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07
108. Shock and Terror (6) >
***
정팔은 요원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민준은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혼자 들어갔다. 몇 분 후 다시 나올 때도 혼자였다. 여전히 빈손이다.
“뭐 챙겨 오신다면서요?”
“챙겼어.”
정팔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차를 출발시켰다. 다음 행선지는 병원이었다.
“곽도출 부인은 여기에 입원 중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입원동으로 들어선다. 정팔은 그곳에서 예상 못 한 장면을 보았다.
“회장님께 미리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양복 차림의 드워프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계시는 동안 편히 모시겠습니다. 이쪽입니다.”
방향을 가리키며, 그는 자신을 병원 이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정팔의 두 눈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사장이 왜?’
민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간단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말을 더 얹지도 않고 뒤를 따라 걷는다.
정팔은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회장님? 갑자기 무슨 회장님?’
여기 오는 사이 민준은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 정팔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학 병원 이사장을 대기시켜 놓을 수 있는 방법도, 저들이 적극적으로 의전에 나서는 이유도 짐작할 수 없었다.
이사장은 걸으면서 말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환자 보호자 쪽도 연락을 받은 모양입니다. 요원님의 병실 출입에는 동의했습니다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정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호자라면 곽도출의 장인이다.
남편을 살해한 뒤 의식 불명으로 누워 있는 여인의 부친이자, 위세가 대단한 4선 의원.
“상관없습니다.”
그들을 VIP 병실로 안내한 이사장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라며 말하곤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 정팔은 질문을 퍼붓고 싶은 눈치였다.
민준은 그런 그를 보는 대신 묘한 눈빛으로 병상을 살폈다.
“안 죽은 게 신기하군.”
정팔은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이 넓은 병실을 인간 여자 한 명이 쓰고 있다. 각종 튜브와 전극이 몸 곳곳에 연결된 상태였다. 익사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퉁퉁 부은 몸. 얼굴도 심하게 상한 터라, 정팔은 그녀의 원래 생김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
민준은 눈을 돌려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어지는 침묵.
“······?”
정팔이 입을 열려던 찰나 민준이 먼저 말했다.
“이대로 잠시 기다리자. 한 30분 정도 걸린다는군.”
“네? 30분이요?”
“잠깐 앉아 있자고.”
민준은 여유로운 태도로 병실을 살피더니 면회객을 위해 배치된 잡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유니콘 가죽으로 만든 소파 위에 털썩 앉는다. 그대로 다리를 꼰 채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뭐 확인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민준은 잡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확인하러 왔지.”
“그런데 왜···.”
“아직 때가 안 됐어.”
정팔은 알 턱이 없었다.
여기 오기 전 민준이 지하실 봉인을 풀고 안에 있던 외계인을 내보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제는 정팔은 물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상태로 차를 따라왔고 지금은 병원 옥상에서 민준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걸 말이다.
한편 민준은 윰투스가 장담한 준비 시간이 꽤나 짧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치료 가능한 건 예상했지만, 고작 30분? 대단하군.’
요원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을 걸 짐작한 정팔은 더 이상 캐묻기를 포기했다.
그 상태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팔아.”
페이지 대부분을 엘프 모델 사진으로 채운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흥미를 잃은 민준이 뜬금없이 물었다.
“네, 형님.”
요원은 전혀 다른 화제를 꺼낸다.
“너 진짜 경찰 계속할 거냐? 정년 꽉 채워서?”
정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요원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았다. 오늘 봤던 2팀장의 태도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죄송합니다. 보기 불편하셨죠?”
대뜸 사과를 하자 민준은 당황했다. 머쓱하게 말한다.
“아니···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냐. 그 새끼가 싸가지가 없는 거지.”
이름과 얼굴은 기억해 뒀다. 하지만 민준은 정팔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인간이 그 한 명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정체불명 괴질에 걸린다고 한들 정팔의 취급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처럼 가끔 아르바이트 뛰는 대신 나랑 같이 일하는 게 어때? 경찰은 바로 때려치우고.”
“어휴, 형님.”
“굳이 정년까지 안 채워도 연금 수령액이 크게 바뀌진 않잖아. 그 정도 차이는 생각도 안 날 정도로 후하게 쳐줄게.”
몇 번이고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정팔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여러 핑계를 대면서.
“······.”
정팔은 잠시 고민하더니 지금까지 입에 올린 적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형님, 오크 경찰이 별로 없는 건 아시죠?”
“응. 그리고, 왜 드문지도 알지.”
많은 사람들은 오크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광경에 어색함을 느낀다. 검거하는 쪽보다 검거당하는 쪽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기에.
문제는 많은 경찰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오크 경찰은 아닙니다.”
“들어서 안다.”
“이것도 아십니까? 비록 최초는 아니지만, 제가 건국 이래 근속연수가 제일 긴 오크 경찰이랍니다. 저보다 먼저 임관한 선배들이 있는데도요.”
“······.”
