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03
눈앞의 금제는 강력했지만 지금의 한제에게는 풀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한제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번득이는 금제의 빛에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일었고 그것이 끊임없이 번득이는 사이 눈앞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평범해 보였던 반경 1백 보는 한제의 시야 안에서 총 39714개의 금제로 바뀌었다. 이 금제들은 하나로 연결돼 있어 하나만 건드려도 나머지가 연쇄적으로 가동되게 되어 있었다.
예전의 한제였다면 밖으로 나가 이 3만 개 이상의 금제들을 모두 파악한 뒤 하나하나 해제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파멸금,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심금(心禁)까지 파악한 상태였다.
세상 만물에는 금제가 배치될 수 있다. 거대한 우주는 한 사람의 마음에 포함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한 번의 움직임은 무궁무진한 금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다.
추론을 하던 한제는 곧장 열 걸음을 걸어 나갔다.
순간 반경 1백 보의 금제들이 촉발되면서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던져 넣은 것처럼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동시에 부풍자마저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력이 나타났다.
‘선금술(仙禁術)! 과연 교묘하군. 천운자와 능천후는 어떻게 이것을 풀었을지 궁금하군.’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반경 1백 보 안에서 모래바람이 일더니 주위가 곧 사막이 되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람에 모래와 자갈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쉭, 쉭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모래 폭풍이 형성한 회오리가 한제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정열기 수련자들은 신식을 통해 반경 1백 보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와 엄청난 충격을 감지할 수 있었다.
허나 한제는 한없이 침착했다. 그는 검은 회오리가 덮쳐드는 찰나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한 줄기 금제가 소환되더니 번득이며 검은 회오리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허나 이 회오리는 세상을 뒤덮을 수 있을 것만큼 거대했고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그 위력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폭풍의 아래쪽, 한제가 있는 그 지점만 붕괴했을 뿐이다.
한제는 그 회오리를 그대로 관통하며 걸어 나갔다.
이 간단한 금제는 한제가 수많은 계산 끝에 배운 것으로 시간, 방위, 지점 그리고 금제의 위력 등 어느 것 하나라도 편차가 생기면 결코 지금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풍자는 한제를 멍하니 응시하며 찬 숨을 들이켰다. 그는 한제가 금제에 대해서도 이토록 뛰어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자의 여유로움은 거짓이 아니라 진정한 여유로움이었군! 금제의 변화 일체를 예측하고 있는 거야! 저자는 지금 금제로 금제를 부수고 있어!’
회오리를 뚫고 나간 한제는 더욱 속도를 올렸고 돌다리까지는 이제 열 보 정도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그 순간, 폭풍이 흩어져 사라지고 그 대신 수증기가 퍼져나갔다.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도 울려 퍼졌다. 한제의 시야에는 거대한 바다가 나타났고 이 반경 1백 보 안에서 성난 파도가 철썩이며 달려드는 듯했다.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그가 기다려왔던 것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성난 파도의 허상이 달려드는 찰나, 한제는 저물대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바로 파멸금을 전수 받은 사람이 지녀야 하는 심금의 나침반이었다.
나침반을 쥔 한제는 꼿꼿하게 섰다. 성난 파도가 옷깃을 적시고 긴 머리가 바람에 의해 뒤로 날리는 것이 꼭 선인의 모습 같았다.
그는 왼손으로 나침반 위를 휙 그었다. 그 순간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나침반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화선(花仙)
왼손을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휘두른 한제는 성난 파도를 바라보며 왼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그 한 걸음으로 수십 척을 이동한 그는 금방이라도 성난 파도 안으로 뛰어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성난 파도에 가까워진 그 순간, 한제는 손에 들고 있는 나침반을 앞으로 내던지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아래에서 대량의 금제들이 소환되어 나타났다.
“파(破)!”
한제의 거대한 외침에 따라 날아가던 나침반은 검은 빛을 번득였고 소환된 금제는 나침반을 맴돌며 강력한 힘을 사방으로 확산시켰다. 이에 성난 파도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굴복하듯 흩어지더니 완전히 소멸되었다.
