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1
11. 직장상사를 살해하는 세 가지 방법 (8)
“이제 질문은 끝나셨나요? 죄송하지만 제가 좀 바빠서.”
정팔이 동료의 눈치를 살핀다. 이 정도면 시간 많이 끈 것이 아니냐는 무언의 질문.
민준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실종신고는 회사의 다른 임원 분이 하셨다고 하던데요.”
“임원들끼리 공유하는 비밀 정보라고 해서, 우리가 전부 경찰에 전화 한 통씩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김연주 전무님은 신고를 반대하셨다던데.”
“너무 성급한 선택이 아닌가 했던 거에요. 이러다가 곧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판단할 만큼 대표님을 잘 아셨나요?”
“······.”
십 년 넘게 함께 일했으니 무의식적으로 잘 안다고 할 만도 한데 입을 꾹 다문다. 방금 전 말한 ‘사생활 공유’ 이야기와 배치되는 부분이 없는지 검열을 하며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물었다.
“대표님이 이대로 없어지면 회사에서 가장 큰 득을 볼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녀는 과장된 헛웃음을 지었다.
“질문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요?”
“제 질문이 불편하신가요?”
김연주는 의자 팔걸이를 움켜잡았다.
“······득을 볼 것도 손해를 볼 것도 없어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회사 사람들 전부 똑같아요.”
“지금 대표님이 어떤 심정이실 것 같습니까?”
“어딘가에 안전하고 멀쩡하게 잘 있으면 좋겠네요.”
“전무님은 혹시, 인간이 아닌 생물에게 큰 호감을 사곤 하시지 않습니까?”
“······.”
흐름에서 벗어나 갑자기 푹 찌르고 들어오는 질문.
아슬아슬하게 쌓아 둔 모래성이 무너지듯이, 전무의 표정이 일순간 흔들렸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자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공기 중에 팽팽한 긴장감이 퍼진다.
‘빙고!’
민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제가 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말이죠.”
코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런··· 능력을 들어 본 적은 있어요.”
결국 전무는 더 부인하는 대신 얼굴을 붉히며 털어놓았다.
“네, 맞아요. 전 ISP 발현자에요. 하지만 그게 지금 수사랑 무슨 관련이 있죠?”
ISP.
풀어 쓰면, 이종간 성 페로몬(Interspecific Sex Pheromone.)
아직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생물학적 신비 중 하나다.
본래 페로몬은 교배가 가능한 속(屬) 개체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인데, 간혹 생뚱맞게도 함께 후손을 가질 수 없는 종을 유혹하는 페로몬을 분배하는 개체가 나타난다. 돌연변이처럼.
전차원적으로 대히트 친 동화에 나오는, 샐러맨더의 안타까운 짝사랑 상대였던 시 서펜트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민준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문자열을 응시했다.
B.기관이 의뢰한 특수 임무 수행:
.
.
.
4.일부 특이 개체가 교배가 불가능한 종을 유혹하는 페로몬을 발산하는 원리 규명: 50,000달란트
고요한 시선으로 묻는다.
“전무님 같은 경우는 어떤 종에게 영향을 끼칩니까?”
그러자 김연주 전무는 대놓고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던진 무례한 질문이었고, 민준은 그 반응에서 어설픈 연출을 감지했다. 저것은 진짜 분노라기 보다는, 자기가 지금 너무 화가 났다고 민준에게 설득시키려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김연주는 공격적 제스처를 취하는 대신 반대쪽 팔꿈치를 잡는다. 몸을 보호하는 장벽. 살짝 벌린 입, 긴장된 눈매.
그 이면에는 역시나 불안감이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기서 털어놓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ISP는 해당 종과 자주 접촉해야 발현된다고 하던데요. 그럼 지구에 개체수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고 사회생활도 하는 종족이겠군요.”
“당신···!”
“엘프, 오크는 인간과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제외고. 조건을 만족시키는 종족은 트롤, 고블린, 드래곤···.”
‘드래곤’이라고 말할 때 김연주의 동공이 아주 잠깐 축소되었다. 평범한 시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변화.
‘이제 다 왔군.’
화난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가는 김연주를 향해, 민준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에델리네스와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습니까?”
“······!”
방 안에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
전무는 더 이상 무례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며 나가버렸고, 차로 돌아온 정팔과 민준은 효성실업 근처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댔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던데요?”
정팔이 확신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장태준 대표의 현재 심정’을 추측해 보라는 질문에 ‘어딘가에 안전하게 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부터였다.
‘심리 상태’에 대한 상상을 해 보랬더니 엉뚱하게 ‘안전과 생존 여부’에 대한 답을 한 것이다.
“정팔이 넌 어떻게 생각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질문. 장태준 대표는 어떻게 되었을까?”
“둘 중 하나겠죠. 하나, 용에게 납치당했다. 둘, 용에게 납치당할 것을 미리 알고 알아서 몸을 숨겼다.”
요즘 세상 드래곤은 높은 첨탑의 공주님 대신, 한남동 고급주택에 거주하는 중년 기업대표의 납치를 꾀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첫번째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고, 김연주 전무 반응을 보니 짐작이 더 굳어졌습니다.”
“계속.”
“그 용에게 붙잡힌 것이 맞다면··· 이름이 에델리네스라고 했나요? 장태준 사장은 용에게 달라는 대로 주식도 다 뱉어내고 비밀 금고 위치도 불고도 남았을 겁니다. 버티기 힘들었겠죠.”
하지만 현재 장태준 사장의 지분은 건재하며, 용은 소사이어티에게 의뢰를 맡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자의로 도망친 건데··· 왜 경찰에 신분을 의탁하는 대신 야반도주를 했을까요?”
