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06
107. Shock and Terror (5) >
***
마법사, 김철수는 반갑게 외쳤다.
“아니, 이게 대체 얼마 만입니까? 여기서 뵐 줄이야···. 선생님은 그사이 하나도 안 변하셨습니다? 쿼터 엘프이신 건 알았지만 그래도 놀랍습니다. 세월이 비껴간 얼굴은 선생님을 지칭하는 표현이었군요!”
민준도 씩 웃었다. 예상치 못하게 옛 인연과 마주친 것이다. 그가 수십 년 전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주름진 살가죽 위로 젊었을 때 얼굴이 겹친다. 선생과 제자 관계였지만 공식적인 나이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당시에는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하지만 그사이 흐른 세월이 외모의 간극을 이리도 벌려 놓은 것이다.
김철수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고, 민준은 단생종의 덧없음을 실감했다.
“그런데, 여긴 어떤 일로?”
민준은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김철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전 마녀협동조합에서 마주친 오만식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경악한 그를 보며 민준은 차분하게 반복했다. 자신은 현재 이민국 요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외계에서 불법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검형 아티팩트를 수색 중이라고.
불법 유입은 핑계로 둘러댄 말이지만, 아시프-1의 파편이 맞다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김철수도 사람 홀리는 검에 대해 알았고 의원 살해범이 그것에 조종당했을 가능성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그가 놀란 것은 민준의 직업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원? 요원이라고요?”
목구멍 밑에서 컥! 하는 소리가 올라온다.
“선생님께서 지금··· 이민국 계약 요원으로 일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황망한 어조였다.
“아니, 요원이라니··· 선생님같이 마음이 여리신 분이, 세상에나.”
이제는 정팔이 두 눈을 부릅떴다. 뭐? 마음이 여려?
누가?
오크가 입을 쩍 벌린 사이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 복날에 개 잡는 학생들을 보시고는 짐승한테라도 그리 잔혹한 짓 하면 안 된다며 말리셨죠. 동물 잡는 것도 제대로 못 보시던 분이 어떻게 그런 험한 일을···.”
민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교편을 잡았던 시절 그는 지구 맞춤형 사회화 훈련을 마친 직후라 가식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몽둥이찜질을 하는 잔인한 도축을 말린 것도, 그리 나서는 게 보편적 기준으로 옳은 일이라 학습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그걸 민준의 마음이 여리기 때문으로 오해했고.
사실 도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개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싯적에는 용 대가리를 터뜨리고 다녔다는 걸 알면 기절초풍을 넘어 경기를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멋쩍어진 민준은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좀 볼 수 있겠나?”
“아, 당연하지요. 이민국에서 확인하시겠다는데 경찰에서 막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바로 안 들어오시고 계속 서 계신 겁니까? 얼핏 들으니 언성이 높아지던 것 같던데요.”
민준은 말없이 옆에 선 2팀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형사의 낯짝이 붉게 달아오른다. 동시에 김철수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자네가 막고 있었나?”
“아··· 저··· 절차를 엄밀히 따지면 공문이 필요···.”
“정말로 엄밀히 절차를 따지면, 지금 여기 지휘권은 나한테 있지 않나?”
“······.”
“이민국에서 협조 요청했을 때 공문 없이 현장 지휘관 판단하에 허가 가능한 건 알 테고. 왜 내게 먼저 와서 보고하지 않았지? 어째서 나 대신 자네가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나? 이것도 일종의 월권 같은데. 내 말이 틀린가?”
추궁하는 어조는 단조롭고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매서웠다. 2팀장은 똥 씹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시선을 내리깔고 웅얼거렸다.
“···죄송합니다.”
2팀장이 충양돌기를 사수할 수 있도록 기여한 은인은 그제서야 시선을 뗀다. 그 업적은 은혜를 베푼 자도 입은 자도 모르는 채 묻혔다.
“제가 감식에 정신이 팔려 두루 챙기지 못했습니다. 불편하셨다면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선생님.”
