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82
‘동부계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거지? 난 당시 내가 발견했던 것이 전부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 내가 발견한 것은 그 비밀의 끄트머리에 불과해. 나는 산 위에 서서 온 세상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산 너머 하늘 위에 또 한 쌍의 눈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음은 전혀 몰랐던 거야!’
한제는 온몸과 머릿속까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서체에서 풍기는 것과 비슷한 기운을 느낀다면 내게 알려주게.”
노인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꼭 알려주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기꺼이 자네의 노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해도 상관없으니⋯⋯.”
노인의 느릿한 목소리에는 절대로 꺾이지 않을 굳건한 의지와 신념이 담겨 있었다.
말을 마친 노인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맑은 바람이 불어와 대전을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산은 다시 푸르러졌고 물 역시 맑아졌으며,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가 풍겼다.
대전 밖에은 광장의 비석이 사라지고 해골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동림종 제자들 역시 하나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영원히 깨닫지 못할 그들은 동림종에 가득한 생기를 느끼며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지.”
대전 안,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그런 한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두 눈에 담긴 슬픔과 고독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 풍기는 슬픔만큼은 가릴 수 없었다.
“동림종에 온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의도가 있는 것인가?”
노인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동림지를 잠시 쓰고 싶어서 왔네.”
한제는 비석에서 느꼈던 충격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동림지⋯⋯.”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림지의 물은 기이하지. 대성주 아래에 봉인된 천외의 영혼과 관련되어 있어. 그곳에 봉인된 영혼은 흉수의 것이 아니라 어느 천외 수련자의 영혼이네. 그자는 당시 선조(仙祖)에게 패한 뒤 이곳에 봉인되었지. 이미 죽었지만 그 영혼만은 흩어지지 않고 지하수 속에서 흐르고 있어. 덕분에 동림지에 그런 물이 흐르는 걸세.”
노인은 오랜 기억을 더듬듯 말했다. 동림지를 찾아온 자가 언제 또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정도인 것일까?
“한 수련자가 동림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두 번뿐이네. 세 번째로 발을 들이면 폭발하여 죽고 말아. 외부에는 동림지에 들어가면 본원 진신을 응집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것은 거짓일세. 만약 정말로 그게 가능했다면 우리 동림종은 일찍이 선족 최고 종파로 거듭났겠지. 아니, 그전에 대천존이 동림지를 거둬갔을 거야.”
노인의 목소리에서는 가벼운 분노가 느껴졌다.
“물론 헛소문이긴 해도 동림지는 대천존들의 관심을 끌었지. 다만 동림종의 초대 선조인 동림 대천존의 존재와 시간이 흐를수록 효과가 점점 떨어진다는 문제 때문에 누구도 동림지를 강탈해가지는 못했어.”
“동림 대천존?”
한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선족의 다섯 대천존은 영원하지 않아. 개중에는 쇠락하는 대천존도 있지. 우리 동림종의 초대 선조는 일찍이 대천존에 등극하셨으나 쇠락하셨네. 지금은 그분의 시체조차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지. 수많은 이들은 선조의 시체를 찾고 있어. 소문에 의하면 우리 선조의 시체를 찾으면 태고 신경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대천존이 될 수 있다더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의 목소리에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림종에 이러한 배경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림지의 효과는 이미 많이 약해졌네. 게다가 그 연못의 효과는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을 기이한 상태에 이르게 해 대성주 밑에 봉인된 천외 수련자의 특수 본원을 깨달을 가능성을 갖게 하는 것에 불과해! 실패한다면 가지고 있는 본원을 더욱 짙게 만드는 데 그칠 뿐이지.”
★ ★ ★
허상 속 동림종은 이른 아침의 햇살 아래 아름답게 빛났다. 햇빛이 동림종을 뒤덮으면서 동림전의 그림자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동림종 제자들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좌선을 했다.
온 동림종은 마치 어린아이가 후후 불어 만든 거품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면서도 살짝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수록 허상으로 느껴지는 법이었다.