“외계인이라서 그랬다라고 하기에는 좀 약하지? 지금까지 숨겼다면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도 숨길 수 있을 텐데. 상대가 드래곤이라서 쫄았다? 자길 노리는 게 용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하드 디스크와 통화 내역을 싹 뒤졌지만 그가 협박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리고.
‘그 호문쿨루스.’
민준은 아직 그것을 정팔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이민국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그가 레이크필드에게 부탁한 것이 하루만 늦었다면 가짜 시신이 발견되고 주식은 유언장 대로 상속되었을 것이다.
‘그건 또 누가 꾸민 짓일까···. 용? 김연주? 장태준 본인? 그들 힘으로는 불가능해. 7대 재벌 중 하나가 얽힌 것이 아니라면.’
허접한 새끼 용이나, 외계인으로 의심받긴 하지만 기업 하나 간신히 굴리고 있던 남자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용의 이름을 딱 집으신 겁니까? 김연주 전무 얼굴이 저승사자를 본 것마냥 파랗게 질리던데요.”
“아, 그거? 별 거 아니야.”
민준은 드래곤 용의자를 세 명까지 줄일 수 있었던 추론 과정을 설명해 주었고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지 정팔은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리고 셋 중 하필이면 에델리네스의 이름을 말한 이유를 꺼내려는 찰나.
-우웅! 우우웅!
후라이팬이 또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 저 귀찮은 새끼가 정말!”
거칠게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서 손잡이를 낚아챈다. 일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는 순간.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효성실업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씀 드릴 부분이 있어서 참지 못하고 몸을 떨었는데, 마침 또 제가 아는 분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아서···.=
“아는 분?”
=네, 연주 누님이요!=
민준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장태준 사장이 이 후라이팬을 손에 쥔 채 회사로 출퇴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깃든 자아가 전무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김연주 전무를 아나?”
후라이팬의 정신파를 듣지 못하는 정팔이 그제서야 놀랐다.
=네, 알고 말고죠!=
“어떻게?”
=저희 주인님 집에 오셨으니까 알죠! 예전에는 1~2주에 한번씩 와서 주무시고 가셨는걸요? 요즘은 무슨 일 때문인지 뜸하셨지만.=
“······.”
그때.
“어, 형님! 말소리가 들립니다.”
김연주와 대면했을 때, 민준이 정팔에게 시간을 끌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수상한 점을 찾아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웅! 지지지직!
민준은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김연주의 몸에 마법을 하나 붙여 놓았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주변의 소리를 흡수하여 술사에게 전송하는 도청마법.
차량 한 가운데에 거치한 수정 구슬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는 아무도 만나지도 않았는지 침묵만 흐르다가 이제서야 음성이 들린 것이다.
그녀는 지금 전화를 걸고 있었다. 통화 연결음이 한참 이어지다 상대가 받았다.
“어. 짧게 이야기해.”
민준이 손을 들어올려 마법 감도를 높이자, 수화기의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상대는 무뚝뚝한 어조의 여성이었다. 연결이 되자 마자 김연주는 억누른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한다.
“방금 형사 둘이 다녀갔어요!”
그녀를 사무실에서 흔들어 놓은 보람이 있었다. 애가 탔는지 바로 움직인 것이다.
있었던 일을 다급하게 설명하는 동안 상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그러자 김연주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왜 말이 없어요? 이거 어떻게 할 거냐구요. 그러니까 애초에 안 놓쳤으면 됐잖아요! 어떻게 지금까지 사람 한 명을 못 찾아요?”
“그만 좀 보채. 짜증나니까.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경찰이 벌써 여기까지 추적을 해 왔어요. 드래곤이니까, 적어도 인간이나 오크 보다는 먼저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용이 정령 소환 하나 못 하냐구요!”
정팔의 두 눈이 커졌다. 숨을 틀어막으며 다음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멍청한 소리 좀 하지 마. 원래 정령친화력은 드래곤에게 잘 발현되지 않는 특성이야. 그래서 내가 요 며칠 애썼잖아? 장태준 찾으려고 지금까지 잡아서 족친 엘프가 몇 명인 줄 알아?”
두 사람의 머릿속에 동시에 같은 사건이 스치고 지나갔다.
엘프 연쇄실종사건.
경력형사2팀장이 장태준 대표 실종 사건을 정팔에게 떠넘기고 대신 붙은 바로 그 사건이다.
“걔들 정령술 실력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못 찾은 걸 내가 어떻게 해!”
전화 상대방은 그렇게 소리를 빽 지르더니, 잠시 후 약간 누그러진 어조로 달래듯 말했다.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고 좀 기다리고 있어 봐. 오늘 잡은 엘프 하나가 흥미로운 정보를 토해냈거든?걔네 사이에도 아는 이가 극히 드문, 실력파 은둔형 정령사가 있다는 거야.”
“······그래요?”
“응. 너보다 정령질 잘하는 년놈들이 정말 하나도 없냐고 다그쳐도 입을 꾹 다물고 몇 시간을 버터더라고. 그러다가 왼쪽 눈깔로 지 오른쪽 눈깔이랑 눈인사 하고 나서야 간신히 불었지. 덕분에 그 새끼 딸래미까지 족칠 필요 없어졌으니 일이 쉬워졌지 뭐야.”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그 대단하다는 정령사를 잡으러 가는 중이었어. 아, 나 이제 도착했다. 일단 끊어 봐.”
그제서야 두 사람은 전화 상대방이 야외에서 통화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걸음소리. 그리고 잠시 뒤, 좀 더 둔탁한 감도로 수화기에 목소리 하나가 흘러 들었다.
“아··· 손님··· 이다. 어서오세요! ···사장님! 여기 손님···!”
두 사람은 얼어붙었다.
배경음처럼 희미하게 들린 것은, 민준과 정팔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고블린의 익숙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