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01
이 옥 조각은 어떤 선력도 발휘하지 않았지만 한제는 신식을 통해 그 안에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선력이 들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선력을 흡수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한 줄기 생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수련자의 원신과 이 옥 조각을 융합하면 문정기 초기에 상당하는 수준을 만들어낼 수 있군. 허나 그 융합의 성공률이 굉장히 낮거나 이 옥 조각이 매우 진귀한 모양이군. 그렇지 않다면 거느리고 있는 선위가 단 열 명일 리가 없지. 또한 융합이 쉽지도 않을 터. 관건은 이 안에 들어있는 한 줄기 생각이겠군. 이 생각과 서로 잘 섞여야만 진정한 융합이 될 테니까.’
이내 한제는 고개를 돌려 허운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련자 연맹은 어디에 있습니까?”
“수련자 연맹은 화요군과 금요군 북쪽 경계에 있습니다. 언제나 혼탁한 공기로 가득 뒤덮여 있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이죠.”
허운산이 말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떠보듯 물었다.
“이 형, 혹시⋯⋯.”
“나는 허 형의 금제를 풀기 어렵소. 허나 그 선조라면 분명 가능하겠지요!”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운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감격한 얼굴로 한제를 향해 깊숙이 절을 했다.
“이 형, 이 은혜를 어찌 말로 갚겠소이까? 천운성에 돌아가면 절대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한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이는 허 형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선조라는 자가 벌써 두 번이나 제 심기를 거슬렀으니 이번에 해결을 해야겠지요.”
“이 형, 어찌 되었든 저는 이 일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허운산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선위의 원신에서 분리해낸 옥 조각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소매를 휘둘러 허운산과 함께 탑 안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수련자 연맹 일행들도 그 자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 ★ ★
화요군에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매일 일어나는 살육에 대량의 피가 흘러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이에 온 화요군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천요군과 화요군의 전쟁은 나머지 일곱 개 군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화요군 안에서 끊임없이 살육이 일어나고 천요군에 남은 요병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말하자면 나머지 일곱 개 군 입장에서는 1만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다.
화요군과 금요군 북방의 경계, 탁한 공기로 뒤덮인 산맥으로부터 1만 리 떨어진 곳에 한 줄기 유성이 하늘을 가르며 나타났다. 탁한 공기에 유성의 빛이 흩어져 사라지더니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열 명이 넘는 수련자들 또한 그 옆에 나타났다.
“허 형, 이걸 받으시오. 그 옥패의 금제가 허 형 체내에 있는 선종을 완벽하게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선종의 효력을 늦춰줄 겁니다.”
허운산에게 옥패를 건넨 한제는 말을 마친 뒤 발을 굴러 짙고 혼탁한 공기 안쪽으로 향했다.
선종에 대해 한제는 어느 정도 추측을 했으나, 그 추측이 맞는지는 스스로를 선계의 선조라 칭하는 그자를 만난 뒤에나 확신할 수 있을 터였다.
한편, 혼탁한 공기로 뒤덮인 깊은 곳의 성루에서는 왜소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그의 맞은편에는 세 여인이 있었다. 모두 절세미인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다름 아닌 허운산의 여동생, 허양라였다.
분홍색의 기운이 세 여인의 눈과 귀, 코와, 입 등 일곱 구멍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와 춤을 추듯 일렁이더니 노인의 몸 주위를 맴돌았다.
그 기운은 점점 실체화되더니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선녀가 되었다. 그리고 노인이 숨을 들이마시자 선녀는 노인의 입을 통해 흡수되어 버렸다.
한제가 혼탁한 공기 안으로 발을 들인 그 순간, 이 왜소한 노인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한 줄기 금색 빛이 그의 눈에서 번득였다. 그때,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세 여인은 무척 피곤해 보였고 심지어 좀 전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했다.
한제가 앞으로 나아가자 주변의 혼탁한 공기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사방으로 물러나 주위에서 맴돌았다. 나아갈수록 점점 많은 혼탁한 공기가 한제 주위를 맴돌았고 귀신 소리 같은 휘휘 소리도 느릿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한제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앞에서 혼백술을 부리다니, 겁도 없군!”
말을 마친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사방으로 밀며 외쳤다.
“혼선(魂漩)!”
그 순간, 사방의 탁한 공기로 이루어진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것처럼 꿈틀대던 안개는 빠른 속도로 한제 앞에서 응집되었다. 마치 한제 앞에 하나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사방을 채운 짙은 안개는 모두 그 소용돌이에 흡수되면서 삽시간에 이곳을 가득 채웠던 혼탁한 공기가 모두 사라져 땅에 햇빛이 비쳤다.
한제의 손에는 덩어리진 주먹만 한 안개가 솜처럼 뭉쳐져 있었다.
저 멀리 하얀색 성루가 하나 있었다. 성루 밖에는 거의 1백 명에 가까운 수련자들이 빽빽하게 공중에 떠 있었는데 모두 놀란 눈으로 한제의 손에 들린 안개 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제는 천천히 그곳을 한 번 훑어보았다. 수련자들 대부분은 낯설었지만 몇몇은 함께 요령의 땅에 들어왔던 자들이었다.
그중 남색 옷을 입은 한 남자를 본 순간, 한제의 눈이 커졌다. 상대방 역시 흠칫 놀라더니 한제의 눈빛을 피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요령의 땅에 한제와 함께 들어왔던 천운종의 남계 제자였다.
