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96
“선계에서 빚은 술이지. 우연히 얻은 것인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수준을 올리는 데에는 아무런 효능도 없지만 한 방울만 마셔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취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도환이 술병을 건넸다.
“내가 있으니 마음 놓고 취해도 좋다.”
한제는 술병을 받아 든 뒤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선인의 술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자마자 한 덩어리 뜨거운 기운이 뱃속으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옛 친구의 뼛가루를 그의 고향에 가져다준 적이 있지요. 그때 그의 고향에서 무엇을 들었는지 아십니까?”
한제는 술병을 들고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두 눈에서는 씁쓸함이 드러났다.
“살구나무에 하얀 꽃들이 피면 아가씨들은 도사 집안에 시집가지 마세요. 작년에는 둘째 남편이 산으로 올라가고 그다음 해에는 첫째 남편이 백골이 되었지요. 아가씨는 울며 죽은 사람을 묻고 그 관을 제 집으로 삼았대요. 살구나무에 하얀 꽃들이 피면 아이들을 도사들에게서 숨기세요. 나이를 묻는다면 도에는 연이 없다 답하세요. 개는 짖고 고양이는 할퀴어 도사는 집으로 돌아갔대요.”
동요를 흥얼거리는 한제의 목소리에는 애통함과 1천 3백 년의 수련 이후 얻은 무기력함과 깨달음이 어려 있었다.
“지금껏 숱한 위기를 맞고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만 이것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저는 감히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수련자의 길에 오르지 않았을 경우 느꼈을 즐거움에 대해서는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지요. 허나 이미 수련자의 길에 오른 이상 발을 떼기도 어렵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이 제게 계속해서 수련자의 길을 걷도록 압박하고 있어요. 겁을 낸다면 더 이상 수련을 이어가지 못할 겁니다!”
한제의 목소리는 점점 흐느낌에 가까워졌다.
“선배님, 제게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보지 못하셨지요? 이평이라는 아이인데 그 이름도 제가 지어줬지요. 태평하고 평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라는 의미에서 그리 지었습니다. 절대 수련자의 길에는 오르지 말라고요. 녀석이 평생 함께하는 동안 제게 세 번 묻더군요. 어째서 수련자의 길에 오르면 안 되느냐고요. 어째서⋯⋯. 그 녀석에게 수련자의 길에 오르지 못하게 한 것은 그 녀석이 저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제는 술잔을 비웠다. 머리가 아찔거리면서 어렸을 때 아버지의 술을 몰래 훔쳐 먹었을 그 당시의 느낌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겁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그저 저만이 알고 있지요.”
한제의 몸이 휘청거렸다. 술에 취한 것이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사도환이 수령성에 온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천운성(天運星)의 천운종(天運宗)에 진이 얼렸다.
천운자는 천운성 세력 범위의 모든 수련성에서 요령의 땅에 갈 자격이 있는 수련자들에게 직접 초대장을 보냈다.
열흘 뒤, 동해 조석의 땅이 열리니 선인의 동굴로 들어가라!
단 한 줄의 글에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는 격렬한 폭풍이 일었다.
그들 사이에서 요령의 땅에 선인의 동굴, 즉 선부(仙府)가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그리고 선부 안에는 대량의 선보(仙寶)와 선술(仙術)이 있을 것이다.
허나 수련자들이 들끓은 진짜 이유는 어쩌면 선부 안에 아직 살아 있는 선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 그리고 그런 선인이 있다면 그는 당시의 선제(仙帝)였던 청림일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만약 선부에 정말로 당시 4대 선계에서 가장 강한 자로 손꼽혔던 선제 청림이 살아 있다면 그의 몸에서 수련의 세 번째 단계로 진입할 비밀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천운자를 비롯한 수준 높은 수련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실이었다.
오랜 시간의 탐색에 따라, 이중 적지 않은 이들은 아직 청림이 선부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을 만한 정보들을 수집해냈다.
