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9
한제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호흡하며 영력을 흡수했다. 체내의 영력은 천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茶)의 경지가 남긴 흉터와 봉인을 풀기까지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심지어 그 봉인과 경지는 알아서 영력을 흡수했다. 한제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봉인과 경지 역시 견고해지는 셈이었다.
시간은 꾸준히 흘러 한제가 연혼종의 외부 제자가 된 지도 한 달이 됐다.
한제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밝았다.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영력을 흡수한 덕에 세 개의 최고급 영석 중 두 개는 이미 폐기물이 되어 있었고 마지막 하나 역시 곧 폐기물이 될 상태였다.
대신 그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의 수준은 어느덧 축기기 중기의 절정에 이르러,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축기기 후기에 이를 수 있었다.
“너무 느려! 최고급 영석까지 써 가면서 겨우 이 정도라니… 게다가 최고급 영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는 안 돼!!”
한제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한 번 움직였다.
순간,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앉아 있는 돌 침상에 끊임없이 긴 균열이 나타났다. 심지어 사방의 벽도 분분히 갈라져 미세한 틈이 나타났다.
아마도 이 석실에 지난 한 달 동안 영력이 너무 꽉 차 있었던 모양이다. 균열이 나타난 것은 벽과 침상이 이 대량의 영력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균열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
“이 석실은 더 못 쓰겠군. 다른 석실로 바꿔야겠어!”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한 뒤 양쪽을 꾹 눌렀다. 순간 그 균열들이 하나하나 기이하게 요동치더니 맞물리면서 천천히 원상태로 돌아갔다. 갈라졌던 돌 침상도 손짓 한 번에 원래대로 복구됐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만약 이곳의 영력이 다시 많아진다면 돌벽은 금세 또 갈라질 것이다. 대신 최고급 영력을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균열이 나타나지는 않을 테니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지는 않을 터였다.
한제 동굴 밖으로 나갔을 때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붉은 석양이 장관을 이루었다. 일 년의 말엽, 겨울의 햇볕은 그다지 따스하지 않아 몸에 닿기도 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한제는 오늘이 이번 해의 마지막 날임을 깨달았다. 오늘이 지나면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문득 은혜가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아직도 소백을 놀리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한제의 미소를 지으며 석양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난 뒤에 살아남았구나!”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상을 호령하다가 한순간에 추락해 일반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며 이를 악물고 버텨 내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영력을 잃고 난 뒤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하게 요동쳤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한제의 쇠락하고 낯선 처지 같았다. 하지만 내일은 새로운 해의 첫 날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을 모든 것의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때, 석양 속에서 늘씬한 여인이 느릿하게 날아왔다.
“저 사람⋯⋯ 낯이 익은데⋯⋯.”
다가오는 여인을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빠르게 산 중턱에 이르렀다.
중년 남자는 땅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다가 한제가 나타나자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한제를 슥 훑더니 굳은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허! 축기 중기?”
남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원신이 붕괴한 뒤 수준을 감출 수가 없게 되다 보니 결단기 수련자에게도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 최대한 빨리 원신을 회복시켜야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전부터 돌파할 기미가 보였는데 이곳에서 영력을 호흡하면서 다행스럽게도 돌파하여 축기 중기에 이르렀으니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중년 남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뭔가 미심쩍었다. 한제의 말이 이상한 점은 없었으나, 어찌됐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수준이 상승하긴 했다.
그는 한제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어쩐 일로 왔느냐?”
한제는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영력이 좀 더 충분한 동굴로 바꿨으면 합니다.”
중년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제를 노려보았다.
“수련자는 가장 멀리해야 하는 것은 빠른 수련이다. 너처럼 수련했다가는 기초가 불안정해 이 생에서 결단기에 이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야!”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게 다 생각이 있으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중년 남자는 한제를 힐긋 본 뒤 혀를 찼다.
“고집도 세구나.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 허나 방을 바꾸는 데에는 중급 영석 하나가 더 필요하다.”
한제는 쓰게 웃고는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중급 영석 하나를 넘겼다.
중년 남자는 그 영석을 받아들고 말했다.
“네 영패를 다오.”
한제가 넘긴 영패를 받은 중년 남자는 저물대 안에서 다른 영패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동굴 번호의 숫자가 작을수록 영력이 많다는 의미다.”
말을 마친 그가 영패를 한제에게 건넸다.
새롭게 받아 든 영패에 적힌 번호는 803이었다. 한제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한제가 떠나간 뒤 그 중년 남자는 눈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그는 돌연 몸을 훌쩍 날렸다. 이내 그는 1090번 동굴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서서 한참이나 자세히 살폈다. 허나 어떤 이상한 점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오히려 의혹이 더욱 커졌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건가. 어쩌면 그자 말대로 돌파 직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는 한참을 더 고민하다가 동굴을 떠나면서 앞으로는 그 청목이라는 자를 눈여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한제는 그 사이 803번 동굴에 도착해 있었다. 크기나 시설은 이전 동굴과 다를 바 없었으나, 대신 바닥에 작은 진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 진은 구조가 매우 복잡해 언뜻 보면 여러 개가 중첩되어 있는 듯했다.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그 진을 한참 연구하던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이 진은 간단한 취령진(聚靈陣)이었으나, 누군가가 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불필요한 구조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취령진은 주로 일정 범위 내의 영력을 응집해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취령진을 영안(靈眼), 즉 영맥에 있어 인체의 혈과 같이 각 부분에서 전신을 움직이는 곳에 배치하지 않으면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곳에 영안이 있을 리 없어. 분명 어딘가에서 옮겨온 가짜 영안일 테지!”