그러더니 현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실은 저도 곤란한 참이었습니다. 멀쩡한 사람 홀리는 걸 보면 지독한 저주가 분명한데 흔적이 전무하더군요. 혹시 한 번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찰 고위직 마법사가 오히려 이민국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민준을 바라보는 노인의 두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려고 온 건데, 당연하지.”
안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간 민준은 바닥에 쓰러진 트롤을 보았다. 들은 대로 흉기는 곁에 없었다.
살해범은 온몸이 뒤틀리고, 퉁퉁 붓고, 피부가 보라색으로 물든 상태다.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다. 목숨을 간신히 건진 곽도출의 아내나 감식반과 달리 이번에 발견된 ‘검의 숙주’는 숨이 끊어진 것이다.
죽기 전 CCTV 영상 속에서 국회의원 목을 날리던 그는 검기를 뿜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능력자로 등록되진 않은 상태라고.
‘미등록 웨폰 마스터라. 요즘 세상에 굳이?’
의아해하면서 일단 검의 흔적을 찾아본다.
화륵!
그는 두 눈에 백색 불꽃을 두르고 주변을 살폈다. 검을 쥐었던 트롤의 시신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뒤에 단언했다.
“영계에는 별다른 자취가 없군.”
김철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눈에 안 보이면 마법은 아니라는 거군요.”
“그래, 그 검에 붙은 건 저주 같은 게 아니야.”
영혼에 의한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가설이 거의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따라서, 그 검을 찾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그럼 이 상태로는 검을 추적할 방도가 없겠군요.”
“잠깐 기다려 보게.”
저도 모르게 옛날 말투로 말한 뒤 민준은 정신을 집중했다.
트롤이 통증을 잘 견딘다지만, 시신 상태를 보면 죽기 전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참혹한 죽음을 맞은 자일수록 쉽게 성불하기 어렵다.
그러니 민준의 예상이 맞다면, 저 트롤의 영혼은 아마도···.
‘아직 이 안에 있군.’
요원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응시한다. 그가 힘을 뿌리자 트롤 몸에서 뿌연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서서히 형태를 만든다. 시신의 그것과 비슷했다. 제멋대로 쥐어짠 다음 펴지 않고 그대로 말린 걸레 같은 모습.
=아아! 아아아!=
요원은 주문을 외워 트롤의 망령을 제압했다. 그의 기억과 민준의 의식이 연결된다. 제대로 된 영체가 아니기에 내면세계는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민준은 최대한 집중하며 그 속에서 유의미한 조각들을 살폈다.
그리고 가장 최근 기억을 간신히 건져 낸다.
“정팔아.”
“네?”
“내가 지금 이 양반 생전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말이다.”
헉! 경악한 김철수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예 선생님이 그사이 사이코메트리까지 터득하셨는가?!’ 저 인격자가 설마하니 흑마법이나 사령술 계열에 손을 댔으리라고 상상조차 못 한 채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마법사 찌르고 튀었다가 금방 잡혔다는 그 감식반. 종족이 오크였냐?”
정팔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간입니다.”
“그럼 우리가 모르는 중간 숙주가 최소 한 명 이상 있다는 소리군.”
“네?”
민준이 기억 속에서 본 장면을 말한다.
“방금 이 양반이 칼을 어떻게 얻었나 들여다봤거든?”
“설마?!”
“그래. 이 트롤이 칼을 입수하기 직전에 그걸 쥐었던 작자는 오크였어.”
그 장검은 감식반이 기절한 다음, 오크를 포함한 최소 한 명의 중간 숙주를 거쳐서 트롤을 홀린 것이다.
“생각보다 복잡해지는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민준은 뒤죽박죽이 된 망자의 기억을 응시한다.
간신히 조각을 맞춘 결과, 그가 검을 손에 넣은 날의 기록이 완성되었다.
***
그날 트롤은 자신이 운영하는 담뱃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주변 풍경을 보니 오크 커뮤니티 같다.