민준은 조용히 눈을 깜박였다.
“그 말은···.”
“네, 저보다 빨리 경찰 배지를 단 오크는 전부 중간에 때려치웠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제일 고참이 된 거지요. 그 사람들은 왜 못 버텼냐고요? 단순히 적성이나 직업 만족도 문제는 아니라는 걸 형님도 짐작하실 겁니다.”
누구도 버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오크 특유의 욱하는 성질이 폭발하고 만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팔은 인내했다.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전 참는 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오크답지 않은 품성이죠?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이제 겨우 5년 남았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꿈이라고 하면 꿈이겠죠.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한국 최초의 오크 경찰이 되고 싶더군요.”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등 거창한 포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
“저를 보고 애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물론 걔들도 오크도 경찰이 될 수 있는 건 알죠. 법적으로 문이 열린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임관은 가능하지만 되고 나서가 문제다.
정팔은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전 그냥 걔네들이 생각을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오크가 그럴싸한 직장을 가져 봤자 결국은 더러운 꼴 보다가 때려치울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깼으면 좋겠습니다. 한 명이라도 선례가 생기면 인식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대신에요. ‘저런 애’도 정년까지 일하다가 은퇴했으니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팔의 관할 구역 대부분은 오크 커뮤니티다. 그는 팀원 중 누구보다 자주 그곳을 순찰한다. 술집 주인부터 놀이터의 불량배들까지, 그곳에서 마주치는 모두가 정팔을 안다.
그가 의도한 것이었다. 오크 경찰이라는 개념에 모두가 더 익숙해지기를 그는 원했다. 오크가 수갑을 차는 대신 수갑을 채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기를 바랐다.
민준이 나지막이 지적한다.
“그럼 걔네들도 더러운 꼴을 볼 거잖아?”
너처럼, 이라는 말은 생략한다.
하지만 오크는 짐작했다는 듯 씩 웃었다.
“경찰이 되면 걔네들도 더러운 꼴을 보겠죠. 그리고 지랄을 떨 겁니다. 저보다는 더 오크답게요. 더 많이들 지랄을 떨수록 바뀌겠죠. 목소리가 커질수록 말입니다.”
정팔은 다음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에서는 뭔가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제가 무슨 시민운동가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니까 당장 제 손으로 뭘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이대로 버티는 건 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월급쟁이들이 버티는 것처럼요. 다들 버티면서 살잖아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민준은 잠시 그의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다가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밖에 손님이 와 있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병실 문이 열렸다.
“제가 조금 늦었군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늙은 오크였다.
그가 안으로 들어선다. 따라 들어오려는 수행원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저지하더니 다시 문을 닫는다.
곽도출의 장인이 민준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얼굴을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요원님.”
“그렇군요.”
감정을 읽기 힘든 얼굴이었다. 노인의 시선이 민준과 정팔에게 차례로 멎었다. 인사를 건넨 대상은 민준이지만 시선은 정팔에게 더 오래 머물렀다. 미세한 차이였다.
그런 그의 눈빛이 다시 민준에게 돌아온다. 4선 국회의원 최판석이 말했다.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젠킨슨 회장님이 요원님을 ‘벗’으로 인정하셨다면서요?”
“······?!”
정팔의 두 눈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드래곤께서 갑자기 연락을 주셔서 당황했는데 내용을 듣고 나니 더 놀랍더군요.”
최판석의 입에서 확인 사살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사채, 보증과 함께 현대인의 3대 공포로 꼽히는 소름 끼치는 단어.
드래곤.
‘드래곤? 그것도··· 젠킨슨 회장?’
젠킨슨 컴퍼니의 그 젠킨슨?
한국을 영지로 삼은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말도 안 된다!’
그런 고룡이 쿼터 엘프를 친구로 인정한다고?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정팔이 혼란에 빠진 사이 요원은 차분하게 되물었다.
“회장님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했습니까?”
“······!”
부정하는 대신, 심지어 받아쳤다!
정팔은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네, 그 어르신은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그는 병상의 수양딸을 바라본다.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품은 딸아이입니다. 이민국 요원께서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취조하겠다 하니 걱정되더군요. 심지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데 말입니다. 우려를 표했더니 그 점잖은 드래곤께서는 ‘나의 친구’가 방문할 거라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니 전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분이 인정한 벗이라면 고룡이 직접 방문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감히 누가 축객령을 내리겠습니까?”
오크는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요원을 지긋이 바라본다.
“오크가 인간을 입양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익명의 살해 협박을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쳤다면서요. 그들 중 일부는 계획을 머릿속에만 저장하는 대신 실제로 시도하기도 했지요. 그 수난을 겪으면서 지켜 낸 아이입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가 묵직해진 음성으로 말한다. 비장하기까지 한 어투였다.
“요원님이 흑마법사임을 압니다. 이 아이가 요사스러운 아티팩트에 휘말려 현재 매우 위중한 상황이나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제 딸을 흉측한 사역마로 만들어 정보를 캐낼 생각이시라면 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저항을···.”
