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48
꽝!
두 사람의 말 역시 우렁찬 소리와 함께 충돌했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두 말의 머리는 동시에 무너져 내렸고 와해된 흑백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무기는 파괴되고 말은 숨을 거둔 상황. 두 사람은 동시에 훌쩍 날아올라 충돌했다. 요란한 충돌음이 길게 메아리쳤고 잠시 후 그보다 더 우렁찬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을 둘로 갈라버릴 듯한 소리였다.
상공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백호 장군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안색은 창백했고 표정은 한층 험악해졌으며 살기는 더욱 거칠었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한제를 향한 두려움도 어려 있었다.
‘어떻게 이토록 강한 살기를…?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며 살아온 것이냐!’
한제의 본체 역시 경련을 일으켰고 얼굴도 약간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갈수록 밝게 빛났다.
그 눈으로 백호 장군을 훑어본 한제가 차게 내뱉었다.
“네가 졌다!”
“나 백호는 절대 지지 않는다. 이곳은 내가 정한 규칙이 적용된 세상이야! 난 절대 지지 않아!”
백호 장군은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두드리며 다시 한번 피를 토해냈다.
그 피가 대지에 떨어진 순간 백갑 장군의 하얀 갑옷이 무너져 내렸고 육신에서는 피가 흘렀다. 휘청거리며 뒤로 1만 척을 밀려난 그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에 처박혔다.
그 순간, 백호 장군의 본체가 토해낸 피가 그 위로 뿌려지면서 무너진 갑옷에 스며들었다. 장군은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나더니 적아(敵我)의 구분 없이 병사들을 학살했다.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의 상처는 조금씩 회복됐고 무너져 내렸던 갑옷도 조금씩 본래 상태를 되찾아갔다.
그 공격에 한제의 신식이 녹아든 병사 역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입고 있던 갑옷이 무너져 내렸고 뒤로 1만 척을 물러났다.
백갑 장군의 손에 죽은 병사들에게서는 하얀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크아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백갑 장군은 몸을 훌쩍 날렸고 전신의 모공을 통해 1천 방울의 피를 사방으로 뿌렸다. 붉은 기운이 되어 흩어진 핏방울에 닿은 병사들을 순식간에 소멸했고 숨을 거둔 병사들 또한 붉은 기운에 녹아들었다.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어느새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백갑 장군은 허공에 떠오른 채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목숨을 잃고 하얀 기운으로 변한 10만 명의 병사가 하나로 응집하더니 쩌적 소리와 함께 장군의 몸을 감싼 하얀 갑옷과 백마로 변했다. 그 와중에도 그가 뿌리 1천 개의 핏방울은 여전히 살육을 이어갔다.
한편, 한제는 백갑 장군을 내버려둔 채 물러났다. 그가 노리는 것은 저 멀리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는 세 번째 바둑돌, 오행성의 중년 사내가 부리고 있는 황금 갑주의 장군이었다.
이 장군은 한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곧장 속도를 높여 물러났다. 하지만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그를 따라잡더니 오른손으로 세차게 후려쳤다.
상대는 세 개의 바둑돌 중 가장 약했다. 이곳에 적용된 규칙에 따라 장군이 되기는 했지만 한제나 백호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크악!”
오행성의 중년 사내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고 금색 갑옷 역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한제의 신식이 녹아든 바둑돌이 입을 쩍 벌린 채 그것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한제는 탄혼이기도 했고 이곳의 규칙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혼과 관련된 본능은 그대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백호를 삼킬 수는 없었지만.
금색 갑옷의 장군까지 집어삼키자 한제의 신식이 녹아든 바둑돌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올랐고 무너졌던 갑옷도 다시 응집됐다.
더욱이 그 갑옷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졌고 심지어 투구까지 생겨난 상태였다.
머리를 완전히 감싼 투구 밖으로 드러난 백발이 검은 갑옷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때, 용의 포효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한제의 아래쪽에서 한 마리 검은 용이 응집됐다. 안개로 이루어진 듯한 이 용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의 사방에 똬리를 틀더니 저 멀리 백갑 장군을 향해 포효했다.