한데 파도가 사라진 순간, 선부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역시 이 금제를 통제하던 자가 있었군!’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그는 좀 전에 금제를 보자마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외부의 금제는 죽은 금제로 고유의 방식에 따라 변화했다.
하지만 이 1백 보 반경의 금제는 달랐다. 은연중에 나타나는 변화는 마치 누군가가 통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제가 은시를 안으로 들여보낸 것도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열 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였던 금제의 변화를 통해 한제는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한제는 나침반을 든 채 순식간에 돌다리 위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선부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선인의 동굴인 이곳이 절대 만만할 리 없음은 한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금제를 통제하던 존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뒤로는 감탄한 눈빛의 부풍자를 비롯한 일행이 따라붙었다.
한제는 돌다리 위에 서서 앞을 살폈다. 선부 안쪽은 화원처럼 곳곳에 꽃이 가득했다. 선인의 동굴 안쪽인데도 불구하고 울긋불긋한 색에 보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고 매스꺼웠다.
조각된 난간과 옥 계단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누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궁전이 있었다. 봉황과 처음 보는 선수(仙獸)가 조각된 궁전이었는데 여기서 선인의 위엄이 더욱 더 충만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대전 밖에는 열 개의 금으로 된 조각상도 있었는데 모두 갑옷을 입고 있어 꼭 선병(仙兵) 같아 보였다.
“현금!(玄金)”
한제의 눈이 굳어졌다. 이 열 개의 조각상은 모두 현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금은 선제 청림의 옥패에 선위의 육신을 강하게 만드는 주요 재료 중 하나라고 기록된 소재였다.
두려울 정도의 위엄이 그 시커먼 대전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일전에 능천후로부터 들은 말이 있지. 선부(仙府)는 선혼(仙魂)으로 지켜진다고 말이야. 당시 능천후는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인 끝에 그 선혼을 죽이고 겨우 그 선부를 차지했다고 했어.”
부풍자가 선부 안의 건물들 중 대전 깊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제는 몸을 달려 곧장 돌다리를 건넌 뒤 선부의 내부에 이르렀다.
그 순간, 끝없이 펼쳐진 꽃들이 돌연 기이한 향을 뿜어냈고 그 향은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나 짙은 그 향에는 기이한 독이 함유되어 있었다.
“우후독향(雨後毒香)!”
부풍자가 긴장한 얼굴로 얼른 외쳤다.
“우(雨)의 선계의 독을 이용한 공격술에 관한 선계의 고서를 읽은 적이 있네. 그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 1백 개의 순위를 매기고 간단한 설명을 달아놓았는데 개중에는 각종 꽃들을 섞어 심었을 때 저절로 만들어지는 독소 두 가지가 있지. 그중 하나가 바로 우후향독으로 그 향을 맡으면 수준이 불안정해지고 자칫하면 아예 수준을 잃을 수도 있어!”
진도삼자(塵道三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독이 강하다 한들 규열기 수준에 이른 그들은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한제는 수많은 꽃들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부풍자는 긴장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우후향독은 93위에 불과했다네. 꽃의 향으로 자연히 만들어지는 다른 독소의 이름은 화령(花靈)이라 하는데 그것은 49위야!”
전방의 알록달록한 꽃들로부터 시선을 거둔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기이한 바람이 사방을 휩쓸었다.
“흠?”
한제는 흠칫 놀랐다. 자신이 일으킨 바람에도 꽃향기에 담긴 독은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런 형태도 갖추지 않은 듯 바람 속에서도 한제를 향해 다가왔다.
“재미있군!”
한제는 피식 웃더니 뒤로 물러나는 대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은시(銀尸)!”
한제의 뒤에 있던 은시는 진도삼자를 단번에 뛰어넘어 곧장 그 꽃향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은시를 제련했을 당시 한제는 이미 이 시체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다. 이 시체의 진정한 강점은 신통력도 원신에 깃들어 있는 기이한 가위도 아니었다. 바로 독이야말로 은시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당시 이 은시를 빼앗으려던 수련자들은 이 시체에 손을 대자마자 피와 살을 시체에 흡수당해 뼈와 가죽만 남은 몰골로 변해버린 바 있었다.
