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26
127. 드래곤이 새끼를 숨김 (4) >
그는 델에게서 오리할콘 후라이팬을 입수한 뒤 드래곤 로드에게 연락했었다. 매도 의향을 타진한 것이다.
그러자 로드는 다음에 대면할 기회가 생기면 들고 오라 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이미 용족 회의에 초청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결국 둘은 오늘 재회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서신을 보내던 그때와 비교하여 민준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기대감을 잔뜩 높여 놓은 모양이군.’
로드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는 민준이 제안한 매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리할콘으로 만든 후라이팬이라니! 이야기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지. 이런 과감한 발상을 실행에 옮긴 예술가가 대체 누구일까? 어떤 종족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했어.”
목소리에 열기가 피어오른다. 그 반응을 본 민준은 낭패라고 생각했다.
“이건 도구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도발이야. 이야기만 들어도 느껴지더군. 유쾌한 의도와 세태를 꼬집는 비판 의식이! 마법 금속을 원하는 형태로 조형하는 기술력과 한계를 허용치 않는 예술적 상상력이 조화된 작품이 기대되네. 자, 가지고 왔겠지? 어서 꺼내 보라고.”
어투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마저 감돌았다. 드래곤 로드, 이 예술 애호가는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오리할콘제 조리 도구가 정말 요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게 사실 둔기 겸 방패라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예상 못 할 터.
로드는 민준의 매물이 순수 예술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보고 감상하라고 만든 게 아니라, 나쁜 놈들 대가리 후려갈기라고 만든 건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민준은 말했다.
“···죄송합니다. 거래는 힘들 것 같습니다.”
“뭐?! 아니, 왜?”
말을 바꾼 꼴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로드에게 연락을 할 때까지만 해도 민준은 이 물건의 진정한 기능을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누가 상상했겠는가? 살짝 휘두르기만 해도 웨폰 마스터의 모가지를 으깨 버리고 공격을 받아치면 산이 깎이는 후라이팬을.
민준은 이걸 팔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핑계를 둘러댄다.
“면밀히 살펴본 결과 로드께 넘기기에는 부족한 물건이라 판단했습니다.”
다른 드래곤이라면 먼저 제안했다가 거래를 파투 내는 수형자에게 분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준은 이 정도로만 말을 해 둬도 상대가 납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예상은 맞았다.
“그래? 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내보였던 기대감과 대비되는 쿨한 답변.
생각해 보면 저 늙은 용은 첫 만남 때부터 그에게 묘할 정도로 강한 호의를 표했다. 그때 환하게 웃으며 한 말을 기억한다.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드래곤의 입에서··· 그것도 늙을 대로 늙은 용이 할 법한 말은 아니라서 놀란 기억이 있다. 그는 굳이 분류하자면 젠킨슨과(科)였던 거다. 나이 때문에 누구도 그에게 함부로 굴지 못하지만, 젠킨슨 또래 정도만 되었어도 동족 사이에서 별종, 괴짜, 덜 떨어진 용 취급을 받았을 발언이었다.
여하튼 그 후로도 로드는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절대 해가 될 일을 한 적은 없다. 민준은 가끔 위원회 임무를 처리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활동할 때가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드래곤 영지에서 소란스러운 일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고룡들 항의를 중재해 준 것은 로드였다.
그걸 잘 알기에 예를 갖춰 사과한다.
상대를 가축으로 보는 자아와 지성체 대표로 보는 자아 중, 후자에 집중했다. 지금은 그래야 한다.
“혹시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면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로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넬 만나자고 한 이유는 따로 있지.”
거래 이야기는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화제가 갑자기 바뀐다.
로드는 민준에게 그가 해결한 네 가지 사건에 대해 질문했다. 본 회의에서 증언을 할 테지만 미리 1:1로 들어 보고 싶다며.
그것이 오늘 민준을 찾은 진짜 이유였다.
민준은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본 것과 느낀 바를 최대한 솔직하게 답했다. 장태준 사건과 데르미 공주 사건, 창천 사건과 용거미 사건을 차례로 입에 올린다.