“캬오오오!”
그 소리에 백갑 장군은 고개를 홱 쳐들더니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장창을 소환했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천 개의 핏방울도 곧장 돌아와 곧장 그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찰나의 순간, 그의 아래쪽에 있던 백마가 일그러지더니 거대한 백호로 바뀌었다.
백호에 등에 올라탄 그는 손에 30척에 이르는 창을 쥔 채 두 눈이 광기와 살기로 번득였다. 이어서 백갑 장군은 백호의 포효와 함께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기운에 휩싸인 손을 들어 30척에 이르는 큰 칼을 소환한 한제는 말없이 용을 앞으로 몰았다.
‘이번 격돌로 승부가 결정된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서로에게로 달려들었다. 용과 호랑이의 위세에 콰쾅 하고 대지가 진동했다. 진동이 어찌나 강한지 수련성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하앗!”
한참 만에 침묵을 깬 한제가 낮게 기합을 넣으며 칼을 휘두르자 그의 앞에 도고의 허상이 나타나 그 칼과 함께 내리 떨어졌다.
“크아아아!”
절망과 분노가 어린 백갑 장군의 고함 너머로 장창과 갑옷, 백호가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그의 미간에는 한 줄기 붉은 선이 나타났고 이어진 한제의 칼질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쿨럭!”
백호 장군의 본체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앞으로 너는 이 이한제의 노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의 본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강력한 위기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제는 다른 생각은 할 틈도 없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대지에 서 있는 그의 바둑돌과 합체했다. 이어서 입을 쩍 벌려 무너져 내린 백갑 장군의 모든 기운을 삼켜버렸다.
그의 주위로 하늘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양의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이 기운은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휩쓸면서 길이가 수십 척에 달하는 큰 칼로 변했다. 한제는 검을 움켜쥐어 높이 쳐들더니 이곳의 규칙의 힘을 빌려 온몸의 기운을 칼에 녹여 넣었다.
이제 한제의 칼은 이 잔계 안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게 됐다. 심지어 백호가 만들어둔 규칙마저 갈라버릴 수 있는 이 칼은 한제가 이 잔계에 적용된 규칙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멸천(滅天)의 칼이었다.
칠채의 강림
한제는 이토록 어마어마한 위기감을 몰고 오는 상대를 기다리면서 등 뒤에 숨긴 왼손으로 결인을 그려 화염을 일으키더니 그 화염으로 작은 우산을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화염 우산은 그의 손짓에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는 칼을 든 채 하늘을 노려보았다. 피어오른 검은 기운이 주위를 맴돌며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휩쓰는 한편 하늘과 땅을 이었다. 멀리서 보면 꼭 검은 용처럼 보이는 폭풍이었다.
한제의 손에 들린 칼에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허공에 고정된 듯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꼼짝 않는 한제의 몸과 그 주위에서 검은 용처럼 역동적으로 맴도는 폭풍은 확연히 대비됐다.
이어서 한제에게서는 심신을 뒤흔들 정도의 위압감이 발산됐다. 이 위압감은 백호 장군에게도 전달됐다.
혈맥을 걸고 했던 맹세 때문에 백호 장군의 몸은 바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거대한 산에 짓눌리는 듯한 압박을 느끼며 굴복했고 덜덜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맞은편의 오행성 귀일종 중년 사내는 상황이 더욱 끔찍했다. 혈맥의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그가 신식을 녹여 넣었던 바둑돌 역시 한제에게 삼켜졌기 때문에 그 역시 이 위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지금 그의 마음은 밀물처럼 밀려든 경외심에 침잠되어 있었다.
한제는 두 사람에 대해서는 내버려둔 채 손에 든 칼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주위의 모든 소리도 차단됐다. 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손에 든 칼뿐이었다. 그의 두 눈과 신식을 대체한 이 칼에는 한제의 모든 수준이 응집되어 있었다.