정말로 청림이 살아 있다면 당시 선계의 붕괴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막강한 자인지를 알 수 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중상을 피하지는 못했을 테고 폐관수련이 필요했을 터였다. 그리고 여러 흔적들로 미루어, 당시 청림이 폐관수련을 하러 들어간 곳은 요령의 땅 깊은 곳에 있는 그 선부일 가능성이 높았다.
요 몇 차례 요령의 땅에 들어간 경험으로 미루어, 선부 안의 선인은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을 터이니 그야말로 기회였다.
능천후도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왔다. 요령의 땅에 대해 다른 자들과 같은 야심을 품고 있던 그는 일찍이 연락해둔 친구를 기다렸다.
삽시간에 천운성 주위는 외부의 수련성에서 온 수련자들로 북적였다. 그중 천운자의 초대장을 가진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 무렵, 나천성역과 연맹성역 사이의 전투는 갈수록 격렬해져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전투가 발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말로 수준 높은 수련자들 중 이곳을 찾은 자는 드물었다. 또한 천운자는 연맹 장로단의 구성원이었기에 혼란한 틈을 타 한몫 챙기려던 자들 역시 마음을 접었다.
조석의 땅 입구에 모여드는 수련자의 수는 점점 많아졌다. 이들은 하나같이 요령의 땅에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초대장을 발송한 지 열흘째 되던 날, 천운자도 조석의 땅 입구에 도착했다. 홀로 도착한 그는 허공을 걸어 느긋하게 다가왔다. 백의에 차분한 얼굴, 뒤로 나풀거리는 백발은 선인의 풍모를 한층 더해주었다.
그의 발아래에는 먹처럼 검은 삼지창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걸음은 언제나 그 삼지창에 닿아 있었다.
천운자는 수많은 선술만으로도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기에 평생 법보를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그 삼지창을 본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 수군거리는 자는 없었다.
천운자는 조석의 땅 위의 허공에 섰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거대한 회오리는 아직 어떤 흡입력도 발휘하지 않았다.
천운자의 출현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천운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기쁨도 분노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조석의 땅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력의 파동이 느릿하게 흘러드는가 싶더니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차례차례 도착했다.
천운자의 뒤를 이어 도착한 것은 한제가 천운성에 돌아왔을 당시 천운종 상공에서 호리병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 노인이었다. 그 뒤로는 아홉 명의 제자들이 서 있었다.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천운자에게 인사를 했다.
천운자 역시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혼(魂)
1각 정도 지났을까? 붉은 구름이 나타나 우주를 뒤덮었다.
붉은 구름에는 한제를 초청했던 그 촌부처럼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묘령의 여인 네 명도 당시 천운종에 왔던 그 여인들이었다. 그중 분홍색 옷을 입은, 능천후가 곤허의 성녀일 것이라고 예상한 그 여인은 뭔가를 찾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후로도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 대부분은 규열기 수준으로 각자 흩어져 친분이 있는 이들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쉭, 쉭 소리가 들리더니 금색 빛줄기들이 나타나 조석의 땅 상공에 빠르게 응집되었다. 온 우주를 뒤덮을 듯 모여든 금빛은 빠르게 응집하더니 눈부신 섬광을 폭사했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마치 전선(戰仙)처럼 거대한 그 사내의 긴 머리는 세찬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나풀거렸다.
마흔 전후로 보이는 그는 의지가 단단해 보였고 두 눈에서는 전광이 번득였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뒤흔들릴 정도로 짙은 위엄을 풍겼다.
이곳에는 수준 높은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조차 이 사내의 눈빛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사내는 자색의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깨에는 눈이 세 개 달린 보라색 담비가 엎드려 있었다. 이 담비 역시 냉랭한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를 본 순간, 호리병 위의 노인은 물론이고 천운자마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천운자 도우, 오랜만이군. 나도 초대를 받고 왔네. 덕분에 간만에 천운자 도우와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
자색 옷의 사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손 장로 참으로 예의가 바르군.”
