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63
“이렇게 마주쳤으니 살려주마. 오늘부터 넌 나의 세 번째 마혼이다.”
시커먼 빛 한 덩이가 한제의 오른손에서 번쩍이며 나와 마수의 이마에 내려앉았다. 곧이어 그 검은색 빛은 천천히 마수의 이마에서 빠져나왔다. 그 검은색 빛 안에는 멍한 눈빛의 원숭이 영혼이 들어 있었다.
그 영혼은 밖으로 나온 순간 온 몸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기운을 풍겼다. 순간 사방에 가득했던 약 냄새가 흩어지고 근처에 있던 풀과 꽃들은 파르르 떨다가 분분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천천히 말했다.
“태생적으로 사악함이 진동을 하는구나. 보아하니 죽기 전에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심한 고통을 겪었군.”
한제도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느끼는 기운도 아니었다. 사실 4백 년 전 조나라에서도 이렇게 사악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던 그였다. 당시 이런 기운을 내뿜던 것은 바로 한제 자신이었다.
이 원숭이의 영혼에서 같은 등급의 기운을 느낀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영혼을 붙잡음과 동시에 왼쪽 소매를 휘둘러 그 안에서 영혼의 깃발을 꺼냈다. 원숭이 영혼은 그 영혼의 깃발로 들어갔다.
영혼의 깃발에 몇 개의 금제를 건 한제는 더는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깃발에는 그가 지난 몇 년간 모은 강력한 영혼이 여럿 들어 있었다. 모두 언젠가 마혼으로 만들기 위해 보관해둔 것들이었다.
만약 방금 그 원숭이의 영혼이 다른 영혼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오히려 다른 영혼들을 잡아먹고 살아남는다면 세 번째 마혼이 될 자격을 증명한 셈이 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저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마수의 영혼을 거둔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남원으로 향했다.
한제의 본체가 잔영의 원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멀리 떨어진 남원의 세 번째 누각에 있던 이모완의 미간이 구겨졌다. 정신을 집중한 채 중요한 단약을 만들고 있던 그녀는 순간 몸서리를 치며 들고 있던 약재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단약을 반쯤 만들어가고 있던 단로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두 말 않고 방에서 나왔다. 4품짜리 단약은 한시도 잊은 적 없는 누군가의 모습에 비하면 그녀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미간에 자리한 혼혈의 신식이 문득 파문을 일으켰다. 여러 갈래의 강이 마침내 바다로 흘러드는 듯한 느낌, 저 멀리서 거대한 자석이 그녀의 미간 깊은 곳에 자리한 그 신식을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미간에 심어진 신식이 미친 듯한 경련을 일으키며 그녀의 몸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는 지난 2백 년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2백 년간 기다려왔던 그 사람이 설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인가.
모완은 재빨리 누각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막 자신의 처소를 떠나려는 순간, 듣기 좋은 목소리가 약초밭 밖에서 느릿하게 들려왔다.
“사매, 어디 가나?”
모완은 눈에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몸을 앞으로 날렸다. 하지만 하얀색 그림자 하나가 빠른 속도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 그림자는 이전에 그녀를 찾아왔던 그 중년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은 모완을 바라보며 온화하지만 이상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었잖나, 어디 가느냐고. 이렇게 조급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모완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그녀는 미간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신식에 집중한 채 한 자 한 자 냉랭하게 내뱉었다.
“손진위, 결단기 후기에 불과한 당신이 날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비키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수 없습니다.”
중년 남자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매, 여기는 운천종이야. 내가 어떻게 사매를 막을 수 있겠나? 사매가 어디에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쁘게 동행하도록 하지.”
이 무렵, 한제는 이미 남원에 도착해 있었다. 짙은 안개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결연
운천종의 원영기 수련자들은 주로 외종(外宗)에 소속되어 있었다. 내종(內宗)에도 있긴 했지만 이런 원영기 수련자들은 누군가와 전투를 하기보다는 대부분 처소에 틀어박혀 단약을 만들고 연구했다.
