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50
손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실제로 보탑에 어린 경지는 그에게 너무도 위협적이었기에 그는 한제의 말투가 바뀐 것에 대해서도 화조차 내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고 한제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냉랭한 얼굴로 소리쳤다.
“다른 종파라면 모르지만 시음종이라면 나도 좀 알지. 그 관의 시체 인형은 절대 너의 네 번째 영혼일 수 없다. 설령 네게 정말로 네 번째 영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잔혼(殘魂)에 불과하겠지.”
표정이 잔뜩 구겨진 손태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믿지 못하겠다면 보여주마!”
한제는 하하 웃으며 형형한 눈빛으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그런 협박에 굴할 것 같은가? 주일 선배가 그런 화근을 남겼을 리 없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넌 죽을 수밖에 없다. 잔혼이 있더라도 주일 선배는 일찍이 그것까지 계산했겠지. 네놈 정도 되는 노예를 구하기는 어려워 봐주려 했으나, 이렇게 주인에게 덤벼든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손태는 눈을 번득였다. 겉으로는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정말로 주일이 그 모든 것을 계산해 손을 쓴 것일까?
“손태, 그 여인의 시체를 기억하느냐. 그녀는 떠나기 전 이 보탑을 내게 줬다. 설마 그 뜻을 모르겠느냐!”
한제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면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손에 보탑을 쥔 채 앞으로 걸어 나오는 그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손태는 한제의 말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뜻 말이냐?”
손태는 마음이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말했다.
하하 웃은 한제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오며 소리쳤다.
“정말로 그 뜻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네 목숨을 끊는 수밖에…”
손태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한참 멀리까지 물러난 뒤에 말했다.
“흥! 만약 네가 나의 영혼을 모두 멸하려 한다면 내가 어떻게 대항하는지 직접 보여주마!”
말을 마친 그는 얼른 먼 곳으로 날아갔다.
한제는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손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시름 놓았다.
사실 그가 감당하기에는 손태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한제의 성격상 그런 노예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또한 정말로 네 번째 영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하긴, 사실이라 해도 세 번째 영혼이 소멸된다면 경지가 대폭 떨어질 테지. 그러니까 손태가 내 말 몇 마디에 놀라 달아나는 것일 테고…”
한제는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다시 성라반(星羅盤) 쪽으로 돌아왔다.
한제는 방금 전의 상황이 겉보기와 달리 얼마나 흉험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두려워하는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그자에게 휘둘렸을 것이다.
“네 번째 영혼에 대한 대책만 있다면 손태를 완전한 노예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텐데!”
한제는 질주하듯 내달려 빠르게 성라반 위로 돌아왔다.
“천우, 그 손태는 시음종의 대장로라네.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걸세.”
이제 치호의 마음속에서 한제는 무척 높은 위치였다. 그는 거마족의 소족장으로서 공연히 적을 건드려 화를 일으키기보다 많은 호걸을 두루 사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여태까지 동행하면서 한제는 지혜로움과 강인함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경지 역시 놀라웠다. 그러니 치호로서는 그와 친분을 맺고 싶은 마음이 더욱 짙어졌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괜찮네. 주일 선배 말씀대로 저자는 쓸모가 많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저자의 원신을 소멸시켰겠지. 보탑으로 네 번째 영혼을 흡수하게 했으면 도망치기도 힘들었을 테니까.”
한제는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는 손태가 멀리 달아났다고는 해도 여전히 이쪽을 살피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흠칫 놀란 치호는 더는 묻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 후 나침반을 조종하는 데 집중했다.
잠시 후 그 자리에 나타난 손태는 잔뜩 그늘진 눈으로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저 녀석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8할 정도는 진실일 것 같군. 그렇지 않다면 화신기 초기에 불과한 주제에 그토록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와 대면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흥, 녀석도 내 원신을 쉽게 소멸시키지는 않을 거야. 뭘 말하는 건지는 몰라도 분명 쓸모가 많다고 했으니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손태는 이내 앞으로 날아갔다.
“녀석을 죽일 수도 묶어둘 수도 없으니 정말 짜증나는군!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곧장 내 원신을 멸하겠지. 네 번째 영혼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신이 소멸되면 내 경지가 대폭 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명도 적지 않게 깎여나갈 테니⋯⋯.”
손태는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성라반은 매우 빨랐으나, 몇 시간이 지나자 균열이 갈수록 많아지더니 결국 허무 속에서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됐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말없이 있었다.
“천우, 성라반은 이제 더는 쓸 수 없게 됐네.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가는 수밖에 없어. 다만 이 허무의 공간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 문제지.”
치호는 성라반에서 날아오르며 씁쓸하게 말했다.
한제는 성라반을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가진 성라반은 이것 하나뿐인가?”
“천우, 성라반은 주작성 전체를 통틀어도 흔치 않네. 우리 거마족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주 오래 전 주작성으로 이주할 때 썼던 것을 남겨뒀기 때문이지. 허나 안타깝게 이건 폐품이 됐으니 돌아가서 벌을 받을지도 모르겠군.”