천운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손 장로의 어깨 위에 있던 성흔(星痕) 담비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사방을 살피다가 앞발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그때, 검기 하나가 나타나 우주를 꽉 채울 것처럼 퍼지더니 그 검기에 뒤이어 붉은 기린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기린의 등에는 비쩍 마른 노인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검존 능천후였다.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긴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손 형, 참으로 빠르시군. 난 여태 손 형이 올지 어쩔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하하하!”
손 장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검존의 초대를 받았는데 당연히 와야지! 나뿐만 아니라 검존의 초대에 응한 이가 또 있다 들었는데?”
능천후의 눈이 광기 어린 희색으로 번득였다.
★ ★ ★
요령의 땅에는 변고가 발생했다.
요령의 땅은 아홉 개 군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난 수백 년 동안 연혼(煉魂)이라는 부족이 천요군(天妖郡)과 화요군(火妖郡) 내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매우 공격적인 이 부족은 끊임없이 다른 부족을 함락시키면서 천요군과 화요군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구성원만 해도 수백만 명에 달했고 천요군과 화요군의 군사들도 그들을 두려워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이 부족이 이렇게 커가는 와중에도 고요(古妖)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요령의 땅 군사들이 연혼 부족을 특히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구성원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신통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깃발로 수많은 혼백을 소환했고 이를 융합시켜 만들어낸 혼수(魂獸)로 적들을 삼키기도 했다.
특히 몇몇 우두머리들의 신통력은 더욱 놀라웠다. 그중 십삼이라는 자는 혼백을 모으고 수련한 결과 요수(妖帥)에 대항할 만한 실력을 갖춘 상태였다.
또한 부족의 대장로인 구양화는 99개의 깃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모두 사용하면 수억 개에 달하는 혼백이 소환돼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요령의 땅의 원주민은 수련자와 타고난 신체능력부터 달랐고 수련 속도도 느렸지만 이 연혼 부족은 달랐다. 그들은 거침없이 발전했는데 이는 지난 수백 년간 그들이 수많은 혼백을 흡수해왔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연혼 부족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 요령의 땅 아홉 개 군에 분포한 채 상고 시대의 전장이나 각 군끼리의 전투에서, 또는 다른 부락을 공격함으로써 수백 년간 수많은 혼백들을 흡수해왔다.
그리고 이날, 연혼 부족이 거의 총동원되다시피 한 수백만의 부족원들은 각자 커다란 깃발을 든 채 화요군을 향해 돌격했다. 멀리서 보면 꼭 수많은 깃발의 파도가 덮쳐드는 모습이었다.
화요군에는 고요가 부재중 이었고 지난 수백 년간 갈래갈래 찢긴 상태로 원래는 천요군에 점거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천요군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기에 화요군을 방치하다시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연혼 부족에게는 기회였다. 수백 년간 학살을 이어온 연혼 부족은 드디어 구양화와 십삼 등의 여러 우두머리를 위수로 한 채 화요군을 탈취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대규모의 병력 중에는 검은 돌로 된, 기이한 힘이라도 가진 것처럼 반짝이고 매끈거리는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이 조각상은 열 명이 넘는 부족원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는데 이를 보는 부족원들의 눈에는 숭배심이 가득했다.
그들은 지난 수백 년간 이 조각상의 주인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고 새로 부족원이 된 이들도 이와 관련한 전설을 거의 매일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그들의 혼(魂)이었고 그들의 왕이었으며, 그들의 선조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수백만 명에 달하는 부족원들은 그 존재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선조께서는 떠나셨지만 언젠간 우리에게 돌아오실 것이다! 선조께서는 절대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능천후는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은 기린에 올라탄 채 자색 옷의 사내, 손 장로의 이야기에 흡족한 듯 웃었으나, 그에 대해 더는 묻지 않고 아래쪽의 소용돌로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수련자가 조석의 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더 이상 합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능천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호리병 위에 앉아있는 노인 역시 같은 곳을 바라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