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88
두청이 비웃었지만 한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짧게 외쳤다.
“인과의 본원, 진실과 거짓의 본원!”
순식간에 한제의 앞에는 두 개의 거대한 회오리가 더 나타나자 두청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그중 하나는 허상과 실체 사이를 빠르게 오갔는데 두청은 그것을 보자마자 심신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이건⋯⋯?”
다른 하나의 회오리는 원인과 결과를 품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이치라서 그런지 혼돈으로 가득 찬 회오리 안쪽은 좀처럼 분간되지 않았고 어지러웠다.
‘허상의 본원 세 개⋯⋯ 이런 엄청난 행운을 타고난 자일 줄이야!’
두청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는 동안 그의 두 손에 나타난 화염과 흙의 본원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진 세 개의 본원쯤은 상대의 눈에도 차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흥! 다섯 개? 그게 무슨 소용이냐? 본원이 많다고 위력까지 강하다는 법은⋯⋯.”
두청은 애써 호기롭게 외쳤지만 이번에도 한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살육의 본원!”
한제의 미간에 균열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짙은 살기가 나타난 순간, 하늘에서는 붉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뒤덮은 짙고 서늘한 살기에 두청은 다시 몇 걸음을 물러났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이제 충격이 아니라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사, 살육의 본원! 살육의 본원을 가지고 있다니!”
두청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선강 대륙에서 살육의 본원은 무게의 본원보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살육의 본원을 가진 자라면 그것만으로도 걸웅으로 추앙받기에 충분했다.
살육의 본원을 응집했다는 것은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많은 죽음을 통해서만 응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두청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망할! 살육의 본원까지 가지고 있다니. 도대체 여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여온 것이냐? 알고 보니 정말 나쁜 놈…”
“금제의 본원!”
한제는 두청이 뭐라고 떠들건 신경도 쓰지 않고 외치더니 이어서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뒤로 수백 척을 나가떨어진 두청은 한제의 두 눈에 잔뜩 서 있던 핏발이 줄기줄기 허상으로 나타나 사방을 뒤덮으며 금제를 형성하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것에서는 금제의 본원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발산되기 시작했다.
“이… 일곱… 개…?”
두청은 평생 받은 충격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 남게 됐다.
‘저런 자를 내가 어찌 당한단 말인가!’
하지만 두청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도망칠 때는 도망치더라도 할 말은 해야 여태까지 들인 수고가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곱 개라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어디, 나와 싸워 보겠느냐!”
못된 놈
“정말 싸우겠다고?”
화염 공의 표면에 허상으로 드러난 한제의 얼굴이 피식 웃는 듯하더니 이내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발산됐다.
그 순간, 두청은 한층 창백해진 얼굴로 더욱 빨리 뒷걸음질 쳤다. 놀란 그의 눈에 화염 공 위로 떠오른 한제의 얼굴이 왜곡되면서 줄기줄기 금빛을 발산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밝은 금빛 안쪽에는 머리통만 한 크기의 금색 문양이 있었다.
금빛은 빠르게 반짝거리면서 이 세상을 완전히 뒤덮었다.
순수한 선인의 혈맥이 담긴 금빛에는 또 하나의 다른 기운이 담겨 있었는데 그 기운에 두청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금색 문양에서 발산되고 있는 그 기운은 많지는 않았지만 그 기운에 담긴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엄청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을 터였다.
“대, 대천존⋯⋯. 쿨럭!”
금빛 문양이 안긴 충격은 두청의 심신에까지 상해를 입혔고 그는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 문양을 보자마자 대천존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법보라면 위력은 둘째 문제였다. 대천존의 신통술로 응집된 법보가 진정 두려운 것은 모든 중생에게 충격을 안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대천존이 만든 법보는 대천존으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룰 수도 없었다. 나중에라도 주인이 억지로 바뀌게 된다면 그 법보는 즉시 무너져 내린다. 이는 선강 대륙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대천존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응집하여 만든 법보는 자신과 제일 가까운 제자에게 하사했다. 이는 이 사람이 자신의 제자이니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두청의 수준으로는 저 금빛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정확히 어느 대천존의 기운인지까지는 판별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대천존을 본 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허나 여태껏 맞닥뜨렸던 그 어떤 강자의 기운보다도 훨씬 강한 이 기운은 분명 대천존의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청은 거의 원망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젠장할, 그런 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진즉 꺼내지 그랬느냐! 그랬더라면 너를 뒤쫓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심지어 창룡종을 몰살했다 해도 내가 감히 쫓았겠느냔 말이다! 이 못된 놈 같으니라고!”
그러나 한제야말로 두청의 말에 놀라는 중이었다. 금색 문양을 본 것만으로 두청이 피를 뿜으면서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원망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으니까.
“생각보다 효과가 좋군.”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그러자 금빛 문양은 곧장 사라졌고 동시에 세상을 뒤덮었던 금빛도 함께 흩어져 사라졌다.
“잘 가라!”
금빛 문양을 거둔 한제가 말했다.
그 문양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두청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곧장 떠나려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못된 놈! 아주 못된 놈이었어!’
급격히 우울해진 두청은 1천 척 정도 물러나는가 싶더니 돌연 우뚝 멈춰 서서는 화염 공에 휩싸인 한제를 힐긋 훑어보았다.
