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56
허나 한제는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어.”
요석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말하지 않았나? 내 질문에 답한다면 감금 기한을 50년 줄여주겠다고…”
한제의 말에 요석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눈에 고민하는 빛이 떠올랐다.
한제는 묵묵히 기다렸다.
1각 뒤, 요석설은 고개를 들고 냉랭하게 말했다.
“나를 봉인해둔다 해도 우리 아버지는 분명 날 찾아내실 거야. 그 후에는 너를 산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혼백을 꺼내 깊은 땅속에 가둬두겠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한제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로써 두 번째 기회를 날려버렸군. 다음이 마지막임을 기억하길 바라지.”
말을 마친 그는 요석설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쥐고는 힘을 주었다. 그러자 요석설의 작은 입이 억지로 벌어졌다.
요석설은 벗어나려 했으나 그럴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왼손의 두 손가락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가 뺐다.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는 붉은색의 작은 바늘이 끼어 있었다.
“도우의 원신에 남은 정기(精氣)는 이제 바늘처럼 얇아졌어. 시간을 조금 더 주지. 그 바늘만 한 정기로 생의 낙인을 막아내고 원하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 나도 보고 싶거든!”
한제는 말을 마친 뒤 손을 휘둘러 바늘을 부러뜨렸다. 그러자 바늘은 붉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요석설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원한은 한제가 예전에 등화원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작지 않을 정도였다.
“이한제, 내가 이 속박에서 풀려나는 날 반드시,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주마!”
요석설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요석설의 몸에서 무형의 힘이 생겨났고 두 눈이 번득였다.
한제는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금제가 모자란 모양이군!”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맑은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그러자 요석설의 몸을 덮었던 옷은 남김없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한제는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요석설의 눈빛은 좀 전부터 알 수 없는 빛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한제는 말없이 손을 뻗어 요석설의 몸을 몇 번 건드렸다. 한데 그가 건드리는 부분은 모두 요석설의 민감한 부위들이었다.
그는 매번 손가락 끝이 요석설의 몸에 닿을 때마다 한 줄기 선력을 그 안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요석설의 눈에 번득이던 빛은 다시금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두 눈에는 끝없는 굴욕과 치욕, 그리고 원한만이 담겨 있었다.
“이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자식! 이 요석설이 살아 있는 한 너만큼은 반드시 요절을 낼 것이다.”
요석설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목이 찢어질 듯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한데 그런 저주를 들으면서도 한제는 오히려 좀 전보다 더 안심하게 됐다. 사실 그는 방금 요석설의 자질에 깜짝 놀란 참이었다. 자신에 대한 원한이 극에 달하면서 방금 요석설은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눈에 번득였던 빛은 그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깨달음을 완전히 터득했다면 생의 낙인만으로 완전히 봉인하기는 힘들었을 터였다.
한제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요석설의 옷을 제거하고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민감한 부위만을 건드려가며 선력으로 자극을 준 것은 그런 깨달음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봉인이 모자란 모양이야!”
한제는 작게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몇 줄기의 금제가 그의 손에서 튀어나와 요석설의 몸을 뒤덮었다. 특히 이번의 금제는 그녀의 민감한 부분까지도 남기지 않고 뒤덮었고 이에 요석설은 끊임없이 그 금제에 자극을 받는 상태가 되었다. 이는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해줄 것이었다.
작업을 마친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금제가 맞물려 다시 구체가 되더니 한제의 저물대로 들어갔다.
“혈조의 딸답게 정말 까다롭군. 비밀스러운 곳에 봉인해둬야겠어. 그전에 모든 비밀을 캐내야 할 텐데… 수혼술을 사용하고 싶지만 잘못하면 요석설은 죽어버릴 거야. 그럼 정보도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고 엄청난 후환만 남기는 꼴이 되지.”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두 달이 지났다.
요장과의 약속 기한을 며칠 앞둔 한제는 산골짜기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구양화가 따랐다.
“내가 떠나면 큰 부락이든 작은 부락이든 상관 말고 갖은 수를 써서 주위 부락들을 제압해. 그리고 그들에게도 연혼술을 전수해라. 구체적인 방법은 알아서 하도록.”
구양화는 허리를 숙여가며 답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옥패를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연혼술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연혼은 그중 하나이고 이 옥패에는 나머지 한 부분인 신통술이 기록되어 있어. 바로 추백술이지. 추백술은 직계를 제외하고는 밖으로 퍼뜨려서는 안 되니까 주의하도록!”