손님은커녕 행인조차 거의 없는 외진 장소.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트롤 앞에 한 오크가 다가온다. 그는 사실 상대가 1km 전방에서 걸어올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은 적 없는 발걸음 소리와 자연스럽지 않은 숨소리··· 그리고 이질적인 기척 때문이었다.
몸을 숨길까 고민했지만 결국 그와 마주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고객’일지 모르니까.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오크는 손에 장검을 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살기를 느낀 트롤은 재빠르게 손을 뻗는다. 카운터 밑에 숨긴 트롤 전용 대형검을 꺼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트롤은 경악했다. 상대의 검에는 한 올의 검기도 맺혀 있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웨폰 마스터인 자신의 오러를 막아 낸다. 검기만 못 쓸 뿐이지 움직임은 웨폰 마스터나 마찬가지.
더군다나 오크의 검은 검기와 몇 번이고 충돌해도 깨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 격렬해질 일이 없어야 했던 공방이, 지나치게 격렬해진 찰나.
-쨍그랑!
오크는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의도된 허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방비했다. 당장 저며 버릴 수 있는 경로가 수백 개는 보였지만 트롤은 바로 공격하지 않고 망설였다.
그 순간.
-퐈악!
오크는 눈과 귀, 코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죽었다.
트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지만 일단은 시신을 치워야 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자신의 위장이 드러날지도 모르니까.
그는 담배 진열장 뒤 숨겨 놓은 화학 약품을 꺼낸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시신을 녹여서 없애 버렸다.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라 목격자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처리를 끝낸 뒤 트롤은 검을 보았다. 외견상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검으로 보인다. 아마 한국에 돌아다니는 비슷한 검만 수천 개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능이 범상치 않음을 그는 직접 경험했다. 조심스레 스크롤 몇 개를 찢어 봤지만 별다른 주문은 탐지되지 않았다. 검기도 견뎌 내던 경도(硬度)의 비결은 마법이 아니라 소재 자체에 있다는 뜻.
‘대체 정체가 뭐기에?’ 트롤의 마음속에 탐욕이 일렁거렸다. 그는 다가가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성스러운, 너무나 고귀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
“흐음.”
망령의 심상을 읽던 민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시점 이후로 남은 기억은 없었다. 완전히 정신을 지배당한 모양이다.
그래서 요원은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트롤의 기억에서 수상한 점이 너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웨폰 마스터가 행인도 없는 동네에 담뱃가게 차려 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이유가 뭘까? 가게 곳곳에 숨겨 놓은 수상한 물건들은 또 뭐고.’
떠오르는 각종 장면의 조각을 짜 맞추던 민준은 단어 하나를 건져 올렸다.
그리고 질문한다.
“‘에이브럼스 헬퍼 서비스?’ 이건 또 뭐야?”
“······!”
김철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리고 급히 대화에 끼어든다.
“트롤 기억 속에 그런 단어가 있습니까?”
마법사는 설명했다.
그것은 비교적 최근에 이름을 알린 살인 청부 조직의 이름이다.
“인터폴에서 혈안이 되어 추적하는 중인데 행적을 찾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킬러 몇 명을 생포해서 심문해도 지휘부에 대한 정보는 없고요.”
“얘, 혹시 거기서 일하던 애 아니야? 관련 없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기억 속에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
경찰들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국회의원 살해범의 정체가 범국가적 청부 조직에 소속된 킬러였다면?
“사실이라면 이능력자로 등록 안 된 이유가 설명되는군요!
“선생님, 그럼 우발적 범행이 아닐 수도 있습니까?”
“그것까지는 내가 확답 못 하겠군. 칼을 잡은 순간 이성이 날아간 건 분명하거든.”
킬러가 국회의원을 죽인 것은 맞는데, 검에 홀린 상태에서 죽였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킬러는 돈을 대가로 사람을 죽이며, 죽일 때도 죽이고 나서도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기 마련.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대가성과 계획성을 찾기 힘들다.
민준은 더 오래된 기억까지 뒤졌지만 전부 비슷비슷한 기록이었다. 하루 종일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는 장면. 요원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억의 웅덩이를 파헤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장면은 불완전해졌고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어?”
