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85
“이 도우, 부풍자 선배님과는 어찌⋯⋯?”
일진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이자는 제 종입니다.”
한제의 짧은 대답에 진도삼자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그야말로 기겁했고 일진자는 곧장 떠나려는 한제를 다급히 붙잡았다.
“이 형, 그리 급히 떠나실 필요 없소. 우리 수령성은 매우 넓으니 이 형이 괜찮다면 여기서 수련하시는 것이 어떻겠소?”
한제는 잠시 머뭇거리며 매우 짙은 영기(靈氣)를 내뿜는 수령성(水靈星)을 힐끗 보았다.
한제가 망설이자 일진자가 얼른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 형, 반경 수십만 리에 우리 수령성에 비할 만한 곳은 없소. 게다가 매우 넓으니 우리가 이 형의 수련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요.”
곁에 있던 일성자와 일용자도 일진자의 생각을 파악한 듯 얼른 거들었다.
한제는 천운자의 눈 밖에 나고도 살아남았고 거마족을 탈것으로 삼고 있으며, 무려 진풍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 그런 한제와 연을 맺어둔다면 그들에게는 큰 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잠시 더 망설이던 한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포권을 했다.
“그렇다면 세 분께 신세 좀 지겠습니다.”
일진자는 유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신세라니, 별말씀을 다 하시오. 이 형이 와주신다면 우리에게는 영광이지요.”
말을 마친 그는 몇 걸음 물러나며 뇌길에게 길을 내주었다.
뇌길의 몸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보통 사람의 크기가 되더니 한제의 뒤를 따랐다. 한제로부터 한 소리 들은 진풍도 그 이후로는 조용했다.
진도삼자와 한제는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이동했다. 그러나 그 대화에서 귀안성 밖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 바람이 부는 수령성의 바깥층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짙은 영기가 느껴졌다.
한제는 흡족한 눈으로 수령성을 둘러보았고 내내 그의 곁에 붙어 있던 일진자는 그 모습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들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훌륭한 곳을 점거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을 터였고 그런 만큼 그는 이곳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훌륭한 수련성입니다!”
한제의 진심 어린 칭찬에 일진자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신다면 얼마든지 오래 머무르셔도 좋습니다!”
한데 그때, 저 멀리 구름 속에서 두루미 몇 마리가 우아하게 날아왔다. 그 중 한 마리 위에는 남색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가 앉아 있었고 그녀의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저, 지하 온천을 찾았다면서요?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그 소녀 뒤쪽의 두루미에는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는데 다소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무척 아름다웠다.
백옥처럼 하얗게 반짝이는 피부가 눈에 띄었고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어딘가 차가워 보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여인이었다.
한데 여인의 그 차가움도 앞서 가는 소녀를 대할 때면 누그러졌다.
“조급해하지 마, 거의 다 왔단다.”
그녀는 말을 마친 순간 진도삼자와 한제 일행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제자 조설, 스승님과 사숙을 뵙습니다.”
진도삼자 중 둘째인 일용자가 빙그레 웃으며 한제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이 형, 이 아이는 제 제자인 조설입니다.”
이어서 그는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
“조설, 이 선배님께도 인사드리거라.”
여인은 아름다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헤헤, 이 선배님! 아직 저 기억하세요?”
소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수령체(水靈體) 특유의 타고난 애교가 어려 있었다.
한제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하고말고. 그때 준 밀짚모자와 방울은 잘 가지고 있느냐?”
소녀는 입을 가리며 웃은 뒤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돌연 뭔가가 생각난 듯 얼굴을 붉히며 조설을 힐끔거렸다.
조설은 다소 당황한 듯했다. 영이는 며칠 전 돌아와 자기 곁에 붙어서 그간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그중에는 이 씨 성을 가진 선배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녀의 사매는 즐거워 보였다. 손목에 찬 방울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에 조설 역시 이한제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긴 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특출한 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일진자가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영이야, 이 선배님은 여기 잠시 머무르실 계획이다. 그동안 선배님을 방해하지 말거라.”
말을 마친 그는 한제를 안내했다.
한제는 영이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인 뒤 일진자를 따라갔다. 뒤로는 타산과 대두 등이 따랐으며, 부풍자는 두 여인을 훑어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한제를 쫓아갔다.
영이는 혀를 쏙 빼 물더니 두루미에 탄 채 조설과 함께 다시 날아갔다.
진도삼자가 한제에게 내준 거처는 수령성 동쪽의 고아한 궁전이었다. 매우 고풍스러운 궁전에서는 선계와 같은 기운도 풍겼고 이 수령성에서 영기가 가장 짙은 곳이기도 했다.
한제를 안내한 진도삼자는 환하게 웃으며 물러났고 날이 밝으면 찾아오겠다고 했다.
