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74
“이 이한제가 너를 환생시켜주마.”
그 말을 끝으로 사내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동시에 어깨를 통해 주입된 어마어마한 힘에 그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봉인되어 버렸다.
잠시 후, 한제는 그 수련성을 빠져나왔다. 창몽족의 누구도 그가 이곳에 왔다 갔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제는 창몽족이 점유하고 있는 수많은 수련성을 향해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수십 개의 고식엽이 허상으로 나타나 회전하면서 흐릿한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그 구역을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앞으로 이 부족 수련자들의 힘은 봉인되어 영원히 쇄열기를 돌파하지도 다시는 우주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리라!”
한제는 소매를 휘두른 뒤 돌아서 먼 곳으로 나아갔다.
뒤이어 그는 태고 성신 내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가 있는 곳을 하나하나 방문해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결과 태고 성신에는 더 이상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나오기 어렵게 됐다.
더욱이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태고 성신의 우주에 돌아다니는 수련자는 존재하지 못할 터였다.
“태고 성신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아직 잠재적인 불안 요소들이 있지만 지금은 찾아갈 때가 아니다.”
계내와 계외 사이의 진 앞에 선 한제는 고개를 돌려 태고 성신을 둘러보다가 한참 뒤에야 진 안으로 들어가 나천성역으로 향했다.
이제 동부계 내에서 할 모든 일을 마쳤으니 떠날 일만 남은 것이다.
한제는 반짝이는 금빛 대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현라에게 다가가 절을 올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몇 사람을 더 데려왔습니다. 부디 이들도 환생시켜주십시오!”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여덟 사람을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내키지 않는 듯 표정이 어두웠지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환생한 후로는 너희들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아서 잘 지내도록 해라!”
한제는 덤덤하게 말한 뒤 손을 휘둘렀다. 순간 광풍이 일어나 이들을 휘감은 채 동부계 대문 안쪽으로 날려 보냈다.
“선배님, 저도 이제 떠나겠습니다. 선강 대륙에서 다시 뵙지요.”
마지막으로 나천성역을 눈에 담은 한제는 다시 돌아서더니 긴 빛을 그리며 동부계 대문으로 향했다. 이내 그의 모습은 곧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현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진중한 표정으로 동부계 대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가 문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문은 콰쾅 소리를 내면서 닫히기 시작했고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에는 문이 거의 맞물렸다. 한데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우주 저 깊은 곳에서 어스름한 빛 한 줄기가 다급하게 달려들더니 그 사이로 들어가 사라졌다.
★ ★ ★
용의 몸으로 깔린 길. 환생의 길은 어찌나 긴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길은 한제가 걷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한제는 용의 몸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싼 얼음과 저 먼 곳을 둘러보았다. 길을 따라 끊임없이 걷고 있는 이천매 등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잔혼을 평안하게 보호한 채로 그녀를 선강 대륙으로 데려가려 한다면 선강 대륙의 규칙에 저항하려 한다면 이 길에서 떠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길을 잃게 될 수도 죽음을 맞게 될 수도 있다.”
현라의 목소리가 한제의 심신에 울려 퍼졌다.
“선강 대륙의 규칙은 형태가 없다. 보통은 압력으로 작용하지. 그 압력을 버텨낸다면 반드시 그 길 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돕는다 해도 성공 가능성은 5할밖에 되지 않아. 동부계 출신이 선강 대륙의 규칙을 견뎌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네가 처음일 터. 네 운명에 달려 있다. 그러니 내게 그리 감사할 필요는 없는 셈이지.”
한제는 묵묵히 현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이 길 끝에 이른다면 난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도고 일맥으로 데려갈 것이다. 만약 네가 도중에 죽는다면 환생을 거쳐 태어난 이들은 너를 대신해 내가 잘 보살필 테니 안심하거라. 그리고 부디 조심해라!”
현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제를 아끼고 있었다. 정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넘겨주어 자신이 환생을 거쳐 다시 태어날 동안 도고 일맥을 지키게 하고 싶었다.
심지어 그는 한제가 태고 신경에 들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고 열 번째 태양이 되도록 도울 마음도 있었다. 그게 매우 변화막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고 일맥을 지키겠다는 약속
현라는 혼잣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갔다.
