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02
순간, 선력을 포함한 기운이 그들의 몸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융합되었다. 그렇게 융합된 기운은 하나의 허상을 이루었는데 그 허상에서는 짙은 선력이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허상은 순식간에 도포를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손에는 푸른 장검을 쥔 중년 남자의 모습으로 실체화되었다.
하늘의 위엄에 비견할 기운을 풍기는 허상의 등장에 사방의 수련자들은 분분히 꿇어앉아 공손하게 외쳤다.
“선제 폐하를 뵙습니다.”
성루 안에서는 노인의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광기 어린 말투로 외쳤다.
“크하하! 난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난 본디 선계의 사람으로 선계가 붕괴한 뒤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되었지. 내가 발휘하는 모든 신통력은 진정한 선술이니 네가 어찌 내게 대적하겠느냐? 마지막 기회를 주마. 당장 떠나라!”
허나 한제는 푸른 검을 쥐고 있는 허상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피식 웃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한 줄기 황천이 하늘에서 내려와 한제의 주위를 맴돌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허상으로 이루어진 중년 남자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파시식!
그 순간, 여덟 선위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선력이 폭풍처럼 용솟음쳐 체내에서 뽑혀 나오더니 허상으로 나타난 중년 사내에게 흡수되었다. 그러자 상상을 초월하는 위엄이 중년 남자의 몸에서 확산되었고 그는 한제를 똑바로 응시하며 손에 든 검으로 앞을 가리켰다.
순간, 한제의 눈동자가 졸아들었다. 상대는 그저 가볍게 한 번 움직였을 뿐,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제는 뒤로 물러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지 않으면 저 검 끝에 원신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허나 이는 정말 강력한 느낌이었지만 처음 느껴보는 위력은 아니었다. 당시의 천벌과 똑같은 수준의 힘이었다.
한제는 하늘을 거슬러 수련을 하고 있었고 여태 그의 도심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그는 물러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쿨럭!”
“큭!”
그의 한 걸음에 허상 아래의 여덟 선위는 모두 피를 토해냈고 눈빛도 어두워졌다.
그들 체내의 모든 선력과 생명력이 포함되어 있는 이 피는 순식간에 중년 남자에게 흡수되었고 그의 눈빛은 더욱 밝아졌다.
그는 한제가 한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입을 크게 벌렸다.
‘큭!’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외침이었으나, 한제는 귀에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을 느끼고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 눈을 감았다.
허나 그는 다시 한 번 걸음을 내딛었고 그 순간 여덟 명의 선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더는 어떤 빛도 볼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황천이 중년 남자를 휘감았고 그의 허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두려움도 씻은 듯 사라졌다.
“대단한 환술 공격이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차게 코웃음 쳤다.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황천 안에 녹아들었다.
한제의 몸은 황천을 따라 흘러 마치 한 마리의 황룡처럼 곧장 여덟 명의 선위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여덟 명의 선위들은 하나하나 무너져 내려 황천에 녹아들었고 다시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히게 되었다.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여덟 개의 옥 조각이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한제는 그것들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네놈이 감히!”
그때, 성루 안에서 분노에 찬 고함소리와 함께 순수한 선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선기로 압축되더니 마치 화살처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초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박대하는가?”
한제가 피식 웃는 순간, 그의 몸을 두른 황천이 곧바로 솟아올라 하늘을 떠받친 거대한 기둥처럼 선기의 화살을 막아냈다.
“열려라!”
한제는 황천 안에서 가볍게 외쳤다.
순간 황천은 흩어져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더니 사방을 휩쓸었다. 그러자 하얀 성루는 곧장 무너져 내렸다.
왜소한 노인은 다급히 성루 밖으로 튀어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그의 뒤에는 세 여인이 붙어선 채 냉랭한 눈으로 상황을 관망했다.
노인은 쥐새끼처럼 사악한 인상이라 수련자라기보다는 도둑놈 같은 외모였다.
“이한제, 난 이미 몇 번이나 참았다. 하지만 네놈은 하계 수련자인 주제에 분수를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구나! 네 재주를 높이 사 지금 당장 떠난다면 더는 어떤 잘못도 묻지 않겠다. 허나 계속해서 덤벼든다면 그 후에는 나의 무정함을 탓한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적멸지의 바람이 노인을 향해 돌진했다.
“헛!”
노인은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크게 뱉어냈다. 그러자 그의 숨결은 짙은 선기를 품은 채 선력의 안개를 형성하더니 적멸지의 바람과 얽혀들었다.
파지직!
적멸지의 바람과 선력의 안개는 서로 상쇄되어 사라져버렸다.
“이한제, 이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노인은 분노한 표정으로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주먹만 한 푸른 옥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노인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선종!”
푸른 옥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셀 수 없이 많고 기다란 푸른 실이 되더니 이내 날카로운 웅웅 소리를 내며 뱀처럼 꾸물거렸다.
푸른 실이 나타나자 지켜보던 수련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이 짙게 느껴졌다.
허나 그들과 달리 한제는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느릿하게 말했다.
“선수(仙獸)의 먹이.”