그 설명을 차분히 듣던 로드는 한층 매서워진 눈매로 말했다.
“사건 넷 중 셋에 카바이트가 연루된 증언이 나온 거군.”
아직 물증은 없다. 그랬다면 진작에 위원회를 상대로 공론화했을 것이다.
“그놈들이 더러운 수를 꾸미는 거야. 생각해 봐. 그 목적이 아닌 이상 드래곤만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 왜 관심을 보이겠나?”
“타당한 의심이군요.”
“드래곤들은 이 사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해. 그런데도 다들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어. 당장 자기 권력과 재산이 깎여 나가는 조짐이 없으면 안 움직여. 답답하기 짝이 없지.”
로드는 단언한다.
“그래서는 안 돼. 증거가 나오고 움직이면 늦어.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해. 그리고 필요할 경우, 우리 차원 드래곤끼리 결집하는 것을 넘어 외계 용족과도 연대해야 해.”
그가 민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네 증언이 매우 중요해. 모든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해결했으니까. 부디, 오늘 내게 말해 준 내용 그대로 회의에서 증언해 줬으면 좋겠어. 수형자 입장에서 리스크가 다소 있는 행위인 것은 알아. 그에 따른 사례는 물론 약속하지.”
민준은 이미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린 상태로 홍콩까지 왔다.
카바이트는 위원회에 대위원과 간부 다수를 배출한 종족이다. 따라서 이번 일이 카바이트라는 한 종족 문제에 그치지 않고 위원회까지 엮여 있을지도 모른다. 드래곤과 그들 사이 갈등이 더 깊어지면 민준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었다.
또한 수형자가 기브 앤 테이크 식으로 파견 차원 주민과 협조하는 일은 흔하다. 둘러댈 명분은 충분했다.
따라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한 가지 자연스러운 의문을 품은 채.
‘그렇게 중요한 회의라면, 왜 지금까지 질질 끌면서 연기한 거지? 아무리 산란이 용족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해도···.’
그 후로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사사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술잔이 몇 번 돌고, 로드는 매우 기분이 좋아진 듯 몇 번이나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민준 역시 세계 곳곳의 용족 관련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몇 달 전과는 좀 달라진 관점에서. 예전엔 ‘사랑과 전쟁’으로 들렸던 용족의 치정사가 이제는 ‘동물의 왕국’으로 들리는 것은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들 대화는 라운지가 영업을 끝낼 때까지 이어졌다.
***
정팔은 요즘 매우 혼란스럽다.
최판석 의원은 그와 면담한 뒤 다시 재촉해 오지는 않았다. 마지노선으로 정한 기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팔은 그때까지 어떤 방향이든 대답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시 되뇐다. 맙소사, 공천이라니.
‘내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니.’
그가 경찰직에 붙었을 때도 모친은 잔치를 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크 출신 경찰은 흔치 않았으니까. 정팔은 그날을 회상한다. 세상에나,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그런데 한술 더 떠서 금배지를 달기라도 하면 모친은 기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설득하던 최판석의 말은 울림을 남겼다. 경찰에서 무작정 몇 년 더 버티는 것 보다, 훨씬 크고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
어쩌면 자신의 고민을 좀 더 명확하고도 효과적으로 풀어 줄 길이 펼쳐진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선거에 승리한다는 가정하의 이야기지만.
그럼으로써, 최악의 삶을 상상하면 항상 그 이하를 경험하게 되는 이 동네 주민들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동물 것인지 사람 것인지 모를 오줌 냄새가 물씬 풍기고, 쓰레기가 나뒹굴고, 공공 기물은 멀쩡한 것을 찾기 힘들고, 대낮부터 술에 취한 청년들의 패싸움이 끊이지 않는 이 거리에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정팔은 운전석에 앉은 자경단원에게 물었다. 지나가는 투로.
“야.”
“네?”
“너 여기 토박이지?”
“그렇죠.”
“만약 네가··· 나랏일을 하게 되면 이 동네에 뭘 해주고 싶냐?”
