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21
아주 오래 전부터 그를 괴롭혀 왔던 질문이었다.
시선을 거둔 묵지가 모닥불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 불이 바로 생입니다!”
한제는 하늘거리는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물었다.
“왜죠?”
미소 짓던 묵지가 모닥불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릅니다. 허나 일반인들은 불을 피울 때 불을 살린다, 불을 살린다, 하더군요. 그러니 이 불이 바로 생입니다!”
“미친놈!”
모닥불의 사내들은 이제 기괴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 불이 바로 생이다⋯⋯.
한제는 점차 뭔가를 깨달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한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이 사(死)입니까?”
묵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그때, 그의 눈이 다시 멍해졌다. 텅 빈 듯한 눈이었다. 한참 뒤, 겨우 정신을 차린 듯 그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금⋯⋯ 우리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한제가 말을 하기도 전에 모닥불 곁에 있던 한 사내가 말했다.
“저자가 방금 당신에게 무엇이 죽음이냐 물었잖소!”
묵지는 미안하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귀하는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겠지만 귀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마찬가지로 한제가 답하기도 전에 모닥불 곁에 있는 또 다른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자의 이름은 대우요!”
묵지의 눈에 깃든 미안함이 더욱 짙어졌다. 그가 말했다.
“천도를 깨달은 그날부터 기억력이 날로 떨어져갑니다. 이해 바랍니다.”
한제는 아무런 기색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물었다.
“귀하가 깨달은 것은 어떤 경지입니까?”
경지에 대해 직접 묻는 것은 상당히 꺼려지는 일이었지만 묵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외려 더욱 멍해진 눈빛으로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망각의 경지⋯⋯.”
“이봐, 어떤 것이 사(死)인지 말해 보라고. 또 어떤 재미난 소리를 하나 보게.”
모닥불에 있던 사내 하나가 묵지를 재촉했다.
묵지는 더욱 짙어진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것이 사(死)일까요⋯⋯. 죽음은 곧 소실(消失)입니다. 사람을 잃는 것은 죽음이고 마음을 잃는 것은 망각이죠. 이것이 바로 사(死)입니다.”
한제의 마음이 떨렸다. 상대의 말은 마치 청천벽력처럼 한제의 마음과 머리를 뒤 흔들었다. 생과 사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혀 나가는 것만 같았다.
죽음은 곧 소실이다. 사람을 잃는 것은 죽음이고 마음을 잃는 것은 망각이다.
깨달음
묵지는 텅 빈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오른손으로 불당 밖의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오늘은 비가 끝없이 내리네요. 이 웅덩이의 물은 곧 삶입니다. 다른 날에는 웅덩이의 물이 사라지니 그것은 곧 죽음이죠. 생기도 없고 흐름도 없으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잠시 후 그는 오른손을 움직였다. 이번에 그의 오른손이 가리킨 것은 모닥불 가에 있는 사내들이었다. 그의 눈에 깃든 텅 빈 빛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오늘 저들은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 곧 삶입니다. 나중에 저들이 희로애락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겠죠.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그의 오른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 그가 가리킨 것은 불당 안의 꽃잎 받침대였다.
“이 불당에 불상이 있을 때 불당은 살아 있었습니다. 허나 불상이 사라진 지금은 죽어 있죠!”
여기까지 말을 잇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번에는 하늘을 가리켰다.
“이 비는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죽습니다. 그 과정이 곧 인생입니다. 저는 하늘도 땅도 아닌 이 비를 보고 있지만 사실 보고 있는 것은 비가 아니라 비의 일생이죠. 이것이 곧 삶과 죽음, 생과 사입니다!”
한제는 큰 감동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묵지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묵지는 웃음을 머금은 채 걸음을 옮겨 불당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유성처럼 긴 잔영을 남기며 빠르게 멀어졌다. 멀리서 들릴 듯 말 듯한 그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대우, 귀하가 알아들었다면 알아들은 것이고 알아듣지 못했다면 알아듣지 못한 것이니⋯⋯ 알아서 잘하도록 하십시오.”
한제는 내리는 비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웃었다.
이때, 모닥불에 있던 사내들은 모두 멍한 얼굴이었다. 뭔가를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생각해보면 다시 머리가 아득해지는 모양이었다.
“이보시오. 방금 저 사람이 한 말, 대체 무슨 뜻이오?”
그중 한 사람이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다른 사내들도 분분히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은⋯⋯ 이해할 수 없소.”
말을 마친 그가 걸음을 옮겨 불당 밖으로 나갔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비는 하늘에서 태어난다. 한제는 이번에는 땅을 바라보았다. 이 비는 땅에서 죽는다. 그 과정이 바로 인생이다.
이것이 바로 생과 사다.
어떤 것이 생이냐고 물었을 때 불이 생이라고 답한 것은 불에 생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불을 살린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죽음은 곧 소실이다. 사람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이고 마음을 잃는 것은 곧 망각이다.