한제는 그때만 해도 그 현상이 어떤 신통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시체를 제련하면서 그것이 독에 의한 현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은시의 체내에 매우 강한 여러 가지 독이 있으며, 융합을 통해 서로 다른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후 한제는 은시를 독시(毒尸)로 여겼다. 그녀의 정열기 초기 수준과 배합하여 독소를 촉발한다면 고신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한제도 이런 존재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할 터였다.
은시는 곧장 꽃향기에 품긴 기이한 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강력한 독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은시는 뒤이어 입을 작게 벌리더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작은 회오리가 나타나 사방의 꽃향기와 그 안의 독을 모두 빨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이전까지는 아무런 형태도 없던 꽃향기는 실과 같은 형태를 드러냈고 꽃에서 피어올라 허공으로 퍼져나간 뒤 빠른 속도로 은시의 입안에 흘러들었다.
이에 따라 눈처럼 하얗던 은시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이제는 산 사람처럼 보였다.
한편, 한제의 시선은 은시가 아닌 꽃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보기에 저 꽃들은 너무도 기이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꽃을 보자마자 그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 끝없이 이어진 꽃들 중 한 송이가 돌연 짙은 향기를 실 형태로 피어 올렸다. 그리고 그 나선형으로 피어오른 향기 속에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녀의 두 눈은 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아 있었지만 고개는 빳빳하게 쳐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소녀가 나타난 순간 지면의 모든 꽃들로부터 실 형태의 향기가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다른 소녀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 순간, 한제는 각 꽃의 아래, 진흙 속에서 유골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꽃밭이 아니라 무덤인 셈이었다.
“화령!”
부풍자가 그 소녀들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이 선부 안에 이렇게 큰 보호막이 있을 줄이야. 선인을 묻어 영(靈)으로 만들고 그 영으로 꽃을 피워 꽃밭을 만들었군!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화령이 있는 곳에는 화선(花仙)이 있을 수 있다고 했지! 허나 화선은 선인이 아니라 일종의 독이야! 다만 이 독에는 지능이 있고 인간 형태로 변할 수도 있지. 그래서 화선이라고 불리는 것이야. 그리고 그 순위는⋯⋯ 10위였다네!”
부풍자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소녀들은 그 순간 두 눈에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면서 일어나더니 허공에 떠 있는 은시를 향해 마치 연기처럼 돌진했다.
“화령들은 모두 일반인 세상에서 발탁된 소녀들이라네. 오랜 시간 독특한 약을 복용시켜 약인(藥人)으로 만든 뒤 한곳에 묻어 특수한 방법으로 제련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곳은 꽃밭이 되고 소녀들의 영혼이 꽃에 녹아들면서 언젠가 화선을 빚어낼 수 있다는 거지. 당시 선계에 화선은 희귀한 독소인 데다가 인간처럼 모습을 바꿀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선인들이 즐겨 썼지. 선부를 보호하거나 희롱하며 즐기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는군.”
부풍자는 과연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해온 수준 높은 수련자답게 선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이런 사실들을 읊어주는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내용은 끔찍했다.
진도삼자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제는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호풍(呼風)과 환우(喚雨), 살두성병(撒豆成兵)을 배운 뒤로 선계가 생각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수련자들처럼 선계에 대해 무한한 동경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선제 백범의 신통력을 통해 그 백범이 절대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스스로 마도(魔道)에 가까운 선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했다.
청림도 마찬가지였다. 청림의 옥패에 기록된 꼭두각시 제련 방법은 그 무엇보다 포악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제련하는 방법이었다.
‘수련자에게 천국은 없다. 이는 선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제는 소녀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얼굴은 모두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는 두 눈에는 깊은 원한만이 남아 있었다. 허나 그 원한은 깊은 곳에 억눌러졌고 그래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점 짙게 무르익었을 터였다.
소녀들은 은시의 곁을 맴돌며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원기를 방출했다. 그 원기는 놀라운 정도로 짙었다.
주위를 맴돌던 원기는 충격이 되어 은시를 향해 달려 들었다. 소녀들은 마치 은시와 동화되려는 듯 그녀의 몸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