새의 지저귐과 꽃향기로 가득하고 부지런한 작은 짐승들이 바삐 움직이는 허상의 동림종 뒷산에는 거대한 제단이 하나 서 있었다. 탑처럼 생긴 제단 위에 깔린 푸른 돌은 햇빛에 서늘한 기운을 발산했다.
제단 꼭대기의 폭이 넓은 중앙에는 크지 않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물은 거의 말라 있었지만 바람이 불면서 얕게 깔린 물에는 파문이 일고 그 위로 고개를 내민 작은 식물들도 흔들렸다.
연못을 바라보는 한제의 눈빛이 혼란스러웠다. 유금표는 한제 뒤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이상한 곳이야. 어쩌면 지금 내 발밑에는 해골이 있는지도 몰라. 연못 물은 깨끗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체들이 썩어들어 가는 곳인지도⋯⋯.’
생각할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허나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시체가 아니라 미지였다.
한제는 제단 위의 연못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째서⋯⋯.’
두 눈을 감은 한제의 머릿속에는 동부계의 환각에서 보았던 동림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이 동림지는 칠채선존의 기억에서 보았던 곳과 다른 거지? 그의 기억 속 동림지도 이곳에 있었지만 제단은 없었어. 게다가 이보다 훨씬 컸지. 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란 말인가!’
이내 두 눈을 번쩍 뜬 한제는 기이한 빛과 모든 꿈의 장막을 파괴해버릴 법한 힘이 깃든 눈을 번득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제단은 썩고 갈라지고 대량의 말라붙은 피를 곳곳에 흩뿌리기도 했다. 죽음의 기운이 피어올라 제단을 뒤덮기도 했다.
그러나 시선이 연못에 닿았을 때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자 한제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그 무렵, 연못을 제외한 사방의 모든 것은 전부 변해버린 상태였다.
‘이곳이 진정한 동림종의 동림지야. 제단은 이미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나 보낸 모양이군. 한데 그렇다면 어째서 칠채선존의 기억 속 동림지는 이곳과 다른 걸까? 혹시 변화는 이곳이 아니라 칠채선존에게 있었단 말인가?’
한제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가 선강 대륙에서, 실제로는 처음으로 이곳 동림종에 발을 들였을 때 세상은 한 층의 안개로 뒤덮인 것 같았다. 안개는 그의 심신을 맴돌며 동부계에서의 경험에 의혹을 품게 했다.
‘난 정말 동부계의 모든 것을 파악했던 걸까? 천운자의 기운과 도경이 남아 있는 비석, 그리고 칠채선존의 잘못된 기억⋯⋯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거지? 동림종은 절대 평범한 곳이 아니야.
동림 대천존은 어떤 이유로 쇠락했고 여태 그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고 했지. 동림종을 파괴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 천운자? 칠채선존? 아니면 동부계와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나로서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구?’
동림지를 바라보던 한제는 한참 뒤에야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걸음을 옮겼다. 연못 에 반산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한데 연못에 비친 백의백발의 자신을 바라본 순간, 한제는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동시에 그는 머릿속에서 콰르릉 하고 울리는 우렁찬 천둥소리와 함께 뭔가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천역주와 관련해 이전에 몇 번 추측했던 일이 있지. 칠채선존은 당시 도일 대천존과 스승님이 교전을 벌이는 틈에 천역주를 손에 넣어 도망갔다. 한데 어떻게 두 대천존에게 들키지 않았던 걸까? 또한 동부계에서는 남몽도존과 칠채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내 체내에 천역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선강 대륙에서는 여태까지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지. 왜일까? 심지어 현라 스승님 역시 눈치채지 못하셨지. 아니면 알아차리셨는데 그저 말씀을 하지 않고 계신 것인가?’
한제는 계속해서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허나 도일 대천존이 내게서 천역주를 뺏으려 들지 않았던 걸 보면 천역주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천역주는 대체 뭘까? 천역 나침반은 또 누가 왜 만들었지? 왜 동부계 사람들은 알아본 천역주의 존재를 선강 대륙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할까?