현재 이 남원의 원영기 수련자는 딱 한 명인데 그는 지금 남원의 지하 밀실, 화기가 가장 센 곳에서 수준을 정진시킬 수 있는 단약을 만들고 있었다.
한제는 남원에 오는 동안 온몸의 기운을 거둬들인 채 마치 귀신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남원 밖에 서서 짙은 안개를 주시하던 그는 곧 걸음을 옮겨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안개 안으로 들어섰다.
정현은 일찍이 한제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일러준 적이 있었고 안개는 그의 시야를 조금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한제는 신식을 통해 온 남원 안을 또렷하게 살피고 있었다.
중심부에 가까워진 그때, 한제는 신식을 통해 지하에서 풍기는 진한 원영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기운이 원영기 초기 수준의 수련자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제가 신식으로 사방을 훑어본 그때, 그자 역시 한제의 존재를 감지했다. 깜짝 놀란 그는 폐관 수련을 멈추고 나오려 했으나, 약 냄새를 풍기는 자신의 단정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한제는 지하에 자리한 원영기 초기 수련자를 발견한 뒤 두 말 않고 곧장 오른손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작은 검은색 깃발이 소매에서 빠져나왔다. 그 순간, 검은색 깃발은 바람을 맞으며 커지기 시작하더니 그 원영기 초기 수련자가 폐관 수련하고 있는 곳을 감싸버렸다.
한제는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 만약 상대의 수준이 원영기 중기만 됐어도 정현을 돕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원영기 초기에 불과하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비록 금번의 위력이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1각 정도 원영기 초기 수련자를 묶어두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 1각은 한제가 마음먹은 일들을 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제는 여유롭게 안개를 빠져나가 곧바로 정현의 처소로 향했다. 신식으로 주변을 한 번 훑은 한제는 이미 정현이 그 안에 있는 것을 알았지만 약간 위험한 상황이었다.
정현은 지금 처소의 침상 위에 누워 있었는데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력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그의 체내를 어지럽혔다.
그의 곁에는 약간 통통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미간을 살짝 구긴 채 오른손으로 정현의 입을 움켜쥔 그는 단약 한 알을 억지로 쑤셔 넣으며 욕을 지껄였다.
“이 망할 자식, 미인은 화근이 된다고 누차 말했는데도 듣지 않더니. 흥, 특히 그 이동희라는 계집의 속이 시커멓다고 내 말하지 않았더냐? 차라리 잘됐다. 오늘부터 다시는 그 계집에 대해 생각지 말고 오직 나와 단약을 만드는 데에만 전념하거라.”
정현은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단약이 그의 입으로 들어가면서 체내의 영력은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다.
그의 사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속상한 건 잘 안다. 벌써 몇 번이나 찾아갔느냐? 내가 체면을 무릅쓰고 쫓아가지 않았다면 넌 벌써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동원이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갔느냐?
네 몸에 금제를 걸어둔다고 해서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만약 네가 다시 행패를 부린다면 동원에서는 너를 파괴해 버리겠다더구나.”
중년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한제는 건물 밖에서 신식을 통해 그 장면을 똑똑히 보고 있다가 잠시 후 처소 쪽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정현의 사부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한제는 이미 정현의 방에 들어간 상태였다.
한제가 슬쩍 오른손을 휘두르자 순간 정현에게 걸린 금제가 싹 풀렸다. 몸을 부르르 떨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정현은 한제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년이 날 죽이려고 보낸 것이냐? 죽여라! 난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한제는 가면을 쓰고 있는데다가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까지 더해져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니 정현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한제는 정현을 힐끔 보다가 왼손을 들었다. 순간 잔영의 원 하나가 그의 몸 앞에 나타나 순간적으로 확산되면서 정현의 방을 감쌌다. 정현은 그런 한제의 행동을 보고 비참하게 웃었다.
“그 계집이 아주 대단한 사람을 골라 보냈구나. 겨우 나 같은 사람을 죽이자고 이렇게 수준이 높은 사람을 초청해오다니. 자 죽이려면 얼른 죽여라. 눈살 한 번이라도 찌푸릴 정현이 아니다.”
