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80
기이한 상황이었으나, 한제는 우선 총관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지금이야말로 그를 죽이기에 가장 적합한 때였다.
한제는 자신의 모든 슬픔이 응집된 오른손을 천요고에서 떼어내더니 그 손으로 총관을 잡아챘다. 그리고 그를 쥔 손으로 북을 두드렸다.
이는 그가 영변기 수준으로서 행한 마지막 공격이었다. 이 공격에 한제는 마음속의 모든 잡념과 슬픔을 쏟아낸 것이다.
총관이 천요고에 충돌한 그때, 한제의 손에 어려 있던 슬픔은 총관을 통해 천요고에 전달되었다.
둥-!
“크아악!”
격렬한 반동이 총관의 몸에 미쳤고 북소리가 울린 순간 그의 전신이 붕괴하면서 피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총관, 금오욱은 그대로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혼백 역시 북소리에 뒤흔들리면서 갈라져 이 세상에는 그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 금오욱을 죽인 것은 한제가 아니라 그에게 중상을 입힌 사람이었다. 두 목소리 중 하나만 영향을 미쳤다면 중상을 입었더라도 모든 힘을 잃고 일반인과 다를 것 없는 상태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항할 여력은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두 목소리가 미친 힘은 천요군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총관을 순식간에 불구로 만들어버릴 만큼 강력했다.
그때, 놀잇배 위의 청년은 잠시 흠칫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죽다니⋯⋯ 어찌 이럴 수가⋯⋯?”
그는 돌연 뭔가를 느낀 듯 서늘한 눈을 번득이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천요성을 관통하여 어느 광활하고 황폐한 벌판 위를 향했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한편, 천수는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며 상대가 가진 거역의 의지를 느꼈다. 그의 눈에는 감탄의 빛이 어려 있었다.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던 당시의 자신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나머지 일곱 요수의 표정은 한층 복잡했다. 그들의 관심은 한제의 수준이 아니라 그가 천요고를 열다섯 번이나 울렸다는 사실에 쏠렸다.
열다섯 번! 이는 다른 자들의 성적을 뛰어넘은 것만이 아니라 천요군 안에서 가장 많이 북을 울린 것이다.
현부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던 수준이 이미 다음 단계로의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모든 것은 한제의 체내에서 흘러나온 세수의 소리 덕분이었다.
주위의 구경꾼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그들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요령의 땅에서는 강자가 존경을 받았다.
한편, 요장들은 말이 없었다.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운려해는 자신이 부수가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임을 알고 있었다.
열다섯 번째 북소리에는 피비린내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슬픔도 함께 섞여 있었다. 슬픔이 녹아든 북소리는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퍼져나갔다.
하늘에서 춤추는 뱀처럼 요동치던 벼락 또한 그 북소리에 함께 녹아들어 그 안의 슬픔을 흡수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슬픔은 벼락을 따라 하늘에서 미친 듯이 확산되어 천요성 전역을 뒤덮었다.
이번 북소리의 기세는 이전까지 울렸던 열네 개의 북소리에 담긴 기세를 모두 합친 것보다 짙었다. 이 열다섯 번째 북소리는 한제의 도를 그의 슬픔을 그의 가득한 도심을 그리고 진정한 거역을 품은 그의 수련을 포함하고 있었다.
벼락을 따라 확산되고 있는 슬픔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슬픔이 되어 있었다. 온 천요성 사람들은 그 슬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놀잇배의 뱃머리에 앉은 여인은 거문고를 만지작거리다가 그 슬픔을 느낀 듯 조용히 현을 뜯기 시작했다.
한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집착을 남겨두었다.”
천도는 하늘의 도였다. 세상에 천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없었다. 흙 한 줌, 풀 한 포기에도 천도는 반드시 존재했다.
이 요령의 땅이 정말 어느 신선의 별채였다 해도 천도의 강림을 막을 수는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본래 천도에 따른 것이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천도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천도의 강림!
천도는 본래 형태가 없는 것이다. 허나 천벌이라는 이름으로 강림할 때는 형태를 갖추는 법이었다. 그리고 천벌이 강림하는 조건은 진정으로 천도에 거역하여 수련하는 수련자의 존재였다.
★ ★ ★
새카만 어둠의 허무에 둘러싸인 동해의 문 앞 저 멀리 반짝이는 별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한데 그때, 돌연 끝없는 허무 속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나타났다. 강림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끝없는 우주 한 가운데 나타난 그 붉은 빛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다가오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득한 공간을 넘어 달려드는 붉은 빛에서는 만물을 진동하게 하는 기운이 순간적으로 뻗어 나왔다.