“아, 잠시만요.”
민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국회의원이 갑자기 구구절절 사연을 읊은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의원님의 따님을 강시나 좀비로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의원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민준은 그런 그에게 단언했다.
“깨울 겁니다.”
늙은 오크는 고개를 젓는다. 그도 딸의 상태를 안다. 고위 사제가 오지 않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부상. 하지만 그런 사제를 초빙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다. 그는 머지않아 딸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딸을 언데드로 만드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식으로 깨우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 않···.”
민준은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천장에서 의식을 치르던 윰투스가 머릿속으로 보고했기 때문이다.
=화신이시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민준은 정신파로 답했다.
‘해.’
그 순간.
솨아아아아!
윰투스가 의도했기에 그의 신성력은 찬란한 빛도 눈부신 색채도 동반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순수한 신성력이 건물 벽을 뚫고 내려왔다. 지구에서 보기 힘든 솜씨였다. 그렇기에 민준을 제외한 누구도 그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변화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에 반응했다.
두둑! 두두둑!
“아, 아니?!”
뼈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거친 소음이 들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병상에 꽂혔다. 최판석은 황급하게 병상으로 다가갔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터졌다.
“선아야!”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는지 급하게 비상벨을 누른다. 대기하던 의료진들이 뛰어 들어왔다. 최악의 상황을 예감하며.
그런데 그들이 본 것은 예상과 다른 광경이었다.
“이, 이게?!”
의료진들의 눈에 기이한 현상이 비췄다. 몇 번의 수술을 통해 박아 놓은 철심이 스륵!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 과정에서 붕대가 찢어지고 석고 깁스가 깨져서 환자의 맨살이 보였다. 부푼 몸이 가라앉고 상처가 아물었다. 뒤틀린 골격이 제자리를 잡아 가는 것이 보였다. 익사체같이 보이던 얼굴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어딘가에서 사제가 힘을 쓰고 있다고 치부하기엔 그것을 증거하는 신성한 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설명할 수 없는 기적.
“서, 선아야?!”
의원의 목구멍 아래에서 벅찬 무언가 올라왔다. 수양딸이 의식을 회복하는 듯 옅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눈을 뜬다. 입이 열렸다.
“···아빠?!”
오크가 절규했다.
“선아야!”
의원은 무너지듯 딸의 몸을 덮었다. 그와 의료진들이 시야를 가린 탓에 민준은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잠시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리고 옥상의 윰투스를 치하했다.
‘수고했다.’
=그저, 당신을 가까이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나이다.=
병실 안에는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민준이 그들 등 뒤에서 말했다.
“이상이 없는 걸 봤으면 의료진분들은 잠시 나가 계시겠습니까? 환자와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의료진이 눈치를 보자 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병실을 비우자 최판석은 말했다.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요원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으름장을 놓던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딸이 살아난 것은 이 남자 덕분으로 보였다. 분명했다. 깨운다고 선언하더니 정말로 살려 낸 것이다.
기적 앞에서 오크가 감격한 사이.
“······!”
민준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시선은 환자에게 꽂혔다. 회복된 얼굴. 처음 봤을 때는 흉측하게 부어 식별할 수 없었고 회복한 직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려서 보지 못했다.
그 생김새가 이제야 드러났다.
최판석의 딸, 그녀의 얼굴은.
‘뭐야? 저 여자!’
민준은 그녀를 알았다.
트롤이 운영하는 외진 담뱃가게,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으로 나타났던 가냘픈 여인.
요원은 혼란을 느낀다.
‘···국회의원 살해범 기억 속 그 여자잖아!’
한편, 혼란에 빠진 건 오크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살려 냈어?! 어지간한 사제도 손 못 대는 중환자를··· 형님이 살려 내셨다?’
정팔의 머릿속에서 오늘 벌어진 일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깨달음은 충격과 전율이 되어 그의 온몸을 휩쓸었다.
오크는 요원을 본다.
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고룡이 벗으로 공언한 남자.
죽을 날만 기다리던 여자를 순식간에 회복시키는 기적을 일으킨 남자.
이런 사람이··· 평범한 쿼터 엘프일 리는 없었다.
정팔은 그제서야 민준의 진짜 정체를 알 것 같았다.
“혀··· 형님.”
정팔의 입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기이하게 뒤틀리며 울렸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물었다.
“형님··· 지금까지 신분을 위장하고 계셨군요. 모두가 속았던 겁니까?”
요원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정팔의 심각한 얼굴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긴다.
짧은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창백했다.
“형님은 사실 쿼터엘프가 아니라.”
정팔은 반쯤 확신한 단어를 읊었고, 그걸 들은 민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의원의 딸 때문에 느낀 당혹감마저 잊었을 정도였다.
“···정체를 숨긴 드래곤이셨습니까?!”
“······.”
민준은 모욕감을 느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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