사방에 금제를 걸어둔 한제가 냉랭하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온 건 맞지만 널 죽이러 온 게 아니라 널 돕기 위해 온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상세하게 말해 보아라.”
정현은 흠칫 놀라 한제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누구의 부탁을 받고 오신 겁니까?”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냉담하게 말했다.
“말할 기회를 세 번 주겠다. 방금 한 번의 기회를 잃었다. 만약 앞으로 이어질 두 번의 기회에도 제대로 고하지 않는다면 알아서 하도록 해라.”
정현은 이를 악물며 필사적인 표정이었다.
“동원의 이동희라는 계집, 이 모든 것은 다 그 계집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 망할 년이 제게 접근한 것은 모두 큰 원숭이와 둘째 원숭이 때문이었어요.”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원숭이가 네 것이냐?”
기술적인 질문이었다. 운천종 안에는 마수가 굉장히 많았으며 그 마수는 만들어낸 단약을 먹여보기 위한 용도였다. 그러니 이동희의 행동은 크게 비난할 만한 것이 못 됐다.
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압니다. 하지만 큰 원숭이와 둘째 원숭이는 운천종의 마수가 아니라 제가 운천종에 들어오기 전부터 데리고 있던 녀석들입니다. 운천종에 들어온 후에도 운천종 내의 규칙에 따라 제 소유였지요.”
한제는 담담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 이동희라는 여인이 먼저 네게 접근해서 그 원숭이들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너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두 원숭이를 넙죽 주었겠지?”
정현은 참회하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전 그 계집이 원숭이에 타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년의 목적이 원숭이의 단(丹)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큰 원숭이는 단을 빼앗긴 뒤 실종됐으니 분명 이미 죽었을 겁니다.
이제 둘째 원숭이만 남았는데 동원에 있는 그 계집의 주변을 찾아보려고 몇 번이나 애썼지만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로막혀 버렸지요. 심지어 외종 목대 선생의 제자인 여송은 제게 수차례나 상처까지 입혔습니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일에 말려들고 싶지는 않았으나 정현은 그에게 축기단의 제조 방법을 가져다 준 이였다. 그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한제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빚을 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일단 빚을 지면 어떻게든 갚는다. 그게 한제였다.
한동안 침묵하던 한제가 불쑥 물었다.
“어떻게 복수하고 싶은가?”
정현은 붉게 충혈 된 두 눈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둘째 원숭이에게 아무 일이 없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넘길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둘째 원숭이도 죽었다면 그들을 죽여 버리고 말 겁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해주지!”
말을 마친 한제는 뒤로 물러나 곧장 정현의 처소를 떠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정현은 멍한 눈으로 방금까지 한제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황망한 빛만 어려 있었다.
한편 한제는 정현의 처소를 빠져나간 뒤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하지만 막 남원을 빠져나가려던 그는 돌연 우뚝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한 줄기 신식의 파동이 느껴졌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몸을 돌리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몸은 하얀 연기가 되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가 몸을 숨긴 순간, 모완이 번개처럼 그곳에 도착했다. 그녀의 뒤에는 온화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붙어 있었다.
“사매, 대체 뭘 찾고 있는 건가?”
중년 남자가 느릿하게 물었다. 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모완은 미간에 자리한 신식을 통해 누군가의 흔적을 찾았다. 그 사람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모습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자 모완은 쓰게 웃었다. 상대는 그녀 보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모완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처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와있는 거 알아요. 왜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는 거예요?”
중년 남자는 살짝 굳은 얼굴로 신식을 통해 사방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어떤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구긴 채 의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모완을 바라보았다.
“사매, 누가 왔다는 거지?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모완은 그 중년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두 눈을 감았다. 얼굴에 어렸던 처량한 표정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결연함이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선배의 얼굴 한 번 보는 것뿐이야. 지난 2백 년간 난 선배가 준 그 한 병의 액체 덕에 살아왔어. 만약 당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난 이 자리에서 자결해 버리겠어.”
중년 남자는 눈을 번득이며 신중하게 주변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