쓴웃음을 짓는 치호를 보며 한제는 피식 웃었다.
“치호, 우리가 알고 지내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함께 생사를 넘나든 만큼 자네를 속일 생각은 없네. 이 성라반, 내가 고칠 수 있네!”
치호는 흠칫 놀란 눈으로 한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성라반이 망가진 이상 이 허무의 공간을 빠져나가는 것은 무척 위험하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릴거라 여겨 긴장하고 있었다.
“천우, 만약 이 성라반을 고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분명 이 허무의 공간을 잘 빠져나갈 수 있을 걸세!”
치호는 한제가 어떻게 성라반을 고칠 수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에 대해 물어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다.
한제는 빙긋 웃으며 말없이 치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치호는 곧장 그 뜻을 알아차린 듯 간절히 말했다.
“그냥 고쳐달라고 하지는 않겠네. 원하는 것이 있거든 거리낌 없이 말해주게.”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성라반을 고치는 데 필요한 재료는 굉장히 귀하네. 게다가 그것을 다루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력이 필요하지. 그러니 만약 잘 고쳐진다면 이 성라반을 내게 주게.”
치호는 침묵했다. 이 성라반은 거마족의 보물인 만큼 아무리 폐품이 된 상태라 해도 덜컥 남에게 줄 수는 없었다.
“곤란하다면 친우로서 그냥 고쳐주겠네.”
한제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치호는 고개를 번쩍 들고 한제를 바라보며 하하 웃었다.
“그게 정말인가?”
“물론 정말이네. 다만 언젠가 성라반을 빌릴 테니 그때는 부탁 좀 하겠네.”
한제가 웃으며 말했다.
치호는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따져보려 했으나, 이내 피식 웃으며 더는 추측하지 않았다. 그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품은 뜻은 같았다.
‘만약 나를 죽이고 가져갈 생각이라면 그리했겠지. 그러니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진심일 것이다. 정말로 나를 친우로 여기려는 게지. 더구나 주일 선배 덕에 문정의 결정을 얻은 저자는 문정에 이를 가능성이 상당하다. 지금 연을 잘 맺어둔다면 우리 거마족에게 충분한 도움이 될 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감격한 듯 말했다.
“천우, 이 치호를 친구로 생각한다는데 내가 어찌 소인처럼 굴 수 있겠나. 허나 우리 족장의 성격으로 자네가 필요할 때 빌려달라고 해도 결코 쉽게 빌려주려 하지 않을 걸세. 그러니 차라리 오늘 자네에게 주겠네!”
한제는 가볍게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고맙네!”
치호는 오른손을 휘둘러 성라반에 찍어둔 낙인을 거둔 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제에게 넘기며 웃었다.
“이 성라반은 이제 자네의 것이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를 잠시 보호해주겠나? 지금 당장 수리하겠네!”
치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친구로서 당연한 일이지. 걱정 말게!”
한제는 곧장 가부좌를 틀더니 오른손으로 저물대에서 금자석(金紫石)을 꺼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연이어 결인을 그려내며 그 위에 찍어 금자석을 액체로 만들었다.
이어 그는 미간에서 수많은 유혼을 쏟아냈다. 만약 치호가 갑자기 공격을 해올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수백 년간 살육을 자행해온 한제는 단 한 번도 쉽게 다른 사람을 믿어본 적이 없었다.
검광(劍狂)
한참 뒤, 자금석의 액체가 천천히 한제의 앞에 모여들었다. 금빛과 보랏빛이 교차된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새로운 성라반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필요한 재료가 너무 많지만 지금처럼 망가진 성라반을 고치는 일은 한결 쉬워졌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금자석의 액체를 두드려 성라반과 한데 합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리며 고대 신의 기억에 따라 수리를 시작했다.
성라반에 그려진 부호가 천천히 밝아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부호가 밝아지며 빠르게 번쩍거렸다.
치호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신식을 펼쳐 사방을 1천 척 범위 안을 엄밀히 경계했다. 이 허무의 공간에는 위험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너무 넓은 범위까지 신식을 펼쳤다가는 그 위험한 것들의 시선을 끌 우려가 있었다.
그는 한제를 중심으로 2백 척 안의 범위는 따로 살피지 않았기에 한제가 사용하는 수법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천우가 이렇게 흉금을 털어놓은 것은 그만큼 나를 믿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믿음을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내가 거마족의 중요한 보물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에게 이길 가능성은 5할에 불과하다.’
그때, 손태는 두 사람이 감지할 수 없는 먼 곳에서 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저놈, 성라반을 수리할 수 있다니, 대단하군! 만약 지금 손을 쓴다면 저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묶어둘 수야 있겠지만 덜컥 달려들었다가 변고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노예의 낙인은 너무도 끔찍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