천운성에서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던 천운자는 2백 년 후의 약속을 위해 준비 중이었다. 한데 이 순간, 그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아득히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약간 안색이 변한 채 손가락을 꼽아가며 묵묵히 계산을 하던 그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천벌의 강림이라⋯⋯ 요령의 땅에 떨어진다면 우리 천운성과도 관련이 있는 일일 텐데⋯⋯ 이상하군!”
★ ★ ★
대나성의 대나검종.
검존 능천후는 거대한 단로 옆에 서서 밝은 빛을 번득이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이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맛을 좀 좋게 해줄 것이 더 필요한데⋯⋯.”
한데 그 순간, 그는 안색이 변하더니 발을 굴러 그 자리에서 사라져 대나검종 밖의 우주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는 의아함을 품은 눈빛으로 먼 곳에서 나타난 붉은 빛을 바라보았다.
“천벌!”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 붉은 빛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요령의 땅으로 향하다니, 좋지 않군! 설마 탐랑에게 변고가 생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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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성 저 멀리, 피처럼 붉은 별. 이 별은 바로 혈성(血星)이었다.
혈성의 혈각(血閣)에서는 나이가 마흔 정도인 듯한, 머리카락과 눈썹이 붉은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옷은 피처럼 붉었다.
호흡을 하고 있던 그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서는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묵묵히 공기로 전해지는 위력을 느끼다가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천벌이 요령의 땅에 임하는군. 석설 그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 ★ ★
천벌이 강림한 순간, 수준 높은 수련자 대부분은 그 존재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 붉은 빛의 강림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동해 요령의 땅이 열리지 않았음에도 순간 그 붉은 빛은 곧장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 ★ ★
열다섯 번의 북소리를 낸 한제는 천요고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지금 그의 경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탈변하는 중이었다.
문정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선력과 도심도 충만해야 했다. 그 둘이 모두 가득 차 융합하는 것이 바로 문정이었다.
이 융합은 도심과 선력의 충돌이자 영혼과 육신의 충돌이며, 사람을 신선으로 진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문정기에 이르는 데 가장 큰 위험도 이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 충돌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문정기 수련자가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죽음을 맞게 된다.
한제의 도심은 열다섯 번째 북소리에 슬픔을 실어 쏟아버리면서 진정으로 가득 차게 됐고 덕분에 빠른 탈변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짧은 시간에 한제는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바로 그때, 제도의 상공에서 꿈틀거리던 벼락이 순간 사라졌고 세상은 온통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천요성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기이한 변화를 목격했다.
놀잇배의 청년도 안색이 변하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수련자들은 나와 다른 것을… 당시 나는 용담에서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고요를 위해 몇 년이나 제를 지낸 후에야 겨우 그 역심(逆心)을 가리고 천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지. 저자에게는 이 또한 하나의 시험이 될 터. 천벌에 대항해낼 수 있다면 문정기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이고 더는 천도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게 되겠지. 게다가 이번 천벌은 그 위력도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고⋯⋯.”
하늘의 붉은 빛은 빠른 속도로 응집되어 커다란 붉은 구름이 되었다. 그 구름들은 하늘을 채우며 제도의 광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한제는 천요고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천도는 나의 도심을 막을 수 없다. 허나 천벌이 떨어지면 나의 존재를 지워버릴 수는 있겠지. 이것이 천벌인가. 수마해 기린성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군.”
붉은 구름이 모여든 순간, 그 구름 속에서 한 줄기 붉은 번개가 나타났다. 허나 번개는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 순간의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놀잇배의 청년은 먼 하늘에 모여든 붉은 구름과 번개를 바라보다가 한시름 놓은 듯 말했다.
“번개를 형성하는 천벌에는 두 가지가 있지. 보아하니 이번 천벌은 첫 번째, 가장 간단한 종류인 듯하니 저자는 운이 상당히 좋군.”
한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주위의 모든 것들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하늘에 나타난 붉은 번개뿐이었다.
“그래, 나는 천벌과도 제법 인연이 있지. 금번을 만들어 천벌을 일으켰고 모완의 운명을 바꾸려다 천도의 집행 사자를 불러냈으니… 그리고 이번에는 집착을 유지한 채 하늘에 거역하느라 또 한 번 천벌을 야기했구나.”
한제의 눈빛은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결연한 의지가 어려 있었다.
붉은 구름이 돌연 요동치며 미친 듯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온 하늘은 붉은 대양처럼 변해 있었고 그 가운데서 거친 파도가 중심을 향해 몰아쳤다. 눈 깜짝할 사이 붉은 구름 중앙의 붉은 번개가 눈부시게 번득였다.
콰르릉!
붉은 빛으로부터 엄청난 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번개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