걸음을 옮기던 한제는 마음이 확 트인 것을 느꼈다. 한 줄기 맥락, 생과 사에 대한 맥락을 잡은 것 같았다. 본래 1년은 더 지나야 화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그였지만 방금의 깨달음으로 급격한 성장을 겪은 그는 거의 순간적으로 화신기에 이르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달성했다. 말하자면 지금 은 원하기만 한다면 곧장 화신기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적합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한제는 얼른 화신기에 이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비행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묵지의 경지는 마음의 소실, 곧 망각의 경지였다. 마음에 극도로 집중하여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잊은 것이지. 모든 것을 망각함으로써 도(道) 하나만을 남길 수 있으니까!”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묵지는 정말이지 기이한 사람이었다.
비 오는 밤, 불당에서의 깨달음은 한제를 마침내 화신기에 이르게 해주었다. 바로 이 순간, 한제는 화신기에 이를 자격을 갖게 되었으며 화신의 경지를 가지는 데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화신기 수련자의 실력 차이는 등급의 분계점이었다.
이는 수련자들이 일단 화신기 이상에 오르면 그 수련의 중점은 육체에서 정신으로 옮겨가기 때문이었다. 천도에 대한 깨달음을 토대로 했고 천지의 힘을 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경지는 화신기 수준 이상의 수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또한 깨달음의 차이에 따라 경지 역시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끝없이 광활한 세상에는 수많은 경지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 경지 사이에는 강약의 구분이 없었다. 경지를 극의 수준까지 달성하면 서로 간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서로 다른 시작은 그 진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화신기 수련자들 사이의 실력은 격차가 컸다. 만약 일반적인 천도를 깨달으면 원영기 수련자보다는 훨씬 강할지라도 다른 화신기 수련자들에 비해서는 약해지는 것이다.
사실 한제가 만약 화신기에 이르기를 원했다면 백운종의 첫 번째 화신기 수련자를 조각했을 때 벌써부터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수련자의 경계는 한제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면 한제는 화신기에 이르러도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했으며, 영변기에 이를 가능성도 굉장히 희박했다. 자신이 직접 깨달은 경지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법이었다.
화신기에 이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경지를 모방하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어려웠다. 스스로 경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수련자는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으로 문파 내의 원영기 절정 수련자들이 시도하곤 했다.
두 번째 방법은 완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천도를 깨닫고 심경을 체득해 스스로의 경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는 매우 어려웠으며 극도의 노력과 우연이 맞아떨어져야만 성공할 수 있는 대신 성공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일반적으로 스스로의 힘만으로 경지를 깨닫지 못하는 수련자들만이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방법을 택했다. 두 방법 사이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 차이는 막 시작했을 때에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메우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었다.
하지만 스스로 경지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수련자는 첫 번째 방법으로 경지를 깨닫는 편이었다.
조나라에 있던 4성 수련국의 사자는 첫 번째 방법으로 화신기에 이른 자로 한제가 강한 법보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도망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었다. 첫 번째 방법으로 화신기에 이른 수련자 중에서도 영변기까지 이르는 사람은 있었다. 다만 그 수가 너무 적었고 영변기에 이른다 해도 낮은 단계에 머물 뿐이었다.
때문에 이 방법으로 화신기에 이른 수련자는 종종 단약에 집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계의 영기를 담은 단약은 그렇게 얻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비 오는 밤하늘을 날아 오래된 전송진에 도착한 한제는 한 줄기 빛과 함께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리고 전송진에서 나온 뒤 최대한 빨리 다음 전송진을 향해 날았다.
★ ★ ★
한 달 뒤, 한제는 조나라 변방의 한 골짜기에 도착했다.
눈앞의 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감개무량했다. 조나라는 넓지 않은 나라였다. 신식으로 찬찬히 훑으면 조나라 안의 세세한 부분을 하나하나 다 살필 수 있었다.
대대적인 학살 후 조나라의 수련자는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몇몇 원영기 후기 수련자의 죽음은 조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지난 수십 년간 남아 있던 모든 문파는 거의 다 문을 닫고 밖으로 출입하지 않았다.
조나라의 신선계에서는 한제에 관한 소문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수련자가 한제에 관한 이야기만 나와도 겁에 질렸고 직접 한제를 본 수련자는 꿈속에서도 경기를 일으키며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일어나곤 했다.
조나라 중심에 있는 사자의 통천탑은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한제는 일전에 대산파 차지였으나 지금은 현도종의 것이 된 대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신선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소년은 이제 화신기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그가 현도종 밖에 이르렀을 때, 한 덩이의 흰 안개가 온 산봉우리를 뒤덮고 있어 종파 안으로 이어진 작은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현도종은 지난 몇 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근 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일이 없었다.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문을 두드려 사람을 불러내는 대신 훌쩍 몸을 날려 현도종의 뒷산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그는 이 뒷산에서 4년간 폐관수련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이 뒷산에서는 몇몇 수련자가 폐관수련을 하고 있었지만 그 수는 결코 많지 않았다. 또한 모두 맥없고 풀이 죽은 상태였다.
그들이 한제를 알아차릴 리는 없었다.
뒷산 절벽에 가득한 동굴들 가운데 당시 자신이 폐관수련을 하던 동굴을 찾아낸 한제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굴은 비어 있었다. 한제가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 입구가 우르릉 소리와 함께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