“나랏일 하고 있잖아요, 지금. 그 변태 뱀파이어 강간범 새끼 잡으려고 잠복하는 게 나랏일 아니에요?”
“좀 높은 자리에 오르면 말이야.”
“왜요? 저 승진해요? 다른 동네로 전출시켜 주는 거예요, 드디어?”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좀 상상력을 발휘해 봐.”
그러자 자경단원은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에이, 씨. 난 그렇게 출세하면 당장 이 동네 뜨고 완전히 까먹어 버릴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 여기로는 오줌도 안 싸겠네.”
정팔은 그럴싸한 대답 듣기를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자경단원은 잠깐 침묵하며 계속 머리를 굴린 모양이다. 그러더니 말했다.
“에이, 씹.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여기 가로등부터 좀 깔겠네요.”
그들이 잠복한 골목은 지독히도 캄캄했다. 본래 배치된 전등도 적은 데다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몇 개 없었다. 고장 난 지 오래지만 고치지 않는다. 세수가 시원찮은 동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었다.
“애초에 지금 여기 잠복한 것도, 그 새끼가 이 주변에서 졸라 열심히 활동해서 그런 거잖아요. 여기 골목이 정상적인 동네처럼 밤에도 환해 봐요. 누구 눈에 띌까 무서워서 몸 사렸겠지.”
골목 조명의 조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범죄율이 유의미하게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그걸 알면서도 행정력은 여기까지 미치지 않는다.
“여기저기 제발 CCTV도 좀 깔고요. 그거 몇 대만 제대로 돌아가도 벌써 그 새끼 잡았겠네. 그리고 경찰이든 자경단원이든 대가리 수 좀 늘려야죠. 이 넓은 구역을 지금 인원으로 카바 치는 게 말이 돼요?”
둘은 이 인근에서 수차례 신고가 들어온 뱀파이어 강간 용의자를 잡기 위해 잠복 수사 중이었다.
요즘은 재벌 후계자도 뱀파이어 특성자임을 커밍아웃하면서 당당하게 언론에 나설 정도로 세간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잠재적 강간범으로 여긴다. 그런 고정관념에 일조하는 범죄자들이 이런 동네에 모여드는 것이다.
“내 생각도 그렇긴 해.”
고개를 끄덕이며 오크는 뇌까린다. 경찰로 오크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그는 그만큼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민준에게 상담을 청했더니 그가 보인 반응도 마음을 기울게 했다. 최판석 의원에게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민준은 담담한 반응이었다. 놀란 기색이 너무 없어서, 오히려 정팔이 더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대답도 긍정적이었다.
정팔은 둘 사이 오간 대화를 떠올린다.
‘내가 같이 일하자고 몇 번이나 꼬실 때는 다 거절하더니, 국회의원 배지에 넘어가냐? 섭섭하네.’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아무튼,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최판석이라면 널 절대 배신하거나 등쳐 먹지는 않을 거야. 제대로 서포트해 줄 거다.’
‘그렇습니까? 사실 문득 한 번씩 보이는 눈빛이 좀 싸하긴 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데?’
‘이틀 전이요.’
‘아, 그럼 괜찮아.’
‘······?’
‘아무튼 촉은 좋다니까. 이제는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정팔이 생각에 잠긴 사이 자경단원은 심심해졌는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잠복 중에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어?”
자경단원이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톡방이 난리가 났는데요?”
“이 시간에 다들 깨어 있냐?”
“밤낮 뒤바뀐 백수들 많잖아요. 아무튼, 큰 사고가 났나 봐요.”
“뭐? 어디서?!”
정팔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듣고 금방 긴장을 푼다.
“외국이래요. 홍콩. 장난 아니라는데요? 거의 전쟁 난 분위기라는데?”
비행기로 몇 시간 걸리는 외국의 일, 말 그대로 물 건너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의 물꼬를 돌리려는 찰나.
‘······!’
정팔은 뒤늦게 생각해 냈다. 지금 한국을 비운 민준이 향한 출장지가··· 바로 홍콩이라는 것을.
‘설마?’
오크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
민준은 자신이 왜 눈을 떴는지 몰랐다.