“길을 비켜라!”
한제는 덤덤하고 느릿하게 말했다.
그 한 마디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들 중 문정기 수련자는 없었고 가장 높은 자라고 해봐야 영변기 후기 절정에 불과했다. 문정기 수련자 앞에서 순순히 길을 비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허나 어디에나 멍청한 사람은 있는 법이었다.
스스로를 선계의 선조라 칭하는 자에게 점수를 딸 기회라 여긴 것인지, 도포를 입은 청년 한 명이 크게 외쳤다.
“무엄하다. 네가 누구인지 이름을 대거라! 나는 수련자 연맹의⋯⋯.”
그 청년은 말을 다 맺지도 못했다. 그저 한제의 냉랭한 눈빛이 번득인 순간, 청년의 입에서는 말 대신 피가 흘러나왔다. 살육 선결을 수련한 한제였기에 살심을 갖는 것만으로 상대를 죽여 버린 것이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찬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몇 걸음씩 더 물러났고 순식간에 성루로 통하는 곧게 뻗은 길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때, 위엄이 잔뜩 어린 목소리가 성루에서 흘러나왔다.
“저자를 죽여라!”
그 말에 사방의 수련자들은 망설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한데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성루에서 번쩍 튀어나와 한제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선위다.”
누군가가 외쳤다.
허나 한제는 표정에 변화하나 없이, 성루 안에서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걸음은 무척 여유로웠으나, 이를 본 모든 사람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 순간, 그들의 눈에 한제는 문파의 까마득한 선배처럼 느껴졌다.
그런 기세와 그런 여유는 절대 일반적인 수련자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힘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만 발산할 수 있는 기운이었다.
그 순간, 천운종 남계 제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도 있고 진도과 천운칠자의 봉호를 놓고 겨루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당시 한제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딱 그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제의 수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한제는 미약하긴 해도 천운자와 같은 기운마저 풍겼다.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제가 한제만의 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수련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도를 가지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사람, 경지 안에서 그것을 추출하여 그 안에 섞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은 개인의 종파를 세울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수련자들이라면 모두 자신의 도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도를 응결시켜 내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벌써 저 정도의 경지에⋯⋯?”
남색 옷을 입은 남자의 가슴에 내심 슬픔이 차올랐다. 이 순간 그는 체내에 심어진 선종에 대해 잊기라도 한 듯, 주작성에서 천운성으로 막 왔을 당시 우스운 수준이었던 한제가 자신만의 도를 가지고 1대 종사(宗師)가 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함을 느끼고 있었다.
선수(仙獸)의 먹이
한편, 한제와의 거리가 1백 척 정도에 이르렀을 때, 검은 그림자는 각종 신통술을 부려댔다. 그의 신통술은 짐승과 관련이 있어, 흉측한 마수들이 소환되었고 그 마수들은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한제는 피식 웃더니 오른손 검지를 펼치며 가볍게 외쳤다.
“분쇄!”
그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이내 한 줄기 검은 연기가 되어 날아들었다.
한제는 문정기에 이른 뒤 원신과 경지가 융합되고 원기까지 가지게 되면서 손짓 한 번으로 경지와 선력을 응집시킨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자신만의 도까지 합쳐져 가볍게 발휘한 신통력에도 도가 녹아들어 있었다.
적멸지는 한제의 도를 품은 채 허공을 가르며 짐승들을 한 마리 한 마리 관통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기세가 줄지 않았고 끝내 선위의 가슴팍까지 파고들었다.
짐승들은 붕괴했고 선위는 비명조차 지를 틈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넌 누구냐?”
성루 안에서 신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나 한제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르고 하얀 성루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두 번이나 초대장을 보낸 것인가?”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이 씨 성을 가진 자로군. 난 자네에게 화를 산 기억이 없는데⋯⋯.”
성루 안에 있던 왜소한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의 수준으로는 단박에 한제의 수준을 간파할 수 있었다. 한제는 정말로 문정기 초기에 이른 수련자였지만 그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저자는 이한제입니다.”
노인의 앞에 있던 세 여인 중 허운산의 여동생 허양라가 작게 말했다.
노인의 안색은 약간 어두웠다. 그는 한제가 눈빛 한 번으로 선위를 사로잡을 정도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알았다면 결코 나서서 상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 도우, 이전에 있었던 일은 나의 실수였네. 자네도 나의 선위 두 명을 죽였으니 서로 비긴 것으로 하지. 이제 가보게! 앞으로는 절대 부딪힐 일 없을 걸세!”
노인의 말에 앞에 있던 세 여인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들은 노인이 패기도 있고 수준도 높지만 간사하고 마음이 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코앞까지 찾아와 부하들을 죽였는데 떠날 것을 권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한편, 선조의 말에 한제는 걸음조차 멈추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명의 선위? 두 개의 옥 조각 말인가? 그걸로는 비겼다고 할 수 없지.”
성루 안의 노인은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하룻강아지 같은 놈! 내가 겨우 문정기 초기 수준인 네놈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느냐? 선위들은 어서 저자를 죽여라!”
노인의 한 마디에 여덟 갈래의 빛이 성루에서 튀어나왔다. 여자와 남자가 섞여 있는 그들은 짙은 문정기의 위엄과 기세를 풍기며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더니 모종의 규칙에 따라 각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두 손으로 끊임없이 결인을 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