“선강 대륙에는 수많은 동부계가 있다. 종파마다 하나의 동부계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지. 물론 동부계에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도가 필요한데 선강 대륙에는 천도가 매우 드물긴 하지.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동부계의 수많은 생명이 문을 열고 나오려 했으리라 믿는다. 허나 그들은 결국 선강 대륙의 법칙 아래 숨을 거두었겠지.
이 용의 몸으로 이루어진 길을 떠나면 허공에서 수많은 문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문들은 각각 선강 대륙에 존재하는 여러 동굴로 이어져 있지. 어쩌면 너는 그곳에서 수많은 유해나 잔해들을 보게 될지도 몰라. 그것들은 지난 오랜 세월 선강 대륙의 법칙 아래 죽은 동부계 출신들일 게다.”
한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계 출신의 생명이 선강 대륙에 이르기 위해 들인 노력이 그곳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으나 네가 최초로 성공하는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나는 선강 대륙 선족의 구역에서는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그러니 딱 10년만 기다리겠다. 10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네가 죽은 것이라 생각해야겠지.”
한제의 심신에 울리는 현라의 목소리는 어쩐지 쓸쓸했다.
잠시 후, 현라의 허상이 한제 앞에 나타났다. 그는 마치 자신의 자손을 보듯 자애로운 눈으로 한제를 보고 있었다.
“선강 대륙의 법칙 때문에 난 네 몸에 어떤 낙인을 남길 수도 네가 무사한지 확인할 수도 없다. 네 생사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뿐이야. 10년이다. 10년 후 내가 떠날 때 내 법력은 흩어져 사라질 게야. 그럼 선강 대륙의 법칙은 그 위력이 절정에 달할 터. 그런 상황에서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꼭 10년 안에 선강 대륙에 도착하기를 바라마.”
한제는 말없이 현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을 위해 해준 그 모든 것들을 한제는 마음에 새긴 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었다.
“자 떠나기 전에 알려다오. 나를 스승으로 모시겠느냐?”
현라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생사조차 불투명해질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현라의 모습에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떨렸다.
“스승님⋯⋯.”
한제로서는 그 따뜻한 은혜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상대를 스승이라고 칭하는 순간부터 자신과 도고 일맥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책임감과 연계가 생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는 후에 그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도고 일맥을 수호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또한 현라에게 받은 그 모든 은혜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하하하! 그래, 나의 제자 한제야. 선강에서 기다리마!”
현라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제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더니 가볍게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용의 몸으로 난 길을 에워싼 얼음층이 살짝 녹아내리면서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 너머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스며들어왔다. 이 빛이 바로 선강 대륙의 규칙 중 일부였다.
“넌 내 제자이니 보내기 전 그에 합당한 예를 갖추도록 해야겠구나!”
현라는 자신의 미간을 두드리고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 피를 뱉어냈다. 붉은빛을 발하는 그의 피는 한 마리 혈룡이 되더니 포효하면서 주위를 맴돌다 한제를 휘감은 채 얼음층에 난 틈으로 향했다.
“아홉 태양 중 하나인 내 정혈이 너를 당분간 보호해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신통술을 더해 선강 대륙의 법칙에 저항하게 해주겠다!”
혈룡에 휘감긴 한제가 얼음층의 틈을 통해 그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현라가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수많은 어스름한 빛이 튀어나왔다. 한제의 저물공간에 들어 있던 생령과 혼들로 광인과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든 혼이 튀어나온 상황이었다.
심지어 허이국과 유금표, 흡혈마수를 등도 포함됐다. 다만 망월은 그 거대한 몸집 탓에 아직도 튀어나오려는 조짐만 보일 뿐이었다.
“이 생령들은 저를 아주 오랫동안 따라왔습니다. 그러니 이들 역시 선강 대륙으로⋯⋯.”
그러나 한제는 말을 채 맺지 못했다. 한제의 흡혈마수를 왕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머지 흡혈마수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더니 곧장 얼음층에 난 균열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마치 그 너머에 그들이 갈망해온 존재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제뿐만 아니라 현라 역시 흠칫 놀라고 말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선강 대륙의 규칙이 존재했다. 허나 흡혈마수들은 죽거나 소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충격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몸이 급속도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머리는 더욱 커졌고 체내에서는 펑, 펑 하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그 와중에도 녀석들은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더욱 놀라운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 흡혈마수들은 어째서인지 편안해 보이는 것과 달리 고통에 찬 고함을 내질렀고 대부분은 돌연 터져나갔다.