‘가만! 대천존이 하사한 법보까지 가지고 있다니, 뒷배가 엄청난 자야. 한데 그런 자를 만난 것은 어쩌면 엄청난 행운 아닌가! 이런 어리석은 놈! 이렇게 떠날 게 아니라 저자를 통해 대천존의 도움을 받아 더 높은 수준에 이를 생각을 해야지! 저자와 한편이 될 수만 있다면 대혼문 따위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 보물들을 갖다 바칠 필요도 없다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두청은 우울함이 삽시간에 사라졌고 오히려 히죽히죽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 이건 누구나 꿈꾸는 엄청난 기회야. 다른 종파에서 이자가 대천존의 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납죽 엎드려 복종하겠다고 하겠지. 하늘이 날 이리 아끼는구나. 마침내 두청에게 행운을 주신 거야! 한데 저자의 뒷배는 어떤 대천존일까? 하긴, 누구든 상관없지.’
두청이 가진 목각 인형의 육신에 심장은 없었지만 그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두 눈을 번득이던 두청은 한제가 있는 화염 공을 빤히 바라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포권을 하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내가 오해를 했군. 사실 창룡종의 건물들은 너무 오래돼서 안 그래도 허물고 다시 지을 생각이었지. 그러니 오히려 도우의 도움을 받게 된 셈이야. 그러니 내 어찌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나? 사실 내가 여기까지 자네를 쫓아온 것도 본디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함이었지.”
두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청산유수와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흠?”
한제는 미묘한 표정으로 두청을 슬쩍 훑어보았다. 벌써 두청의 심사를 간파한 모양이었다.
“도우가 지화 자맥의 혼을 흡수하고 있는 이런 중요한 순간에 내 그냥 떠날 수는 없지. 걱정 말게. 내 그 누구도 이 근방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네!”
한제의 시선이 자신을 훑는 것을 느꼈을 텐데도 두청은 난처해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한제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까 걱정이 됐는지 얼른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강 대륙의 법칙을 걸고 맹세하지. 도우를 보호해주겠다는 내 말과 의도에 악의는 전혀 없다네. 이 맹세를 어긴다면 천뇌(天雷)가 내 도와 혼을 파괴해 없앤다 해도 억울해하지 않겠네!”
말을 하는 사이 두청의 오른손에 붉은 문양이 나타났다. 두청의 맹세를 담은 채 깜빡거리던 문양은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는 선강 대륙에서 맹세를 할 때 쓰는 문양이었다. 이 문양으로 한 맹세를 어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강 대륙의 법칙이 그 맹세의 증인이 되어주기 때문이었다.
“됐네. 자네가 원한다면 나를 보호할 기회를 한 번 줘보도록 하지.”
한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두청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두청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의 태도가 돌변한 것에 한제가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까봐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한제의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린 두청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도우는 마음 놓으시게.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네의 안전을 보장할 테니!”
말을 마친 그는 뒤로 몇 걸음 더 나아가 수천 척 밖에 나타나더니 허공에 가부좌를 튼 채 신식을 넓게 펼쳐 사방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는 한제의 주위에까지 자신의 신식을 둘러놓지는 않았다. 한제가 자신을 조금 더 편하게 느끼기를 원해서였다.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두청은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밝혔고 한제 역시 그가 자신을 통해 금빛 문양의 법보를 만든 현라와 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것임을 완전히 파악했다.
‘나쁘지는 않겠군. 어쨌든 난 선강 대륙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니 보필해줄 사람 하나쯤 있으면 좋지. 더욱이 내가 부탁한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제안했으니 저자와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내가 우위를 차지한 셈이야.’
한제는 속으로 냉소하며 두 눈을 감았다. 거대한 화염 공 위에 나타났던 그의 얼굴은 천천히 옅어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두청은 약속한 대로 사방을 삼엄하게 경계했다. 그는 이 기회에 좋은 모습을 보임으로써 지금까지 방자하게 굴었던 잘못을 만회하고 싶었다.
눈 깜짝할 사이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한 줄기 신식을 갈라내 두청을 경계했고 동시에 그를 감싼 화염 공은 빠른 속도로 체내 화염의 본원에 흡수됐다.
지맥이 아니라 자맥으로 이루어진 화염 공이었기에 흡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굉장히 강력한 화염의 본원의 힘이 숨겨져 있었고 심지어 법칙도 어렴풋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칙은 바로 화염의 의지였다. 한제는 화염의 본원뿐만 아니라 그 의지까지도 흡수해야 했다.
화염 공 주위를 맴도는 열여섯 마리의 화룡 또한 하나씩 화염 공에 융합되어 사라져갔다. 이에 따라 화염의 의지가 천천히 화염 공 안에서 발산됐다. 이를 느낀 두청은 화염 공을 힐끗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닷새째 이른 아침,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며 밝은 빛을 발산해 어둠을 몰아낼 무렵, 화염 공에서는 콰쾅 하는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격렬한 소리와 함께 급속도로 수축하던 화염 공은 눈 깜짝할 사이 폭이 1백 척으로 줄어들었고 그 안의 화염은 왜곡됐다. 그리고 이내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주위를 한 마리 주작이 맴돌고 있었다.
“카아아아!”
몇 시진 후, 화염 공의 폭은 70척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때, 화염 공 안에서는 화염의 의지가 콰쾅 하고 폭발했다. 이 의지는 온 세상을 뒤덮고 대지와 지화의 의지에 맞서려는 것만 같았다.
말하자면 지금 천우주 안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화염의 의지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두 가지의 의지 중 하나는 천우주의 지화에서 기인했고 다른 하나는 두청이 보고 있는 화염 공에서 기인했다.
‘과연 대천존이 하사한 법보를 가진 자답군. 저 정도 화염의 본원이라면 천우주 지화의 의지에 충분히 맞설 수 있겠어!’
두청은 화염 공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였다.
콰쾅!
화염 공이 격렬한 소리와 함께 수축해 그 폭이 30척으로 줄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한제는 화염 공 자리에 가부좌를 틀더니 매우 진중한 표정으로 결인을 그려 화염 공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화염 공 안에서는 주작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화염 공은 다시 수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