한제는 아쉬운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비록 본래의 힘은 잃었지만 그는 어쨌든 화신기 수련자였다. 지난 5백 년간 길러온 눈썰미만큼은 여전했기에 단번에 진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아마도 결단기 수련자 중 이 진에서 단서나 실마리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원영기 수련자라면 흔적을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완벽히 간파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더구나 이 진에 포함된 대부분의 구조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역할을 해, 상세한 연구를 하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아마도 이런 수법으로 진이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연혼종은 이 산을 동굴로 만들어 외부 제자들에게 제공할 있었을 것이다. 외부 제자가 머무는 이런 동굴에 화신기 수련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그 진 위에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진의 눈과 더욱 복잡한 진을 볼 수 있었다.
“진 속의 진이라… 옮겨온 영안으로 가짜 영안을 만드는 작용을 하는 모양이군.”
한참을 관찰하며 속으로 중얼거린 한제는 곧 진을 원상태로 돌려놓고 그 옆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두 손을 결인하여 사방의 돌벽에 줄기줄기 금제를 쏘아 보낸 뒤 세 개의 최고급 영석을 꺼내 배치한 후 호흡을 시작했다.
확실히 이곳의 영력은 이전 동굴보다 훨씬 짙었다. 취령진이 가짜 영안과 한 줄기 영맥을 연결해주는 듯했다. 여기에 최고급 영석 세 개의 도움까지 더해지자 이 동굴의 영력은 놀랄 만큼 진해졌다. 원영기 수련자라도 이곳을 본다면 어떻게든 빼앗고 싶어질 터였다.
정신을 집중하여 호흡하던 한제는 시간의 흐름마저 잊었고 그의 체외에는 두꺼운 한 층의 서리가 어렸다.
영력이 일정 이상으로 짙어져 흘러나갈 곳을 찾지 못하면 이렇게 옅은 푸른색을 번득이는 영력의 서리가 응결된다. 지금 이 803번 동굴 역시 푸른 서리로 뒤덮여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 되었다.
취령진(聚靈陣)
한제의 몸을 뒤덮은 서리는 점점 많아져 멀리서 보면 마치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뒤덮은 찻잎 모양의 흉터 때문에 여전히 흉측해 보였다. 담이 약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겁을 집어먹을 것이다.
한제의 체내에는 영력이 천천히 쌓여가면서 조금씩 응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茶)의 경지와 봉인도 그 짙은 영력의 작용 아래 더욱 견고해져서 처음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해졌다.
시간은 빠르게 또다시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꼼짝도 하지 않고 힘을 되찾는 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영력은 더욱 많아졌고 성장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이에 한제는 겨우 축기 후기에 이르는 데 그쳤을 뿐으로 축기 후기의 절정까지도 아직 한참이 남아 있었다.
최고급 영석들 역시 점점 줄어갔다. 한제는 내심 마음이 아팠다. 이런 방식의 수련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한제는 예리한 눈으로 바닥의 진을 한참 살피다가 오른손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진이 흩어지면서 그 안에 있는 진의 눈이 드러났다.
“이 안에 있는 영력으로는 모자라. 만약 그 가짜 영안으로부터 직접 영력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결단기에 이르게 될 거야.”
한제는 다시 그 진의 눈에 있는 작은 진을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넓게 보면 진은 금제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금제에 대한 한제의 이해도는 이미 최고 수준에 달해 있었기에 이 진 역시 점차 파악할 수 있었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한 뒤 체내의 영력을 조종하면서 금제를 하나하나 만들어냈다. 이마에 땀이 맺혀갔다. 그는 빠르게 두 손을 변화시키면서 잔영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나의 금제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또 다른 금제를 만들어내면서 잔영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제 한제의 이마에서 흐른 땀으로 옷까지 젖어갔다.
잔영의 원은 한제의 독창적인 수법이었다. 여러 개의 금제를 겹쳐 만든 잔영의 원은 보통의 금제와 전혀 달랐다. 허나 지금 한제의 수준으로는 잔영의 원을 만드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고대 신의 땅에서는 결단기 수준으로도 잔영의 원을 하나 겨우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지금으로서는 전력을 다해도 잔영의 원 하나 만들어내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두 손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여가던 한제는 결국 모든 잔영들을 하나로 융합했다. 그러자 드디어 잔영의 원이 하나 만들어졌고 한제는 그것을 진 위에 떨어뜨렸다.
진이 곧장 진동하면서 그 위에서 강한 힘이 솟아올라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힘을 피한 뒤 시선을 진에 고정했다.
강한 힘이 솟아나온 뒤 그 진은 곧장 작용을 멈추었고 조금의 영력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쩌적 소리와 함께 진이 한 번 번득이더니 천천히 소멸되어갔고 그 안에 있던 주먹만 한 크기의 영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영석은 완전한 붉은색이었고 안쪽에는 구름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무언가가 부유하고 있었다. 한제는 한눈에 그 영석이 곤정암(坤晶岩)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천연적으로 영력을 흡수할 수는 있어도 저장을 하지 못하는 돌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을 그 돌 위에 얹은 후 호흡을 시작했다.
쾅!
흘러넘치는 듯한 영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곤정암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한제의 팔을 통해 미친 듯이 그의 체내로 흘러들어갔다.
강렬한 영력에 한제는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이어 검은 기운이 온몸의 모공을 통해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을 뒤덮은 찻잎 모양의 흉터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약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내심 기뻐 날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짜 영안의 영력을 직접 흡수하는 것이 이 정도 효과를 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처음에만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뿐이라 다음에 이 정도 효과를 보려면 더욱 강력한 영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