“안 돼!”
피와 살점으로 흩어지는 녀석들을 본 한제가 재빨리 도움을 주려는 순간, 무너지지 않은 흡혈마수들의 몸집이 다시 급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여 마리의 흡혈마수는 마치 산봉우리처럼 거대해졌다가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고 나머지 흡혈마수들은 계속해서 불어났다.
특히 흡혈마수의 왕은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채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힘에 저항함과 동시에 그것과 융합하고 있는 듯했다.
한제와 녀석은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한제는 손을 내밀어 녀석을 도우려 했으나 현라가 이를 저지했다. 게다가 흡혈마수도 몸부림을 치며 한제와의 거리를 벌렸다. 녀석의 눈에서는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막지 마라. 네 흡혈마수들은 정말 범상치 않구나!”
현라의 눈이 드물게도 흥미롭다는 듯 번득였고 목소리는 진중했다.
“저 녀석들은 지금 선강 대륙의 법칙에 적응하고 있어. 게다가 봐라.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이 아니냐? 이곳에 대한 기억이 영혼에 남아 있는 듯하구나. 육신과 혼 사이의 그런 모순으로 인해 죽음을 맞는 거지. 말하자면 녀석들은 물 밖의 생활에 익숙해진 물고기인 셈이다. 그런 물고기를 다시 물속에 넣으면 익사하고 말겠지. 그러니 녀석들을 지켜보거라. 녀석들은 지금 중요한 탈변 과정에 놓인 게다!”
현라의 말이 울려 퍼지는 사이 흡혈마수 중 절반이 죽음을 맞아 이제 남은 것은 1백 마리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은 녀석들은 모두 어마어마한 크기로 불어나는 중이었고 표정은 고통과 광기로 가득했다.
녀석들은 이 기회가 자신들에게 중요한 진화의 기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죽음과 고통 앞에서도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이 역경을 이겨낸다면 조상들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또한 영혼에 각인된, 선조와 관련된 기억 역시 이때 팽창과 함께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흡혈마수의 왕은 유독 거대해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했다. 당시 풍의 선계에서 한제가 보았던 거대한 흡혈마수에 비할 만했다. 동시에 녀석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1각이 지났을 무렵, 초조한 한제의 눈앞에서 1백 마리 정도의 흡혈마수가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이에 한제는 더는 기다릴 수 없어졌다. 그로서는 자신의 흡혈마수가 진화에 실패할지언정 죽도록 둘 수는 없었다. 흡혈마수의 왕은 무려 2천 년이 넘도록 함께해온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얼음층 밖으로 나가 흡혈마수들에게로 향했다.
“캬오오오!”
그때, 붕괴한 흡혈마수들 사이에서 광기 어린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아홉 갈래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헌데 연결된 이 포효에 선강 대륙의 법칙으로 뒤덮인 이 허상마저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무너져 내린 흡혈마수 무리 사이에서 흡혈마수의 왕이 튀어나왔다. 녀석은 이제는 수련성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진 상태로 그 주둥이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저릿해질 만큼 날카로웠다.
녀석의 뒤로 아홉 마리의 금혈마수가 따르고 있었다.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녀석들은 거칠고 서늘한 기운을 발산했다.
녀석들을 보는 현라의 두 눈이 번득였다.
‘선강 대륙은 본래 황무지였다고 했다. 신경(神境)이 나타나 생명을 창조하면서 별들이 만들어졌지만 그 모든 것은 대륙에서 이루어졌다고 했지. 그 후 선강 대륙의 법칙이 그 안에 고조(古祖), 그리고 선조(仙祖)와 동시대에 태어난 아홉 종류의 흉수를 품었다고 했어. 저 흉수들, 선강 대륙의 혼란과 융합했다. 그렇다면 설마 저 녀석들이⋯⋯?’
현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제의 마음이 요동쳤다. 그는 곧장 흡혈마수의 왕에 올라탔다.
“스승님, 선강 대륙에서 뵙지요!”
한제가 현라에게 포권을 하자 그를 태운 흡혈마수의 왕은 하늘을 향해 포효한 뒤 거친 기운을 발산하며 깊은 곳으로 돌진했다.
양옆으로 10만 척에 달하는 아홉 마리 흡혈마수가 마치 호위무사처럼 늘어선 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