진도삼자를 배웅한 후 한제는 거처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산이 우뚝 솟아있었고 각 산봉우리에는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궁전의 수는 수십 개를 훌쩍 넘었는데 하나같이 웅장해 보였다.
사방은 높이 솟은 산과 나무들로 둘러져 있어서 눈 닿는 곳마다 푸르렀다.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되는 곳이었다.
“난 여기서 며칠 동안 폐관수련을 할 터이니 타산은 날 보호하고 나머지는 각자 거처를 정해 쉬어라. 허나 1백 리 이상 멀어져서는 안 된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그 말만을 남긴 뒤 몸을 훌쩍 날려 한 궁전으로 들어갔다. 타산이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대두는 잠시 망설이다가 뇌길과 같은 궁전을 택했다. 한제가 머무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궁전이라 언제든 소환이 떨어지면 곧장 응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편, 부풍자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비교적 먼 곳을 택했다. 무의식적으로 한제로부터 지나치게 가까운 곳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제의 말대로 1백 리는 절대로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제는 이곳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 커다란 궁전들의 모습은 각각 달랐지만 하나같이 범상치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한제를 따라 궁전에 들어온 타산은 그 앞에 가부좌를 튼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궁전은 매우 호화로웠다. 난간은 조각되어 있었고 계단은 옥으로 이루어졌으며, 바닥에는 거대한 팔괘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다만 그 위에서 어떤 영기도 풍기지 않는 것을 보면 그저 장식인 모양이었다.
정중앙에는 세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에두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솥이 놓여 있었는데 두꺼운 향이 꽂힌 채 푸른 연기를 유유히 피워 올렸다. 향의 연기는 궁전의 천장으로 피어올랐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옆에는 보라색 옥으로 된 방석이 있었다. 아마도 좌선을 하라고 마련된 곳인 듯했다.
사방의 벽에는 벽화와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구름에 휩싸인 채 보는 사람을 환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선인들의 모습이었다.
한제는 이곳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충분히 넓어 법보를 제련하기에도 적합했고 고요해서 폐관수련을 하기에도 좋았다.
신식을 펼쳐 사방을 자세히 살핀 한제는 보라색 옥으로 된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체내의 원력이 온몸을 맴돌면서 규열기 중기 절정의 수준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상태로 사흘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진도삼자가 방문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한제를 방해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다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물러갔다.
사흘째 되던 날, 하늘에 달과 별이 총총 떠오르고 밤바람이 땅에 쌓인 낙엽을 이리저리 희롱하던 깊은 밤이었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가 두 눈을 뜬 순간, 칠흑처럼 어두웠던 궁전이 환해졌다.
“마침내 규열기 중기 절정의 수준을 공고히 했다. 고신의 육신까지 더해진다면 정열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와도 맞서 싸울 수 있어. 허나 선부에 가기에는 아직 일러.”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저물대에서 한 줄기 푸른 빛이 쏘아져 나왔다.
궁전 안을 어스름하게 만든 푸른 빛 안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방패가 들어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안에는 연기가 떠 있어 무척 아름다웠다.
푸른 방패는 한제의 곁을 맴돌다가 허공에 둥둥 떠올랐고 발산되던 푸른 빛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그는 부풍자가 이것을 꺼낸 순간 미약하지만 분명한 고신의 기운을 느꼈다. 다만 그 기운은 무언가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짙지 않았다.
만약 한제의 본체가 고신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미약한 기운이었다.
‘고대 신 서사에게 이런 법보를 제련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 다른 고신이 제련해낸 물건이겠지.’
고민하던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방패는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한제는 한참이나 그 방패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의 눈이 방패 측면의 어떤 문양에 닿았다.
“음?”
구름에 오른 용의 형상을 한 문양이었는데 전체적으로 푸른색인 이 용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청룡(靑龍)이었다.
방패에서 느껴지는 고신의 기운은 바로 이 문양에 가로막힌 상태로 대부분의 기운이 발산되지 못한 채 그저 이 방패 안에 갇혀있을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그 문양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강력한 반동이 폭발하듯 발산되어 한제의 손가락을 튕겨냈다.
푸른빛에 휩싸인 작은 방패가 진동했고 청룡의 문양은 격렬한 빛을 번득였으며, 찰나의 순간 절정에 이른 빛은 돌연 한 마리 청룡으로 변했다.
길이가 약 1백 척에 달하는 청룡은 궁전의 반 정도를 채울 정도로 컸고 온몸의 화려한 비늘에서는 엄청난 위엄이 느껴졌다.
“캬오오!”
입을 쩍 벌려 포효를 내지른 청룡은 한제를 삼킬 듯 달려들었다.
“짐승 주제에!”
한제는 싸늘하게 외치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광풍이 불어 닥치며 청룡을 휩쓸었고 청룡을 움켜쥔 한제는 으스러뜨릴 듯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