다른 수련자들은 한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노인의 안색은 또 다시 크게 변했다.
“알고 있는 것이냐?”
한제는 허운산의 몸에서 그 푸른 실을 보았을 때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선계에서 대나검종 제자와 함께 들어갔던 동굴에서 보았던 선량(仙糧)과 같았던 것이다.
노인은 한제가 선량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신도 아직까지 선량을 통제하는 법을 완벽히 알지는 못했다. 문정기 중기 수련자인 그가 완벽한 통제법도 모르는 선종을 꺼내 든 것은 어떻게 해서든 한제를 처리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저놈을 삼켜라!”
노인이 크게 외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허공의 푸른 실을 가리켰다. 그러자 셀 수 없이 많은 푸른 실들이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허나 이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선량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던 한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혼번을 하나 꺼냈다. 허운산에게서 선량의 흔적을 보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물건이었다.
혼번을 휘두르자 연혼종에서 발견했던 기린 마수의 혼백이 튀어나왔다.
“캬오오!”
혼백은 포효를 내지르며 거대한 머리를 들어 기이한 눈으로 선량을 주시했다. 마치 며칠 굶었다가 먹을 것을 발견한 듯 번들거리는 눈이었다.
“선기린(仙麒麟)!”
노인은 기린의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한편 한제에게 달려들던 선량들은 기린이 나타나자 두려운 듯 부르르 떨더니 곧장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 했다. 동시에 주위에 몰려 있던 수련자들의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통으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고 미간에서 푸른 줄무늬가 나타나 빠른 속도로 덩어리지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점으로 응집했다.
도망가려는 선량을 본 기린은 콧구멍으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들어 포효했다.
“캬오오!”
그 포효에 주위의 모든 선량은 순간 우뚝 멈춰 감히 달아나지도 못했다.
기린은 몸을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선량 옆에 이르더니 단박에 흡수해버렸다.
이 광경에 왜소한 노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기린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더니 수련자들의 미간에 맺힌 푸른 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배가 고파 보이는 얼굴이었다.
노인은 이를 갈며 저물대 에서 재빨리 뭔가를 꺼냈다. 수정처럼 반짝거리는 붓이었다. 붓의 털 부분은 먹물 한 번 닿은 적 없는 듯 새하얬다.
붓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엄청난 위엄에 기린도 흠칫 놀란 빛을 드러냈다.
노인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한제, 선량을 알아볼 수 있다면 이것 역시 알고 있겠지?”
한제는 말없이 저물대에서 사신차를 소환했다. 사신차의 활성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이미 해결한 상태였다.
“모른다면 내 친히 알려주지! 이것은 내가 당시 선계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하계의 수련자들을 점화(點化)시킬 때 썼던 물건이다. 네놈에게 정말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지금 당장 떠나지 않는다면 정말 공격할 것이다.”
한제는 노인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아주 가달라고 사정을 하는군. 허나 난 네가 문정기 중기 수준이지만 선위들과 마찬가지로 체내에 어떤 원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노인의 가장 큰 비밀이었다. 그런 비밀이 공개적으로 까발려지자 노인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는 붓을 앞으로 휘둘렀다. 이어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붓으로 문양을 하나 그리기 시작했다.
곤선망(捆仙網)
“기필코 네놈을 태워 죽여주겠다.”
문양은 나타나자마자 흘러넘칠 듯한 힘을 뿜어냈다.
한제는 그 문양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붓으로 옮겼다. 그의 두 눈이 점점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기쁨이 차올랐다.
그 문양은 한제도 알고 있는 것으로 요석설과 함께 신선의 별채로 가는 길에서 마주쳤던 것과 똑같았다.
한제는 그 문양을 여러 차례 연구해보고 그려보기도 했지만 어떤 신통력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당초 네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을 융합시켰을 때와 같은 놀라운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한제에게는 줄곧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한데 지금 저 노인의 손에서 나타난 문양은 비록 한 획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지만 정확하게 그려졌으며 막강한 위력까지 품고 있었다.
그때, 왜소한 노인은 심장이 덜컥했다. 한제의 눈빛은 기린 마수의 영혼이 선량을 보았을 때 보였던 눈빛과 똑같았던 것이다.
한제의 몸에서 돌연 전에 없던 전의가 피어올랐다.
“뇌수!”
한제가 짧게 외치자 하늘에서 돌연 우레와 번개가 줄기줄기 나타나 곧장 사신차에 꽂히더니 이내 은빛 뿔을 가진 기린 모양의 뇌수가 나타났다.
“크아아아!”
뇌수는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 소리는 구름을 뚫고 올라갔고 곧 하늘은 순간 번개로 뒤덮였다.
그때, 옆에 있던 기린 마수의 혼백도 포효했다. 뇌수의 포효에 담긴 수준의 위엄은 없었지만 사방에 있던 수련자들의 미간에 응집된 푸른 덩어리가 줄기줄기 푸른 실이 되어 곧장 기린 혼백의 입안으로 흡수되었다.
이때, 노인이 붓으로 그려낸 문양이 번득거리며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