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24
“쇄영과를 먹으면 네 안에 있는 모완은 죽지는 않지만 극도로 허약해지지.”
한제가 느릿하게 말했다.
은혜는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숙여 소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몇 개월 동안 나를 위해 이걸 찾아다 준 거였어?”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들고 있던 열매를 한쪽으로 내던졌다. 열매는 데굴데굴 굴러 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저씨, 소백한테는 뭐라고 하지 마. 응?”
은혜가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제는 은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은혜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아저씨, 걱정하지 마.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 내가 아저씨랑 모완 언니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할게.”
은혜가 외쳤다.
그 목소리에 한제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주작성 초나라 변방의 산골짜기 안의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에서 갑자기 짙은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안개는 끝없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피어오른 검은 안개는 기이한 식물이 되었다. 이 식물은 온통 새카맸고 셀 수 없이 많은 거대한 이파리가 달려 있었다. 그 이파리 하나하나에는 문양이 새겨진 채 기이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때, 금색의 거대한 그물 하나가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났다. 그 거대한 그물에서는 비검의 잔영 다섯 개가 불규칙적으로 번뜩였다.
그 금빛 그물은 끊임없이 자라나던 거대한 식물을 뒤덮고 억눌렀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숨어 살아왔다. 오늘, 누구도 부문성(符文星)을 다시 나타내려는 우리를 막지 못한다.”
노인의 목소리가 선유지 입구의 깊은 구덩이로부터 흘러나왔다. 뒤이어 노련하고 침착해 보이는 노인이 그 구덩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노인의 몸에는 어떤 문양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미간에서는 하나의 식물 허상이 번득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식물의 이파리가 열한 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자세히 살피면 그 열한 개의 이파리 아래에 3분의 1정도 펼쳐진 또 하나의 잎이 있었다.
이 노인이 깊은 구덩이에서 나온 순간, 금빛 그물에서 번득이던 다섯 자루의 비검이 웅웅 소리를 냈다. 뒤이어 그중 두 자루가 빠르게 번득이며 그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노인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주작국의 1대 주작은 스스로를 희생해 아홉명의 문정기 수련자 생명으로 봉인의 검 다섯 자루를 응집시키고 나를 이 선유지에 오랜 시간 봉인시켰다. 오늘, 나도 나 스스로를 희생하여 우리 선유족이 대지를 다시 보게 할 것이다. 흡수!”
그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자 문양 하나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 문양에서는 혼돈스러운 기운이 발산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달려들던 두 자루의 비검은 우뚝 멈추더니 그 문양의 힘에서 벗어나려는 듯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돌아와라!”
노인의 손짓에 순간 하늘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사방에 무궁무진한 문양들이 나타났다. 이 문양들은 하늘을 깨버릴 듯 한군데 교차했다.
두 자루 비검의 발버둥이 멈추더니 노인의 손짓에 따라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펑, 펑!
두 번의 거대한 소리가 주작성에 울려 퍼졌다. 두 자루의 비검은 노인의 가슴을 찌른 채 진동했다.
“당시의 전쟁에서 나는 아주 약한 사람이었다. 형세를 되돌릴 힘도 없이 부족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 목숨은 살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죽은 상태다.”
노인은 오른손으로 하늘에 펼쳐진 금색 그물을 가리켰다.
순간 또 다시 두 자루의 비검이 달려들었다. 허나 노인의 힘에 대적할 수는 없었고 결국 그대로 끌려와 다시 한 번 그의 몸을 찔렀다.
“수만 년을 살아왔다. 나는 본디 일찍이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부족원들이 나를 선조로 받들고 매년 그들의 수명을 내게 바쳤다. 수만 년 동안 이미 수많은 부족원이 나를 위해 죽었다. 나는 우리 부족원들에게 죄인이다.”
노인은 금빛 그물에 있는 마지막 선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을 뻗은 채 꽉 움켜쥐었다. 순간, 마지막 비검 한 자루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검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금빛 그물에서 튀어나온 그 비검 역시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 선유족의 죄인이다. 본디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오늘, 나는 십일엽(十一葉)을 돌파하여 열두 번째 이파리를 피운다. 그리하여 주작성 수련자로 치면 문정기에 해당하는 수준에 오른다.”
마지막 비검이 격렬하게 웅웅 우는 소리를 내며 끌려와 노인의 손짓에 그의 미간을 찔렀다.
노인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나는 죄인이다. 허나 나의 죽음은 우리 부족원들을 다시 땅 위로 올라가게 할 것이다. 나의 몸으로 선유수(仙遺樹)를 대신하고 이 다섯 자루의 검으로 봉인한 뒤 나의 영혼을 헌납하여 우리 선유족이 다시 빛을 보게 하리라!”
노인의 눈빛이 사라진 순간, 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매섭게 휘둘렀다.
주작성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터져나왔고 메아리가 울렸다. 금빛 그물은 보이지 않는 한 쌍의 거대한 손에 찢긴 듯 둘로 갈라졌다.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식물은 곧장 그물을 뚫고 나가 그대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거대해졌다. 동시에 사방에서 수많은 문양이 확산되면서 사라졌다.
노인의 몸은 천천히 그 거대한 식물에 녹아들어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 선유족 부족원들이 그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씩 나왔다. 점차 많은 선유족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타날 때마다 그 거대한 식물을 향해 깊이 절을 했다.
이 선유족 사람 중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얼굴에 보라색 면사를 둘러쓴 여인의 눈빛은 침착했다.
“난 그 건풍을 이 자리에 묻어버릴 것이니!”
그때, 누군가가 선유지 안에서 외쳤다.
“죽여라!”
그 포효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유족 사람들이 동시에 내뱉는 소리였다. 구름을 흩어버릴 기세가 대지를 뒤덮었다.
한편, 그곳으로부터 1백 리 떨어진 곳에 밀짚모자를 쓴 사내 하나가 서서 하늘로 솟아오른 거대한 식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를 속인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난 4파 연맹국을 재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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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산 꼭대기. 주작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곳에서 성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뒤이어 산꼭대기의 동굴이 콰르릉 하고 붕괴되었고 재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붉은 옷을 입은 주작이 허공에 나타나 형형한 눈빛으로 선유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선유족 잔당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주작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하늘의 구름이 흡수되듯 그의 손에서 응집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으로 이루어진 하얀 영패 하나가 주작의 손에 나타났다.
그가 왼손으로 두드리자 영패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끊임없이 불어났다.
“14대 주작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주작성의 모든 수련국들에게 알린다. 선유족과의 두 번째 전쟁이 발발했다.”
구름으로 만들어진 영패들은 곧장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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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국 천옥종(天玉宗)의 금지된 땅 깊은 곳에서 폐관수련을 하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뼈와 가죽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랐지만 두 눈은 어스름하게 빛났다.
선유지가 있는 곳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뱉었다.
“세상이 바뀌려 하는구나.”
이 노인은 천옥종 제자들의 숭상을 받는 문정기 초기의 시조, 초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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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국 서부의 지백문(地魄門) 지하 깊은 곳의 동굴 안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한탄하듯 말했다.
“이 날이 기어코 왔구나. 내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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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국의 마지막 문파인 인도선(人道仙)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문정기 수준인 인도선의 선조는 상당히 비밀스러운 존재로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의 소재를 알지 못했고 그의 용모를 아는 사람 역시 몇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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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국 연혼종의 둔천은 두 눈을 번쩍 뜨고 냉소를 흘렸다. 그리고 다시 두 눈을 감은 뒤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 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