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78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눈을 번득이던 유금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성주에서 얻은 여러 단약과 법보라면 원영기에는 충분히 이를 수 있을 터. 그렇게 되면 다른 주로 가서 나를 받아줄 종파를 찾아 수십 년 정도 제자 노릇을 하다가 다시 장사를 시작하자.’
유금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두 아이를 이끌고 산봉우리로 향했다.
한제는 유금표가 능숙하게 산봉우리 주위를 몇 바퀴 돈 뒤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홀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얼굴에는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흥분이 어려 있었다.
산봉우리에서 나온 유금표는 어딘가로 질주했다.
한데 유금표를 힐끗 살핀 한제는 돌연 표정이 급변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는 한 층의 파문이 일어났다가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
보통의 수련라면 감지하지 못했을 테지만 한제는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점술로 예측을 해 세상의 변화를 야기할 때 나타나는 변화였다.
‘누군가가 유금표의 위치를 점쳤어!’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파문이 나타났던 곳을 응시했다.
이어서 유금표의 위치를 예측한 상대의 힘을 빌려 웅장한 종파의 대전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일고여덟 명의 두 번째 단계 수련자들이 낯선 소년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 눈을 감은 소년 뒤에서는 한 노인이 오른손을 소년의 정수리에 얹고 왼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점을 치는 중이었다.
잠시 후, 노인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싸늘하게 외쳤다.
“금표자를 찾았다! 수십만 리 떨어진 곳이야! 속히 전송진을 통해 가서 녀석을 붙잡아 와라. 녀석의 원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내가 녀석에게 직접 수혼술을 펼칠 것이다!”
노인은 매섭게 외치며 왼손을 휘둘러 옥패를 날렸다.
“이 옥패로 녀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제자는 밖으로 내쫓아라. 그 후의 일은 이 녀석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진행될 터!”
파문 안으로 주입했던 신식을 거둔 한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희희낙락한 유금표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고생을 해야 교훈도 얻겠지.”
약 반 시진 후, 유금표는 돌연 앞에서 네 갈래의 빛이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의 주인공은 아까 한제가 보았던 대전 안의 수련자들이었다.
전송진을 통해 수십만 리를 뛰어넘은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유금표를 뒤쫓았다.
허나 유금표는 표정이 급변하고도 곧장 도망치지는 않았다. 네 수련자의 강력한 수준 앞에 어차피 도망치려 해봐야 소용없을 것이 분명했다.
눈을 굴리던 그는 길을 비키듯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 달려든 네 갈래 빛은 그를 에워쌌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네 명의 수련자는 서늘한 눈으로 유금표를 응시했다.
유금표는 잔뜩 긴장했으나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미간을 찌푸리더니 불쾌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선배님들, 어찌 제 길을 막으십니까? 무슨 이유인지는⋯⋯?”
유금표를 잡으러 온 네 명의 수련자는 상대의 침착한 모습에 의아한 모습이었다.
“잡아라!”
그중 우두머리가 유금표를 자세히 살피다가 소매를 휘두르며 외쳤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한 수련자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 결단기 수준에 불과한 유금표에게 두 번째 단계 수련자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유금표는 기겁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했고 심지어 냉소까지 터뜨렸다. 동시에 그는 머리를 팽팽 돌려 곧 어느 종파에 꼬리를 밟힌 것인지 눈치챘다.
“무엄하다! 흥, 억지로 붙들어 매려 할 필요 없다. 내 발로 직접 갈 것이니!”
유금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호통을 치듯 외쳤다.
그가 침착하다 못해 근엄하게 나오자 네 수련자는 더욱 의아했다. 유금표를 붙잡으려던 수련자 역시 멈칫하더니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슬쩍 떠밀었다.
곧 유금표는 네 사람에 의해 연행되었다.
“크지도 않은 종파 주제에 감히 나를 붙잡으려 들다니! 만약 내게 조금의 상처라도 입혔더라면 우리 주인님께서 너희 종파를 작살냈을 것이다!”
유금표는 호통까지 치며 네 수련자를 따라 먼 곳으로 향했다.
한편, 한제는 멀어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발각됐는데도 연기를 하다니. 한데 주인님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지?”
한제는 의아해하며 그들을 쫓았다.
유금표를 연행하는 네 명의 수련자는 몇 개의 전송진을 거쳐야 했지만 한제는 한 번의 축지성촌으로 수십만 리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다시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대성주 북쪽 산골짜기의 분지. 여러 누각과 궁전, 보호진이 있는 이곳은 대성주의 한 평범한 종파였다.
붙잡혀 온 유금표는 산골짜기의 어느 궁전에 이른 상태였다. 두려움에 미칠 지경이었음에도 표정만은 여전히 덤덤했고 입가에는 냉소와 경멸이 어려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점술로 유금표의 위치를 특정한 바로 그 노인이었다.
노인은 싸늘한 눈으로 유금표를 노려보았다.
“겁도 없구나! 이런 작은 종파 주제에 감히 내 행사를 방해하다니!”
유금표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노인을 마주보며 호통을 쳤다.
“만약 내가 조금의 상처라도 입는다면 우리 주인님께서 곧장 찾아오실 것이다! 그러면 보잘것없는 너희 운문(雲門)은 물론이고 대성주의 가장 큰 동림종도 벌벌 떨 수밖에 없을 것이야!”
유금표는 냉소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느릿하지만 결연한 목소리와 근엄한 표정에는 추호의 거짓도 없는 듯했다.