그때, 이 잔계의 성역 서쪽 넓은 우주에 갑자기 회오리가 하나 나타났다. 거대한 회오리는 윤곽만 겨우 드러난 상태였는데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돌연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누군가가 찢어버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콰쾅!
회오리가 붕괴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그 안에서는 일곱 색채의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 안에서 칠채도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 순간, 그는 한제의 기운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한제, 드디어 찾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도망칠 테냐!”
같은 시각, 이 잔계의 세 번째 수련성.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칼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한제는 낮은 기합을 넣으며 솟구쳐 올라 하늘을 향해 이 강력한 칼을 휘두르더니 재빨리 물러났다.
칼에서 번득이며 튀어나온 빛이 쉭 소리를 내며 한제의 근처를 맴돌던 폭풍을 그의 온몸에 둘러져 있던 갑옷을 그리고 저 아래 바둑판의 모든 병사를 흡수했다. 덕분에 이 빛은 이 잔계에 적용되어 있던 백호 장군의 규칙을 깨부술 수 있게 됐다.
“크헉!”
백호 장군은 피를 토해내더니 수척해진 모습으로 바르르 떨었다.
그때, 하늘로 튀어나간 검광은 칠채도인이 나타난 순간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거의 10만 척에 이르렀다. 그 무렵에는 실체를 갖춘 것처럼 검광은 단단해져 있었고 그대로 칠채도인의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잔계의 규칙으로 이루어지고 한제의 모든 힘과 위력을 더해 증폭된 검광은, 말하자면 이 잔계의 모든 힘이 응집된 빛이라 볼 수 있었다.
빛은 형용할 수 없는 기세로 칠채도인에게 돌진했다.
순간 위기를 감지한 칠채도인의 눈동자가 졸아들었다. 그가 평생을 통틀어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단 세 번으로 그중 두 번은 한제를 쫓던 와중에 생긴 상황이었다. 운해성역의 균열에서, 이번에는 이 잔계에서…
‘잔계의 규칙으로 칼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영리한 녀석이로군!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너는 죽어야만 한다!’
칠채도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가 노인의 존재가 부담스러워 가능한 한 부상을 입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에 그는 소매를 휘둘러 일곱 색채의 빛을 소환했다. 이 빛은 일곱 색채의 연꽃으로 변했다. 각기 다른 색상의 일곱 꽃잎이 칠채도인 앞에서 활짝 만개했다.
“칠채도련(七彩道蓮), 방어!”
칠채도인이 연꽃 안으로 들어가 그 가운데 가부좌를 틀자 연꽃의 꽃잎들이 모여들어 그의 몸을 감쌌다. 이제 연꽃이 아니라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인 셈이었다.
잔계의 힘을 응집한 검광이 그대로 거대한 꽃봉오리에 떨어졌다.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온 우주가 진동했다.
검광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일곱 색채의 연꽃 봉오리는 바르르 진동했고 일곱 색체의 빛을 번갈아 번득였다. 그리고 이내 두 개의 꽃잎이 가루로 부스러졌다.
그때, 검광과 두 꽃잎이 무너져 내린 충격이 꽃봉오리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확산된 충격에 우주는 마디마디 붕괴하고 찢어졌다.
아홉 개의 수련성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중 일곱 개는 그대로 폭발하면서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해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제 이 잔계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
세 번째 수련성의 대지에는 거대한 균열이 줄기줄기 일어났고 하늘의 기색도 바뀌고 있었다. 수련성 자체가 무너져 내릴 듯 지면이 뒤흔들렸다. 마치 종말이 닥쳐온 것 같은 광경이었다.
“큭!”
한제는 피를 토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칠채도인은 너무도 강력했다. 그는 곧장 몸을 물리며 회오리를 소환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 이 잔계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낮은 기합이 울려 퍼졌다.
두 개의 꽃잎을 잃은 연꽃 봉오리가 일곱 색채의 빛을 발산하면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수련성 상공에 나타났다. 동시에 활짝 피어난 꽃봉오리 안에서 가부좌를 튼 칠채도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칠채도련,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