물의 본원을 얻은 바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한제가 물의 본원에 다가가게 해줄 안내자였다.
한제의 눈은 흥분으로 번득였다. 그는 곧장 바닷물의 구 안에 가부좌를 틀더니 바닷물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 변화는 불규칙해 보였지만 핏발이 선 한제의 두 눈은 점차 단서들을 발견해나갔다. 그는 흥분으로 눈을 번득이며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물의 본원의 변화를 빠르게 파악해나갔다.
한편, 수장은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동시에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구를 응시하며 두 손으로 끊임없이 결인을 그려 구 안의 본원이 더욱 강해지도록,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수축하도록 힘썼다.
바닷물로 이루어진 구는 계속해서 응집해 반각쯤 지났을 때 그 폭은 수십만 척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구 안의 바닷물과 빗물이 압축될수록 본원은 더욱 짙어졌다.
“건곤일적 앞에서는 네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한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곳은 수진이야. 내 신통술은 이곳에서 끝도 없이 강력해지지. 난 너를 한 방울의 물로 제련해 죽게 만들 것이다!”
수장은 결인을 그리더니 바닷물의 구를 계속해서 후려쳤다. 그때마다 바닷물의 구 안으로 갑옷이 통제하는 본원의 힘이 주입되면서 구는 더욱 빠르게 수축했다.
그러나 한제는 오히려 수장의 이런 행동이 반가웠다. 덕분에 본원이 더 많은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제의 깨달음 또한 더욱 깊어져갔다.
구의 폭이 20만 척으로 줄어들었을 때, 수장은 험악한 얼굴로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모든 힘을 다 쏟아붓느라 그는 마치 기름이 다 된 등불과도 같은 상태였다.
“만표! 어서 도와주게!”
수장은 고개를 번쩍 쳐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수진의 하늘에 회오리가 하나 나타났다. 회오리 안에는 금속의 힘이 한 줄기 깃들어 있었는데 이 힘은 순식간에 수진 안으로 퍼져 나갔다.
금생수(金生水)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금속이 녹아내리면 물이 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금속이 장시간 노출되면 그 위에 자연히 물이 응결된다고 했다. 허나 이들의 의견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금속이 물을 만들어낸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금속의 힘이 주입됨에 따라 한제를 가둔 구는 응축했고 이에 수장은 잔뜩 흥분한 채 비릿하게 웃었다.
“이한제, 이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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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성 밖. 현라 대천존은 기이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이 제련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오히려 녀석이 물의 본원을 깨달아가고 있는 거지. 녀석의 체내에는 도고의 혈맥이 흐르고 있고 선인의 술법도 가지고 있어. 게다가 무려 일곱 개의 본원을 가지고 있다. 도고이자 선인인 수련자라니⋯⋯. 실로 범상치 않다.”
탑 안에서 금속의 힘을 보내준 만표 또한 수장처럼 비릿하게 웃었다. 그는 한제가 바닷물의 구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안에는 두려울 정도로 진한 물의 본원이 있었으니까. 더욱이 이 물의 본원은 수장이 아니라 저 갑옷에서 발휘되는 것이었기에 그런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이한제,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자네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네. 허나 자네가 동부계 출신인 것을 어쩌겠는가? 더욱이 지금 동부계는 혼란스럽네. 여러 세력이 세 번째 주혼을 찾고 있지. 이런 시기에 나타나다니, 자네의 목적은 너무도 뻔히 보인단 말일세.”
만표는 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웃었다.
한편, 검은 도포의 노인을 비롯한 네 사람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노인은 잔뜩 흥분한 눈빛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오만방자하게 굴더니 쌤통이로군! 수장이 나선 이상 어찌 저 구에서 살아남겠는가? 우리 귀일종의 대도라 할 수 있는 건곤일적 앞에서 말이야!”
중년 여인의 눈빛도 증오심과 동시에 희열로 번들거렸다.
“죽어라! 네가 죽으면 사도환 그자는 필시 슬퍼하겠지. 사도환, 다음은 너다! 오호호홋!”
중년 여인이 귀가 찢어질 듯 날카롭게 웃었다.
둘에 비해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두 사람도 빙긋 미소를 지었다.
탑 밖에서도 흥분에 찬 환호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귀일종 모든 수련자의 눈빛은 잔뜩 격앙돼 있었다.
가장 흥분한 것은 당연하게도 수장이었다. 그는 두 팔을 끊임없이 휘둘렀고 구의 폭은 이제 10만 척도 안 되게 줄어들어 있었다.
게다가 점점 빠르게 압축되어갔다. 혼탁한 바닷물 안에서는 쾅, 쾅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물이 응축되는 그 소리는 수장에게는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게 들렸다.
한데 수장은 어째서인지 바닷물 구가 줄어들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느낌이라 그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느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불길함에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피를 한 움큼의 뱉어냈다. 이에 수장은 한층 허약해졌지만 그가 뱉어낸 피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는 그 폭이 단번에 7만 척으로 줄어들었다.
그 무렵 한제는 물의 본원의 모든 변화를 깨닫는 중이었는데 이 변화는 한계에 다다라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바닷물의 구에 물의 본원을 변화시킬 힘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어떤 비밀의 절반만 알아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완전하지 못한 느낌이 불편했던 한제가 인상을 찡그리는 순간, 수장이 뱉어난 피가 구 위로 흩뿌려졌다.
“정말 고마운 작자로군. 좋아, 목숨만은 살려주지.”
한제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한제를 한층 기쁘게 해줄 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귀일종 제자들이여, 심신을 진에 주입해 내게 힘을 빌려다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번득이는 금빛을 소환했다. 그의 몸을 뒤덮은 이 빛은 곧 번쩍이는 갑옷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