시간은 새벽 세 시를 지나고 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멀리 밀려 나갔던 감각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완벽한 각성.
그 직후, 민준은 잠에서 깬 이유를 알아차렸다.
“······!”
바로 주문을 외운다.
팟!
다음 순간 민준은 호텔 옥상에 서 있었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찬란하던 홍콩의 야경은 반쯤 시들어 있었다. 하지만 스카이라인을 구별하기에는 충분하다.
민준은 구룡반도의 서쪽을 노려보았다. 그곳에 홍콩 최고층 건물이 있다. 118층짜리 국제 상업 센터(ICC, International Commerce Centre)다.
=자네도 눈치챘나?=
하늘에서 정신파가 울려 퍼졌다.
민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의 감각이 알려 주었다. 머리 위 크고 무거운 물체가 갑자기 나타났음을.
달빛을 은은하게 반사하는 살아 있는 성채. 짙은 어둠과 상대적으로 밝은 어둠 간의 채도 차이가 윤곽을 그려 냈다. 몹시 거대한 윤곽이었다. 검은 허공을 조각낸 듯한 날개가 좌우로 세 쌍, 활짝 펼쳐졌다. 길고 우아한 목 위에는 암석 같은 머리가 있었다. 그곳에 달린 열두 개의 눈동자가 민준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응시한다.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본체로 돌아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터다. 하물며,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하지만 그래야 할 만큼 이례적인 사태였다.
엘더 드래곤 젠킨슨이 민준에게 말했다.
=저긴 드래곤 로드가 묵는 호텔이야.=
ICC 빌딩의 최고층부, 102층부터 118층까지는 통째로 리츠 칼튼 호텔이 쓰고 있다.
그들을 깨운 이변의 근원지는 저 빌딩 가장 높은 부근이다.
찌릿!
민준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거세진다. 일기 예언에 없던 폭풍이라도 몰아치듯이. 민준은 이것이 평범한 바람이 아님을 알았다.
휘잉! 휘이잉!
바람결은 기괴한 힘을 품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이 순간 홍콩은 물론 인근 도시 모든 능력자들이 기겁하며 깨어났을 것이다. 이능에 눈뜬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압도적 기운이었다.
그 중심에 ICC 빌딩이 있었다. 힘이 소용돌이를 만들며 구축한 태풍의 눈. 그곳에 드래곤 로드가 머무는 호텔이 위치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까부터 로드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어. 하지만 응답하지 않아.=
팟! 파팟!
밤하늘에 젠킨슨과 많이 닮거나 다소 차이가 있는 형태가 속속들이 나타났다. 거대 비행체의 수가 늘어난다. 용족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에 숙소를 잡고 밤을 보내던 드래곤들이었다. 모두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한 것이다. 폴리모프를 유지하는 대신 약속한 듯 본체 상태로 등장한다.
그 결과, 홍콩의 야경을 압도하는 광경이 공중에 펼쳐졌다. 수백의 드래곤이 상공에 몸을 고정한 채 한곳을 바라본다. 통행인이 드문 시간이었지만 지상에서는 비명과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민들이 경악하며 하늘을 응시한다. 고개가 꺾일 지경이 되어.
하늘을 가득 메운 드래곤 떼. 민준이 꿈꿨던 장관이지만 전혀 기껍지 않았다.
용족 사이에 바쁘게 정신파가 오갔다.
=누가 좀 텔레포트로 들어가 봐! 그 늙은이가 이 시간에 뭘 하는 거야? 도시에 운석이라도 하나 꼴아 박을 작정인가?=
=불가능해! 호텔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어.=
=결계?=
=의도적인 공간 차폐는 아니야. 어떤 거대한 주문을 준비하다가, 그 여파로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뭐? 일부러 한 것보다 그게 더 위험한 거잖아!=
당황한 용족들이 말을 주고받던 그때였다.
“······!”
민준이 뭔가를 감지했다. 그가 고함을 지르려던 순간.
콰쾅!
수백의 드래곤이 바라보는 가운데, ICC 빌딩의 최상부가 터져 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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