구양화는 신중하게 옥패를 받아 들더니 그 안의 내용을 다 살핀 후 파괴해버렸다.
“선조 어르신 말씀 마음 깊이 새기고 직계에게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연혼종 부락 상공에 존혼번으로 이루어져 있던 검은 안개가 곧장 응집되어 30척 길이의 거대한 깃발이 되었다. 한제는 그것을 원신으로 흡수했다.
이어 그는 저물대에서 보통의 혼번 여러 개를 꺼내어 하늘로 던졌다. 혼번들은 다시 검은 안개가 되어 하늘에 드리웠다.
낯익은 이
작업을 마친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먼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구양화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다음번에 돌아왔을 때에는 부족원 수가 1백만 명을 넘었으면 좋겠군!”
구양화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경건하게 답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이는 이미 멀리 떠난 한제를 향한 말이었지만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한편, 한제는 하늘에 떠올라 긴 잔영을 그리며 고요성 쪽으로 나아갔다.
“천요군의 수도라… 얼마나 위험한 곳일까? 천운종에서 온 수련자도 볼 수 있을지… 대나검종에서 온 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주일 선배가 봉인된 곳을 알아봐야겠어.”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 ★ ★
고요성 안, 요장 운려해는 푸른 옷을 입고 동쪽 성벽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도총과 총령 등이 도열한 상태였다.
운려해는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뒤에 선 자들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운려해는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고요성을 자세히 살폈다. 성 중앙 10리 반경의 잔해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에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새로운 요장이 부임하겠지. 저 잔해는 나와 관련이 없는 것이다.’
운려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한제가 십삼이라는 자를 데려가는 바람에 17명밖에 제련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뿐이군. 허나 그가 진심으로 나를 돕는다면 이번에 요장들의 경쟁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자신이 있다! 그럼 고요전(古妖殿)에 들어가 수련할 자격이 생기겠지.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 부수(副帥)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때, 운려해의 눈빛이 변하더니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쪽이네!”
운려해는 멀리서 다가오는 한제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포권을 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내게 꽤나 중요한 여정이라 많이 의지하게 될 걸세, 동생!”
“얼마든지요!”
한제는 웃으며 답했다.
“수도까지는 세 개의 전송진을 거쳐야 하네. 가세!”
두 갈래의 빛이 고요성으로부터 곧장 뻗어나가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천요군 북쪽에 위치한 천요성(天妖城)에는 산이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이 산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서로 이어져 아홉 마리의 거대한 용들이 맴돌고 있는 것 같은 형태였다.
이 용들의 머리가 향한 곳에는 넓고 깊은 못이 하나 있었는데 이 못의 이름은 용담(龍潭)이었다.
천요군의 정신을 상징하는 고요전(古妖殿)은 바로 이 용담에 있었다. 자연히 용담 주위의 경계는 삼엄할 수밖에 없었다.
천요성은 아홉 용들의 머리 앞에 있었다.
이 성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요성만 한 성 아홉 개가 조합된 곳으로 그중 여덟 개는 원형을 이루었고 그 중앙에 요제(妖帝)의 침궁이 있는 제도(帝都)가 있었다.
강으로 둘러싸인 제도는 주위의 여덟 성과 돌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이른 아침, 천요성은 옅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이 안개는 아홉 마리 용과 같은 산맥에서 피어오르는 것으로 요제는 이 안개를 ‘용의 기운’이라고 불렀고 그 기운을 흡수하면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천요성 밖에는 총 18개의 전송진이 있다. 이 전송진들은 항상 요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그중 8개는 민간용, 나머지 10개는 직무가 있는 사람만 쓸 수 있는 관용이었다.
특히 열네 번째 전송진은 각지 요장들이 수도로 모일 때 쓰는 것으로 이 진이 활성화 된다는 것은 곧 요장들이 방문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장은 천요군 안에서도 고관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 열네 번째 전송진의 경계를 서고 있던 자 중에는 열이라는 요병도 있었다. 한데 그의 갑옷에는 다른 사람들 갑옷보다 줄무늬가 더 많았다.
그는 어깨를 돌리더니 손에 들었던 무기를 내려놓고는 투구마저 벗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위에 있는 요병들을 향해 외쳤다.
“이개야, 와서 내 어깨 좀 주물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