민준은 간신히 한 장면을 더 건졌다.
담뱃가게에 누가 찾아온 것이다.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외제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거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여인이 내렸다. 바람이 불면 꺾일 듯 삐쩍 마르고 가냘픈, 병색이 완연한 여자였다.
그녀는 가게로 다가와 곱게 접은 지폐를 내밀었고 그걸 낚아챈 트롤은 담배 한 갑을 건넸다.
끝이었다.
‘영양가는 별로 없군.’
그의 불완전한 사령술로는 더 이상 망령을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주문을 해제했다. 속박에서 벗어난 트롤 망령은 시체 속으로 돌아가는 대신 비명을 지르며 멀리 도망쳐 버렸다.
***
김철수는 민준이 알려 준 정보를 경찰 내부에 즉시 공유했다. 그 후로도 민준과 같이 움직이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는 거기에서 일단 작별을 고했다.
따로 움직이다가 혹시라도 그들이 먼저 칼을 입수해도 민준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공식적으로 증거물 열람을 요청해도 되고, 필요하면 몰래 가로채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 후 향한 곳은 살해당한 국회의원 자택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곳에서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차로 돌아온 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난감하군. 레이크필드에게 부탁해서 정령으로 수색하기도 어려워. 너무 흔하게 생긴 칼이야.”
마법적 흔적이 없으니 영계를 통한 관찰과 추적도 불가능하다. 잠시 고민하던 요원이 다음 행선지를 결정했다.
“정팔아, 오늘 어차피 오프지? 시간 있으면 나랑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좀 할래? 몸은 어떠냐.”
오크가 두 눈을 반짝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안 피곤하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단순한 운전기사가 필요하다면 캐시를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민준은 함께 다닐 경찰이 필요했다.
“곽도출 와이프, 지금 어디 있냐?”
정팔은 한때 창천이 보유했지만 지금은 레드 드래곤에게 넘어간 대학병원의 이름을 읊었다.
“거기로 가자. 그 여자를 좀 봐야겠어.”
애초에 칼이 세상에 처음 드러난 계기는 그녀가 저지른 살인 사건이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팔의 반응은 애매했다.
“취조는 힘들 것 같은데요.”
감식반과 달리 곽도출의 아내는 현장에서 기절한 뒤 지금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심문이 불가능한 상태.
민준은 별문제 아니라는 듯 말했다.
“상관없어.”
“아, 대화 말고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캐실 겁니까?”
마법사가 아닌 정팔은 민준에게 자기가 모르는 방도가 있으리라 넘겨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아마 보호자 측에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그 여자 아버지가 4선 의원이거든요. 아마 형님도 이름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의식불명 딸내미 병실에 요원을 들인다고 하면 결사반대할 텐데···. 실세 중의 실세라서 이민국 입김이 통할지도 모르겠구요.”
정팔은 그를 만류한다. 경찰 몇 명 구워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난이도라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민준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국회의원? 잘됐네. 내 친구 중에 어지간한 의원은 손톱질 한 번으로 부리는 양반이 있거든.”
“······?!”
“그 여자, 얼마나 심하게 다쳤어?”
정팔은 서류를 뒤지며 설명했다. 척추를 비롯한 전신 골절에 뇌 손상까지 겹쳐서, 고위 사제의 치료가 아니면 깨어날 가망이 거의 없다고.
“아시다시피 그 정도 레벨 성직자는 3년 전부터 예약을 받잖습니까?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모양입니다. 교단을 후원하는 드래곤이 아닌 이상 웨이팅 리스트 제일 아래에 이름을 적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요.”
민준은 서류를 낚아채서 쓱 훑어보았다.
“부상은 이 정도야? 다행이군.”
“네?”
정팔의 짐작과 달리 민준은 그녀를 직접 취조할 생각이었다.
일단 깨운 다음에 말이다.
“병원 가기 전에 잠깐 우리 집 좀 들르자. 지하실에서 뭐 하나 꺼내 올 게 있어.”
“······?!”
정팔은 의문 속에서 시동을 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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