녹색 마갈의 혼은 분명 ’흰 구슬‘이라고 했어. 다른 색 구슬도 있다는 뜻일까? 이 일과 동림종의 파괴 사이의 비밀을 찾아낸다면 동부계의 비밀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한제는 진중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내게는 한 가지 방법이 있어. 그 방법을 이용하면 동림종에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누가 이곳을 파괴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대천존도 예측해내지 못했고 황성의 국사도 사흘 동안 혼란에 빠져 있게 만든 일을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자리에 가부좌를 틀더니 동림지에 대해서는 잊은 듯 저 멀리 동림전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는 점차 구름과 안개가 피어올랐고 전신의 기운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기이한 상태에 침잠됐다.
곁에 있던 유금표는 몸을 홱 틀었다. 한제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는 여전히 한제를 볼 수 있었지만 뭔가 달랐다. 마치 한제가 더 이상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분리된 것만 같았다.
‘육신은 이 세상과 융합시키고 정신은 허무와 동화시키며, 영혼은 하늘로 흩어버리고 꿈으로 세월을 변천시킨다.’
한제는 몽도와 유월을 융합해 기이한 힘을 생성했다. 이 힘을 이용한다면 동부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시 발생했던 사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이런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여태껏 만나왔던 사람 중에는 없었다. 그 역시 대혼문 귀면기의 힘을 빌려야만 발휘할 수 있는 신통술이었다.
한제는 조용히 들어 올린 오른손을 휘둘러 귀면기를 소환했다. 깃발은 사방을 맴돌며 끊임없이 회전했다.
동림지
1천 년의 꿈.
꿈속, 한제는 계속해서 시간을 거슬러 갔다. 1천 년, 1천 년, 또다시 1천 년⋯⋯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는지 그조차도 이제는 알 수 없었다.
동림종, 산은 여전히 존재했고 물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수많은 제자는 이른 아침 세상의 힘을 흡수하며 동림종을 짙은 안개로 감쌌다. 대전에서는 경을 읊는 소리가 들려왔고 여러 제자들은 그 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평온하고 고요했다.
저 멀리 동림종의 약초밭에서는 몇몇 제자들이 스승의 분부에 따라 약초를 보살피고 있었다.
산 위로 이어진 돌계단을 오르내리던 동림종 제자들은 사형제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산 아래에서는 제자들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통을 나르고 있었다.
아침 햇살 아래 펼쳐진 고요한 동림종의 모습에 한제는 익숙함을 느꼈다. 마치 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거품 같았다.
그때,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동림종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으나, 산 아래에서 물통을 나르던 몇몇 제자가 몸을 바르르 떨다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계단 위에서 공손하게 인사를 나누며 갈 길을 가던 사람들도 비명을 내지르더니 살과 피가 뭉그러지면서 시체로 변해버렸다.
약초밭의 제자들도 작은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던 여인도 경을 읊던 목소리도 전부 비명을 내질렀다.
위태로운 거품 같았던 동림종을 누군가가 톡 건드려 터뜨린 것만 같았다. 거품이 터져버린 순간 거품 그 안의 모든 중생이 죽음을 맞은 것이다.
태양 아래 흐릿한 누군가의 인영이 나타났다. 허나 햇빛을 등지고 있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한제도 상대의 흐릿한 모습만 볼 수 있을 뿐, 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한데 상대를 본 순간, 한제의 머릿속으로 돌연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평생을 통틀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여태까지 느꼈던 그 모든 고통을 압도할 정도로 끔찍한 통증이었다.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으며 얼굴은 창백한 상태였다. 온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주인님!”
유금표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지?”
숨을 약간 거칠게 몰아쉬던 한제는 한참 뒤에야 괜찮다는 듯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야말로 촌각이었습니다. 눈을 감으신 순간 마치 세상에서 사라지신 듯한 느낌이 들어 깜짝 놀랐는데 곧바로 깨어나셨지요.”
“곧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