노인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네가 말하는 주인이라는 게 대체 누구기에?”
“쌍자 대천존 휘하의 고애 천존이시다!”
유금표의 당당한 대답에 노인은 흠칫 놀랐다.
“우습구나! 만약 네가 정말로 고애 천존의 종이라면 사기나 치고 다니겠느냐? 게다가 고작 결단기 수준에 이른 주제에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노인은 유금표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했다.
“허! 정말 상종 못 할 미천한 자로군! 내가 수련하고 있는 경지가 바로 기만책이다! 수준이 낮다고 눈까지 낮아서야 쓰겠는가? 내 수준이 정말 결단기에 불과해 보이느냐?”
유금표는 소매를 매섭게 휘두르며 서늘하게 외쳤다. 평생 남을 속여 오면서 기만책의 두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는, 스스로를 속이는 경지에 이른 그였기에 누구라도 속일 자신이 있었다.
한편, 아무도 모르게 궁전 한쪽에 가부좌를 튼 채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제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가늘게 뜬 눈으로 유금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금표의 수준은 결단기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듯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수혼술을 발휘할 생각이었겠지? 허나 내 똑똑히 말해두겠는데 그랬다가는 주인님이 곧장 찾아오셔서 너희를 풍비박산 내실 것이다!”
유금표는 냉랭하게 말하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고애 천존께서 오신다 해도 우리에게는 명분이 있다. 먼저 사기를 친 것은 너 아니냐!”
노인은 유금표의 말이 사실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만큼 유금표는 너무나 침착하고 당당했다.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면 보이지 못할 모습이었다.
“사기? 이 유금표는 평생 기만책을 수련해온 사람이다. 크기도 않은 운문을 상대로 사기 좀 쳤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이겠느냐? 그로 인해 너희들의 목숨에 영향을 미쳤느냐? 아니면 내가 너희의 법보를 편취했느냐? 난 그저 수련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너희에게 데려다주고 그 대가로 눈에 차지도 않는 단약 몇 개를 받았을 뿐이다.”
유금표는 경멸 어린 표정으로 말을 잇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대량의 단약을 소환했다. 어찌나 많은지 그 앞에 작은 언덕을 이루었을 정도였다.
“잘 봐라! 이 중 너희 운문의 것은 수십 개에 불과하다. 이 유금표에게는 그저 기만책을 수련하면서 얻은 부차적인 물건에 불과해. 내가 이따위 단약이 탐나서 사기를 친 것으로 보이느냐?”
유금표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앞에 쌓여 있던 단약들은 펑, 펑 소리와 함께 터져 산산조각이 났다.
이 갑작스러운 광경에 노인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유금표는 냉소하며 또 한 번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결단기 수준 수련자가 사용할 수 있는 법보 수십 개가 튀어나왔고 역시 일제히 파괴되었다.
“이따위 것들은 이 금표님에게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한데 감히 내 영혼을 뒤지겠다고? 나는 가볼 테니 마음대로 해보아라!”
유금표는 코웃음을 치며 소매를 휘두르더니 곧장 돌아 서서 멍하니 서 있는 노인을 내버려둔 채 궁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 그는 식은땀을 흘리지도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지도 않았다. 자신조차 속인 바에야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안색이 어두워진 노인은 신중한 눈으로 폭발한 단약과 법보들의 흔적을 살폈다. 그로서는 유금표의 말이 진실인지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정말일까? 거짓이라면 어찌 저렇게 침착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가치가 낮은 물건들이라 해도 아까워하지 않고 없애버리다니… 게다가 양이 이 정도라는 것은 그간 수많은 이들에게 사기를 쳐왔다는 뜻인데 그러고도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면 분명 무언가가 있을 터! 만약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돼. 더욱이 저자 말대로 그저 수준이 낮은 단약 몇 개를 취했을 뿐이니…’
노인이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유금표는 대전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운문의 제자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유금표가 단단히 고생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예상치도 못한 것이다.
‘아주 그럴듯한 연기였어.’
한제는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편, 운문의 노인은 궁전 밖 제자들이 유금표를 막아서는 것을 보며 갈등했다.
‘이렇게 복잡한 일이 될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찾지도 않았을 것을⋯⋯. 저자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게 됐어. 허나 그렇다고 저렇게 떠나도록 했다가는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텐데.’
고민에 잠겨 있던 노인이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그때였다.
유금표가 돌연 뒤로 몸을 홱 돌리더니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손바닥만 한 검은색 나무패를 소환해 노인에게 던졌다.
“잘 보고 결정해라. 딱 셋까지만 세겠다! 하나!”
유금표는 침착한 표정으로 냉랭하게 외쳤다.
한편, 노인은 검은색 나무패를 받아 든 순간 표정이 급변하고 말았다. 나무패에는 단 두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고애!
‘재질은 평범해 보이지만 무시무시한 기운과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절대 평범한 물건이 아니야! 게다가 이 서체(書體)… 극에 달한 고고함이 느껴져. 보통의 수련자로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을 서체지!’
나무패를 본 순간, 노인의 마음에 남아 있던 의심은 대부분 믿음으로 바뀌었다. 만약 유금표가 처음부터 이 나무패를 보여줬더라면 오히려 노인의 의심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허나 이미 마음이 흔들리고 있던 차에 가장 강력한 증거를 보자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넌 누구냐!
“둘!”
유금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셋을 세려 했다.
그 순간, 노인은 이를 악물고는 유금표에게 나무패를 내던지며 다급히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